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0일 월요일

버니 샌더스 열풍 : 제국에서 보통국가로?



무명의 사회주의자의 돌풍

경선 레이스 초반에는 여론조사에서 한 자릿수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치곤 했던 한 무명의 사회주의자 상원의원이 미국 경선에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인물은 무상교육과 전면적인 의료보험제도 실시 등 '미국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공약을 선보인 바 있다. 월가로부터의 기부금을 (거의) 받지 않으며 무상봉사와 자발적인 기부에 의존한 버니 샌더스는 오늘자 아이오와주 코커스에서 거물급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사실상 동률의 선거인단 득표를 올림으로써 파란을 일으켰다. 대졸자 청년층의 압도적인 지지가 한 몫을 했다. 앞으로의 풍향을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미국의 사회당이 활동했던 20세기 초반 이후 사회주의 정치인이 미국 정당정치의 중심부에서 이만큼 대중적 흥행과 관심사를 한 몸에 받은 것은 처음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세계제국에서 보통국가로...

 물론 우리는 샌더스 의원에게 자주 붙는 '사회주의자'라는 라벨에 너무 쉽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가령 미국에 헬렌 켈러와 같은 사회주의자 증조할머니 급의 인사가 재림하여 대통령이 된다 해도 당장 세계질서에 큰 변화가 있을지 미지수이다. 사회주의자에게조차 사회주의는 결코 세계보편의 선이 아니다. 현실의 국내정치에서 사회주의란 결국 자본제 경제를 기반으로 한 대내적인 재분배 정책에 불과하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열강의 사회주의자가 재분배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의 힘(군사력 등)을 빌려 더 배외적이고 패권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버니 샌더스의 교육공약대로 대학등록금이 세금지원으로 무상화되고 수월성 교육이 아닌 국민교육 시스템으로 대학이 재편된다면 미국대학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세계적으로 '개방적'인 미국의 모습이 아니게 될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렇다. 미국의 현행 대학 시스템은 국적을 막론하고 해외의 유수 인재들을 적극 끌어들인다. 그러면서 정작 보통의 자국민으로부터는 비싼 등록금과 기부금을 걷기 때문에 원성을 산다. 그러나 국민국가로서는 역행적인 이와 같은 시스템이 오히려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일조한다. 미국대학에서 교육받은 해외인재들은 다시 세계 곳곳에서 미국 중심의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를 전파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교육제도는 국민국가의 논리(국가는 국민의 이익에 복무한다)를 초월한 '제국'적인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자국 내에서 세금을 걷어서 자국민에게 봉사하는 일국의 사회주의 시스템은 '제국'을 운영하는데 적합한 원리는 확실히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핵심이 아닐까.

 안토니오 네그리가 일찍이 <제국> 등의 저서에서 지적했듯이 미국은 냉전 이후 지금까지 국민국가의 외연을 넘어선 '세계제국'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다국적 기업과 기구를 통해 세계질서를 자유무역, 자유금융을 골자로 한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은 한 국민국가가 다른 국민국가에게 압제를 가하는 기성의 '제국주의'의 질서와 전혀 다른, 국제금융시장과 무역조직 및 다국적 기업을 경유한 '제국'적인 세계질서를 도래하게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인들에게 미국은 '기회와 자유의 땅'으로서 그와 같은 세계질서를 확장하고 주도한다는 자기표상은 매우 익숙한 것이다. 또한 바로 그러한 자기표상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미국 특유의 내셔널리즘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버니 샌더스 돌풍은 이러한 미국인들의 자기표상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까. 특히 샌더스 돌풍의 진앙지가 전통적인 주류사회의 일원이었던 고학력 백인 중산층이라는 점이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는 미국이 주도했던 세계제국의 질서, 즉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전지구적인 장기침체로 빠져든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호한 정치혁명
확실히 샌더스 의원이 약속하는 각종 '급진적인' 복지정책과 공공성 강화 공약들은 동시대 유럽열강의 정치지형에 비하면 범용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세계최강대국의 경제규모와 군사력에 비하면 열악하기 짝이 없는 미국의 문맹률, 교육수준, 의료수준을 감안하면 샌더스의 공약은 어찌 보면 제도적인 정당정치의 영역에서 뒤늦게나마 '상식적'인 수준의 복지정책을 제안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샌더스 돌풍의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세계제국의 한복판에서 이러한 국민국가적인 상식과 논리를 회복하려 한다는 점이 변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경선에서 분 버니 샌더스 열풍을 '제국'의 중심부에서 '보통국가' 혹은 '정상국가'로의 회귀를 바라는 일부 젊은 미국인 유권자들의 표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가 불투명한 이들이 장기침체의 여파에 지친 것은 당연하다. '기회와 자유의 땅'으로서 미국이 세계질서를 선도한다는 기성세대의 자부심보다는 다른 보통의 열강들처럼 그 경제규모에 걸맞는 의료보장, 주거보장, 무상교육 등을 보장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것 같다.

  이러한 변화의 장기적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매우 모호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 버니 샌더스를 통해 분출되고 있는 정치적 열망은 '소수자'와 '비주류'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으로 특징지어졌던 90년대의 신사회운동=시민사회운동과 다르고, 2000년대 후반에 분출되었던 오큐파이 월가 점령 운동과도 그 성격이 판이하다는 점이다. 샌더스의 부상은 그 동안 시민사회의 (샌더스 자신의 소싯적 시절과 같은 히피류의) 비주류 운동과 하위문화로 스스로를 국한 지었던 항의와 불만들에 대해 제도권에서 최초로 건내진 진지한 응답이다. 이것은 운동권 히피였던 샌더슨에서 상원의원이자 민주당 경선후보로 변모하게 된 샌더슨 자신의 인생역정과도 겹쳐지는 변화라고 생각된다.

4. 선진국과 주류사회에서부터의 혁명?

  러시아 혁명 이후 열강의 급진주의자들, 특히 비제도권 사회주의자들은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을 줄곧 외쳐왔다. 하지만 그들이 현실사회주의에 실망하기 시작한 68혁명 전후로 그들이 실제 혁명의 장소로 기대를 걸었던 곳은 제3세계의 머나먼 정글이나 농촌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온실 속에서 호치민과 마오 그리고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응원하는 구호를 외치는 소수파 낭만주의자의 역할에 자족해오곤 했다. 대내적으로는 민권운동에 투신했던 샌더스 자신이 그러한 부류의 낭만적 히피였으리라고 예상한다. 한편 다른 부류의 급진주의자들은 제3세계식의 폭력혁명을 그대로 1세계 자국에 이식하려다가 자멸해버리곤 했다(대표적인 것이 적군파 사건). 냉전이 붕괴한 이후에는 이마저 여의치 않자 생태주의와 여성주의 하위문화로 눈길을 돌렸다. 과거의 혁명의 낭만적 장소로 표상되었던 볼리비아의 정글은 이후 캘리포니아 게이 공동체나 슬럼가의 하위문화로 옮겨졌다.

  하지만 샌더스 열풍이 좌파들에게 주는 교훈은 정작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1세계의 주류사회(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백인 중산층)가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물론이고 어떠한 형태의 정치적 변화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샌더스 열풍의 지지기반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다. 샌더스 돌풍의 성패 여부는 백인 중산층 젊은이들로부터 응집된 계급투표성향이 다른 계층에도 얼마나 확산될지의 여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정치혁명에 대한 1세계 젊은이들의 열정의 대상이 제2세계에서 제3세계를 돌아 다시금 자기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으로 되돌아 온 셈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그마치 한 세기를 경유하며 회전축을 따라 돌아가는 역사적인 시퀀스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다.

[출처] 버니 샌더스 열풍 : 제국에서 보통국가로?|작성자 박가분
http://blog.naver.com/paxwonik/22061668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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