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9일 화요일

"이승만 국부론"과 "8.15 건국절"을 이승만 어록으로 격파하다.




대한민국은 건국절을 따로 두지 않는 대신, 3.1절을 그 연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3.1 운동을 계기로 하여 한반도를 비롯하여 해외 각지에서 존재하던 독립운동 구심체가 통일된 임시정부 수립운동으로 이어져, 서울의 한성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연해주 대한국민의회가 상하이 상해정부가 합쳐지는 형태로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연설에서 드러나는 그의 사상은 "정부 수립" 과 "민족 해방" 이라는 두가지 개념이 있고, 이는 광복절과 삼일절이라는 두가지 형태의 기념일을 제정함으로서 드러나지요. 3.1운동으로 민족적인 합의를 이룬, 민족자결주의에 기반한 민족의 정부가 설립되었으며, 이는 일제에 폭압에 밀려 중국 대륙에 피난하다가, 민족 해방으로 인해 실질적인 정부의 구성을 하였다 라는 관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설립은 1919년에 했는데, 나라가 없어 정부 구실을 못 하다가, 나라가 해방 된 뒤, 실질적인 정부 구성을 하였다는 요지의 주장을 합니다.

대한민국의 수립을 선포하는 이승만 박사

즉 정부 수립, 건국절은 이미 그분들이 주장하시는 국부가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역시 이승만 국부론으로 넘어가면, 어느 연설에서도 이승만은 자신이 국가를 세웠다고 주장하는 부분도 없으며, 국가의 창립의 공을 모두 민중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정부수립 자체의 공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백성들에게 있음을 시인하고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이는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framer)들이 쓴 저작과는 미묘하게 다른 부분입니다. 연방주의자 논집과, 제퍼슨의 연설, 그리고 워싱턴의 취임 연설(1차)와 고별사에서 나타나는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국가를 설계할까?" 라는 질문을 고민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는 달리, 이승만 자체는 정부 수립은 나 혼자만이 아닌, 민중들에 의해서 이미 설립되었고, 나는 국민들에 의해서 선출된 민주정부의 대통령이라는 나름대로의 계승의식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그의 대부분의 연설은, 민중들의 투쟁과 독립을 위한 열망아래 건설된 정부를 실질적으로 남부에서나마 실현했고, 어떻게 북쪽과 침략자로부터 자유를 수호할까 정도의 말만 되풀이됩니다. 즉 그는 "민주국가와 자유의 수호자"를 자칭했을지언정 "국가의 건설자"를 자처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러한 부분 말고, 여러분들이 다 아는 헌법 전문에서도 건국절과 이승만 국부론이 안 되는 이유를 한 문장에 압축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대한민국 헌법 서문

서론은 이쯤 하고, 그가 쓴 연설문들을 차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위에서 쓴 부분을 감안하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많은 부분 맟춤법과, 지금에는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대로 토씨하나 안 빼고 수록했습니다.

우리 국가의 자유를 1907년부터 1912년까지 우리 의병들이 싸우며 보호하라했고 1919년에 만세운동으로 우리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중국과 만주에서는 우리 국군의 잔병이 1945년까지 싸워오다가 마지막으로는 공화민주국가(共和民主國家)의 결실이 되여 지나간 4년 동안에 처음으로 민국정부(民國政府)를 건설케 된 것입니다.

제 2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 연설 중

30년 전 오늘에 13도 대표인 33인이 비밀히 모여서 독립을 선언하고 대한민주국의 탄생을 세계에 공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선열들이 용감스럽게 이 일을 행한 환경이 140여 년 전에 미국독립선언을 서명하던 그 때의 형편만 못지않게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와 독립을 사랑하는 정신은 어디서나 한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건설하는 민주국은 탄생한 지 아직 1년이 못되었으나 사실은 30세의 생일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제 30주년 삼일절 연설 중


다행히 UN감시 하에 민국정부가 수립된 것은 우리 민중이 3·1정신을 지켜나오다가 마침내 민주정부를 완전히 수립한 것이니, 실상 32년 전에 우리 3·1운동을 주창한 선열들이 세운 정신적 민주국가를 이번에 사실적으로 완수한 것이오, 우리 민주정부가 성립된 지 얼마 안에 세계 모든 문명국가들의 지지를 받아 오늘 UN군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과 전무한 물질력으로 우리를 도와주기에 이른 것입니다.

 제 32주년 삼일절 연설 중


삼십삼년전 오늘인 일구일구년삼월일일에 우리애국지도자 삼십삼대표가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여 이를 세계에 공포한 것임니다. 그때에 공포된 독립의 정신이 실지상으로 출현되여 일구사팔년 팔월에 대한민국 주국이 탄생된 것이니 지금에 우리는 이 독립을 유지하며 공고커 하기 위해서 혈전사수하고 잇는 중이며...(후략)

기미년, 삼월일일에 선포한 우리 독립선언서에 한 구절은 삼십삼년전에 적합한 것이 오늘에 와서도 적합한 것임니다. 이 구절로 내 말을 맛침니다.

『오등은 자에 아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하야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하노라

제 33주년 삼일절 연설 중

그러나 우리 독립은 우리 전민족의 간담(肝膽)과 정신 속에 사라잇섯던 것입니다. 이 독립이 우리 해외에 임시정부(臨時政府)에 사라 잇섯던 것입니다.우리 독립은 세계에 가장 오래고 위대한 역사의 일부입니다.우리 한인(韓人)된 자는 이날에 우리가 행한 일과 또 우리가 대표한 국가를 자랑하고저 하는 바입니다.

제 35주년 삼일절 연설 중

친애하는 동포여러분. 3월 1일은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 민국이 정신적으로 탄생한 날입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 우리가 존경하며 기념하는 33 선렬들이 서울 명월관에 모여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일본 경찰을 불러와서 잡아가라 한 것입니다.

제 38주년 삼일절 연설 중

독립선언을 발표한 이 날 우리가 다 같이 모여서 공동히 할 일은 그때 우리의 정형이 어떠하였던 것과 또 우리의 33선렬들이 죽기로 결심하고 이 운동을 시작해서 경향에서 일시에 일어나서 피를 흘리고 싸운 것과 또 한편으로는 임시정부를 공포한 열렬한 역사를 우리가 다 기념해서 그 정신을 이르켜야 되는 것입니다.

 제 40주년 삼일절 연설 중

1919년(기미년)에 우리 13도를 대표한 33인이 우리나라 운명 개조하기 위하여 1776년에 미국 독립을 선언한 미국 창립자들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 한국을 독립민주국으로 공포한 것입니다. 이 민주정부가 서울서 건설되어 임시로 중국에 가있다가 3년 전 오늘에 우리 반도남방에서 실현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 정부는 대부분 미국과 UN 각국의 도움으로 태생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한국 천지에 자유가 탄생한 이날을 경축하는 우리로는 이 역사를 이즐 수 없는 것입니다.

제 6주년 광복절 연설 중

즉, 3.1 운동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기에 건국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삼일절을 국가가 기뻐하는 국경일로서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승만 국부론을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 창립의 주체가 국민, 민중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오, 8.15 건국절을 주장함은, 3.1운동 당시에 "조선인민"의 마음속에 이미 건국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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