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3일 수요일

독일통일-8 (외교전쟁 中)

일단 외교전을 설명하기 전에 베를린장벽 붕괴(1989.11.9) 이후 진행된 각국의 만남과 협상, 그리고 그 와중에 진행되었던 동독 내부의 격변적 상황을 알아보는게 독일통일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이 남북의 통일 과정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통철력도 제공해준다고 본다. 그래서 대강의 사건만 연표로 제시하겠다.

○ [89/11/13] 동독 ‘모드로우’ 총리 취임.
   – 서독에 ‘조약공동체’ 구성을 제의.
○ [89/11/20] 시위 격화. 라이프치히에서 50만 명 시위. 처음으로 ‘독일통일 구호’ 등장
○ [89/11/28] 콜, ‘독일과 유럽분단 극복을 위한 10개항목’ 발표
   – “동독에 민주제도 도입해서 주민들의 자유의사를 물어라”고 요구
○ [89/12/01] 동독, 콜의 ’10개항목’ 수용
   - 동독헌법 개정. 공산당 1당독재 조항 삭제

○ [89/12/07] 동독, 당 간부 및 재야세력으로 구성된 ‘중앙 원탁회의’
   - ”1990.5.6 에 ‘자유선거’를 실시한다”고 합의
○ [89/12/12] 미국 베이커 국무장관 발표
   - ”통일독일의 ‘NATO 잔류’를 조건으로 독일통일을 지지한다.”
○ [89/12/19] ‘콜-모드로우’ 회동.
   – ‘조약공동체’ 구성에 합의.
   – 콜은 동독에 경제지원을 약속하고, 동독 군중들에게 ‘나의 목표는 통일’이라고 연설

○ [90/01/30] ’모드로우- 고르바초프’ 회동
   – 고르바초프, ”‘국가연합 방식’의 통일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발표
○ [90/02/01] 모드로우, ’4단계 통일방안’과 통일독일의 ‘중립화’ 계획 발표.
   – ‘콜’은 통일독일의 ‘중립화’에 반대
○ [90/02/05] 동독 제 정당, 선거제휴를 위해 ‘독일연맹’ 결성
   – 독일연맹은 서독 기민당의 후원아래 결성되었으며, 신속한 통일을 공약
○ [90/02/06] 콜, ‘화폐통합’ 제안
○ [90/02/10] ‘콜-고르바초프’ 회동
○ [90/02/13] ‘콜-모드로우’ 회동.
   – 모드로우 : ‘조약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안하면서 100~150억 마르크 지원 요구
   – 콜 : (야당과 언론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모드로우 요청 거절.
   - 그러나 양측은 ‘화폐공동체’ 도입을 위한 협상개시에는 합의

○ [90/02/14] ’2+4회담’ 원칙에 합의
   – ’2+4′는 미,영,프, 소 및 동서독을 의미함
○ [90/02/15] 콜, 다시 한 번 “나의 목표는 가능한한 조속한 통일”이라고 발표
○ [90/02/21] 서독 내무장관-베이커 미국무장관 회동
   - “통일후 다른 영토의 독일편입은 없다”고 약속
○ [90/02/24] ‘콜-부시’ 회동
   – “통일독일의 ‘NATO 잔류’에 합의했다”
○ [90/03/18] 동독 ‘인민의회 선거’ 실시
   – 신속 통일을 약속한 ‘독일연맹’이 48.1% 획득하여 승리(공산당 후신 ‘민주사회당’ 대패)
   – ‘바르샤바 조약기구’ 외무부장관들, 독일통일 인정
○ [90/03/20] 서독정부 발표.
   – “통화, 경제, 사회통합을 1990년 여름까지 완료하겠다”
○ [90/03/29] ‘콜-대처’ 회동

○ [90/04/05] 선출된 동독 의원들, 동독 “인민회의” 결성
   - 반공 변호사 ‘로타 드메지어’를 총리로 선출
○ [90/04/06] ‘세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 발표.
   – “통일독일의 NATO잔류에 반대한다.”
○ [90/04/20] ‘부시-미테랑’ 회동 및 발표
   - ”미국과 프랑스는 독일통일에 합의했다.”
○ [90/04/29] 동서독 총리 발표.
   – “7/1부로 양국은 화폐, 경제, 사회를 통합한다”
○ [90/04/29] ’드메지어-고르바초프’ 회동
○ [90/05/02] 동서독 정부, ‘화폐통합’에 합의
○ [90/05/05] 제1차 ’2+4 회담’ 개최
○ [90/05/16] 베이커 미국무장관 모스크바 방문, 통일독일의 ‘NATO 가입’ 협의
○ [90/05/30] 미소 정상회담. 통일독일의 ‘NATO 잔류 문제’ 합의 실패
○ [90/06/08] ‘콜-부시’ 회동
○ [90/06/11] ’드메지어-부시’ 회동

○ [90/06/17] 동독의회 안건채택.
   – “동독국가를 해체하고 통일한다”
○ [90/06/20] 동서독 의회 결의.
   – “2+4합의에 따라 오더-나이세 국경선을 인정한다”
○ [90/07/01] ‘화폐, 경제, 사회통합조약’ 발효. 동서독간 분계선 폐지
○ [90/07/15] ‘콜-고르바초프’ 회동.
   – 통일독일의 ‘NATO잔류’에 합의
○ [90/08/22] 동독 인민회의 결정.
   – “10월 3일부로 서독으로 통합한다”
○ [90/08/31] 동서독, ’통일조약’ 가서명, 동서독 ‘국무회의’ 인준, 양독 ‘통일조약’에 서명
   – 서독기본법 제23조에 의거, 동독 6개 주가  서독으로 편입하는 형식
○ [90/09/12] 제4차 ’2+4회담’.'독일문제 최종해결 조약’ 승인

○ [90/09/20] 동서독 의회.
   – ‘통일조약 비준안’ 가결
○ [90/09/24] 동독, ‘바르샤바 조약기구’ 공식 탈퇴
○ [90/10/01] 4대전승국 외무장관 회동 및 서명.
   – “10/3부터 ‘베를린과 전체독일에 대한 전승국의 권한과 책임의 효력을 정지한다”
○ [90/10/03] 독일통일 선포
○ [90/10/12] 독일 외무장관-소련대사. “소련군 기한부 주둔에 관한 조약” 서명
   – “소련군은 1994 말까지 철수한다.”
○ [90/11/14] 독일-폴란드. ’국경조약’ 서명
   – “‘오더-나이세 선’이 양국의 국경선이다.”

이는 하나하나가 대단히 복잡하고 중요한 사건과 협상과 결정이라고 할 정도로 격변의 연속이었다. 하나하나마다 치밀한 준비가 산더미같이 필요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위에서 단 한 줄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간단한 ’화폐통합’이란 단어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협상과 준비가 필요했을까?

저런 격변의 연속 속에 각국은 외교전쟁을 했다.

나는 독일통일과 관련하여 각국의 무수한 만남과 전략과 배신과 협력, 그리고 콜이 얼마나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했는지를 기술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당시 각국의 이해관계와 대략적인 전략, 그리고 그 결과만 기술하겠다.

먼저 프랑스.

프랑스는 독일통일을 가장 바라지 않는 나라일 것이다. 과거 100년 동안 독일로부터 세 번이나 침공을 당해(프로이센 전쟁 및 1,2차세계대전) 개피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베르린장벽 붕괴 후 콜이 “독일인은 자결권을 가졌다”고 선언하자,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은  “고르바초프 입지를 약화시키고 복잡한 영토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콜을 비난했다. 콜이 ’10개항목’을 발표하자 또 다시 “경솔한 기습공격이다.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테랑은 1989.12.6. 고르바초프와 만나서는 ”유럽의 안정과 평화는 동서독이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의견일치를 보았고, 12.21. 동독 ‘모드로우’ 총리와 만나서는 ”경제발전을 위해 프랑스가 적극 투자하겠다(그러니 서독에 병합되지 마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미테랑은 또한 콜에게 ”대처 영국 총리를 조심하라”고 이간질을 하면서도, ‘대처’에게는 “독일의 부활을 경고”하는 등 2중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다음은 영국.

영국은 통일독일이 유럽통합을 촉진시켜,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영국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영국은 전통적으로 대륙에서 큰 나라가 만들어지는 것을 견제하는 입장이었으니, 속으로는 프랑스보다 독일통일을 더 반대했다.

영국의 기본입장은 ‘가능한 한 독일통일을 늦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베를린장벽 붕괴 전후 시기부터 독일통일 반대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한편으로는 독일통일이 급속히 진행된다면 NATO, EC, 헬싱키선언 서명국(35개국) 등 온갖 나라들을 끌어들여 독일통일을 논의하게 만듦으로써, 독일통일을 지연시키려는 전략도 수립했다.(이는 소련의 전략이기도 했다).

‘대처’는 고르바초프와 만나 “독일통일에는 독일 주변국들의 희망과 이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어느 서방국가도 동독 내정에 개입하거나 동독과 소련의 안보를 위협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대처는 소련군의 동독 주둔을 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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