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5일 수요일

진보주의자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순과 함정

 역사적으로 진보주의는 많은 경우 과격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공산주의가 그랬고, 생디칼리슴과 파시즘이 그랬으며, 좌파 아나키즘도 그러했지요.

 근래는 환경운동가들과 채식주의자들, 여성주의자들, PC를 강조하는 사람들 중 다수도 과격하고 막무가내로 굴다가 시민들에게 나쁜 인상을 안겨주고,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실패를 겪게 되었습니다. 물론 진보주의자들만 우리 지구촌에서 과격하게 구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단 본문에서 나는 각종 진보주의의 원천적 모순과 빠지기 쉬운 함정, 그리고 현실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은 대체로 현실의 부정적인 면을 잘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게 더 옳은가, 어떤 게 더 이상적인가를 생각하고 그 기준을 정립하는 데 능하지요. 대다수의 진보주의자들은 현실을 꿈에 맞추고자 하는 잠재적 욕구가 있으며, 그러한 태도를 오래 유지합니다.

 이러한 진보주의자들이 가장 쉽고 일차적으로 겪는 문제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관념적 조화를 맞추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본래 현실과 이상 사이엔 큰 간격이 있기 때문에, 현실을 이상에 맞춰 개선하려면 이상에 대한 현실적 수정과 검증이 필요합니다. 이는 현실 정치를 고려한다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정이지만, 이 과정을 엄밀하게 거치면 거칠수록 대부분은 진보주의적 경향이 약화됩니다. 현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이것은 모순이라기보다는 난제에 가깝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이 쉽게 부딪치는 모순은 권력의 획득과 행사에 있습니다. 정치적 진보주의는 품은 이상과 목표가 높을수록 그 실현을 위해선 필연적으로 강한 권력이 필요합니다. 약한 권력으로는 큰일을 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렇기에 높은 목표를 가진 진보주의자는 매우 강한 권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막상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뭔가 하려고 하면, 그 변화로 인한 피해자나 손해 보는 사람이 곧잘 나오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들을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여기서 진보주의자들이 선택하는 건 (안타깝게도) 대체로 공공의 이익, 집단의 이익입니다. 많은 경우 진보주의자들은 1명이 다소 부당할 수 있는 손해를 보더라도 3명이 이익을 보게끔 권력자가 조종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지 않으면 이 이야기를 납득 못할 분들도 있을 것 같으니, 최저임금 인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대체로 그로 인해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사업자들에 대해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예를 들면 이해가 쉽지요.

 강한 권력의 추구, 집단주의,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의 허용. 이런 것들이 합쳐지고 세월이 쌓이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그런데 또 현대 선진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심화된 민주정과 개인의 자유, 권리, 소수자에 대한 보호와 의견 존중을 동시에 주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민주정, 개인의 자유와 권리, 소수자의 권리 보호 등이 윤리적이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불완전한 형태로 접합되고 퍼짐으로 나타나는 모순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 모순은 현실 속에선 꽤 곤혹스럽거나 혐오스러운 형태로 발현됩니다. 언더도그마라거나 내로남불 같은 형태 말입니다. 이게 그렇게 되기가 쉬운 게, 결국 개인과 집단 중 어느 쪽을 중시할 것인가. 권력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태도를 일관적으로 유지할 것인가 같은 철학적 원칙들을 정해야 내로남불이나 언더도그마를 피할 수가 있는데, 현대의 대다수 진보주의자들은 그걸 일정 이상으로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지지자들은 본인들을 매우 민주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개인의 자유와 소수자의 권리도 중시한다고 곧잘 주장합니다만, 실제 행동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문재인을 대하는 태도는 거의 철인정치론자들이나 수호자주의자에 가까워 반민주적이고, 문재인이 매우 강력한 권력을 쥐고 ‘정의로운’ 철권 독재 정치를 행하길 바라며,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소수자에 대해선 대단히 공격적이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집단적 공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곧잘 내로남불을 시전하지요. 그런데 이게 문재인 지지자들이 꼭 유별난 인격 파탄자들이라 그런 게 아닙니다. 현대 진보주의의 원천적 모순이 드러난 결과지요.

 위에 이야기한 문제들 때문에 교조화가 나타납니다. 진보주의적 관념, 방법론 등등은 모순점도 많고 우스갯소리 같지만 ‘충분히 진보하지도’ 못했습니다. 21세기 기준에선 구시대적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현실에 맞춰 온건하고 (기존 진보주의 관점에선) 덜 진보적인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더 진보적인) 주장이 대세가 되면, 기존의 진보주의자들은 그 정치적 입지 및 권력을 잃어버리기 쉬운 상황이 됩니다. 여기서 교조화가 이루어지고, 강압과 폭력이 등장합니다. 설명은 어렵지만 현실적 샘플은 간단하지요. 문재인의 비현실적인 주장들을 친문세력 많은 흔한 커뮤니티들에서 비판하면 돌아오는 것들을 보면 됩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진보적 정치세력은 실패를 거듭합니다. 선거에서 잘 이기지 못하고, 집권을 하더라도 금세 또 정권을 내주게 되고, 시민들을 실망시켜 극우파를 집권시키거나 아예 본인들이 극우화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그들은 사회의 많은 것들을 개선하고 싶어 하지만, 그 비현실성과 모순과 교조성 때문에 대체로는 절반의 성공 또는 그 이하에 그치고 맙니다.

 이제 한국도 모순과 교조성을 품은 진보주의자들이 권력을 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권력을 쥔다면, 그들이 잘 하길 바라고 이런저런 조언을 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들이 실패하면 극우파가 집권하거나 그들이 극우화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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