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4일 금요일

변화를 꿈꾸는 북한 주민의 편지

글은 북한 체제를 바꾸고 싶지만 탈북을 선택하기엔 여러 모로 사정이 여의치 않는 북한 주민이 직접 써서 보내온 글입니다.

남쪽이나 외부 사람들이 보기엔 이색적일 수 있지만 글 내용 그대로 살려 게재합니다.

이 분이 보여준 용기를 평가하지는 못할 망정, 자기의 잣대로 훈계하고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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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시작한다>

이십여년전 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로 하여 북조선은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많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얼어죽었다.

외부세계에서 그리고 우리 지도부에서 그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거대한 전변에 대처할줄 몰랐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것이다.

직장에 나가 무얼 해얄지 자신이 지금 무얼 하는지조차 의식못하고 있다가 조용히 굶어죽은 사람도 많다.

80년대 후반기 90년대초부터 북조선의 경제는 뚜렷한 하강선을 그었다. 그것은 그저 하강이 아니라 자유락하와 근사하였다.

날마다 과장된 보고서와 비현실적인 계획안들이 쏟아져나올 뿐이였다. 일명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주민들은 차차 현실에 적응되여갔다.

여기서 분명한것은 새로운 생존의 방식이 정부의 정책이나 법령 포고 등에 의하여 수립된것이 아니라는점이다. 지역적인간의 자연진화라고 보는것이 옳을 듯싶다.

사람들은 이전 제도와 질서에서 많은 허점들을 발견하였고 가장 최적의 방식을 찾아나갔다.
여기서 더욱 분명한것은 그 선택이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가 아닌점이다. 현실에 가장 최적인 쪽으로 자연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외부의 변화와 함께 내부에서 일어난 적응의 과정이라고 설명할수도 있겠지만 인의적으로 완전페쇄된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에서 외부의 영향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현재 외국에 와있거나 그전에 와본적있는 북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있지만 외부세계에서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의 원인을 정권구조에 있다고 일치하게 말하고있다. 세습독재정치를 끝장내야만 한다고.

인간은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살건 거의 비슷한 인체구조를 가졌다. 때문에 사고능력도 거의 비슷하다고 보는것이 옳다.

우리가 번역되지 않은 외국영화를 보면서 긴장감이나 기쁨과 슬픔, 인도주의적인 고상한 감정 등을 언어의 도움없이도 느낄수 있는것은 지적능력의 주요지수인 문화적소양의 공통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비슷한 사고능력을 가졌다는것은 곧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것이다.

그런데 우리 북조선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외부의 예측에 어긋나게 현재까지 자기들의 정권과 제도를 유지해가고있다.

외계의 표현을 빈다면 세뇌당한 북사람들은 리성적인 사고와 판단, 행동의 능력을 상실해선가. 아니면 너무 서서히 진행되여가고있어 모두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것인가?

1994년 7월 8일 이후 평양시 어느 거리에 삐라가 나붙은 일이 있었는데 주요내용은 세습독재를 끝장내고 민주주의적인 정권을 세워야 한다는것이였다.

이후에도 이비슷한 사건들이 여러번 있었지만 결과는 주인공들의 비참한 종말로 끝났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내놓고 동감하는 사람은 없었다.

객관적인 평을 든다면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철저히 억제당하고있기때문일것이다.

현재 북조선에서는 정상적으로는 리해하기 힘든 매우 이상한 일들이 펼쳐지고있다.

조선예술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에서 인민배우 유원준은 이렇게 말한다.

공장이 계획을 못하는데 어느집에서 밥 굶었단 소리도 없지 뉘집 아이가 학교에서 쫓겨났단 일도 없지 이게 이상한 일이 아닌가고.

북조선의 경제생활을 한마디로 보여주고있다. 즉 여기서는 기성의 경제법칙과는 다른 신비한 법칙이 지배하고있다.

오늘날 우리는 전혀 반대의 현실에 살고있다. 직장에 결근없이 출근하는데 먹을건 없고 생활비는 술 한병값밖에 안된다(물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불법적인 수입에 의거생존한다.)

세금이 없다지만 각종 명목의 세부담이 사람들을 괴롭힌다. 가정을 유지할 능력이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없다는것을 외부세계사람들은 어떻게 리해할것인가.

외부세계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현 상황이 독재자와 그 정권에 있다고 보고 제재를 비롯한 각종 수단을 리용하여 그에 압박을 가하고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든 압박이 고스란히 그들이 동정하여마지 않는 때문에 자유와 권리를 찾아주고싶어하는(?) 북조선주민들에게 가해진다는데 있다.

그들은 또한 이렇게 호소한다. 불의를 반대하여 싸워야 한다고. 또 그럴만한 충분한 리유가 있다고.

그런데 왜 우리는 꼼짝안하고있는것일가.

이것이 현재 우리의 진화과정이다. 인간은 끝없이 진화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래일도 그럴것이다.

혹시 우리는 현대사에 전례가 없는 신비한 국가에 살면서 특이한 진화의 길을 걷고있는지 모른다. 사실 우리가 겪고있는 이 모든 사태는 우리자신이 만들어낸것이다.

독재자는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적당한 시기와 맞춤한 환경과 열광적인 추종자만 있으면 언제든지 우리들속에서 생겨날수 있다.

오늘날 우리 간부들속에서 저런 아첨쟁이들이 문제야 는 사회 불안정의 원인을 가장 무난하게 떠밀수 있는 대명사로 되였다면 일반주민들이 흔히 말하는 가운데 간부들이 문제야 는 자신과 그리고 감히 비난할수 없는 수령의 과오를 가장 무난하게 덮어둘수 있는 방책이 되고있다.

왜 항상 비판적인 문제는 타인에게만 제기되는걸가. 문제는 사실 보다먼저 자신에게 있는게 아닐가.

우리는 객관의 목소리에 감히 맞장구는 고사하고 귀기울일수도 없게 되였는지 모른다. 오늘의 상황은 우리 자신이 창조한것이니까.

그리고 이 변태적인 진화가 본모습을 드러내며 극한으로 다가갈수록 깊은 생각에 절로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다음번 진화의 길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야 하기때문에.

자신을 부정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보단 남을 타매하기가 훨씬 쉬운법이다. 차라리 지금까지의 자신을 부정하기보단 전혀 새로운 자신을 찾는것이 낫지 않을가.

우리는 정말 경이적인 기적우에서 어쩌면 남보다 훨씬 현명해졌는지 모른다. 남보다 먼저 평화와 번영이 함께 해야 한다는것을 충분히 그럴수도 있다는것을 깨달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항상 이렇게 질문하는것이다. 만일 나(너)라면 어떻게 했을가?

어떤 계급과 시대의 결함을 꼬집어내여 온갖 불행의 화근으로 몰아 부시기 위해 단결하고 투쟁하던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것은 인간의 진화사에서 어느 시기를 대표하고있으며 성과와 함께 그에 못지 않은 많은 교훈들을 남기였다.

이제 또 혁명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심중해야 한다. 꼭 희생만이 신을 감동시킬수 있는것이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만물을 지배할수 있게 되였는가. 그것은 인간이 우선 자기를 지배할줄 알았기때문이다. 자기 의지를 조정하고 자신의 진화에 대해 영향을 발휘할 능력은 인간 누구에나 있다.

이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력사에 사로잡힐것이 아니라 새로운 력사를 창조하는 기쁨을 맛보아야 하잖을가?

나부터.

나부터 시작한다. 많은 개념들을 정리하고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많은 비판속에 자기를 내던져 많은 사람들과 논쟁하면서 나의 진화를 가장 최적에로 이끌어갈것이다.

http://blog.donga.com/nambukstory/archives/12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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