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1일 토요일

화폐의 역사와 자본주의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특히 많은 청년들이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그리고 돈에 관하여 막연하게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이에 본문을 작성합니다.

 우선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게, 자본주의는 사실 ~ism이라 하기 어려운 자연발생적인 현상입니다. 애초에 자본주의라는 말을 발명한 것도 시장경제에 비판적이었던 그 마르크스이며, 그의 자본 및 시장에 대한 파악 및 정의는 불완전하고 작위적인 데가 있었기에 단어 자체가 광범위한 오해의 기원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학자들은 - 좌파 비주류들을 제외하면 - 자본주의라는 말 자체를 거의 안 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언급 자체가 나오는 문서는 아예 보지도 않는다고까지 합니다. 즉 자본주의라는 말은 그 자체로 공산주의자들이 현실 시장-화폐경제에 대해 찍은 일종의 낙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는 시장-화폐경제는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우리 인류는 국가 형성 이전부터 이미 상업 활동을 해왔습니다. 옛 공산주의자들의 비과학적 오인이 현재까지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면이 많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건 긍정하던 관계없이, 시장과 화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먼저입니다.

 이를 위해 선사 시대의 일부터 이야기해보지요. 우리 먼 조상들은 정착 생활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이웃 부족과 자연스럽게 거래를 하게 됩니다. 이런 원시적 상행위는 삶의 질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었는데요, 현대 선진국인들과는 달리 본래 인류의 삶이란 매우 큰 불안정성 위에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안정성의 일차적인 원인은 농사에 있습니다. 농사라는 건 사실 이 동네는 잘 되는데 옆 동네는 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작물은 전멸하는데 어떤 작물은 멀쩡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즉 상업행위는 흉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지요. 산 위의 A 부족은 수수와 조를 키우고 도토리, 밤을 줍고 토기를 굽습니다. 그리고 산 밑 바닷가의 B 부족은 물고기를 잡고, 해산물을 채취하며 신발을 만듭니다. 이 경우 A와 B 부족의 거래는 서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생존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유용한 것입니다. A부족이 농사가 망했을 때는 토기를 팔아 물고기를 사올 수 있고, B부족의 어획이 엉망일 때는 신발을 팔아 수수, 조 등을 사올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는 다양한 부족이 다양한 물품을 거래하게 되기 때문에, 계급 사회 형성 이전의 원시사회에서 상행위란 수렵, 채집, 농사, 목축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중요한’ 생존 행위였습니다.

 실제 상업이 발달하지 못한 지역에선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들어서도 기근 시 대규모의 사망자가 나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런 사례에는 북조선도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 상행위에 대한 인류의 열망은 공산주의자들조차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시장경제를 통제할 수 있었던 옛 동구권 공산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거래는 인류의 본능이고,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생깁니다.

 물론 상행위의 기본은 물물교환입니다. 그렇지만 서로 필요한 물건만을 그 때 그 때 교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각자가 매 순간 원하거나 필요한 건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모두에게 필요하거나 모두가 좋아할 법한 물건이 교환수단이 되게 됩니다. 화폐, 즉 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실물 화폐에는 크게 3종류가 있습니다. 식량, 섬유-피혁, 금속이 그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생존에 중요한 것으로, 한반도에서도 꽤나 최근까지 쌀과 면포를 화폐로 사용했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점차 ‘화폐’의 통상적인 정의에 점차 가까워진 것은 금속입니다. 금속이 식량이나 섬유보다 보존성이 더 좋고 가치에 비해 부피가 작기 때문에 화폐로 보다 더 좋은 기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금속은 식량, 섬유보다 사용이나 거래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원전 7세기경에 우리가 잘 아는 주조화폐, 즉 주화(=coin)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 기원은 순도와 중량을 통일하고, 그것을 군주가 보장하는 금속조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주화는 오랜 기간 동안 화폐의 기본이 됩니다.

 이런 주화는 우리가 잘 아는 금, 은, (청)동으로 주로 만들었고, 청동으로 된 게 주로 유통되다보니 동전이라는 언어가 대표적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청동은 흔한 오해와는 달리 부식되지 않는 한 우리가 잘 아는 구리 색깔이며, 자연적으로는 쉽게 부식되지 않습니다. 부식이 된 후에야 청동 미술품에서 볼 수 있는 청록색이 나옵니다. 그 밖에 연(납), 아연, 철 등으로도 주화를 만들었습니다만, 주화를 만들기에 적합한 소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조화폐 역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동전을 많이 가지고 거래를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건데, 이게 자루 하나에 담길 정도가 되면 꽤 무겁습니다. 양이 좀 많아지면 운동 기구나 무기가 따로 없을 정도지요. 또 화폐를 발행하는 데 자원이 많이 들다 보니 마음대로 발행하기도 힘들고, 테두리를 깎아서 따로 사용한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문제보다 결정적으로 큰 문제는 금속의 시세는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화는 엄연히 액면가가 있는데, 액면가와 실제 금속 조각의 가치가 다르다보니 혼란과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현상은 화폐의 본질과 맞닿아있기도 합니다. 근래에도 10원 동전을 모아 녹여 판 일당이 적발된 사례가 있는데, 10원 동전의 금속 가격이 10원보다 꽤 비싸기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보다 현대적 의미에서 발달한 의미의 화폐는 사실 고대부터 거래되었습니다. 위에 이야기한대로 화폐는 교환의 매개수단이며, 이 매개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크레딭, 즉 신용입니다. 실물이 화폐로 쓰였던 건 그것이 매우 높은 신뢰성, 즉 현물로서의 실효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확실하게 이행을 한다는 신뢰만 있다면, 사실 시간차가 있는 재화교환에 있어 현물이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신용 거래 자체는 사실 매우 일반적입니다. 외상으로 물건을 산다거나, 품앗이를 한다거나 하는 것 모두가 신용 거래입니다. 위의 A, B 부족 이야기로 돌아가 보지요. A부족이 어느 해 흉년이 들어 B부족에게 식량을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B부족에는 이미 A부족이 만드는 토기가 남아도는 상태였고, A부족은 당장 B부족에게 줄 게 없습니다. 그래서 B부족은 A부족에게 ‘내년에 조와 수수 열 자루씩을 받겠다는’ 약속을 받고 물고기를 줍니다. 그런데 그냥 말로만 하는 약속은 안 지킬지도 모르니까, 신의 이름과 조상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증서’를 받아둡니다. 이 경우 이 ‘증서’는 일종의 화폐나 다름없습니다. 수표나 어음과 비슷한 신용화폐지요.

 시장에서 통하는 신용화폐, 지폐는 일종의 지급보증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큰 규모의 거래가 발생할 경우, 그 지불을 주화로 하는 것은 사실 꽤 어렵고 비효율적입니다. 공식적인 최초의 지폐는 (조)송에서 시작되었습니다만, 신용 거래의 특성상 리스크가 있다 보니 실패를 거듭하긴 했습니다.

 지폐가 신용화폐인 건 지폐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크레딭 없는 지폐는 온갖 낙서가 적히거나 인쇄된 작은 섬유조각일 뿐이지요. 이후 지폐는 현물과 연계되는 금, 은본위제와 함께 점차 보편화되게 됩니다.

 화폐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화폐를 이해해야만 크래딭(신용)을 이해할 수 있고, 크래딭을 이해해야만 캐피탈(자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공산사회주의가 얼마나 큰 오해를 사람들에게 주입했는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화폐를 설명하기 위해 유럽사 속의 시장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서로마가 붕괴한 후, 중세는 흔히 이야기하는 암흑시대가 됩니다만 사실 상공업은 도시를 중심으로 계속 발달합니다. 상공업은 토지와 날씨가 주요 변수가 되는 농업과는 달리, 보다 사람과 기술에 의존적입니다. 사람이 모여야 기술이 발달하고, 상행위가 쉽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공간적으로 식량 등을 자급자족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더더욱 상업이 중요해지게 됩니다.

 중세 초기의 도시들은 대체로 봉건 영주들에 속해있었으나, 점차 독립하게 되어 자치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화제는 도시의 제도였고, 그렇기에 ‘시민’이라는 어휘는 공화정과 관련이 깊습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상업이 없으면 데모크라시도 없습니다. 자본을 부정한 모든 체제가 민주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걸 기억하세요.

 한편 근대 이전의 모든 도시는 담수를 가까이합니다. 사람이 살려면 물이 필요한데, 도시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큰 수원이 필요했습니다. 이 수원은 대체로 강이고, 일부 운하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물길을 따라 교역이 이루어지곤 했지요.

 그런데 점차 유럽의 상업이 발달하다 보니, 1300년대쯤에는 주화에 쓸 귀금속이 부족해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 주화가 귀해지게 되지요. 그리고 이후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1500년대에 들어서는 아메리카산 은이 유럽에 대량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는 위에 이야기했던 ‘주조화폐의 해당 금속 시세문제’를 본격적으로 일으키게 됩니다. 비쌌던 은값이 공급증가로 싸지게 된 것이고, 그래서 은화에 대한 문제가 복잡해진 것이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사실 은 유입으로 신나하던 에스파냐 사람들, 즉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중상주의자들이 가졌던 경제와 화폐에 대한 인식 수준은 이 시대의 어린 사회주의자들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 아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 왜 돈 그 자체였던 은을 많이 가졌는데도 충분히 부유해지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시대의 멍청한 사회주의자들을 욕할 수는 있어도, 당시에 중상주의자들이 했던 착각을 욕하긴 힘듭니다. 돈의 본질에 대한 통찰은 그 시대에는 힘든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현명한 현대인이라면 이 문제를 어렵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화폐는 독립된 기준 - 그러니까 액면가 - 을 가지는 것이 시장 경제를 안정적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실물화폐는 해당 실물의 가격이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기준이 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완벽한 신용화폐가 등장하지는 못했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세계에 신용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예시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만일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극도로 억제되어있다면 - 이는 사실 경제성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옛날엔 이런 시대가 길었지요. - 쌀값은 매년 작황에 따라 크게 변화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쌀 20kg에 해당하는 쌀본위제 하의 5만원권 지폐가 있다면 (그러니까 그 지폐를 정부 기관에 가져가면 쌀 20kg랑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액면가에 (5만원이라는 표기와는) 관계없이 지폐의 가치는 신용이 낮은 사회의 경우 쌀 시세에 맞춰 변화하게 됩니다. 이리 설명하자면 어렵지만, 실거래가를 거의 통제하지 않는 상장주식의 경우 액면가는 거의 무가치한 것이니 그에 연관 지어 생각하면 좀 더 쉽습니다.


 화폐가 그 본질인 크레딭으로 이해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 이해의 차이에서 중상주의와 자유주의가 구분되고, 그 유명하고 위대한 1723년생 애덤 스미스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중상주의자들은 귀금속을 부로 생각해 중시하고 귀금속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걸 막으려 했지만, 애덤 스미스는 그것을 반박하고 총생산량과 교환가치야말로 중요한 것이라 주장하며 경제학의 아버지가 되지요. 그렇지만 지폐를 실물인 금과 연계하는 금본위제는 극히 최근인 1970년대까지 계속됩니다. 금본위제 하에서 현금은 본질적으로 신용화폐가 아닌 금화의 변형된 형태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러한 금본위제는 시한부일 수밖에 없었는데, 여러 복잡한 모든 이유들을 생략하고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 원인만을 꼽는다면, 금은 한정적인데 화폐는 점점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걸 꼽아야겠습니다. 가장 선명한 예로, 현 시점에서 전 세계의 GDP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추정 황금 시세의 총합을 초과합니다.

 결국 1970년대에 금본위제는 폐지되고, 신용 화폐의 시대가 열립니다. 신용 화폐는 지금껏 인류의 최대 발명품중 하나일 것입니다. 오랜 오해를 풀고 결국 인류는 돈의 본질을 마주한 것입니다. 이후 많은 오해와 낙인, 그리고 각종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는 꽤 많이 부유해집니다.

 지금껏 설명하였듯 화폐는 재화의 매개수단이며, 이 본질은 크레딭(신용)입니다. 그런데 화폐는 거래의 수단이기 때문에, 거래가 발생하지 않으면 실물이 아닌 신용화폐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결국 유통화폐, 즉 통화는 흘러 다니는 신용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다시 한 번 바꿔 말하면 통화량이 많다는 건 시장에 신뢰가 가득하다는(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시장의 신뢰란 곧 재화에 기대라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호황일 때는 통화량이 많고, 불황일 때는 통화량이 적습니다. 이걸 뒤집으면? 통화량을 늘리면 세상에 신뢰가 늘어나고, 호황이 옵니다. 어지럽나요? 언어유희 같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이런 식으로만 이야기하면 세상이 너무 해양장미빛일수 있으니 또 하나의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많은 경우 과도한 신뢰는 위험합니다. 믿음이 항상 진실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과한 믿음과 기대는 인플레이션을 촉진하고, 버블을 생성하며 그건 곧잘 터지곤 합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위 아나바다 이벤트 시장을 열고, 모든 참가자에게 일정한 액수의 (많은 분들이 한 번쯤 써 보셨을) ‘달란트’ 단위 이벤트 화폐를 나눠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모든 참가자에게 적은 액수의 달란트를 지급한다면, 참가자들은 가장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고 적은 물건만을 사는 경향이 생깁니다. 그 경우 물건이 얼마 안 팔리다 결국 막판에 많은 물건이 떨이로 처리되는 불황 및 디플레이션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가자 모두에게 넘치도록 많은 달란트를 준다면? 보이는 대로 막 사니까 전체 물건이 아주 잘 팔릴 겁니다. 다만 한정적인 물건을 두고 누군가 경매를 시작한다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실제 가치보다 훨씬 비싸게 살 수도 있겠지요. 이런 예시가 너무 간단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만, 현실 시장도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사람 본능과 습성이 거기서 거기거든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맨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시장이란 자연스러운 거래의 필요성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거래의 교환수단인 화폐는 곧 서로간의 신용(현실적으로는 기축통화국의 - 이 시대에는 미합중국의 - 신용)입니다. 누군가 만들어낸 악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만약 돈이 사악하다면, 그것은 인간이 사악한 겁니다. 모든 돈 뒤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해가 어디서부터 빚어졌을까요? 마르크스나 엥겔스 등이 보았던 산업 사회 초기의 온갖 사회 문제들은, 그냥 당시의 사회 문제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자동화 기기의 발달로 인해 기계가 많은 노동력을 대체하게 되면서, 농장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도시로 나온 대규모 인력이 저임금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던 게 당시 시대상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고, 당시의 시대상이 만들어냈던 일자리-노동력 시장 불균형의 문제라 보는 게 맞습니다. 그 문제는 생산성이 향상되고, 경제가 성장하며 개선되게 되지요.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공산주의 계열의 사상은 경제사에서 단순한 잡음이었을 뿐입니다. 자본주의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자연 발생적인 시장경제가 있었을 뿐이며 경제학은 꾸준히 발전하였고, 온갖 실패를 겪고 문제를 고쳐가면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지금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그것을 작위적으로 나쁘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뿐이지요.

 또 좌파들이 주장하는 ‘수정 자본주의’ 역시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주류경제학에 속하는 케인즈주의를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제멋대로 부른 말에 불과합니다. 케인즈 이후 모든 주류경제학은 케인즈의 영향을 받았고, 케인즈를 부정하는 건 비주류들뿐인 게 또 현실이고요.

 세상엔 비교적 자유로운 시장경제활동을 보장했던 정부와, 그렇지 않았던 정부가 있었을 뿐입니다. 어떤 사상 및 체제는 상공업을 통제하고 철저한 농업 중심으로 갔고, 또 어떤 사상 및 체제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는 코뮤니즘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유로운 시장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정부가 성공하였고, 인류의 본성적 생존활동인 상공업 행위를 지나치게 규제하는 시도들은 예외 없이 실패하였습니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수만 년을 쌓아온 본성을 섣부르게 통제하려 드니 결과가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시장 경제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착취적이었고, 시민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출처: 해양장미의 블로그
http://oceanrose.tistory.com/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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