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3일 화요일

다양성이 만들어낸 창조성과 경쟁력의 흔적들

유대인 품은 빈, 유럽의 문화수도로 
접점에서 나오고 연결로 완성되는 창조성

김용준 생활경제부 차장

서울대, 광운대, 한양대, 경북대.

작년 9월 말 기준 삼성전자 등기이사(사내) 4명의 출신 학교다. 모두 다르다. 임원 1029명도 분류해봤다. 이들의 출신 학교는 국내외 100곳이 넘는다. 처음 들어본 국내 대학도 꽤 된다. 삼성전자의 실력 중심 문화는 결과적 다양성으로 이어졌다. 이건희 회장이 주장한 ‘3불연’ 원칙의 결과다. 학연 혈연 지연을 용납하지 않는 것. 삼성 조직문화가 획일적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거친 환경에서도 다양성은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다양성과 경쟁력(창조성)의 관계를 증언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미국은 자체로 다양성의 보고다. 레바논,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와 그 자식들은 애플 테슬라 구글을 창업했다. 그리고 세계 시장의 지배자가 됐다.

오래전으로 가보자.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은 유럽의 문화 수도가 됐다. 15세기 피렌체와 비슷했다. 모더니즘은 이곳에서 태어났다.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 등이 빈의 공기를 함께 마셨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화려한 시대의 상징이다.

프랑스 파리를 유럽 문화의 변방으로 밀어낸 빈의 힘은 ‘공존’에서 왔다. 19세기 오스트리아는 유대인 차별을 없앴다.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갖고 있는 유럽의 인재들이 빈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들은 골방에 처박혀 있지 않았다. 살롱으로 모여들었다. 서로를 배웠다. 노벨상 수상자 에릭 캔델은 클림트가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를 이런 문화의 상징이라고 평가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 그리고 정자와 난자의 이미지는 의학, 정신분석학,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라는 얘기다. 클림트에 의해 융합이 일어난 셈이다. 다양성이 뒤얽혀 창조성을 낳았다.

17세기 네덜란드도 그랬다. 화가 얀 베르메이르의 ‘델프트의 풍경’이라는 그림. 그림에는 기독교와 가톨릭교회가 나란히 등장한다. 공존과 다양성의 시대였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다양성과 공존의 힘은 자연에서도 나타난다. 한 연구자들이 실험을 했다. 두 개의 닭장을 만들었다. 하나에는 알 잘 낳는 닭만 골라 넣었다. 다른 하나에는 잘 낳는 놈, 못 낳는 놈, 적당히 낳는 놈을 고루 넣었다. 우수한 닭 중 일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생산성은 떨어졌다. 치열한 경쟁심리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해석했다. 골고루 섞인 닭장 안은 평화로웠다.

이렇듯 다양성은 창의성과 경쟁력이 시작되는 샘과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변화는 빠르고, 전략은 미로가 됐다. 장기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 가지 전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생각이 만나는 ‘창의적 접점과 연결’을 찾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은 아닐까.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41925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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