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3일 일요일

인간본성에 흥한 신자유주의 인간본성에 망할 수도

자본주의는 이기심과 물욕이라는 ‘인간 본성’을 인정함으로써, 물욕을 제도적으로 억제하려한 수많은 사회 제도를 모두 누르고 인류 역사 1만 년여 끝에 21세기 사회체계 승자가 되었다. 전제왕정·사회주의 독재·공산주의 등 수많은 제도들이 “자본주의보다 나은 행복을 약속한다”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모두 경제적으로 패했다.

  전 국가적 존경을 받아온 지도자를 가진 공산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에서조차 지도자 사후에는 자본주의 개혁 개방 정책을 취해 국부 증진과 국민 소득 증대를 도모했다. 1980년대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후 러시아가 그랬고, 덩샤오핑의 ‘느리지만 강력한 개혁개방’을 실행한 중화인민공화국이 그러했으며,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거인 미국과 1 대 1로 싸워 당당히 이긴 베트남사회주의인민공화국도 호치민 사후 ‘도이모이 정책’을 실행하며 아시아의 경제성장국 반열에 다가오고 있다.


▲ 경향신문 기획 "당신은 거인을 볼 수 없다"에서 네덜란드 경제학자 얀 펜이 고안해 저서 '소득 분포'를 통해 알린 '소득 행렬' 모델에 따라 한국 내 연봉 4500만 원인 사람을 전체 행렬에 세운 모습. 소득 양극화 정도를 보다 효과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국가들은 국가 전체 총생산량, 총소득, 국력 등 모든 면에서 경기침체상태를 벗어나 성장가도에 접어들었고 국가경쟁력도 속속 되찾았다. 영국과 미국은 1980년대까지 이어진 침체에서 벗어나 영광의 시대를 되찾아가는 중이라 자평하고 있다. 한국도 “강력한 국가권력이 기업 및 사유재산을 관리 통제하여 전국민이 골고루 나누는 삶을 도모해서는 국가 경제 자체가 공멸하고 만다”는 여론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휘어감았고, 이러한 여론은 2007년 기업인 출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성장제일주의가 삶을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이 높은 지지율을 얻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여러 면에서 다르나 인간 본성인 ‘사유재산 추구’를 가능한한 많이 인정하자는 대전제는 같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학자들과 신봉자들도 ‘양극화’에 대한 입장에 오면 ‘인간 본성’으로 해석하기를 거부하는 듯하다. 개인 영달을 도모하고 사유재산을 증식하려는 것이 인간 본성이어서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남과 나의 소득이 다를 경우 벌어지는 문제인 ‘비교에 의한 상대적 상실감’과 ‘더 많이 분배받은 측에 대한 견제심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 어느 사회 국가적 체계도 인간 본능을 모든 면에서 무제한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 본능 중에서도 타인에 피해를 주지 않고 공동체에 선을 가져다주는 영역, 즉 근로와 물적 보상 및 재산 증식 등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제도에 관계없이 한 인간이 누려야하고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할 ‘인권’은 그 어떤 동기로도 침해할 수 없음은 모든 국가가 헌법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당한 노동으로 재산을 얻는 것은 최대한 보호하되, 타인을 해하여 재산을 얻는 것은 엄중히 제재해야 함’은 신자유주의에서부터 공동생산 공동분배 제도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

  그러나 ‘상대적 상실감’과 ‘시기심’을 그저 “인간이 덜 되서 부리는 투정이고, 그런 불평할 시간에 더 많이 일해서 자기도 그렇게 될 생각을 해야한다”고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시기심도 인간 본성이고, 이 또한 제도적으로 보호해야할 부분이 있는데 말이다. 왜냐하면 상대적 상실감, 상대적 박탈감, 남에 대한 시기심에 사회·국가·경제공동체 내 집단에서 임계점을 넘어간다면 집단행동이나 폭동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에서 민란이 일어나온 역사를 동서양 중국은 물론 한국사에서도 수없이 배워왔다. 시기심을 그저 “네가 노력할 생각을 안 해서 생기는 불온한 생각”으로 치부하다가는 억눌린 마음이 집단으로 폭발하는 것을 막지 못하며, 이는 ‘안보 실패’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상대적 박탈감이나 시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회는 이미 현행 제도가 실패한 집단이라는 증거가 가시화된 상태다.

  신자유주의를 강력히 실행한 국가들에서 총소득과 경제규모는 분명히 늘어났지만 국민 행복 지수라거나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 등이 올라가지 않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도 경제적 자유주의가 강화된 후 국가총소득·1인당 국민소득·수출입지표 등 모든 경제지표가 호전되었으나 구성원들 사이 ‘헬조센’이라는 자조적 비하 단어가 퍼지고 자살률이 오르는 등 ‘국민 행복 실패’가 가시화되고 있다. 인간 본성 중 ‘유재산 축적’을 인정했지 ‘체 집단 내에서 뒤쳐지기 싫어하는 마음’서 비롯된 시기심과 상대적 박탈감 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 경제학과 경영학은 지니계수, 십분위계수, 중위소득 등 수많은 지표들을 통해 경제총생산과 총성장 못지않게 합리적인 분배와 경제집단 건강성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분배지수가 악화되고 여론이 현행 국가 제도를 “불행을 가져오는 경제상황”으로 인지할 때, 제도를 바꾸지 않고 “국가와 제도는 괜찮고 네가 문제다”라며 사람을 계몽하려 하는 행위는 위험하다. ‘안보’의 의미가 국가 및 사회를 내외부에서 벌어지는 위협에서 지켜내 안정적으로 구성원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폭주하는 신자유주의는 경제를 넘어 안보에 해가 되는 것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연재 중인 웹툰 朝이라이드 2015년2월5일 게재분 '양극화에 대한 고찰'편에 나오는 한 장면. 양극화를 '부자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부의 차이' 문제로만 국한시키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일은 '개인의 마음이 상함'으로 한정시켜 "본질을 흐린 분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양극화가 가져오는 문제는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심리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양극화는 상위 1%와 나머지 99%뿐만 아니라, 최상위자에서 최하위자에게 이르기까지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 체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에 이를 '상위 1%에 대한 시기심'으로 보는 것도 단편적이고 위험한 시각이다. 요컨대 양극화가 발생한 경제집단에서는 상위 1%와 10% 사이는 물론이고, 상위 98%와 99% 사이에서도 같은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 1위 기업이 100위 중소기업에 '갑질'을 하는 것이 용인되고 보호되는 체계에서는, 300위 중소기업이 1000위 가족기업에도 '갑질'을 하는 것이 용인되고 보호되는 것이다. 경제집단 내 수많은 연결고리에서 모두 같은 문제가 발생하며, 따라서 "1위 부자와 나 사이에 격차는 문제 없다"는 시각은 '경제는 유기체와 같이 얽혀있고 상호연동한다'는 현대 경제학의 기본 상식을 무시한 결과로 나온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정녕 ‘인간 본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효율과 성과를, 제재 수단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경제제도’라면, 인간이 경제집단 내에서 뒤쳐졌을 때 가지는 상대적 박탈감과, 남들보다 적은 재물을 분배받을 때 가지는 시기심 및 남과 나를 비교하여 행복의 척도를 삼는 인간 본성들도 반영하여야 한다. 경제의 목적은 이윤 극대화이겠지만 국가경제의 목적은 이를 통한 국민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출처: http://terry.khan.kr/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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