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6일 월요일

안중근과 AOA 그리고 사이고 다카모리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보다는 안중근이 쓴 <동양평화론>이 더 대단하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이번 AOA 멤버들이 안중근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사건 때문에 갑자기 생각난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언론과 대중은 그렇다면 안중근의 사상과 그 시대적 배경에 대해 얼마나 '유식'한가?나 역시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것보다는 그것을 추동한 사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중근의 사상은 그의 '동양평화론'에 집약되어 있다. 그런데 실은 주류 미디어에서 안중근을 사상적으로 먼저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보았을 때에는) 일본인들이다. 90년대 중반 안중근을 특집 다큐멘터리로 다루었던 NHK의 방송은 사실 이전부터 이미 이뤄졌던 일본에서 이뤄진 사상적 재평가를 집약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3gViezMO5s&feature=youtu.b

일본인들이 안중근을 알면 알수록 반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안중근은 일본인들이 좋아라 하는 메이지 유신의 선각자와 지사들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카모토 료마'라든지 '사이고 다카모리' 같은. 그들은 메이지 유신 초기 일본에 닥친 근대화의 도전을 그 나름대로 사상적으로 파악하고 테러와 지역적인 반란과 같은 수단으로 돌파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은 개인적 카리스마에 의존한 방식의 한계에 부딪혀 살해당하거나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런 실패야말로 메이지 유신의 지사들을 낭만적인 인물로 만드는 것이다.

과연 내선일체답게, 일본인들만큼이나 한국인들도 일본인들만큼 지사적인 낭만주의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일본에 비해 능동적인 역사적 경험과 지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 차이이겠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것이 원리적으로 이후 있을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공영권>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싶다. 대동아공영권도 그 자체로는 훌륭한 사상이다. 그것을 사상적으로 입안한 기타 잇키1나 니시다 기타로2 그리고 미키 기요시3의 사상이 개인적으로는 매우 훌륭하듯이, 제 아시아 국가들이 상호연합해서 서구로부터 자립하여 공존공영하자는 대동아공영권도 매우 훌륭한 사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 벽두에 제출되었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동아공영권이 일본의 침략사상으로 활용되었듯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도 실제로는 현실에 비춰보았을 때 모순을 내포한 사상에 불과했다. 안중근 역시 그의 부친인 안태훈과 함께 동학농민군을 토벌하는 데 동참했다.

<동양평화론>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안중근은 원칙적으로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그것의 사상적 구심점이었던 천황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메이지의 원로들이 메이지 유신의 진정한 근본사상을 배반한 것이 결국 한일간의 을사조약과 같은 불행한 사건을 낳았다고 보는 것 같다. 안중근의 이러한 한심하고 나이브한 현실인식으로는 당연히 현실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결국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동양의 제국가가 취할 근대화의 기본모델로 삼았다는 점에서 안중근의 사상은 박정희의 '유신혁명' 즉 '조국근대화론'과도 원리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으다. 그리고 이후 일어날 태평양전쟁과 같은 인류사적 비극에 대해 안중근의 사상은 어떠한 해답도 주지 못한다.

안중근은 당시 조선인들에게 닥친 근대화의 도전을 그 나름대로 사상적으로 파악하고자 했고, 한 개인으로서 그것에 온 몸으로 부딪히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안중근은 메이지 유신의 여러 선각자들과 비슷한 인물이다. 그들과 비슷한 실패한=낭만적 영웅이다. 그렇기에 안중근의 사상을 깊이 이해하는 일본인들은 메이지 유신의 낭만적 측면을 떠올릴 수 밖에 없고 마땅히 안중근을 존경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애초에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는 안중근 따위보다는 차라리 정한론을 주창했던 사이고 다카모리 같은 메이지 시대의 지사가 훨씬 더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우리에게 정한론을 추장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이고 다카모리는 단순히 조선을 정벌하자는 인물이 아니라, 조선에도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일으켜서 근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인물이다. 러시아 혁명으로 치면 스탈린의 일국 국가사회주의에 맞서 혁명(=메이지 유신)의 수출을 주장했던, 이를테면 트로츠키 같은 급진적인 인물이다. 

정한론은 결국 당시 지배계급에 의해서조차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바보 같은 소리였지만, 내가 보았을 때에는 안중근의 나이브한 현실인식 따위보다 훨씬  급진적이면서 멋있는 인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마 내가 AOA 멤버였다면 안중근의 사진을 보고 '사이고 다카모리인가요?'라고 능청을 떨었을 것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paxwonik/220709901609

  1. 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D%83%80_%EC%9E%87%ED%82%A4
  2. http://www.artnstudy.com/SLectureFree/Lecture_sample_b.asp?LessonPart=philosophy&LessonIdx=jwlee30&code=06&line=200&sample=true
  3. http://windshoes.new21.org/person-miki-kiyoshi.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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