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4일 금요일

독일통일-1 (통일의 일등공신)

한 10년쯤 전에 ‘서울대행정대학원 통일정책연구팀’이 발간한 ’남과 북, 뭉치면 죽는다’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남과 북은 한 민족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말로 시작되는 그 책은 독일통일과 그 부작용을 강조한 책이었다.

그 책의 주장을 간단히 표현하면 ‘민족이라는 허상에 몰두하여 급속하게 하는 통일은 재앙이다’는 것이다. 그 책은 그런 증거을 상당히 많이 제시했다.

나는 그 책의 주장에 설득되기도 했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 책은 지식인 특유의 비판적 시각 - 부작용만을 과장하는 형편 없는 책이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그 책의 저자들은, 경부고속도로, 인천공항, KTX 터널, 4대강에 반대했거나 천안함, 광우뻥 루머에 일조한 지식인들처럼, 뭐든지 삐딱한 반대만 하는 사이비에 불과했다.

그 후 여러가지 글과 책을 읽으면서, 나는 독일통일이 그 책이 주장한 것과는 정반대로 ‘대단히 성공한 역작’이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독일통일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통일이다. 전혀 피를 흘리지 않았고, 강대국들의 동의 하에 매우 단기간에, 매우 스무스하게 진행되었으며, 통일 후 독일은 더욱 강대, 부강해졌기 때문이다. 동독주민들도, 서독주민들도 행복해 한다. 역사상 어느 통일도 이처럼 완벽하게 이루어진 적이 없다!

물론 독일은 통일 후 한때 헤매기는 했었다. 하지만 통일이라는 거대한 과업에서 그 정도는 새발의 피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독일통일의 부작용이 굉장히 과장되어 퍼졌다. 그런 인식 때문에 ’남과 북, 뭉치면 죽는다’라는 책이 나왔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집단인식의 오류에 빠졌던 원인은 무엇일까?

그동안 한국을 방문했던 독일 정치인과 독일 학자들이, 독일통일 당시 독일통일을 반대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당시 독일통일 주역들은 통일과정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느라고 너무 바빠 한국에 내방할 수 없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든다면 햇볓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 붕괴 = 남한 재앙’이라는 관념을 심어주었던 사람들의 이미지 조작 때문이다.

나는 여러 번 말했듯이 책임 없이 마음껏 떠들 수 있는 “기자, 교수, 시민단체” (나는 이들을 ‘무책임3총사’라고 부른다)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그 대신 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책임을 느끼는 공무원들의 더듬거리는 말을 더욱 믿는다. 공무원들은 커다란 조직의 의견을 모아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할 줄 안다.

마침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이라는 독일통일 관련 최고의(?) 책을 읽었다.

저자 염돈재 박사는 공무원 출신이다. 국정원 해외담당인 1차장 출신에, 노태우 정부 때는 북방정책을 입안했으며(북방정책은 노태우의 큰 업적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숨가쁘게 통일이 진행 중인 1990.8월부터 3년간 주독일대사관 공사로 근무했던 전문가다.

직업과 전공의 특성상 그는 독일 현지에서 많은 연구를 했을 것이다. 그런 흔적은 이 책 곳곳에 녹아있고, 저자의 직업, 경험, 통찰력, 성실함에 힘입어 그 내용과 주장에 신뢰가 갔다.

그의 책은 또한 중요한 주제별로 독일통일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 앞으로 천천히 관심 있는 주제별로 요약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통일에 대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오늘은 일단 독일통일의 가장 큰 공로자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만 소개한다. 누가 가장 큰 공로자인가? 우선 후보들을 보자.

1.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 동유럽의 개혁개방을 선도. 동유럽 주민봉기시 무력진압의 근거였던 ‘브레즈네프 독트린’ 포기 및 무력진압 반대의사 표명. 2차대전 4대 전승국의 일원으로 독일통일 승인.

2. 동독주민 : 촛불혁명으로 동독 공산정권을 붕괴시키고, 자유선거 때는 동독을 버리고 서독과의 통일을 선택.

3.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 : 신동방정책 추진. 동서독 관계 정상화 및 교류협력 증진하여 동서독간의 이질화 방지에 기여.

4.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 동독주민 시위 초반부터 독일통일 가능성을 예견하고 ‘헬무트 콜’ 서독총리의 통일정책 적극 지지. 영국, 소련, 프랑스 등 2차대전 4대 전승국에게 독일통일을 승인하도록 압박하여 성공시킴.

5.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 : 통일 가능성이 거의 예견되지 않았던 동독주민 시위 초반부터 ‘통일의 기회’라고 판단, 신속 정확한 정책과 외교를 적극적 선제적으로 시행, 동독주민들의 환심을 사고 4대강국의 동의를 얻어 독일통일로 연결.

저자는 단연 ‘헬무트 콜’이 1등공신이라는 의견이다. 이제 독일통일의 과정을 하나 하나 살펴보자.

0 개의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