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6일 화요일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글을 쓰려다 보니, 이 것이 마치 조선시대의 예송논쟁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질적 기대효과는 거의 없고 명분론적으로 친일이냐 하니냐를 그냥 구분하는 도구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예송논쟁도 왕의 정통성이 있냐 없냐 하는 것 이었으니까 일맥상통 하는 것이죠. 어떤 정책, 비젼 또는 사고체계가 국가나 사회에 이로울 것인가 하는 실질적은 부분은 전혀 없는 논쟁이지요.

식민지 근대화론은 1950 – 60년대 서구의 학자들에게서 시작된 이론입니다. 러너와 셔만이 대표적인 학자 입니다. 이 이론이 도입되던 당시 식민지 운영 경험이 있는 서구 국가들로서는 자신들의 식민지 경영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론이 전개 되었습니다. 이 이론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기 보다 식민지 발전론이란 명칭 규정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식민지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식민지를 근대화 시켰고 이런 근대화를 통해 식민지가 발전되었다는 발전론을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자신들 조상들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정당화 하게 된 것이겠지요.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항마로 개발 된 이론은 아니지만, 1960년대 남미를 중심으로 개발된 종속이론은 1970년대까지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항마 역할을 하다가 1990년 초 그 수명을 다하게 되었지요. 종속이론의 연장선상에서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수탈론 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 식민지 근대화론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서구 강대국의 식민지 시대 이루어진 근대화에 대하여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분석하게 된 것입니다. 즉, 근대화를 어떤 방향성을 갖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근대화 진행의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분석하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근대화를 발전과 진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식민지에서 기존의 사회체제로 부터 식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진행경과를 거쳐서 어떤 모습으로 사회체제가 변화했느냐를 분석하는 것으로 그 대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는 인간의 선의 같은 요소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이런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김기협의 글에 대하여 몇개의 문단만 간단하게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분석 대상이 되는 김기협의 글은 가가님이 댓글로 올린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입니다.  

<전략> ….. 191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3.6%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30년간 그만한 성장률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는 것은 한국경제가 그 기간에 꽤 활기찬 발전을 이뤘다는 인상을 주려고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 성장의 출발점이 어디인가? 거의 아무런 산업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던 1910년도다. 오늘날처럼 산업화가 이뤄질 만큼 이뤄진 상황에서도 연 5% 이하로 성장률 목표 낮추는 것을 놓고 온 국민이 서운해 하는 판인데, 아무것 없던 출발점에서 연 3.6%가 높은 성장률이라고? 1960년대 이후 20여 년간 한국경제가 이룩하던 연평균 7~8%보다도 높은 성장률이 근대화 출범 시점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일본인의 손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근대 기술은 어떻게든 들어오게 되어있었고 근대화는 진행되게 되어있었다.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산업화가 수십 년간 연 4% 미만의 성장률에 머물렀다는 것은 일제 통치가 도와준 결과라고 볼 수 없다. 억누르고 가로막은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임난 이후 감소되었던 농업생산은 점진적으로 상승하여 17세기 중반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주로 수리시설에 대한 개발과 보수가 거의 수행되지 않아서 19세기 후반이 되면 17세기 중반에 비하여 농업생산력이 거의 60% 수준으로 하락하게 됩니다. 이 의미는 한반도에서 산업 생산은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런 추세를 바꾸려면 노동이든 자본이든 대규모적인 투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대량의 생산요소 추가 투입이 없는 한 기존에 진행되던 마이너스 성장 Trend를 바꿀 수 없습니다. 따라서, 김기협이 이야기한 베이스가 제로 이므로 성장 초기 단계에서는 고도 성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것 입니다.

1910년 이후 한반도에서 산업생산이 다시 플러스 성장으로 변곡점이 형성된 것은 일제로부터의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한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고도 성장을 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경우 입니다. 얼마전에 중국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15년 연속 7% 이상 성장을 지속한 유일한 국가였습니다. 또한 근대기술은 공짜가 아닙니다. 돈을 주고 사오던지 아니면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돈도 없었고 식민지란 댓가를 치루고 근대기술이 유입이 된 것 입니다.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이 …. <중략> …. 연 3.6% 성장률을 밝혀낸 것은 훌륭한 연구 업적이지만, 이것이 마치 높은 성장률이었던 것처럼 들이대는 데 정략적 의도가 엿보인다는 말이다. 안병직·이영훈 대담집 144쪽에 이영훈의 말로 “결론을 말씀드리면 연간 2.3%의 실질 성장률에 따라 식민지기에 1910~1940년간 한반도의 총소득이 2.7배나 커졌습니다”라 하였다. 그러나 연간 2.3% 성장률로는 30년간 170%의 성장을 이룰 수 없다. 총소득이 170% 성장했다고 하는데, ‘인구’ 조에 따르면 그 기간 중 한반도 인구는 1313만 명에서 2439만 명으로 86% 증가했으므로 실질 성장률은 30년간 총 45%로 연평균 1.3%에 미치지 못한다. 현금 지출이 늘어나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총체적으로 비참한 상황에 틀림없다. 이영훈은 같은 책 142쪽에서 “1910~1940년간 연간 평균 3.6% 정도의 성장이 있었습니다. 동기간 인구 증가율은 연간 1.3%였습니다. 이를 빼면 1인당 실질소득은 연간 2.3%의 수준으로 증가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이영훈의 88~89쪽에도 거의 같은 내용을 적었다. 총생산이나 총소득의 근거 자료는 필자가 확인하지 못했으나 같은 기간의 인구증가율은 에 나타난 연평균 2.3%가 틀림없다고 본다. 이영훈이 인구 증가율과 실질소득 증가율을 뒤바꾼 것으로 보인다.

100을 기준으로 30년간 3.6% 성장을 하면 278%가 나옵니다. 2.7배 성장을 한 것이죠. 년 1인당 평균 소득 성장율이 2.3% 이란 것은 연평균 인구 성장율 1.3%를 경제 성장율 3.6%에서 뺀 것입니다. 조금 거친 계산 방식이기는 한데 평균값들 이기 때문에 1인당 소득 성장율 추세를 추정하는 방법으로는 틀린 것은 아닙니다. 위의 인구 Data는 김기협이 별도로 입수한 자료인 것 같습니다. 이영훈 교수가 제시한 자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위의 인구 숫자에 따라서 인구 증가율을 계산해 보면 CAGR로 2.1%가 나옵니다. 경제사학자인 이영훈 교수가 CAGR 계산에서 실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김기협은 경제성장율과 1인당 소득 성장율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전략> ….. 뉴라이트 측은 수탈론에 반대하면서 일본 식민 통치는 16~17세기에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있었던 것처럼 악랄한 착취 체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다수 수탈론자들도 그런 맹목적 착취 체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 성장의 수준과 방향을 결정하는 데 수탈 의도가 중점적으로 작용한, ‘합리적’ 수탈 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허수열 씨가 근대화론 비판서를 “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제목으로 냈지만, 식민지 경제체제와 관련해 더 널리 쓰이는 말은 “발전 없는 성장(growth without development)”이다. 식민지 경제가 성장한다고는 해도 덩치가 클 뿐이지, 발전의 주체로 자라날 길이 열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본국 경제체제의 부속품으로 식민지의 역할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 부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식민지 근대화론도 같은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합병 이전부터 대량의 한국 쌀을 수입하고 있었다.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쌀 공급은 극히 예민한 과제였다. 일본의 한국 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이 쌀 증산이었다. 해방 무렵까지 논의 70% 이상을 소수 지주가 소유하게 된 기형적 토지 소유 구조도 이 정책 목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농지 소유를 집중하고 농업 노동을 저임금에 묶어놓는 것이 쌀의 대량 반출에 편리했기 때문에 조세를 비롯한 모든 정책을 꾸준히 지주층에 유리하게 펼친 결과였다. 쌀의 생산도 수출도 늘어났다. 그러나 그 이익을 거둔 것은 상당수 일본인을 포함하는 소수 지주층이었고 그들은 일본제 공산품을 수입해서 썼다. 민중의 소비 수준은 별로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내의 공업 생산에 큰 자극을 주지 못했다.

식민지 기간 동안 발생하는 근대화에 참 기대하는 것이 많군요. 김기협씨는….  일제가 구한말 이래 조선 정부도 별 관심이 없었던 소득분배까지 개선해 주어야 합니까? 일본 식민지 지배기구는 천사들이 운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복무하는 기관이죠. 식민지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죠. 그리고 공업 생산에 영향을 주는 것은 투자 입니다. 민중의 소비 수준이 아니고요. 소비 수준이 공업 생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것 입니다. 김기협씨는 경제를 너무 모릅니다. 이 것이 우리나라 역사학자란 사람들의 수준입니다.

1930년대 들어 북한 지역에 중공업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일본이 괴뢰 만주국을 세우고 ‘대동아’ 건설에 나서면서 세운 입체적 개발 전략의 일환이었다.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주요 시설을 중국과의 분쟁 소지가 있고 통치 전망이 아직 불안정한 만주 땅보다 식민지 체제를 확립해 놓은 한국 땅에 배치한 것이다. 여러 개 대형 공장이 세워지고 이에 따라 한국의 공업 인구와 공업 생산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제국의 산업 구조 안에서 부속적 역할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내적 재생산 구조를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한국인의 소득 증대는 하급 인력의 노임에 그쳤고, 연관 산업의 발전 여지도 극히 적었다.

그렇죠. 그런데 김기협씨가 부정확 하게 알고 있는 것을 보충하면 한반도 동북부에 대규모 산업 단지가 개발된 것은 첫째, 압록강과 두만강의 낙차를 이용해서 전력 생산 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했기 때문이고요 둘째, 1940년대에 중화학 공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 지는데 이는 미군의 폭격으로 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이 한반도 동북부였기 때문입니다.  (문장 일부 수정)

식민지 시대 한국에 근대화 현상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고, 일본의 통치가 이 근대화에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일본이 꾸준히 노력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그 시기에 근대화가 진행되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수탈론이라 해서 근대화의 사실을 일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을 수탈 대상으로 만드는 방향의, 건전하지 못한 근대화였다고 하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일본의 한국 지배가 기본적으로 선의에 입각한 것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한국에서 실제로 진행된 근대화가 당시 상황에서 최선의 길이었다는 인상을 주려 한다. 식민 통치자를 ‘악마’에 가깝게 그리는 극단적 수탈론과 반대로 근대화론자들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려고 애쓰는 것이 그 까닭이다. 이런 대목에서는 ‘실증’이 실종되어버린다. …… <후략>

김기협씨는 50년대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90년대 이후 제기된 새로운 식민지 근대화론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케이를 비롯한 일본 우익에 의하여 남용이 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50년대식의 식민지 발전론 입니다.  또한 김기협씨는 낙성대연구소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일본 우익의 식민지 발전론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죠. 오히려 양자를 동일시 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양자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여기에 일본 우익은 식민지 발전론의 통치의 효율성 향상 같은 부분을 천사같은 일본인의 선의라는 감성적인 부분으로 치환시키고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것이죠. 그런데 김기협씨는 전혀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외곡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김기협씨도 식민지 기간중 근대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것이면 충분한 것이죠.  

<전략> ……. 일부 수탈론자들이 보여 온 지나친 편향성에 대한 뉴라이트의 지적에는 나도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도 식민 통치자를 짐승이나 악마보다 가능한 한 합리적 인간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의 ‘선의’에 너무 매달리는 것은 편향성의 보정이 아니라 더 심한 편향성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일본을 합리적으로 대하려 하지 않고 일본 우파에게 “우리가 남이가?” 식 추파를 던지다가 독도 문제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이 그런 사고방식의 문제점이다. 수탈론의 지엽적 문제들을 지적할 때는 그토록 떠받드는 ‘합리성’이 근대화에 대한 일본의 공헌, 그리고 그 공헌을 뒷받침한 일본의 선의를 강조할 때는 어디로 가버리는 것일까. 식민 통치자를 가능한 한 합리적 인간으로 보자는 당부가 일부 수탈론자들보다 뉴라이트 근대화론자들에게 더 절실한 것 같다. <중략>….. 대동아전쟁 당시 “민족의 활동 공간을 확보한다”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선전을 아직도 곧이듣고 있는 자칭 ‘역사학자’들을 21세기 한국에서 보는 것이 놀랍다. <후략>…….

김기협씨는 악의적으로 뉴라이트를 흡집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뉴라이트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전개하면서 일본의 선의 같은 요소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 우파에게 우리가 남이가하고 추파를 던지지도 않습니다. 김기협씨는 박헌영은 존경하고 여운형은 동정하며 이승만은 증오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쓴 “해방일기”를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뉴라이트에 위해를 가하기 위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왜곡하는 것은 일도 아닌 사람이죠.

식민지 근대화론과 수탈론은 양립이 가능한 이론 입니다. 서구의 학자들이 그들 조상의 식민지 수탈과 근대화를 등가에 놓고 분석하기 위한 이론이었으니까요. 즉, 수탈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식민지 지역에 대한 근대화도 동시에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영훈 교수가 주장하는 것은 서구의 식민지 운영 방식과는 달리 일본은 식민지에 대한 자본 투입량이 식민지로 부터의 자원 유출량보다 많다는 것 입니다. 이 것이 식민지 시절 한반도에서 경제 성장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났던 이유라는 분석 입니다. 일본이 좋은 나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즉, 식근론은 역사적 사건을 보다 실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이론인 것이죠. 이 것이 바로 식근론의 가장 중요한 의미 입니다. 친일파이기 때문에 식근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을 통해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오해가 아주 조금이라도 해소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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