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5일 목요일

문제는 당신이 자본주의가 뭔지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엄밀한 사고를 하지 않는다. 어떤 사물이나 개념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물이 가지는 다소 애매한 이미지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리며, 그런 이미지들은 타고난 성격이나 자라온 환경, (넓은 의미에서의) 교육에 의해 생겨난 선입견에 의해 형성된다.

철학의 핵심은 이러한 애매한 이미지들을 최대한 명확화하여 명징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지만, 소위 인문충이라 불리우는 자칭 철학자들, 특히 우리나라 왼쪽 계열에 있는 이들은 "철학"의 이름 아래 교회의 예식이나 대중 매체를 통한 상품 광고, 혹은 나찌나 공산당의 프로파간다 비슷한 짓들을 한다. 즉 자신이 비판하거나 옹호하고 싶은 대상에 대해 특정한 이미지를 덧씌우는 "선전"을 철학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지적 게으름의 흔한 예가 트랙백한 글과 같은 소위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글쓴이와 같은 게으른 자본주의 비판가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고 하는 많은 - 혹은 모든 - 부정적인 요소들의 근본 원인으로 자본주의를 지적한다. 하지만 글쓴이가 "자본주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명확하게 생각해 보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이들을 위한 가상 대화를 만들어 보았다.

A : 나는 오늘부로 자본주의에 종말을 고한다. 인간을 획일화된 돈의 노예로 만드는 자본주의는 사회의 비인간화를 초래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B : 나는 오늘부로 악마에 종말을 고한다. 인간을 획일화된 돈의 노예로 만드는 악마는 사회의 비인간화를 초래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A : 아니, 잠깐. 인간을 획일화된 돈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왜 악마라고 생각하지? 애초에, 악마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잖아?

B : 그럼 인간을 획일화된 돈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왜 자본주의라고 생각하지? 자본주의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해?

A : 무슨 소리야? 지금 니가 살고 있는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 사회잖아? 우리가 겪고 있는 억압과 부조리가 바로 자본주의 때문인데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다니, 무슨 소리야?

B : 아니, 그 억압과 부조리의 원인은 바로 악마 때문이라니까. 억압과 부조리를 직접 겪고 있으면서 악마가 없다니, 무슨 소리야?

A : 그럼 악마의 존재를 증명해봐!

B : 그전에 자본주의의 존재를 증명해 보시지.

A : 우리는 시장에서 노동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잖아. 노동이 인간성의 실현이 아니라 화폐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아냐? 내가 매일매일 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팔고 있는데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말이 돼?

B : 무슨 소릴 하는거야. 시장에서 노동을 팔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어. 지금이라도 남태평양 섬나라에 가서 물고기나 잡아 먹으면서 살면 돼. 아니 먼 남태평양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어느 농촌에 가서 빈집 하나 차지하고 앉아서 농사짓고 살면 돼.

A : 그걸 말이라고 해?
B : 왜 안 되는데?

A : 우선 내가 왜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 삶의 기반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하지? 그리고 사회 전체가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면 굳이 남태평양의 어부가 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

B : 그러니까 너는 자본주의라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는 싶지만 그것을 위해 니가 지금 가진 것들, 예를 들어 인터넷이라든가 의료서비스라든가 대중교통이라든가 해외여행을 갈 경제적 여유라든가 하는 것을 포기하기는 싫다는 거지? 그리고 니가 그런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자본주의라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너하고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거잖아.

A : 자본주의에 억압받는 것은 소수의 자본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깨닫고 있더라도 이것이 현실이라고 체념하고 있을 뿐이지.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만 한다면 기꺼이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려 할거라구.

B : 잠깐, 그전에 니가 자본주의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는 것부터 증명해야지.

A : 내가 자본의 논리 때문에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데 무슨 증명이 필요해?

B : 니가 원하는 삶은 뭔데?

A : 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돈이 아니라 삶을 온전히 향유하기 위해서 사는 거지.

B : 그럼 지금 그렇게 하지 그래.

A : 나는 그렇게 할거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안한다니까!

B : 왜?

A : 어렸을 때부터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교육받고, 돈이 제일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돈만 많이 벌면 최고라고 생각하고, 돈을 벌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 옳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B : 그렇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말이지?

A : 당연하지.

B : 자, 너는 "노동이 인간성의 실현이 아니라 화폐 획득의 수단이 되는 것"을 자본주의라고 말했어. 하지만 "노동이 인간성의 실현이 아니라 화폐 획득의 수단이 되는 것"은 하나의 현상이지 제도가 아니야. 현상은 결과이지 원인이 될 수 없어. 예를 들어 사람들이 걸그룹에 열광하는 것은 현상이고, 현상에는 "젋음과 섹시함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과 같은 원인이 있어. 그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부정적인 현상 몇 개를 나열한 다음에 그건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걸그룹에 대한 열광의 원인이 걸그룹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진술에 불과해.

너는 어렸을 때부터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교육시키고, 돈만 많이 벌면 최고라고 생각하고, 돈을 벌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 옳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라고 했어. 하지만 그전에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명확히 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 탓이라고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악마 때문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에 불과해. 도대체 자본주의라는 것이 뭔데? 그냥 돈이 최고인 사회가 자본주의인가? 그럼 사람들이 돈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돈이 주는 효용과 권력 때문이겠지. 우리는 많은 것들의 가치가 화폐로 환산되고 화폐와 교환이 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

A : 그래, 모든 것들의 가치가 화폐로 환산되고 화폐와 교환이 가능한 사회, 그게 자본주의 사회라니까!

B : 그렇게 결론 내리기 전에 좀더 생각해 보라구. 화폐에 의한 가치의 교환은 기원전 8세기 소아시아의 리디아에서 시작된 이래, 아니 금은이나 조개껍데기 같은 화폐 대용물까지 포함하면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구. 그렇다면 인류는 적어도 역사시대 전체를 통틀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었다는 말인데, 여기에 동의해?

A : 물론 화폐의 존재와 자본주의를 동일시할 수는 없지. 하지만 자본주의 이전 사회는 지금처럼 인간의 인격까지 돈으로 교환되는 사회는 아니었어.

B : 자본주의 이전 사회는 인격을 돈으로 교환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인격을 소중히 하는 사회도 아니었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돈때문에 일한다면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채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하거나, 흉년에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일했다는 차이 정도랄까. 그리고 인간의 인격에 불가침의 권리를 부여한 것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너는 또다시 현상을 원인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어. 인간의 인격까지 돈으로 교환되는 것은 현상이지, 그 자체가 자본주의는 아니야. 인간의 인격이 돈과 교환되는 것이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말하려면 먼저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그것이 왜 인간의 인격을 화폐화 시키는지 밝혀야 해. 나는 아직도 거기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것 같은데.

A : 잘 들어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B : Stop! 그전에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뭔데?

A : 돈만 있으면 뭐든지, 인간의 인격이나 노동까지 살 수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지!

B : 그게 아까 했던 "모든 것들의 가치가 화폐로 환산되고 화폐와 교환이 가능한 사회"라는 말과 뭐가 달라?

A : 그러니까 그게 자본주의 사회라니까!

B : 그게 제도가 아니라 현상이라는 것을 도대체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설명해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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