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8일 월요일

대학문제와 학생운동

들어가며

  어느 사회문제에 대해서든 마찬가지로 대학문제에 관해서도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중립적인’ 접근이란 있을 수 없다. 사회문제를 사고할 때 그 문제인식의 지평 자체가 대중운동의 경험과 역사적 기억에 의지하여서만 환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학문제에 접근할 때에도 ‘학생운동’이라는 맥락을 제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현행의 국가장학금제도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일정한 양보와 타협을 얻어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역시 2011년에서 2012년 사이의 대중적인 반값등록금 운동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학생운동의 맥락을 제거하고 대학문제에 접근한다면 그것은 대개 지엽적이고 말단적인 행정적, 제도적인 개선으로만 그치고 말 것이다. 그 안에서는 대학의 재원은 어디에서 나오며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학생운동 담론 내에서 대학문제가 어떻게 제기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긴 준비 없이 행해진 탓에 다소간에 주관적인 비평이 된다 해도 양해해 주길 바란다.


학생운동과 학원민주화투쟁의 기간


  신군부독재 시기 이후 처음으로 대중화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 학생운동은 80~90년대의 격렬한 전사회적 투쟁을 펼쳤는데, 이 기간 동안 (등록금 문제, 재단비리, 정권유착 문제 등) 학내사안에 관한 투쟁은 ‘학원민주화투쟁’이라 불렸다. 군사독재의 질곡을 청산하기 위한 국민적인 차원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대학 자체 내에도 이와 같은 종류의 ‘민주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운동의 고조기에는 학생사회를 억압하는 장치들, 예를 들어 학내에서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사복경찰 등 캠퍼스에 암약하는 공권력을 축출하며 보다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학생회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이와 같은 학생회 건설 시도는 노동현장에서 이른바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유비’로 취해지기도 했다. 이렇듯 80년대 이후의 학생운동을 통해서 비로소 대학사회 내부의 억압적인 권력구조를 해체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수립하려는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이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대학사회는 한국사회 내의 모순과 이를 지양하는 운동 양자를 압축적으로 반영하는 일종의 ‘소우주’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90년대 이후 ‘분신정국’과 ‘연대사태’ 등을 통해 학생운동 자체의 질곡을 겪으면서 학생운동의 대중적, 정치적 영향력이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이행한 87년체제 이후 학생운동을 ‘폐륜아’, ‘극단주의자’, ‘몽상가’ 등등으로 낙인찍는 전방위적인 공세가 시작되자 이에 따라 학원민주화 담론 역시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현상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학생운동이 (학생)대중 사이에 영향력이 있었던 당시에는 학생사회가 대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민주적 통제력을 가졌다. 가령 재단비리에 연루된 학교인사를 퇴출시키고, 부당해임된 교수를 복직시키고, 학생에 대한 부당징계를 철회하고, 등록금 인상을 저지하는 등의 사례를 열거할 수 있다. 그런데 학생운동이 대중적인 영향력과 사회적인 지지를 상실할 때 이에 비례하여 대학에 대한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통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문제가 불거졌다. 프랑스와 같은 유럽대학에서는 68혁명 이후 ‘대학평의원회’와 같은 견제기구가 ‘제도화’된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대학내부의 학생운동이 대학외부의 사회운동 및 정당과의 제도적인 연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80~90년대의 학생운동 및 학원민주화운동은 운동의 성과를 제도화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학생운동은 대학마다 ‘학생회’와 각종 ‘특별자치기구’라는 유산을 남겼지만 그와 같은 학생회는 대개 ‘민주집중제’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학생대중을 동원하는 능력을 상실할 때 그 정치적 힘을 급속히 상실할 수밖에 없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최근 (두산자본에 의해 인수된) 중앙대학교의 비이성적인 학생자치 탄압의 사례에서 엿보이듯이, 학생운동이 무너진 대학들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정치적 견제도 받지 않게 된 대학당국이 사실상 사문화되었던 ‘학칙’을 동원하여 비판적인 학생의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학생운동이 통일운동, 노동운동, 민주화 운동 등의 사회적 대의를 지향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수단으로서 정권을 상대로 한 투쟁에 집중했기 때문에 대학 내의 (교수와 학생의 관계 등) 비민주적인 사회적 관계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주변화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대학문제가 사회적 모순을 반영하는 이상, 대학문제가 그러한 사회적 모순과 치열하게 대결하였던 학생운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학생이라는 정체성

  뚜렷한 이념적 지향을 지닌 대중적 학생운동이 퇴조한 2000년대 이후, 대학생들은 사회적 대의 이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비로소 자문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학생운동의 쇠퇴 이후 대학 내의 청년학생 담론은 ‘학생자치 담론’이나 ‘소수자/인권 담론’ 그리고 ‘생존권 담론(88만원세대론)’ 등으로 변용되었다. 이와 같은 담론들에는 일정한 의의가 있지만 대학 자체의 불평등하고 비민주적인 권력관계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상대적으로 주변화 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학생운동의 퇴조 이후) 자치권이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현실, 대학 내에서 (소수자) 인권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미비한 현실, 마지막으로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학생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현실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이유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2000년대 이후에도 살아남은 급진적 학생운동 세력은 이와 같은 청년학생 문제를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와 연결 지으며 노동자운동과의 연대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부류에는 첫 번째로는 사회적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노동자연대의 중요성을 그 자체로 역설하는 집단, 두 번째로는 예비노동자로서의 대학생의 정체성을 강조하여 노동자연대의 당위를 역설하는 집단, 마지막으로는 아르바이트 등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는 ‘청년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집단이 있다. 이와 같이 차별과 억압을 재생산하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조에 주목하는 청년학생운동이 행한 커다란 역할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학사회 자체 내에서 차별과 억압이 재생산되는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 환언하자면 학생운동 세력은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적 구조(불평등한 권력관계, 경제적 착취, 등등)에 대해 올바르게 문제제기했지만, 그와 같은 모순적 구조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이라는 공간 내에서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에 대한, 그 구체적인 사태연관을 파악하는 데에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한편 대학문제에 관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라는 단체가 주도했던 반값등록금 운동이었다. ‘반값등록금’은 대학생들에게 가장 민감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려서, 많은 대중을 동원하고 정국을 주도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반값등록금 운동은 선거정국에서 대학의 소유구조 및 운영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우회한 채, 정권에 대한 투쟁일변도로 흐르면서 정권배후에 있는 구체적인 이해관계자와 책임당사자(대학자본 세력)를 호명하는데 실패하고, 정치색에 대한 소모적인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후일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지지세력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한편 반값등록금에 대해 ‘대학생 중심’의 운동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와 같은 학생운동의 지형은 (학벌주의와 대학생중심주의라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학생이라는 현실적인 정체성을 우회한 채 자본과 권력에 대한 대항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대학 자체의 부와 권력에 대한 대항운동은 힘을 잃게 되었다. 이렇듯 대학 내의 대항운동이 퇴조하는 현상에 조응하여 대학 내의 담론은 주로 좁은 의미에서의 ‘자치’ 담론으로 후퇴하게 되며 대학자본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력의 상실은 더욱 더 고착화되었다. 또한 학생운동이 대학자본, 대학권력 자체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지 오래됨으로써 변혁운동의 ‘이론적 빈곤’이 재생산되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점차 비판적인 목소리가 발붙일 곳이 사라짐으로써 학생운동의 이론적 자원은 대개 대학이라는 공간을 우회한 외부의 자치적인 연구소와 학술단체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물론 자치적이고 대안적인 학문의 공간을 모색하는 시도는 언제나 소중하다. 그러나 비싼 돈을 내놓고 대학이라는 물적토대를 만들어놓았는데 왜 그 안에서 ‘비판적’인 학문과 연구를 할 권리를 포기하고 그 바깥에서 자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와 같은 어려운 현실은 향후의 학생운동이 ‘대학인’이라는 정체성에 기반하여 광범위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방향의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를 상대로, 왜 싸우는가?

  결국 대학문제에 접근할 때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크게 봐서 (1) 대학을 실제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누구이냐는 질문인 동시에, 또한 (2) 대학을 앞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질문은 ‘대학운영의 재원은 어디서 나오는가’라는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등록금 문제 등의 교육권 문제, 연구환경문제, 강사문제, 학내노동자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그와 같은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국가지원, 사학재산환수, 등등)도 대학문제에 접근할 때 반드시 물어야 할 지점이다. 재원마련의 방법에 따라(고등)교육공공성을 추구하는 방향성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대학의 소유권 문제이다. 대다수 사립대학은 재단이 소유하고 있고, 국공립대학도 법인화되어 가면서 대학이라는 공간은 점차 사적소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대교연 통계에 따르면 대학의 운영비용에 대해 재단이 기여하는 법인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5%이다. 그에 비해서 운영비용에서 등록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인 등록금 의존율은 2012년 기준으로 66%이다. 재단이월적립금 규모는 상위 45개 대학 합계 6조원가량의 천문학적 규모이다. 그 돈이 도대체 누구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재단이 대학재정에 책임지는 바는 적으면서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치부행위를 해왔다는 ‘사실들’이 보여주듯, 더 이상 대학은 재단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렇듯 대학의 소유권에 정면으로 문제제기 하지 않으면 비싼 등록금 등 각종 대학문제들은 해결이 요원하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대학자본의 소유권에 타격을 가하지 않으면, 대학자본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점차 신자유주의화/기업화되어가고 있는 대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 자본권력에게도 학생들이 타격을 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전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는) 삼성자본에 타격을 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균관대 사학자본과 그것이 뒤얽혀 있는 각종 대학비리(대학병원 운영문제 등등)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대학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전국적 학생조직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대중 사이에서 정치적 대표성을 상실한 이후, 대학생의 공통된 의제와 문제를 공유할 전국적인 연대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상황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한 학교의 학내구조조정 사안은 한 학교 안에서의 운동만으로는 풀어내기 어렵다. 대학정원감축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 이슈 자체가 정부차원의 정책실패(무분별한 사립대학 인허가)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구조조정 자체가 정권과 대교협 차원에서 정치적인 의지를 가지고 추진되는 일이기 때문에 학내에서 대학으로부터 어떤 (서면상의, 구두상의) 양보와 타협을 얻어나든 똑같은 일이 어디서든 몇 번이고 반복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대학의 3대 주체인 학생, 직원, 교원 사이의 연대가 이뤄지지 않는 한 대학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예를 들어 청소노동자, 시간강사, 학생과 같은 대학의 위계질서의 맨 아래에서 착취당하는 주체들의 공통의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기반하여 맞서야 할 ‘공통의 적’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다면 대학문제에 대한 접근 자체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대학문제를 야기한 책임당사자가 가시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어려운 조건을 형성한다. 세 번째 문제는 특히 중요한데, 누구를 책임당사자로 지목하고 궁극적인 책임을 요구할지가 모호하다면, 아무리 올바른 문제제기라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은 결국 ‘대중(학생)운동’의 맥락에서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지금까지의 상황은 단지 한 ‘정권’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냈다. 예컨대 ‘실질적인 반값등록금’을 달성했다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장학금 정책의 기만성도 문제이지만, 설사 본연의 반값등록금 정책을 입안하더라도 대학자본은 그것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얼마든지 찾아낼 것이다(교육의 의도적인 질 저하, 임금동결, 등등). 요컨대 대학을 학생과 시민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반값등록금의 실현도 불가능하다.


대학원생의 역할을 물으며

  학부생과 별개로 전국에는 30만 명의 대학원생들도 존재한다는 현실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상황이 더욱 열악하여 반값등록금운동 이후에도 높은 등록금과 열악한 장학금 및 대출제도에 고통 받고 있다. 학부차원의 교육공공성은 정권마다 일보전진 일보후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2000년대 이후 국가의 대학원생에 대한 정책인식은 한마디로 ‘취직도 못하는 놈(?)들이 춥고 배고픈 것은 당연하다’는 기조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원생을 ‘반백수’ 취급하는 이와 같은 인식은 현실에 비춰볼 때 이율배반이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의 상당수는 장학금을 벌기 위해 조교 및 연구원 등으로 일을 하고 있고, 이들이 제공하는 연구노동은 교수 개개인의 연구실적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학재정지원사업과 기업으로부터 수주 받는 연구실적의 상당부분에 기여하고 있다. 이른바 ‘연구중심대학’에 대해 행하는 정부와 기업의 재정지원사업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원생이 행하는 연구노동 자체도 점점 자본주의적 특성을 띠게 되었다.

  이렇듯 대학원생은 반백수가 아니라 (장학금 등을 불모로 잡힌) 연구노동자이다. 대학원생이 멈추면 대학의 연구활동도 멈춘다.

  한편으로 대학 자체가 대학자본으로 기능하며 이윤의 논리를 좇아가는 데 비해 대학원생 및 시간강사들은 대학 내의 권력관계 안에서 그야말로 봉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신적 구속관계에 종속되어 있다. 무엇보다 대학이라는 공간 내에서 연구/교육활동을 자신의 진로로 삼은 대학원생이야말로 앞서 상술한 대학문제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학생운동의 성과가 대학원이라는 공간에 계승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조교노조가 결성된 미국 동북부의 대학들과 달리 한국의 대학원생들은 전혀 조직되어 있지 않고, 소수의 대학원총학생회가 결성되어 있다 해도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빌미로 조직력과 협상력이 떨어지는 대학원생에게 (국가장학금 제도 등에 발이 묶인) 등록금 인상분을 전가하는 행태가 반복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부 학생운동 정파에서는 활동가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 자체가 ‘운동의 휴지기’로 간주되는 관행은 여전하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대학원이라는 공간도 대학 내에서 재생산되는 현실의 정치적, 역사적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물론 대학원생이 학부생의 수준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대학원생이 대학문제를 올바른 방식으로 제기하고, 그 문제를 ‘전국적인 문제’로 담론화하는 활동에 일정한 방식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즉 대학원생이 대학문제에 관해 운동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지 않는 한 대학문제가 지속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대학원생이 조직되어 있지 않은 문제를 지적했지만 기실 대학원생들은 현재의 학사제도 내에서 과사무실, 랩실, 연구실의 일상공간을 중심으로 이미 조교, 연구원 등의 신분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 같은 공간 안에서 대학원생의 의제를 찾아내고 대학문제를 담론화하는 돌파구를 찾아내야만 대학문제를 한 캠퍼스 내의, 학부생 사이에서의, 협소한 시야를 넘어서 보다 보편적인 사회문제의 일부로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대학문제와 학생운동|작성자 박가분
http://blog.naver.com/paxwonik/402102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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