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일 금요일

한일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한일간의 과거사에 대한 역사적 인식에는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식민지배는 사과를 받아 마땅한 명백한 죄악이다. 일본인의 입장은 좀더 복잡하다. 어찌되었건 이웃나라에 "폐를 끼친(!)" 것은 인정하지만 제국주의가 보편적인 세계 질서였던 시대에 벌어진 일을 지금의 시각으로 단죄하는 것에는 저항감을 느낀다. 한국인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나치의 침략행위와 비교하며 독일 수준의 사과를 기대하지만, 일본인에게 일본의 침략행위는 동시대의 영국이나 프랑스가 행한 그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자신들의 식민지배에 대해 인도나 베트남에게 사과한 일은 없지 않은가?

속마음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일본의 역대 총리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수위의 차이는 있어도 수차례에 걸쳐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의 의사를 표시해 왔다. 하지만 사죄 표명 이후 약속이나 한 듯이 터져나오는 다른 누군가의 "망언"은 한국인에게 사죄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반대로 많은 일본인들은 그렇게 여러 차례에 걸쳐서 사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죄를 계속하라는 한국의 태도에 불편한 감정을 내뱉는다. 전쟁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전전 세대가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런 의식을 부채질한다.

한국인들이 비교하기 좋아하는 일본과 독일의 전쟁 책임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굳이 여기서 되풀이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독일은 어디까지나 "전쟁 책임"에 대해 반성한 것이지 식민지배에 대해서 반성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야 식민 지배의 사실 자체가 잊을 수 없는 치욕이지만,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서세동점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대부분의 비서구 국가가 겪은 일을 한국도 겪은 것 뿐이다. 그리고 당시의 식민 모국 국민 중에서 당시의 식민 지배를 자랑스레 떠벌리는 사람은 오늘날 찾아보기 힘들지만,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과한 사례도 드문 것이 사실이다. 즉, 우리가 식민 지배의 기억에서 느끼는 감정이 곧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의 국제 질서는 2차 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승전국, 그 중에서도 미국과 소련 중심의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 위에 세워진 것이고, 이 두 나라가 과거 자신들의 전쟁 도발 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곧 그러한 합의에 대한 도전 행위로 간주되었기에 금기시되었다.(물론 그 정도에는 독일과 일본간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일본이 다른 식민제국과는 달리 표면적으로라도 한국에 대해 사죄를 해온 것은 그런 역사적 배경이 존재했음을 한국인들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식민 지배에 대해 느끼는 분노의 감정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분노의 감정이 곧바로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까지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본이라는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죄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도 아니라는 것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와 일본이 식민 지배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동일한 시각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책임있는 지도자가 식민 지배의 과거를 굳이 건드리는 발언을 한다면 이에 분노하고 항의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지만, 일본에게 우리와 같은 역사 인식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당연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불편한 일일지 모르지만,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바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나면 한일간의 역사적 문제에 있어서 명쾌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마치 명쾌한 해결이 가능한 것처럼 호도했을 뿐더러, 심지어 이를 외교 문제의 핵심에 위치시킴으로써 한일간의 숱한 현안들을 방치하고 지금의 위기를 자초해 왔다. 한일은 중국의 대두라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해야 하는 공동의 과제가 있고, 이는 국력 자체가 더 크고 지리적으로도 그나마 한발짝 물러나 있는 일본에 비해 중국과 인접해 있고 남북의 대치라는 상황까지 더해진 한국에게 더 절실한 문제이다. 어차피 역사적 인식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는 장래에 해결할 과제로 남겨놓고 당장의 현안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를 민생 법안 처리와 연계시키는 식의 행위가 국내 정치에서는 허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의 생존을 다루는 지정학적 위험 앞에서 역사 인식의 문제가 양국간 외교 전체를 마비시키도록 할 정도의 사치가 우리에게 허용될 수 있을까?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쉽게 외교적 타협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었던 문제였다. 그것은 희생자 모두가 살아서 해결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어야 하는 문제이고, 그런만큼 지금 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문제는 다룰 수조차 없는 상황으로 몰고가지는 말았어야 하는 문제였다. 왜 우리는 주은래가 난사군도 문제를 대한 태도, 즉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보다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미제로 남겨놓는 여유를 갖지 못했을까? 굳이 위안부 문제를 외교적 문제의 핵심에 위치시킴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운신의 폭을 조이고 말았다. 이번의 한일 협정은 우리의 주관적 감정과 외교안보적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들의 미숙함과, 그런 국민을 설득하여 국가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을 우선시하도록 할 수 있는 리더십을 결여한 정치권, 그리고 역사적인 시야를 갖지 못하고 현안의 기술적 해결에만 매달린 외교 관료들의 합작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식민 지배의 연장선상에 있기는 하지만 별도의 문제로 다룰 수 있는 이슈다. 식민 지배의 범죄성에 대해서는 적어도 국제정치적으로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지만, 국가가 성노예를 강제 동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 즉 보편적 인권의 명백한 침해 사례로 국제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책임을 완강히 부인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만 여기서도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위안부의 모집에 직접 간여했다는 근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로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거의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종류의 "증언"은 대단히 왜곡되기 쉬운 것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 야드 바셈의 관장은 피해자들로부터 수집해온 구술 기록이 대부분 믿을 수 없는 것들이라며 비통하게 말한 바 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사건이 일어난 곳 부근에도 있지 않았으면서 그 유명한 잔학 행위를 목격한 기억이 있다고 생각했다.(마거릿 맥밀런, <역사 사용 설명서> 中) 인간의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다. 오히려 식민지배의 문제에 대한 사죄는 그만하더라도, 이런 명백한 인류에 반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 스스로가 진상을 밝히려는 진지한 노력을 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딴 사과나 받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같은 소리를 듣는게 아니라, 한일이 공동으로 진상 조사를 하자고 제의해서 사실을 밝혀내고 그에 근거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그 결과 일본군이 직접적으로 위안부 모집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위안소의 설치와 운영에 일본군이 일정 부분 간여한 것은 사실이고 그 운영이 비인간적이었던 것도 사실인 만큼 일본 정부가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일간의 과거사 인식이 "민족의 치욕"과 같은 유치한 내셔널리즘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침해라는 좀더 성숙한 문제 의식으로 수렴해 가기를 희망한다.

출처: 파파라치님의 이글루: http://sukyoon.egloos.com/3536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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