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4일 목요일

잠자는 국회에서 일하는 국회로 - 특권 내려놓기보다 국회 개혁이 먼저다


20대 국회가 개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국회 내에선 ‘특권 내려놓기’ 경쟁이 치열하다. 세비를 절반으로 삭감하겠다거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거나, 면책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 사이에 퍼져 있는 정치혐오를 떨치고자 하는 노력의 일단이다.

 하지만 ‘특권 내려놓기’는 의회가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일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국회의원이 어떤 특권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2014년 자유경제원은 국회의원 특권이 200여 가지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의원으로서 책무에 가까운 입법권이나 국정조사권, 국정감사권 등을 특권으로 규정해, 숫자를 부풀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권’으로 볼 수 있는 것들도 있기는 있다. 우선 국회의원은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연봉으로 1억 3천만 원 정도를 받는다. 의원회관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으며, 회기 중에는 체포되거나 구속되지 않는다. 국회 안에서 한 발언 때문에 국회 밖에서 책임을 추궁당하지도 않는다. 비행기나 배, 기차 등을 이용해 출장을 가면 비행기는 비즈니스석을, 나머지는 최고 등급 좌석을 지원받는다. 출입국시엔 별다른 심사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이런 것들을 ‘특권’이라 말할 수 있는가는 의문스럽다. 연봉이 높다고 하지만,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인재를 국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세비가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라도 적정 수준의 임금은 반드시 필요하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에 관해서도 그렇다. 국회의원의 노동은 어디까지가 노동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법안을 만들어야 노동인가? 그렇다면 그 법안 하나를 위해 소비한 입법 연구활동은 노동이 아닌가? 사무실 안에 있어야 노동인가? 그렇다면 현시 시찰 활동은 노동이 아닌가? 의회가 열려야 노동인가? 그렇다면 의회를 열기 위한 협상의 과정은 노동이 아닌가? 국회의원은 본질적으로 ‘협상하는 직업’이다. 일을 하지 않았다고 무작정 임금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의원회관 사무실을 이용하는 것, 출장시 교통비를 지급하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이야기다. 국회의원 300명 각각은 국가를 위해 입법권을 행사하는 헌법기관이다. 그들의 수장인 국회의장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의전서열을 차지하고 있다. 사기업 임원들도 이 정도 혜택은 받는다. 사무실 한 칸, 해외 시찰 교통비 정도는 헌법기관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이다. 국회의원은 관용차도 지급받지 못한다.

 출입국심사 문제도 그렇다. 출입국심사란 나가는 사람, 들어오는 사람의 신분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절차다.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 중인지,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판단하는 순서다. 하지만 국회의원만큼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일이 바쁠 때에는 그 출입국심사로 절약한 한 시간 두 시간이 치명적일 수 있다. 게다가 국회의원도 출입국심사를 받지 않는 게 아니다. 본인이 대기하는 동안 보좌진이 대리해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뿐이다.


 면책 특권이나 불체포 특권의 경우에도 단순히 특권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군사정권 시절, 야당 국회의원을 사상범이나 부패범으로 몰아 정치적으로 숙청하는 수법은 일상에 가까웠다.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이 국가를 위한 의정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였다. 당장 지금이라고 다를까. 노회찬 의원의 사례를 보자. 삼성 X파일 사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그는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갖가지 핑계를 들어 기소를 당했고, 결국 의원직을 상실하고 말았다. 부패 혐의 등에 대해서 일정 부분 손을 댈 수는 있겠지만, 야당 정치인을 향한 정권의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고로 우리가 바라봐야 할 핵심은, 국회의원이 얼마만큼의 돈을 가져가는지, 얼마만큼의 특혜를 가져가는지와 같은 자잘한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이 1억 3천만원 쯤의 가치를 한다면 그 정도 세비는 줄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해외 시찰을 갔을 때 비즈니스석 정도의 가치를 한다면, 비즈니스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아주 명쾌한 자본주의의 원리다. 특권의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특권을 주어야 한다.

 중점은, 지금의 국회의원들이 ‘특권의 가치를 가진 사람들’인가 하는 문제다. 국회가 ‘특권의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양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국회의원 300명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관리하고 책임지고 견제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이 방대한 일을 당연히 300명이라는 적은 숫자가 다 책임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국회의원은 한 명당 최대 아홉 명의 보좌진을 채용한다. 이들의 임금은 세금으로 지급한다. 그리고 국회 개혁의 중심에는 바로 이 보좌진 문제가 있다.

 어느 국회의원이 법안 하나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단순히 법안을 적어서 제출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선 법을 만들기 전에,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론조사를 두세 번은 돌려야 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겠지만, 국고 지원은 없다. 그리고나서 법안의 기초를 잡아야 하고, 그러면서 시민단체나 이익집단과도 꾸준히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공청회도 몇 차례 열어야 하고, 법안을 만든 다음에도 시민들의 의견을 꾸준히 들어봐야 한다. 법적으로 정제된 용어로 법안 문장을 완성해야 하고, 법전을 뒤져가며 이 법안이 다른 법과 충돌하지 않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동료 의원 몇을 모아 법안을 발의해야 하고, 본회의 통과까지 이어지려면 여러 정치인을 만나 법안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 와중에 사건이 터지면 국정조사도 해야 하고, 시즌이 돌아오면 국정감사도 해야 한다. 입법연구도 충실하게 해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시찰도 필수다. 필요가 있으면 해외에도 나갔다 와야 한다. 이렇게 완벽하게 일처리를 한다면, 그는 ‘특권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국회는 그럴 수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여론조사 돌리는 데 드는 수많은 돈은 모두 의원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고, 의원 한 사람이 다뤄야 하는 일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자료 제출도 제대로 하지 않는 정부를 상대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국정감사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일단 국가가 벌이는 막대한 양의 일을 의원 300명이 모두 검토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단순히 검토를 넘어서 사업의 효용성을 면밀하게 연구해야 하고, 그것도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이 일을 모두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정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공부한 뒤에 법안이 만들어지리란 자신을 누가 할 수 있는가. 애초에 국회의원 연봉으로는 여론조사도 제대로 몇 번 돌리지 못한다. 보좌진을 아홉 명이나 둘 수 있다지만, 그 보좌진을 아무리 닦달해도 이 모든 일을 완전하게 처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제대로 일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불리한 구조다. 공부하고 연구하려고 해 봐야 바닥까지 파헤칠 수 없는 구조다. 자기 돈을 의정활동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특권의 가치가 있는 국회의원’이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다.

 이 상황에서 한 국회의원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무엇인가? 법안은 정부에서 청탁한 것에만 적당히 이름을 걸고, 밖에서는 지역 유지들이나 만나면서 선거운동을 하는 게 가장 좋다. 돈이 들어가는 입법 연구활동 따위는 접어두고, 보좌진은 능력이 없어도 친인척이나 지인의 아들딸들 몇 채용하고 표를 긁어가는 게 더욱 현명하다. 주머니는 두둑해지고 당선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바로 이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국회의원에게 아홉 명 씩이나 되는 보좌관은 필요가 없다. 일정 관리하고 바깥에서 오는 연락을 받는 비서 한두 명이면 족하다. 대신 국회 안에 제대로 된 전문인력이 모인 기관이 있어야 한다. 의원이 법안을 만들고자 할 때 이들 전문 인력에게 의뢰를 하고, 의뢰를 받은 전문가들은 각종 연구나 여론조사를 통해 법안의 개선점과 활용 방안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입법 지원 기관이 만들어지고, 입법활동 뿐 아니라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에 있어서도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이 확충된다면, 일하면 일할수록 손해보는 국회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전문가의 채용을 국회의원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서 담당한다면, 보좌관 채용을 둘러싼 비리도 얼마든지 해소될 수 있다.

 국회의원 개인이 아니라, 국회 자체에 투입되는 예산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 전문가가 국회 안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이들이 의원 개인이 아니라 국회라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 이들이 의원의 활동을 보조하고, 의원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회의원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국회의원은 그 한명한명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다. 대의민주제를 실시하는 것은 의견을 들어야 하는 국민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전문 분야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법조계의 전문가지만, 어떤 사람은 IT 업계의 전문가고, 어떤 사람은 경제학의 전문가다. 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국회 안에 들어올 수록, 국회가 다룰 수 있는 업무의 폭이 넓어진다. 국회의 역량이 커진다.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도 있어야 하고, 대리운전기사 출신 국회의원도 있어야 한다. 택시 운전사 출신 국회의원도 있어야 하고, 식당 주인 출신 국회의원도 있어야 한다. 거리에서 배달하는 청년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도 있어야 하고, 가정에서 일하는 전업주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도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사람들을 국회라는 틀 안에 담으려면, 국회의원의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 특히 정치력이 아니라 실력이 있는 의원이 탄생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국회의원의 특권이 과중한지 그 여부가 아니다. 특권을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특권을 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이 ‘특권을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그 여부다. 그리고 지금의 국회는 ‘특권을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을 양산해내지 못하는 구조다.

 일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일할 수 있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일하면 일할수록 손해보는 국회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특권을 누릴 가치가 있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 내 전문 인력의 확충과, 국회의원 수의 확대를 통해서 이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국가를 이루는 3권 중 한 축인 입법권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 국가 존립의 근본을 이루는 이 기관에게 국민이 요구해야 할 것은 ‘특권의 포기’가 아니다. ‘특권의 가치가 있는 국회’를, 일하기 좋은 국회를, 능력 있는 국회를 요구해야 한다.

 망가져가는 정치를, 복원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출처: http://widerstand365.tistory.com/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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