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0일 수요일

교회, 절망과 무기력의 공동체

네 생각은 접어 둬~

교회에서 보게 되는 가장 답답한 상황은 사람들이 교회 구조나 문화, 특별히 목회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거나 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열린 공간에서 하지 못하는 얘기는 대부분 끼리끼리 모인 자리의 뒷담화가 된다. 물론 침묵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그런 일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교회 전체를 혼란과 위기에 빠뜨리는 갈등이 생기곤 한다. 물론 이것은 뒷담화가 그나마 공식 현안으로 등극됐을 때의 얘기다. 그렇지 않은 경우 침묵이나 뒷담화에 지친 사람들은 혼자 포기하거나 교회를 떠나는 결정을 한다. 그냥 개인 사정이라고 얼버무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깊은 절망감과 무기력감, 그리고 패배감이 있다.

교회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뒷담화가 성행하는 곳이다. 그것은 교회 구조와 문화에 대해 공식적으로 비판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목회자 및 당회를 중심으로 한 교회의 운영 구조와 수직 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암묵적 약속이 존재한다. 그것이 곧 '신앙'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고 교회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는, 은연 중에 강조되고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원칙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교회 안의 구조와 문화를 '하나님의 일'을 위한 도구로 포장하고 신성화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고 성서의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딱지 붙이고 소외시킨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살아 남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려면 찍소리 하지 말고 견뎌야 한다.

재밌는 것은 사회에서 아무리 능력을 인정 받고, 비판적 태도로 문제에 접근하고, 창의적 사고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도 교회에서는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가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새로운 해석과 접근을 기존의 교회 구조나 문화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배척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것이 목회자와 관련된 것이라면 절대 수용 불가능한 일이 되곤 한다. 그러니 아무리 똘똘한 사람이라도 교회에 가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각이 없거나 절대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믿음이 좋아진 것인지, 멍청이가 된 것인지 아리송한 가운데 혼란을 겪게 된다.    

묻지도 듣지도 않는 교회

교회의 수직적인 구조와 경직된 문화가 야기하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묻지도 듣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묻기'와 '듣기'가 아닌 일방적으로 '말하기'와 '명령하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것에 '예', 또는 '아멘'이라고 답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만큼 잘 묻고 듣는 곳이 어디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교인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묻고 듣고, 기도하고 지지하는 것이 그야말로 생활화된 곳이 교회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개인의 소소한 고민과 신앙에 대해 묻고 듣는 것은 해도 교회 전체의 운영과 세부 프로그램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견, 비판, 문제 제기, 필요 등은 묻지도 수렴하지도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암묵적인 압력으로 그것을 막는다.

사회 각 영역에서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의 필요를 파악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그리고 바람직한 접근으로 묻고 듣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구성원들의 생각과 필요를 파악하고, 무엇보다 수직적인 구조와 문화에서 생길 수 있는 왜곡된 관계를 건강한 관계로 바꾸기 위한 묻고 듣기가 이뤄지지 않는다. 간혹 폭발 직전에, 또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얘기하는 사람에게 '불만이 있으면 진작 얘기하지 그랬냐'는 말로 또 한번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런데 공식적인 체계나 절차를 통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의견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말할 수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특별히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믿음'의 잣대를 들이대는 교회에서 자신의 주관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이나 필요를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다. 앞뒤 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교회 안에서 자신의 힘을 자각 내지 확인한 사람이거나 눈치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수평적 관계를 위한 구조와 문화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교회가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각자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그 많은 교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 기준은 교회가 구조와 관계 면에서 평화로운 공동체가 될 가능성이 있느냐이다. 좀 더 설명하면 구성원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고 그런 관계를 적극적으로 인정, 수용, 독려하는 구조가 있느냐이다. 관계가 수평적이라는 것은 직책에 관계 없이 교회 구성원들 사이에 자유로운 소통과 교류, 정보교환, 상호존중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목회자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권위나 직책을 내세우지 않고 그것을 이용한 힘의 행사나 강요가 이뤄지지 않으며, 그 결과 모두가 신앙의 친구 또는 동료로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이런 수평적 관계를 인정, 수용, 독려하는 구조는 좀 더 정교해야 한다. 수평적 관계를 맺는 것을 개인의 선택과 능력에 맡겨두지 않고 체계와 절차를 통해 독려하고 관리해야 한다. 직책이 힘이 되지 않도록 모든 구성원들을 결정 과정에 포함시키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무엇보다 누구나 질문을 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열린 체계, 절차,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교회에서 뒷담화가 성행하고 그에 따라 이런저런 편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이런 체계와 절차 그리고 독려하는 환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교회는 수평적 관계나 그것을 독려하고 관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교회는 지나치게 수직적인 구조와 공동체 문화를 가지고 있다. 소수의 교회는 위계질서를 강조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수평적 관계를 독려하는 체계와 환경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래서 불만이 있는 사람은 뒷담화를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반복된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묻고, 그들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는 자유롭고 안전한 체계, 절차,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난 그것이 신앙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교회, 그리고 공동체를 강조하는 교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평화'까지 언급하는 교회라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구성원의 입장에서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자신의 영적 생활을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했고 열심히 헌금 내고 시간과 에너지도 투자하는데 굳이 눈치 보고 억압 받으면서 다닐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를 대자면, 난 교회가 구성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그들이 사회에서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큰 맥락에서 성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당장 그렇게 되지는 못해도 적어도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곳, 절망과 무기력이 지배하는 곳은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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