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8일 목요일

유대교의 분파였던 기독교가 세계 종교가 될 수 있었던 원인

이번 글은 문화역사학적 관점에서 종교를 분석한 글이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약간의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종교가 갖는 중요성은 현대인이 갖고 있는 종교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 이었습니다. 종교는 삶의 필연적인 일부 였고, 신을 부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무신론자라서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것 이었으니까요. 쉽게 이야기하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과 사회는 존재할 수 없는 것 이었습니다. 특정한 사회집단 (국가)는 신의 보우로 외적이나 기후 등 여러가지 위협요소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이 신을 배반했을 때 신은 그 응징으로 그 사회집단 (국가)를 멸망케 할 것이라는 관점은 그 어떤 것 보다도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즉, 종교를 떠난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이런 종교적 관점은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 모두 공유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기독교의 원류가 되는 유대교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민족이 자신들의 특유의 신화 체계를 갖추어 나가는 시기가 유대인이 바빌론에 의하여 박해를 받던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모세의 이집트 탈출 이야기가 성문화 시키면서 자신들 특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간단히 모세의 이집트 탈출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면, 성서에 기록된 형태의 유대인들의 대량 이주는 고고학적 관점에서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 통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수의 이집트인들이 새로운 근거지를 확보하자고 유랑하게 되었고 이들 이집트 인들은 결국 가나안 지역에서 토착민과 결합하면서 유대민족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집트 인들의 이야기가 신화화 되면서 나타난 이야기가 이집트 탈출기일 것 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토착민과 이집트 이주민들이 결합되어 형성된 유대족은 그리 강성한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이란 지역 자체가 자원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약소민족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소민족이기 때문에 여러 주변 강대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이런 피지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민족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바로 ‘구약’이라는 자기 위안적 민족 종교의 경전이 성문화되는 것입니다. 이런 형태는 고려가 몽고 지배 시절 ‘삼국유사’라는 역사서가 편찬되는 것과 바로 그 괘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유대족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신의 선택을 받은 탁월한 민족인데 자신들 스스로의 타락으로 인하여 신에게 벌을 받고 있는 상태가 바로 바빌론이라는 타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자기 위안적 종교관이 형성되게 되었다는 것이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유일신이란 개념입니다.  구약에서 유대족이 묘사하는 신의 모습은 징벌적인 전쟁의 신의 성격이 강합니다. 이런 신의 모습은 사실 다른 민족들의 민족신들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상정하는 신의 성격이 유일신 여부일 것 입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런 유대족의 종교관은 아큐의 정신승리와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유대교의 전통적 성격이 크게 변화하는 계기는 바로 예수의 출현입니다.  예수는 신의 아들을 자처하면서 신의 모습은 전통적인 유대족의 묘사인 응보적 전쟁의 신이 아니고 사랑과 용서의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예수의 주장에 따르는 소수의 유대인 집단이 형성되면서 유대교 소수파로 기독교가 탄생하게 됩니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대부분 유대인들 이었습니다. 예수가 묘사한 신의 모습 중 전통적 유대교의 신관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유일신이 유대족만을 위한 민족신인지 아니면 보다 보편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신인지 하는 부분 입니다. 예수는 상대적으로 보편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신을 묘사했습니다. 보편적이라고 해도 신의 범위가 유대족에서 사마리아족으로 확대된 것뿐이지만 신의 범위를 확대 시킬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대교 소수파의 신에서 보편적 성격을 갖고 있는 신으로 신의 범위와 성격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는 예수의 제자를 자처하는 바울이 신의 모습을 보편적인 신으로 새롭게 묘사하게 되면서 시작 됩니다. 이로서 기독교는 고등 종교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세상의 다른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을 창조한 가장 강력한 유일신, 내세 관념, 기복, 죽음과 부활, 세상의 종말 그리고 현실세상에 적용되는 윤리규준 등 입니다.

그렇다면, 로마 당시의 다른 종교가 묘사한 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신을 각자의 역할을 맞고 있는 여러 개의 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묘사하거나 또는 특정한 역할을 맞고 있는 민족신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즉, 많은 신들 가운데 자신들 민족의 신이 있는 것이죠. 이런 여러 신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유일신에 가장 가까운 신이 태양신 이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아드리아노플 전투 직전에 어떤 신에게 의지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신 중 하나가 바로 태양신이었습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의 신을 선택하게 되죠.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서 유대교 소수파의 종교 였던 기독교가 로마 사회로 파고들게 되었고, 이후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여 로마황제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야 할 단계에 온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고대 세계에서는 신을 떠난 인간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기 2세기 최전성기를 지내고 뒤의  로마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쇠퇴 상태로 접어 들었다는 것은 후세의 역사가들이 평가를 한 것이지만 당시 로마 사람들에게도 로마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은 들었을 것 입니다. 우선 제국의 확장이 멈추어 섰고, 예전에는 국경 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외적 방어에 성공하였는데 이제는 심심치 않게 국경을 돌파 당하여 국경 내부에서 방어전투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며, 대규모 해외원정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수도 로마에서 통치에 전념하던 황제가 이제는 국경 지대에서 상주하면서 방어전투를 지휘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당시 로마인들이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로마인들의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하여 인간을 초월한 존재에 대한 의존도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됩니다. 여기에 기독교가 로마사회로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 지는 것 입니다. 기독교의 신을 일반 대중에게 설파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신은 다른 모든 지역신 또는 다신교의 신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신이라는 주장은 불안감이 늘어나고 있던 로마의 일반 시민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 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기독교가 갖고 있는 다른 종교에 비하여 우월한 측면인 고등 종교적 특성이 다른 종교에 비하여 상대적 우위를 갖도록 만듭니다. 다른 종교는 기복성만을 갖고 있거나, 내세관을 강조 하거나, 신의 징벌을 강조하던지, 신의 자비에 중점을 두거나 또는 현실 사회의 윤리적 규준을 강조하고 등의 특성 중에서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종교는 당시 로마 사회에서 없었습니다. 이런 특성의 일부 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위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고 여기에 유일하고도 강력한 신의 존재를 선전하는 종교 입니다. 이런 기독교의 특성이 로마 시민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기독교를 선택하도록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종교의 자유를 공인할 당시까지도 다수의 로마인이 신봉하는 종교는 아니었습니다.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전체 로마 인구의 5 – 8%를 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최대로 추정하더라도 10%는 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기독교가 로마의 지배종교가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로마 세계의 최강자인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최강자가 신자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다수의 로마인들이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로 삼을지 여부를 심각하게 검토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기독교는 그 특성상 기존 로마의 다른 종교에 비하여 위에서 이야기한 우월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심각한 검토 후 기독교 신자가 되었을 것 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요인은 황제의 종교라는 것 이겠죠. 그렇다면 왜 황제가 기독교에 심취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이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서부 로마의 패권을 결정 짓는 전투를 하기에 앞서서 자신의 승리을 도와줄 신을 찾게 됩니다. 이 글 첫 부분에 이야기 했던 것과 같이 고대인들은 자신들의 사고능력을 해결할 수 없는 모든 자연 현상을 신의 섭리로 이해하였는데 이는 운명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의 운명은 결국 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다른 모든 신들과 비교할 할 수 없는 강력한 유일신이 앞으로 다가올 전투에서 승리를 도와준다면 콘스탄티누스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믿었을 것 입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의 신에게 승리는 기원했던 것 입니다. 물론 같은 믿음에 따라 비슷한 행동을 또다른 황제인 막시미아누스도 했을 것 입니다. 그리고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승리했다는 의미는 기독교의 신이 막시미아누스의 신보다 훨씬 우월한 신이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했을 것 입니다. 이 것이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 신자가 된 이유일 것 입니다.

유대 지방의 민족종교로 시작되었던 기독교가 로마의 지배적 종교가 된 이유를 기적이라고 일반적으로 설명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 이유는 비교적 간단했다고 봅니다. 불안감에 대한 보상으로 제시되는 강력한 신이란 개념과 우연 입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주변에 기독교 신자가 없었더라면 콘스탄티누스는 막시미아누스와의 전투 전에 다른 강력함을 주장하는 신에게 승리를 기도했을 것 입니다. 그리고 그 종교가 아마도 로마의 지배종교가 되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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