2017년 6월 4일 일요일

스웨덴 복지가 한국과 다른 이유

"스웨덴에서 다섯 명의 자녀를 둔 직장 여성은 매월 103만 원의 아동수당을 받고, 어린이집을 거의 무료로 이용하며, 7년 6개월간 월급의 80%를 받으면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박승희 외, <스웨덴 사회복지의 실제>, 양서원, 72쪽)

스웨덴복지의 현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의 경우는?

아동수당은 아예 없다. 2006년경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가 주도하여 노ㆍ사ㆍ정ㆍ시민사회가 모여 사회적 합의기구인 '저출산ㆍ고령사회연석회의'를 만들어 이 제도의 도입을 논의하였으나 예의 '재정 조달'의 어려움으로 실제적인 도입 결정을 끌어내는 데 실패한 쓰린 경험만을 갖고 있다.

육아휴직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스웨덴이 80%의 급여를 받으며 390일을 쓰고 나머지는 1일 정액으로 다시 90일을 사용하게 되어있는 데 비해, 우리는 육아휴직이 산전후 휴가를 포함하여 1년이다. 산전후 휴가 90일 동안은 월급을 받지만 나머지 기간은 50만원의 정액을 받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스웨덴의 휴가일수는 노동일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우리는 단순한 월력에 따른 것이어서 스웨덴의 실제 휴가일수는 더욱 길다.

따라서 위에서 본 것처럼 5명의 아이를 출산한 경우 물경 7년 6개월이나 휴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스웨덴은 배우자 중 한 사람(주로 남성)이 60일 이상을 반드시 사용하게 되어있다. 이른바 남성강제휴가사용제이다.

이뿐인가? 스웨덴에서는 아동이 12세가 되기까지는 60일간의 아동간병휴가를 받을 수 있다. 이때 월평균소득의 80%에 해당하는 급여가 지급된다. 대한민국?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스웨덴에서는, 이혼 시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한 부모는 이를 반드시 지급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월 17만원 정도의 양육비를 국가가 먼저 지급하고 추후에 징수한다. 한국? 최근에 양육비 지급을 합의하지 않으면 이혼을 허락지 않는 제도를 겨우 도입했을 뿐이다. 이혼을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문제로 보는 전환의 시발점에 서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국가의 재정적 역할은 없다.

또한, 스웨덴에 살고 있는 장애인과 노인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의 현실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43세의 다운증후군 장애인은 24시간 도우미의 보호를 받으며 그룹 홈에서 생활하고 주간보호소 등으로 출근하며, 월 122만 원의 수당을 받는다."(위의 같은 책, 94쪽)

"스웨덴의 거의 모든 노인은 무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매월 82만 원~926만 원상당의 복지급여를 받는다."(위의 같은 책 108페이지)

우리나라 장애인과 노인의 현실은 역시 비교도 되지 않는다. 장애인의 경우, '중증 빈곤 장애인' 49만 명에게 월 13만 원씩을 지급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바우처 제도를 통해 부분적으로 도우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장애인 연금이나 장애인 장기요양보험은 논의의 시작 단계이다.

우리나라에선 2007년부터 기초노령연금이 발동되어 현재 70%의 노인에게 최대 8만7천원에 해당하는 급여를 지급하지만, 그나마도 소득수준에 따라 6만, 4만, 2만 원 등 차등적으로 지불되고 있을 뿐이다. 장기요양보험은 노인 인구의 3.9%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2004년 실시된 노인실태조사에 의하면, 공적연금에 의해 안정적인 연금급여를 받는 노인들은 13.9%, 결국 노인가구 중 빈곤선 이하가 37.3%에 달한다. 이로써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노인들의 현 주소는 이른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선반 위에 놓인 무가지를 회수하기 위해 펴지지 않는 허리와 팔을 겨우 뻗고 있는 모습으로 함축된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차이는 결과 자체의 차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두 나라의 사회정치적 기반의 차이에 있다.

스웨덴의 사무직노조(TCO)는 스웨덴 모델에 대해 매우 확신에 찬 언급을 하고 있다. 즉, 스웨덴 모델은 결코 "무모한 모델은 아니"라는 것인데, 모든 정치 집단들이 동의하여 작동하고 있는 스웨덴 모델이란 네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첫째, 강력한 노조, 둘째, 유연한 노동법, 셋째, 노동시장과 가족에 대한 사전 예방적 정책, 그리고 넷째, '보편적인' 복지제도가 그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스웨덴은 높은 교육수준, 협력적 관계형성에 대한 사회적 수용, 높은 기술력, 평등한 기회, 투명성을 지닌 공공부문, 견고한 사회기반시설, '우수한' 복지제도, 상대적으로 적은 사회적 격차 등등이 확보되었고, 이것이 스웨덴의 힘으로 자랑되는 것이다.

한국에선 복지국가의 건설을 위한 기반이 아직 멀기만 하다. 노조의 존재는 성장저해 요인으로 치부되고 있고, 해고의 유연성은 있지만 고용의 유연성이나 실업에 대한 안전망은 부재하다. 보편적 복지제도 역시 복지병에 대한 유별난 우려와 성장제일주의의 그늘에 가려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선 복지국가의 추동세력이 명확치 않다는 것이 복지국가 미래에 있어 가장 우려스런 점이다. 노조도, 정치권도, 건전한 시민사회세력도 아직 복지국가 의제에 대해 그리 예민하지도, 높은 우선순위를 두지도 않은 채, 복지정치의 허약한 기반은 상당 정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식 권능형 복지국가(enabling welfare society)로 치달으며, 한국 복지제도의 골격을 민간 중심으로, 잔여주의적으로 더욱 공고히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지만, 이에 대한 강력한 견제 세력이나 대안제시 세력도 뚜렷하게 부상되어 있지 않다.

결국,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는 이러한 미진한 여건 속에서 어떻게 복지국가의 추동세력들을 규합하며, 국민의 의식 속에 복지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스웨덴 모델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위안할 수 있지만, 우리에겐 20세기와 21세기의 모순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서민의 삶이 붕괴되는 정도는 매우 심각하기에 마냥 시간을 방류시킬 수는 없다.

스웨덴 모델과 한국 모델의 차이는 결과에 있어서 보면 매우 크지만, 결국 좁혀보면, 복지국가 추동세력의 유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의 차이'를 보지 말고 '차이의 원인'을 보는 지혜가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한국형 복지국가 그 자체와 복지국가 정치세력을 포함한 모든 복지국가 추동세력에게 국민적 관심과 힘을 모아줄 때가 된 것이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96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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