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5일 화요일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동아시아에 대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와의 인터뷰


■ 영토 야심과 맞물린 중국 민족주의 확산에 한·일 공동 대처해야
■ 북한 핵무기 절대 포기하지 않아… 6자회담 무용지물 될 것
■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은 취지만 좋을 뿐 실체 없어
■ 자본주의 양극화 폐해는 민주주의 정치체제 통해 극복 가능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동아시아 민족주의가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하며 다자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한일간 관계 회복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중국의 부상으로 도전받는 나라들은 서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2008년 이후 공세적 외교 정책으로 전환했다. 중국의 부상을 꼭 위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큰 도전이다. 이해가 걸린 국가들 간에 함께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63)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날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중국의 부상(浮上)에 역내 국가들이 경각심을 갖고 대처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중국의 남중국해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분쟁은 경제적, 법적 다툼이 아니라 민족주의 발흥에 따른 영토분쟁이라고 규정했다. 그 연장선에서 북한 체제가 취약성을 드러내며 붕괴하더라도 중국의 개입 가능성 때문에 남북 통일이 여의치 않을 거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미래 정치학자이자 역사철학자인 후쿠야마는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되기 시작한 1989년 ‘역사의 종언’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목받았다. 1992년에 이 논문을 바탕으로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을 출간했다. 공산권이 몰락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한다는 내용을 담아 출간 동시에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키며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출간됐다. 이후에도 급변하는 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으로 세계적인 논객의 자리를 굳혀왔다. 월간중앙은 5월 6일 서울에서 그를 만나 동북아 민족주의 확산, 한일 간 역사 갈등, 북핵 문제 등 한국의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한국은 얼마 만에 다시 찾은 것인가?

“2년 전에 방문했다. 현재 ‘미국 민주주의 재단(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NED는 전 세계의 민주주의 운동 확산, 시민사회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을 활동 목표로 한다. 올 11월 서울에서 총회가 열린다. 민주주의운동 확산에 주력하는 이 기관에 대한 이해도 제고와 총회의 취지를 알리고자 방문했다.”

5월 6일 중앙일보-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에서 특별 연사를 맡아 동아시아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어떤 다자주의를 말하는 것이었나?

“많은 영역에서 다자주의가 필요하다. 경제 부분은 변화가 오고 있다. 중국이 경제분야에서 AIIB(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를 설립하려는 시도는 좋다고 본다. 이는 중국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다자주의적 접근 방식을 반영한다. 하지만 안보 분야에서 중국은 전혀 다른 정책을 구사한다. 다자주의가 아닌 양자 관계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중국은 아시아 영토 문제도 경제 문제와 마찬가지로 다자주의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동아시아 민족주의 고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는데?

“한·중·일 모두 민족주의가 고조되는 시기인데다 서로를 자극하는 바람에 상황은 꼬여만 간다. 일본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아베 일본 총리만 해도 그렇다.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20세기 역사관을 가진 그가 하는 말에 한국과 중국은 반발하고, 또 일본은 계속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식으로 동북아 정세가 악화된다.”

강력한 미·일 동맹 추구, 보수주의적 국가 운영, 과거 역사에 대한 불철저한 반성으로 대변되는 아베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겠나?

“내가 아베였다면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사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피함으로써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가 더 불편해졌다. 역대 일본 정부가 밝힌 사죄의 입장을 유지하고 수정하지 않는 게 일본 이익에 부합한다. 최근 체결된 미·일 간 신(新)방위협정 합의는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중요한 성과다. 하지만 아베의 과거 역사에 대한 해석은 동의할 수 없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나?

“중국은 꾸준히 영토 분쟁을 일으켰다. 중국은 2008년 이후 외교 정책이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부상을 꼭 위협으로만 볼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큰 도전이 될 것이란 사실은 확실하다. 중국은 분명히 영토적 야심을 강화할 것이다. 이해가 걸린 나라들이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중국은 계속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것처럼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올 수도 있다. 남중국해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분쟁은 그 성격이 법적이거나 경제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아니다. 경제 관점에서만 보면, 실제 군사작전을 밀어붙일 합리적인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의 급부상과 중국 민주주의의 장래를 점쳐본다면?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 속도는 앞으로 점차 둔화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엄청나게 빨랐지만 그 속도를 유지할 수 없다. 6.5~7%의 성장률로 둔화됐다. 향후 몇 년간은 성장이 더딜 것이다. 중국식 거버넌스는 1978년 이후 매우 인상적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문제점들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중국식 성장 모델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법치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에 성장에 필요한 동력을 계속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는 시진핑 체제 아래에서 더 권위적으로 변했고 시민의 공론장인 인터넷의 자유도 줄었다. 이런 체제에서 부패를 척결하는 모습은 좋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다지는 결과만 낳는다. 공산당 지도부가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AIIB가 중국의 경제성장에 도움을 줄까?

“AIIB가 금융 분야에서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의 성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는 불확실하다. 중국은 자국 내 인프라 역량을 구축하려 하지만 그 성장 속도는 둔화될 것이고 수요 또한 감소할 수도 있다. 이 은행을 설립함으로써 중국 내부가 아닌 중국 밖에서 성장의 동력을 찾으려 들지도 모른다.”

5월 6일자 <중앙일보> 1면에서는 ‘한국 외교의 활로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전문가(24명), 일반인(1천 명)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전문가들은 또 미·중·일·러 주변 4강과 한국의 정상 중국익을 챙기는 실리 외교를 가장 잘하는 지도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17명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꼽았다. 당신은 누구를 택하겠나?

“지금 언급한 국가 중에 정치적으로 잘하는 국가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시진핑을 가장 잘하는 지도자로 뽑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교적으로 중국은 너무 공격적이고 동남아의 많은 국가에게 소외감을 안긴다. 일본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 시진핑이 외교를 잘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시진핑의 외교 정책과 통치 스타일을 덩샤오핑, 후진타오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중국의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리더들의 외교 전략의 차이를 말하기는 어렵다. 상대적으로 덩샤오핑 때는 저개발 국가였기 때문에 큰 변화가 필요해서 경제개발에 많은 집중을 했다. 후진타오 시절엔 상황이 호전되면서 2008년부터 영토 문제에 손대게 됐다.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영토 분쟁을 이어갈 뿐이라고 본다.”

미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처음에 미국이 아시아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이 정책이 만들어진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오바마의 외교 정책에 대한 주요 연설 중 아시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게 그 방증이다. 그는 ‘회귀’라는 것을 이제 TPP협정으로밖에 살리지 못한다고 보고 있고, 그마저도 FTA 비준으로 이어질지도 불투명하다. 아시아로의 회귀는 아직 실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 이후의 리버럴리즘 미래를 어떻게 보나? 공화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게 없을 거라고 하던데?

“누가 선출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정치 체제라는 것이 언제나 의사결정을 방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공화당 대통령이 선출돼도 의사 결정은 계속 지체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인구 구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수적으로 보았을 때 민주당 지지자들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에는 히스패닉 계가 많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줄어들고 있다.”

“아직은 자유민주주의 대신할 체제 없어”

IS의 과격행동 등 여전히 <문명의 충돌> 논리가 유효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후쿠야마 교수는 “지하드나 IS와 같은 과격단체는 소수에 불과할 뿐 무슬림 국가 전체를 대변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고 새뮤엘 헌팅턴 교수의 논리를 비판했다.

1989년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역사의 종언>에서 후쿠야마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틀렸고,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하는 보다 앞선 사회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26년 동안 이 논제는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에 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역사의 종언’의 논제는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이 논제가 맞다고 본다. 앞으로 50년 후 유럽·미국·한국이 지금의 민주정부 체제를 유지할지 모르지만 중국의 권위주의, 독재체제는 변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정치체제는 안정적이지 않다. 중국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지속할 수 없는 체제를 갖고 있다. 특히 다른 나라들이 중국 모델을 채택하는 건 더 어렵다.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체제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외에 다른 대안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금융위기로 논제가 틀렸다는 비판이 거세졌었다.

“그 관점에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자본주의는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한데 미국이나 영국의 금융 규제로 발생한 위기였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잘못된 정책을 선택함으로써 일어난 것이지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경제적 양극화 심화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주장과 논리(토마 피케티 등)가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

“꼭 그렇게 불가피하지는 않은 것 같다.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치적 수단을 가진다. 복지 국가에는 가난을 구제하는, 임금체계 같은 재분배 시스템이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양극화 문제를 안고는 있지만 자본주의 자체가 민주주의와 연관돼 있어 이런 자정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경제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피케티의 처방, 즉 세제 개혁의 정책적 효용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할 수 있나?

“모든 국가는 부의 재분배를 위해서 부유층에 세금을 매기고 있다. 미국과 같은 경우도 굉장히 심한 누진세가 존재한다. 피케티가 제안하는 부유세 75%는 너무 과하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 돈 벌고자 하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수니파 급진 세력 ‘이슬람국가(IS)’의 과격성과 IS 한국인 가담 등을 보면 ‘문명의 충돌’이란 고(故)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한 개념 아닌가?

“무슬림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을 보면 헌팅턴 교수의 문명 충돌에 대한 성찰은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중국·일본 등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이들은 서로를 하나의 아시아 문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국가로 정체성을 판단하듯 국가는 중요한 단위로 남아 있다. 중동 국가들도 그렇다. 지하드나 IS와 같은 과격단체는 소수에 불과할 뿐 무슬림 국가 전체를 대변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문화가 충돌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논리다.”

후쿠야마 교수는 미국 정치제도가 총체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쇠퇴의 길을 가고 있다며 지난해 발간한 <정치 질서와 정치의 쇠퇴(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에서 기능부전에 빠진 미국 제도를 비판했다. 그는 미국의 분권시스템을 지적하며 “지적인 경직성과 기득권층의 반(反)개혁적 행태로 미국 정치의 자기 수정기능이 정지됐다”라고 진단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 ‘거부권 정치’가 정치 마비시켜

미국의 정치제도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유럽에 견줘 극찬해왔던 모델이다. 어떤 점에서 무너진(쇠퇴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가?

“미국의 헌법은 토크빌이 말했던 것처럼 독재를 예방하는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의 목표가 있다. 하지만 미국 시스템이 ‘견제와 균형’을 벗어나 서로의 발목을 잡는 ‘거부권 정치(vetocracy)’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되기 때문에 어떤 긍정적 결과에 도달하는 걸 저해한다. 국가적 난제에 대한 결정이 지연된다는 게 미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시민의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과 정치제도의 문제들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전반적인 정치의 기능장애 현상이 극에 달했다. 예산, 세금, 이민 부분에서 의회가 결정을 내리는데 힘들게 한다.”

그 문제점을 미국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도 인식하고 있나?

“아주 오래전부터 인식해왔지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자기들의 이익에만 집중하기에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정당과 이익단체는 정치자금과 영향력을 포기하려는 의향이 없다. 이슈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당 체제 때문에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익집단들의 양극화는 더 심각하다.”

외부의 충격만이 진정한 개혁을 강제한다고 했다. 외부의 충격이라 함은?

“아예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미국 제도를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지금 그런 합의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외부의 충격은 일반적으로 국가 개혁을 위해서는 금융위기나 전쟁 같은 시스템을 흔들 만한 쇼크가 필요한데 지금은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2008 금융위기가 외부의 충격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많은 원인을 가진 복잡한 위기였다. 외부 충격이라 함은, 미국 시장에 유입돼 물가를 상승시킨 유동성이 특히 아시아에서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금융위기에 대해 외부 충격이 크다는 시각도 있지만, 내부의 요인도 있었다. 미국의 규제당국이 과도하고 위험한 대출을 구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발달과정에서 이런 분권 시스템의 기능 저하는 역사적으로 불가피한 것인가?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이익집단 내의 파워 엘리트 그룹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부 시스템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첫 번째 책〈정치 질서의 기원〉에서도 중국의 한 왕조, 이슬람 오토만 왕조, 터키나 프랑스의 과거 정권에 대해서 언급했다. 국가의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권의 성격에 따라 시스템이 후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민주주의 체제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질적 평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질적 수준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높일 수 있는 것인가?

“민주주의 체제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경제 성장, 교육 기회 증진, 사회 인프라 확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정치 지배구조를 만들 때 가능하다. 국가의 정부는 이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역량을 가져야 하는 바, 부패 척결은 민주화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민주화를 어떻게 이루는가는 잘 알지만 부패 척결 역량을 갖추는 데는 서툴다. 미국이 정치 제도의 현대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지만 부패 척결은 아직 현대화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다. 민주화 세력도 독재권력을 제압하는 데 초점을 둘 뿐 효율적 국가관리에는 무능을 드러낸다. 내부 이념투쟁에만 지나치게 몰입한 대가라고 본다.”

“북한은 핵 포기 절대 안 해”

그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좌표를 짚는다면?

“1987년 이후 한국은 실로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정착시켰고, 정치에서도 경쟁 원리가 활발하게 작동한다. 언론의 자유나 공론의 장도 잘 형성돼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한국은 민주주의는 높은 수준을 구가한다. 한국의 문화가 변천 과정에 있고, (가부장적) 유교 문화가 일본에서보다 더 큰 도전을 받는 상황이다. 민주주의 측면에서 일본보다 한국이 더 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95년에 발간한 <신뢰(TRUST)>에서 한국사회의 사회구성원간의 상호신뢰가 낮은 것으로 비판한 바 있다. 지금은 어떻게 보고 있나?

“조금 복잡한 문제다. 한국은 민주화 이후 사회의 성격이 바뀌게 됐고 실제 시민사회가 굉장히 발달했다. 예를 들어 미국 같이 한국에서도 교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인 양극화와 지역 갈등은 사회구성원 간의 상호 신뢰를 저해한다.”

후쿠야마 교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1기 때만 해도 네오콘의 대표주자로 분류됐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거치는 출세의 사다리를 올라간 이력부터가 그렇다. 자본주의의 승리가 헤겔식 역사 전개를 종식시켰다고 역설한 ‘역사의 종언’이 네오콘들의 사상적 주춧돌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중동에 민주주의를 확산시켜 한다고 설파했었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전후해 네오콘 비판론으로 돌아섰다.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론을 비난하면서 네오콘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후쿠야마 교수는 당시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노선을 달리한 이유에 대해 “이라크 전쟁은 큰 실수였고 그 이후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해 입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네오콘의 대안으로 ‘윌슨주의 국제적 협조 노선’을 제시했던 그는 6자회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하드 파워를 앞세운 네오콘의 대안으로 윌슨주의 국제적 협조 노선을 제시했었다. 소프트 파워는 당면과제 해결에 유용한가?

“소프트 파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다른 국가에 영향력을 미치는 방법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다른 국가에 경제 발전과 함께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 그 핵심은 군사행동을 외교 정책의 중심에 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소프트 파워를 통해 미국 영향력을 행사하고 민주화와 인권을 촉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 관련해 가능한 시나리오는 정권교체”

북핵 문제를 푸는 도구로서의 6자회담에 대해 후쿠야마 교수는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것”이라며 “북한은 북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데 관심이 없고 중국도 북한을 설득하거나 강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북아의 현존하는 가장 큰 이슈는 여전히 북핵이다. 이 문제를 푸는 도구로서의 6자 회담은 여전히 유효할까?

“아니다. (6자회담은)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것이다. 북한은 북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데 관심이 없고, 중국도 북한을 설득하거나 강제하지 않을 것이다. 핵은 북한이 가진 유일한 자산이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핵’을 사용한다. 북한은 6자회담으로 한국·미국·국제사회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얻어냈을 뿐이다. 이게 없다면 수출도 못하고 통상도 못하는데 왜 포기를 하겠나?”

전 세계 유일의 분단 지역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100년 후 한반도의 미래나 변모상에 대해 언급한다면?

“북한 체제는 취약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붕괴하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럴 때 통일 가능성이 생길 것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이유는 중국의 개입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남과 북이 오랫동안 분단돼 있었다는 점도 순조로운 통일의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세계사적 흐름에서 볼 때 통합을 지향하는 남한과 북한의 당국자들이 갖춰야 할 식견과 철학, 원칙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

“두 나라의 정치 체제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쉽게 이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고 남한도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려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북한의 정권교체다.”

최근 연이은 중·일, 미·일 정상회담은 한국 외교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러브콜을 받는다고 안주하는 사이, 아베 총리는 미·중 모두와 손을 잡는 모양새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평가와 조언을 한다면?

“우선 한국과 일본은 관계 회복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일이 서로 싸운다고 득이 될 게 없고 장기적으로 보면 공동의 이익이 달린 문제도 영향을 받는다. 물론 중국의 도전은 장기적으로 매우 중대한 사안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 문제로 감정의 골이 깊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런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든 중국의 부상으로 도전받는 나라들은 서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독일과 폴란드의 예를 봐야 한다. 전쟁으로 인해 두 나라는 관계가 아주 불편했지만 양측의 역사학자들이 모여 교과서 기술에 합의를 봤다. 이 부분을 일본과 주변국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는 하나의 방안이라고 본다.”

글=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사진=지미연 객원기자

[출처: 중앙일보] 프란시스 후쿠야마 “북한 붕괴시 중국 개입으로 통일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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