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30일 목요일

문제는 87년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 체제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대선불출마를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국가적 혼란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대한민국의 실패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본심은 다음날 24일 JTBC뉴스룸에 직접 출연하여 손석희 앵커와 대화를 나누면서 드러났다. 겉으로는 총선불출마, 대선불출마를 외치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면으로는 또 다른 형태로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잡힌 것이다.

손 앵커는 김 전 대표에게 그가 대선불출마와 함께 개헌을 거론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김 전 대표는 이번 사태가 제왕적 대통령 구조 탓에 일어나 일이기 때문에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손 앵커는 그것이 김 전 대표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같다며 개헌을 고리로 탄핵 찬성 의원을 모은다는 소문이 있고, 같은 맥락으로 내각제 개헌으로 가면 총선 불출마도 제고할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는데, 이에 김무성 전 대표는 확실하게 부정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총선, 대선불출마가 결코 순수한 의도만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다른 생각이 있음을 얼떨결에 밝힌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의 허를 찌르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 그것이 얼마나 날카롭고 예리했는지는 현재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소위 '김무성의 동공지진'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 김무성 전 대표는 당황했고, 거듭해서 그건 아직 생각을 안 해봤다고 할 뿐이었다.

허약한 내각제 개헌의 근거

사실 김무성 전 대표가 이야기한 내각제 개헌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정치권 일각에서 끊임없이 주장되어 왔고,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내밀면서 많은 의원들이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근거다.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작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87년 체제는 비록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대통령 한 명에게 권한을 몰아주다 보니 부정부패가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고, 그 극단적인 형태가 이번 사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권력을 좀 더 분산시키기 위해 내각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그들.

과연 그럴까? 현행 대통령제를 내각제로만 바꾸면 작금의 사태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정부패를 벌이는 것은 구조적으로 많이 있어왔지만, 최고 권력자가 일개 민간인을 위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 이번 사건은 결코 대통령제의 한계로 설명될 수 없는 해괴망측한 사건이다.

많은 이들이 황당해하고 외신들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100년 뒤 사극이 만들어지면 2016년이 가장 인기 있는 시대배경이 될 것이라 할까.

따라서 이번 사태를 근거로 내각제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번 사태가 일반적이지 않은 만큼, 그 원인을 현행 대통령제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보다 우리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누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었는지 밝혀야 한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무자격자가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번 사태를 규정짓는 핵심이 되어야 하며 개헌을 하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박정희 체제

대통령으로서의 깜냥을 지니지 못한 민간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세력. 결국 이들은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큰 이익을 봤던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정치인들과 재벌, 보수언론 등이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세운 뒤 그 뒤에서 지금까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다.

지금이야 박근혜 대통령이 이 정도인지 몰랐다고 변명 하지만, 이미 그들은 아주 오래전에 혹은 최소한 2007년 MB와의 경선을 거치면서 이미 박근혜의 실체를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야당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녀를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안위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의 권익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과 국정을 좀 농단한들 어떠한가. 어차피 5년 임기제인 만큼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물러날 것이고, 다음에 또 그들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다른 대통령을 선출하면 되는데.

국가와 재벌, 그리고 언론의 결탁. 영화 <내부자들>에서도 보았듯이 이는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 박정희 시대 때부터 고착화된 시스템이기도 하다. 정부가 근대화를 주장하며 특정 재벌을 키우고, 재벌은 공공의 이름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대신 정권에 비자금을 대주고, 언론은 그 모든 것을 눈감은 채 국민들의 관심을 호도하는 대가로 제4부로서의 권력을 가지는 권력의 카르텔.

따라서 현재 우리가 이번 사태를 맞아 청산해야 할 것은 87년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 체제이다. 비록 박정희는 1979년 죽었지만 그 시스템은 아직까지 굳건하다. 여전히 권력은 소수에 의해 독점되고 있으며, 그것은 앞서 언급한 카르텔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계층 간의 격차가 커지면서 오히려 더욱 견고해 지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기'가 힘든 만큼 그들만의 리그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내각제도 무용지물이다. 혹자들은 내각제가 되면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한이 줄어들고 그만큼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지금처럼 권력과 재벌, 언론이 한 통속이 되어 권력을 나누고 있는 현실에서는 오히려 내각제를 통해 기존 권력의 카르텔이 강화되고 시민들의 목소리가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내각제를 택하고 있는 일본을 보자. 현재 일본은 1945년 패전 이후 몇 년을 제외하고 나서는 계속해서 보수 세력인 자민당이 정권을 잡고 있다. 이는 결코 일본인들이 보수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본이 선택하고 있는 내각제의 특성 상 지방 토호나 정치 엘리트들을 청산하기 어렵고, 따라서 그만큼 사회변혁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는 이 시기에 유독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작금의 사태를 단순히 권력구조 때문이라 호도하면서 기존의 박정희 체제를 고수하고자 하는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책임은 나몰라라 하며 자신들의 살 길을 모색 중이다.

다시 개돼지가 되지 않으려면

개인적으로 현재 우리 눈앞에 드러나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보수 세력들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특히 노무현 대통령을 증오하였는데, 요즘 그들이 해왔던 짓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왜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 싫어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생각해보자. 대통령의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말도 안 되는 짓거리들. 국가의 대사인 올림픽을 사적인 수익구조로 개편하고,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한 무기 거래를 통해 특정인의 배를 불리고, 심지어는 대통령이 재벌들을 불러들여 최순실의 딸, 정유라 친구의 부모 회사까지 챙겨주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 과연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번에만 자행됐을까?

아니다. 그것은 박정희 시대 때부터 쭉 있어왔던, 구조적인 관행이었다. 그들은 국가를 당연히 자기들 것이라 생각하고, 일반 국민들을 진짜로 개돼지 같이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이란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

상고 출신에 변변한 인맥도 없는 이가 이 나라의 최고 엘리트라던 이회창 후보를 꺾고 오로지 국민들의 지지만으로 최고 자리에 올랐다. 김대중 대통령이야 아주 오랫동안 정치를 한만큼 부득불 인정한다고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그것도 아닌, 보도 듣도 못한 인물아닌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자기들 것이라고 철석같이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며 일갈하는 서민 출신 대통령이라니. 그들에게는 노무현 대통령 존재 자체가 최악의 재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돌고 돌아 다시 변곡점에 서 있다. 이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박정희 체제를 청산하여 다시 노무현 대통령 같은 이를 배출할 것이냐, 아니면 기존의 체제 안에서 한 줌도 되지 않는 이들에게 다시금 개돼지 소리를 들어가며 세금을 모아 바칠 것이냐. 지금 우리의 실천이 앞으로의 대한민국 100년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87년 체제를 운운하지 말라. 우리는 현재 박정희 체제라는 구악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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