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7일 금요일

학벌사회 비판과 대안 없는 대학구조조정비판은 공허하다.

1. 학벌사회 비판

 최근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가 자진해산되었는데, 씁쓸하다. 이는 학벌이라는 '상징자본'을 가졌다 하더라도 취업이 녹록치 않는 각박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세간에서 더 이상 '학벌사회'라는 것이 교육문제의 중심의제로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과거 <학벌사회>를 출간한 김상봉을 위시한 많은 학자들이 학벌사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것이 민주노동당 시절 진보적인 교육정책의 핵심의제로 반영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까지 느껴진다. 최근에는 '학벌'보다는 반값등록금과 같은 '교육비'와 '대학기업화 비판'이 중심적인 의제였다. 하지만, 과연 학벌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해체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히려 최근의 진보진영이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 건가?

한편 SNS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학벌에 반대하며 출신학교를 기재하지 않습니다'라는 상태표시를 띄워놓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징자본'으로서의 학벌에 대해 여전히 사람들이 민감하다는 지표이다. "학벌 없는 사회"라는 시민단체는 해체되었지만 "학벌"은 여전히 해체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는 SNS상에서 개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학벌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학벌의 한 자리를 차지한 개개인에게 '죄악감'을 요구하곤 한다. 이것은 넷상에서 진보연하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병적인 멘털리티가 아닌가 싶다. 교육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전망과 처방이 이제는 없고, 진보진영이 그 동안 교육비 인하 처방에만 매몰되어 있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반편향으로 죄악감의 자기서사와 인정투쟁이 넘쳐나는 게 아닐까?

냉정하게 말하면, 저 "학벌사회에 반대하며 출신학과를 기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위선적인 자기과시를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를 일반화하자면 대안과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진보는 죄악감을 자신과 타인에게 강요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오갈 데 없는 분노가 부유하고 있는 넷상의 전반적인 정서이다.

  그렇다면 학벌이 나쁜 이유는 무엇일까?

2. 대학기업화시대의 학벌사회

 학벌사회가 나쁜 가장 큰 이유는 각자의 열패감과 우월의식을 떠나서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자원의 낭비"라고 생각한다. 학벌은 기본적으로 "위치재(positional goods)"이다. 위치재란 본질적으로 콘서트 티켓과 같다. 평소 동경하던 연예인을 남들보다 가까이 보기 위해, 맨 앞자리, 그게 아니라면 그 뒷자리, 그게 아니라면 그 뒤의 뒷자리라도, 남들보다 먼저 차지하기 위해 돈 몇십만원씩도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재화라고 보면 된다. 이런 앞자리 콘서트 티켓을 얻기 위한 출혈경쟁을 낭비적 군비경쟁에 비유하기도 한다(이준구).

 학벌도 본질적으로 그런 콘서트 티켓과 똑같다. 지금은 옛말이지만 SKY-서성한-중경외시와 같은 서열도 그러한 위치재의 속성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대표적으로 남들보다 한자리 석차 우위를 점하기 위해 돈 몇백 몇천만원도 아까워 하지 않은 사교육 열풍이었다(물론 이것도 호경기에서나 가능한 여유지만). 이러한 사교육 과열도 대표적인 "낭비적 군비경쟁"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비단 경쟁이라는 것이 수험생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학벌이라는 것이 "위치재"인 것은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대학 그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대학도 그런 의미에서 치열한 순위경쟁, "낭비적 군비경쟁"을 벌인다.

 학벌사회에서 비단 과거와 같은 "입시지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대학들도 "지옥" 같은 학벌경쟁을 한다. 무한경쟁의 시대가 개막된 이후로 과거의 SKY-서성한-중경외시 등의 서열은 이제는 더 이상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대학마다 대학평가 등의 지표로 나타나는 학벌상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그래서 건물도 화려하게 많이 짓고 유학생도 많이 유치하고 외국인 교수도 많이 초빙하고 국가 연구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로비도 많이 했다.

 이러한 대학 간 학벌경쟁의 궁극적인 결과는 특히 사립대학들의 "몸집 불리기"였고 결과적으로 교육비의 폭증을 가져왔다. 이게 왜 낭비인가? 개별 대학이 그 동안 자신이 잘해왔던 부분(비교우위)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자신의 장점을 특화하고 그렇게 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가로막고,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절대우위)"는 대학간판 특유의 허울 좋은 유명세를 알리는 데 급급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규모의 학생을 유치하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교수를 무리해서 초빙하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영강을 의무화하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건물을 증축해왔 던 것이다. 그 결과 비효율적인 교육비의 증가를 초래한 것이다.

  이런 몸집불리기는 학문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학벌장사로밖에 설명을 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당장의 학벌장사를 위해 돈을 갖다 바치겠다는 학생과 유학생 다 받아놓았는데 정작 그들의 복지와 편의를 위한 비용은 감당 못하겠으니, 매년 등심위에서 돈 없다고 징징대는 것이다.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조차 이와 같은 '발전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또한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무엇을 자신의 전공과 진로로 삼을 것인지를 동기로 대학진학이 정해져야지, 어느 대학을 갈 것이냐로 정해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무슨 대학을 갈 것이냐를 기준으로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도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몸집을 불려왔다.

  그렇게 해서 학벌을 득해봤자, 그 누구도 무슨 학문분야의 노벨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경직적이고 위계적인 노동시장을 재생산하는 데 일조할뿐이다. 또 소위 명문대생이라는 사람들도 직장 잡고 나서는 이게 내 진짜 적성인가 하고 고민하거나 그만 둬버리는 경우가 심심찮다. 대학 진학 당시에 했어야 할 고민을 유예시켜서 뒤늦게 사회적 비용을 치루게 하는 것. 이것이 학벌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다.

3. 학벌사회와 대학구조조정

 특히 지금 진행되는 지방대 비인기학과 위주로 진행되는 대학구조조정과 학과통폐합이 나쁜 이유는, 그것이 이 학벌구조를 더 강화시키는 데 일조할 뿐 진짜 자원의 낭비가 행해지도록 부추기는 학벌구조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낭비의 원인이 되는 학벌구조를 강화시킨다. 결국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학벌경쟁에서 도태된 대학들이지 저 학벌경쟁을 통해 몸집을 불려온 유명 사립대학들이 아니다.

 예컨대 고려대 학부생 2~3만에 대학원 재학생 수료생 1만이다. 합치면 3~4만명인데 과거 고대 그리스 폴리스(아테네) 인구도 이것보단 적을 것이다. 또한 현재 학령인구감소를 감안할 때 '대학이 쓸데 없이 많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대학생 입학정원' 수를 가장 많이 늘린 대학들은 수도권의 소위 명문 사립대학들이었다. 구조조정의 우선순위는 바로 이들이어야 한다.


1970년 이후 정원을 가장 많이 늘린 대학은?
◦ 대학교육연구소(소장 박거용)가 「대학학생정원령(대통령령 제5430호. 1970.3.1.시행)」에 명시된 1970년 사립대학 입학정원과 대학알리미에 공...
관련기사 : http://khei-khei.tistory.com/1286


진짜로 대학 구조조정을 할 거면 서울 주요 사립대학들의 정원부터 우선 줄여야 한다. 그랬는데도 돈이 모자란다고, 비용을 감당 못하겠디고 징징대면 국유화를 해서 기존의 국공립대학에 통폐합을 하면 된다. 이게 진짜 교육개혁이고 구조조정이지 않을까. 문제는 그와 같은 '진정한'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전망이 진보진영에 부재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대학이 추진하는 대학구조조정에 수세적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아닐까.

4. 나가며

  지금의 대학구조조정은 대학교육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중립적인 '재화'라고 보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사회에서 대학교육은 '학벌'이라는 위치재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학벌사회는 수도권 상위권 대학 위주의 불균등한 몸집불리기를 초래했다. 대학기업화라는 것도 사실은 학벌이라는 위치재를 중심으로 한 (대학 간의) 낭비적 경쟁을 골자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미명 아래 불필요한 자본투자를 남발한 대학기업화라는 현상도 '학벌사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현재에도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아래 지방대와 인문.예체능 비인기학과 위주의 학과통폐합이 자행되고 있다. 대학의 몸집불리기와 정원의 폭증을 주도한 책임당사자와 진짜 구조적 원인은 건드리지 않고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진보진영이 이 같은 학생들의 피해에 속수무책인 것은 어쩌면 (교육비 인하를 넘어서) '학벌사회'를 넘어서는 공공적인 교육시스템의 마련에 대한 전망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민주노동당 시절만도 못한 정책역량이 아닌가 싶다. 매우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출처] 학벌사회는 왜 나쁜가?|작성자 박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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