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일 목요일

유령의 도시

표제는 현역 북한 작가의 단편소설 제목이다. ‘반디’라는 필명을 가진 그 소설가는 7편의 단편을 묶어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남한에서 단편소설집을 냈다. 반디가 몰래 반출시킨 7편의 소설은 하나 하나가 기가 막힌다. 뭐랄까 답답함, 분노, 막막함 뭐 이런 것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반디는 북한에 현존하는 반체제 작가다.

7편이 모두 한 가지 주제, 즉 북한을 이 지경으로 만든 김일성과 김정일과 마르크스에 대한 분노, 그리고 북한체제를 무너뜨려야만 한다는 주제라는 공통점이 있으므로, ‘고발’은 옴니버스 소설이다. 이런 소설을 반출시켜 남한에서 출간했으므로 어쩌면 반디는 정체가 발각되어 이미 처형되었는지도 모른다. 웬지 그런 생각이 들어 읽으면서도 내내 우울했다.

이 책을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내가 비로소 북한의 내면을 들여다 봤다는 느낌이 그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북한 내부의 환경과 인민들의 사고방식이 구체성을 지닌채 다가온다. 나나 우리가 지금까지 북한을 피상적으로만 봤었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먼저 ‘유령의 도시’라는 단편소설에 대한 독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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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민들이 3개월 동안 정신없이 준비했던 국경절 행사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행사 후에는 강한 총화사업(평가 및 비판)이 예정되어 있다. 외국의 눈도 있으니 김일성 광장 주변의 아파트는 모두 일정한 색깔과 모양의 커튼을 쳐야 한다. 김일성 광장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한경희가 사는 아파트도 그래야 한다.

한경희는 아들을 안고 광장의 시민궐기대회에 참가한다. 그 때 남편을 닮아 태생적으로 약골인 세 살배기 아들이 광장에 있는 털보숭이 마르크스의 초상화를 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울다가 곧 입에 거품을 물고 경기를 일으킨다. 그후 아들은 초상화만 보면 눈이 허옇게 뒤집어진다. 아파트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일성 광장의 마르크스 초상화가 창문에 비치면 그대로 거품을 물고 심지어 광장에 있는 김일성 초상화가 비쳐도 그렇게 된다.

할 수 없이 한경희는 창문에 덧커튼을 쳐서 어린 아들의 시선을 차단한다. 그러자 밖에서 보면 한경희의 아파트만 유별나게 보이게 되고, 가두 당비서는 덧커튼을 걷으라고 한경희를 닦달한다. 한경희가 아들의 증세를 얘기하며 거부하자 당비서는 덧커튼은 간첩들의 접선 암호 아니냐며 더욱 압박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지 않느냐’며 한경희는 아들이 김일성 초상화에 경기를 일으키는 현상을 해명해보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더욱 그녀를 곤경에 몰아 넣는다. 소심하고 허약한 남편이 보위부장에게 불려가 된통 홍역을 치른 것이다. 남편은 ‘아들이 자신을 닮아 약골로 태어났다’는 핑계를 대지만, 보위부장은 ‘유전되는 것은 체질만이 아니다. 정신도 유전된다’며 비판한다. 부부의 정신상태가 불온하니 그렇게 된 것이라는 뜻이다.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한경희가 친 덧커튼을 걷어버리고 한경희와 부부싸움을 한다.

행사 전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우는 행사 당일에도 그칠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난 평양사람들은 제일 먼저 하늘을 본다. 국경절 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인지가 제1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 하늘을 쳐다보지 않은 평양 사람은 아마 단 한 명도 없었으리라! 이날을 쫓아 목에서 겨불내(겨 타는 냄새)가 나게 달려온 지난 3개월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른 아침에 비가 그치자 평양 시민들은 일제히 집을 나선다.

“6시 경에 비가 멎었다. 병영에서, 학교에서, 공장에서, 방안에서 100만의 행사 참가자들이 일시에 왁짝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늘은 변덕스러웠다. 다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30분도 채 못되어 하늘은 또다시 만용을 부렸다. 이번에는 비가 뿌려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늘을 뒤엎어 놓을 기세로 무더기로 내리 쏟아졌다. 사람들이 꽉 들어찬 지하도들과 공공건물들의 채양 밑과 아파트 복도, 현관들, 지하철 입구와 버스 정류소 대기장들 밖에서 삽시에 물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망호루(맨홀)들이 넘쳐났다.”

모두가 하늘을 쳐다본다. 8시, 9시…. 그런데 비는 행사시각 45분 전에야 ‘어디 행사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듯 거짓말같이 멎는다.

시내에 산재한 100만 명이 45분 안에 광장에 모인다면 완전히 개인 맑은 하늘 아래서 행사가 산뜻하게 진행될 수 있다. 양각도와 모란봉 사이에 걸린 무지개가 허공에 ‘정시 행사 불가능’이라고 써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과연 행사는 진행될 수 있을까? ‘3개월여에 걸쳐 준비한 북조선 국경절 행사 폭우에 밀려 뒷걸음!’이라는 전파를 어느 서방나라 기자가 본사로 날린다.

“하지만 그건 이 도시를 모르는 사람들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시민들에게 알린다. 행사는 정시에 진행한다. 각 단체들과 행사 참가자들은 자기들의 집결장소에 무조건 도착하라!’는 3방송(유선방송) 소리가 온 도시의 고막을 찌른다.”

작가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산탄마냥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지하도들과 공공건물들의 채양 밑과 아파트 복도, 현관들, 지하철역 입구와 버스 정류소 대기장들에서… (중략)… 3방송은 연신 ‘무조건 도착’을 촉구했지만 광장은 아직 텅 빈 채였다. 벽시계 분침은 벌써 10시 35분 전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30분전, 25분 전….

그런데 기적이 나타났다. 광장에 하나, 둘, 두부모 같은 대열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무조건’이라는 그 말이 도시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미치는 마술 쇠꼬챙이가 되어 두룸두룸 사람들을 꿰어다가 광장에 척척 내려놓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10시 5분 전에는 온 광장이 울긋불긋한 두부모들로 꽉 들어찼고, 1백화점 양쪽 도로부터 소년궁전 앞과 창전 네거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대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게 되었다.”

주석단에 간부들이 등장하고 3방송은 이렇게 방송한다.

“시민들에게 알린다. 우리는 금방 세인을 전율케 하는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였다. 9시 55분 현재 100만 군중이 대기장소에 모두 집결하였다. 폭우가 금방 멎은 최악의 45분 간에 우리의 100만 군중은…”

앓는 아이 때문에 행사 참가자 명단에서 빠져 아파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한경희는 “심장이 후두두” 떨렸고 전율을 느꼈고 무서움도 느꼈다. 다시 한경희의 느낌을 묘사한 작가의 표현을 보자.

“죽음의 계단을 넘는 일이라 해도 그렇게는 움직이지 못하리라! 불과 45분 안에 도시에 널려 있던 100만의 군중이 광장에 모여들다니! 무슨 힘이, 그 어떠한 무서운 힘이 이 도시로 하여금 이런 불가사의한 사변을 낳게 하고 있는 것일까?”

행사 후 “사상투쟁의 분위기에서” 전국에 걸친 행사총화가 연 1주일 동안 철저하게 진행된다. 가장 큰 처벌은 가차없고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추방이었다. 추방당하는 사람들은 이삿짐을 제 손으로 쌀 필요도 없었다. 기차 시간에 꼭 맞추어 이삿짐이 번개같이 싸지고, 추방자들은 트럭 짐칸에 실려 기차역으로 가야 했다.

북행 열차가 출발하기 한 두 시간 전인 밤 11시에 한경희네 살림살이도 그렇게 트럭에 실렸다. 한경희네가 받은 판결은 다음과 같았다.

“… 가정 혁명화에 등한하고 자녀 교양을 잘못했던 것으로 하여 행사에 해를 주는 일을 저질렀을뿐더러, 공산주의 시조 마르크스의 초상화를 비속화하고, 수령님의 초상화를 솥뚜껑에 비기는 등 당의 유일사상 체계를 세우는 사업에서 중한 과오를 범한 것으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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