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9일 목요일

노인복지 논란에 생각난 북한 장마당 김노인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인 겨울이 이젠 제법 자기 본성을 드러내 보인다. 쌀쌀한 칼바람에 목을 움츠리고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을 보느라니 고향의 겨울은 얼만큼 추울까, 어떻게 이 추위를 이길까 찹찹한 생각이 든다.

내가 새롭게 둥지를 튼 대한민국의 겨울은 북한에 비하면 추위라고 말할 수 없다.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은 덜 추워도 함경도, 특히 양강도 날씨는 장난 아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린다.

모든 게 부족한 북한은 겨울이라는 계절이 제일 넘기기 힘든 시련의 시기이다.

아침 일찍 마대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장마당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 장마당에서 온종일 추위와 싸우며 물건을 팔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회사나 자기직장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지만, 북한은 운영되는 직장이 없다보니 장마당이 거의 모든 가정의 생명 줄이고 직장이 되어버렸다.

나의 고향에 있는 ‘농민시장’이라 불리는 장마당도 남한과 마찬가지로 물건을 팔기도 하고 넘겨주기도 하고, 암튼 장마당 안은 크고 작은 소음으로 귀가 멍 할 정도다.

우리 동네에 마누라도 없이 혼자 외롭게 살 있는 칠순을 넘기신 김 씨 성을 가진 노인이 한 분이 있었다.

먹고 살자니 김 씨 노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장마당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여기선 혼자 사시는 분들은 임대아파트에 기초 생활비도 보장해주지만, 북한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아침 일찍 담배(데초)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 장마당에 갔다가, 어두운 밤길에 하늘에 별을 동무해서 집으로 오는 게 노인의 하루였다.

하루 종일 추위에 꽁꽁 얼어가면서 담배를 판돈으로 저녁에 집에서 만든 밀주인 ‘농태기’를 반쯤이 마시고 돌아오는 것이 그의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게 돌아와 봤자 아무도 없는, 컴컴한 빈집이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와서 석유 등잔 밑에서 신문지를 가위로 오려서 잎초를 담을 고깔봉투를 만들어야 했다. 차곡차곡 봉투에 잎초를 밀어 넣고 밥알로 흩어 안지게 봉합하고, 그렇게 수십 번을 되풀이해야 내일장사 준비가 완료된다.

노인들은 대체로 운신하기 힘드니까 농촌에서 팔려 오는 물건을 도매 받아 판다. 열흘에 한번 열리는 시골장에 직접 찾아다니면 좀 싸게 구입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원수라 돌아다닐 수도 없어 시골에서 큰 배낭을 메고 와서 시간이 없어 급히 넘겨주고 가는 사람들에게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오랜 장사꾼의 노하우가 있는지라 좋은 물건과 좋지 못한 물건을 섞어서 가공만 잘하면 그럭저럭 이익이 난다.

그 노하우는 사실 알고 보면 별게 없다. 햇볕이 제일 좋은 시간에 싼 잎초를 마당 한가운데 펴고 식초와 소다를 섞은 물을 골고루 뿌린다. 시간간격으로 입초가 해를 볼 수 있게 뒤집어주면, 한참 후에 누르끼르한 색깔의 보기 좋은 담배로 변신된다.

하지만 색깔만 좋다고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장마당의 모든 담배 장사꾼들은 맛보기 담배라는 것을 의무적으로 제공한다. 한국은 그냥 브랜드 별로 담배맛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냥 곽으로 사면 되지만 북한은 장마당에서 파는 담배가 어느 것이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북한 장마당에도 곽 담배를 파는 장사꾼들이 많다. 그런데 곽 담배는 비싸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사기 힘들다. 그래서 대다수 서민들은 잎초를 찾는다. 집에서 노동신문 종이에 말아 피우는 게 그냥 싸고 최고이기 때문이다.

담배 장사꾼들에겐 다행스러운 점은 북한 남자들은 대다수가 흡연자이기 때문에 담배 수요가 많다는 점이다. 하긴 북한 남자들에게 하루의 고단함을 연기로 날려 보내는 담배라는 위안마저 없다면 그들의 삶은 더욱 고단하고 힘들 것이리라.

장마당에 가면 사람들이 “맛 좀 보기오”하고 한대 청하고, 그러면 장사꾼들은 “아이구, 맛을 보나 마나, 내 담배가 최고지”하면서도 담배를 말아 건네는 것이 아주 일상적인 일이다.

장마당 담배 매대의 모습, 파는 엽초 위에 맛보기로 미리 담배 3대를 노동신문에 말아놓은 것이 눈에 띈다.
돈이 없는 사람은 급할 때 맛만 보는 척 하면서 하루 피울 담배 대여섯 대를 다 피우고 돌아가는 일도 다반사다. 그래도 그런 것 가지고 신경 쓰다간 장사를 못한다. 흡연자가 다음날 담배를 끊는 것은 아니니, 오늘 돈이 없어도 내일은 있을 수도 있으니 그때는 돈을 들고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다.

장마당 입담배도 천편일률적인 맛은 아니다. 어떤 담배는 독한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어떤 담배는 구수함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어떤 담배는 저렴함을 내세운다.

담배를 사는 양은 사람마다 다르다. 1킬로그람씩 사는 사람도 있고 반킬로, 혹은 도시락만한 크기의 나무로 만든 되로도 산다.

북한의 판매는 키로를 떠서 파고 산다. 예전에는 되로 팔았지만, 오랫동안 장마당이 운영되면서 그램이 애매하게 나오는 되보다는 그래도 정확히 무게를 달아 사고 파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2010년에 잎초 1킬로에는 1만원에서~1만 2천정도였다. 이 돈이면 입쌀 4키로, 옥수수쌀은 7키로를 살 수 있다.

4인 가족이 한주일은 죽을 써먹으면서 살 수 있는 양이다. 이러니 담배 값이 결코 싸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담배에 인이 박힌 사람들이 그걸 끊기는 너무 어렵다.

담배도 그냥 담배라고 광고해도 잘 팔리지 않는다. 성천담배, 회령담배, 독한 담배, 연한 담배 이렇게 브랜드와 종류별로 마대를 펴놓고 앉아있어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한국의 편의점에 한 가지 브랜드의 담배만 놓고 판다면 그 매점에 사람들의 발길이 곧 끊기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그런데 북한의 장마당이라고 그냥 마음 놓고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좀 번 사람들은 장마당 안에 매대 사용료를 내고 들어가 마음 놓고 팔 수 있지만, 노인처럼 매대 사용료 한 푼이 아까운 사람들은 그것도 여의치 않다. 그런 사람들은 장 밖에 돚자리 하나 펴놓고 입초를 판다

시장사용료는 파는 상품에 따라 다르다. 중국 전자제품, 공업품, 화장품 매대 등 돈이 좀 나오는 매대는 장세를 비싸게 받는다. 농부산물과 축산물, 국산양말, 빨래방치, 빗자루 등 값이 싼 매대는 비싼 매대의 절반 정도의 장세를 받는다.

장마당 밖에 있는 임시 자리도 장세를 받는데, 보통 장마당 안의 절반 값이다. 하지만 그 자리도 승인되는 날이 있다. 그렇지 않은 날에 판매하다가 단속되면 벌금도내고 경우에 따라 무상몰수도 당할 수 있다.

장마당에서 제일 매점료가 비싼 공업품 매대는 1인당 차지할 수 있는 자리의 너비가 40센치밖에 안된다. 그냥 사람이 빼곡히 앉을 수 있는 너비에 불과하다.

매대가 너무 좁다보니 여름엔 땀이 비오듯 내린다.
그 좁은 공간에서 물건을 빼곡히 내놓고 걸고, 메고 파느라 상인들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차별화된 세련된 노하우로 고객을 끄느라 여념이 없다.

장안은 그야말로 물건을 팔기위한 자리가 아니라 어떻게든 팔아야 살 수 있다는 필사의 에너지가 넘치는 전투장을 방불케 한다.

장마당 밖의 자리는 고정자리가 아니다. 오늘은 먼저 온 사람이 차지하고, 내일은 늦으면 다른 사람에게 떼우고, 단속하다 지친 장마당관리원들이 어떤 날에는 일단 승인을 한다. 그런 날에는 장세를 밖에서도 받는다.

밥 먹구 사는 사람은 다 장사를 하니 장마당에 사람들로 넘쳐나 잘하지 못하면 장세도 벌기 힘들다. 사람들은 장세가 싼 바깥자리에서 쫒기더라도 악을 쓰고 물건을 판다.

그래도 매대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수준이 있는 장사꾼이다. 매대 밖에서 팔다가 ‘인민보안원’(경찰)들의 집중 단속에 걸리면 정말 큰일이다. 보안원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갖은 구실을 대고 단속을 해서 물건을 빼앗는다. 빼앗는 구실도 가지각색이다. 농민시장 같은 경우엔 농산물 외에 다른 것은 못 판다는 것이 가장 큰 구실이다.

또 장마당 밖에서 팔았다는 것도 중요한 구실이다. 보안원들은 이렇게 많이 뺏어야 벌금을 받아 자기 주머니에 챙겨 넣을 수 있다. 벌금 못 무는 사람이라면 물건을 뺏는다. 뺏은 물건은 자기가 믿을 수 있는 다른 장사꾼에게 다시 빼돌려 팔게 하고 또 돈을 챙긴다.

노인이라고 봐주는 일은 없다. 추운 겨울에 돌돌 떨면서 고깔봉투에 잎초를 파느라 온몸이 얼음덩이다. 그래도 단속원이 오면 피했다가 돌아가면 다시 그 자리에 오는 그런 긴장이라도 없으면 그만 얼어붙을지도 모른다. 아, 그래도 당사자들의 심정은 마음 놓고 앉아만 있어도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진눈깨비 내리는 으스스한 날에 김 씨 노인은 이날만큼은 단속원이 안 오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 놓고 앉았다. 그런데 보안원이라고 노하우가 없을 리 없다. 피하고 쫒는 사람의 심리는 늘 상대방의 약점을 공약하려 한다.

그래도 보안원이라고 진눈까비 내리는 날에 단속을 나서긴 싫다. 하지만 갑자기 돈이 필요한 때가 있다. 가령 보안원의 상급 기관에서 검열을 내려왔는데, 먹이고 뇌물을 주고 하는 등의 대접할 것이 마땅치 않다 그러면 보안원의 상관은 다시 “오늘 뭘 좀 채워와”하고 말단 보안원을 내몬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한다.

그날도 그랬는지, 갑자기 골목길 입구에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보안원들이 한 무리 밀려왔다. 순간 물건을 팔던 사람들이 갑자기 폭풍을 피하는 듯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이때는 필사적이다. 그날의 수입은 물론, 장사밑천, 나아가 가족의 생계까지 걸려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아서 남한에서 방영했다면 참으로 놀라울 것이다.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해도 축 늘어져 쓰러질 것만 같던 사람들이 호루라기 소리 하나에 어쩌면 저리도 빠르고 기동성 있는 훈련된 특수부대원들처럼 변할 수 있을지 이해가 되지 않을 듯 하다.

그날 불행히도 김 씨 노인은 피하지 못했다. 손자뻘도 안 되는 어린 보안원이 오더니 다짜고짜 물건을 꾸겨지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정이 먹히지 않을 줄 알면서도 김 씨 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정밖에 없었다. 그래도 장마당에서 늘 그런 사정을 듣고 사는, 얼굴과 귓구멍에 철판 깔린 보안원의 귀에 그 사정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한번만 사정 봐주시요, 안 팔겠습니다. 이걸 다 회수하면 난 뭘 먹구 삽니까.”

“팔지 말라면 말을 들어야지 왜 자꾸 말 안들어.”

이렇게 큰소리칠 때는 뭣인가 고이라는 암시다. 북한은 보안원이 돈을 받으면 후에 신소가 들어가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경우에 따라 정복을 벗을 수도 있다.

물론 술이나 담배 정도를 뇌물 받으면 정상참작이 돼서 자기비판과 검토사업 등 정도로 약하게 처리된다.

북한에서 담배는 곧 돈이다. 돈으로 뇌물 주기 눈치 보이기 때문에 돈보다는 담배 막대기로 뇌물 주는 경우가 태반이다. 북한에서 돈보다 더 잘 통하는 고급담배는 ‘고양이담배’이다. 재작년에 한 갑에 1500원, 한 보루에 1만5000원을 했다.

한 보루 정도 고여야 몇 번은 눈감아주고 지나간다. 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담배도 보루로 통하지만 바스락 장사군은 갑으로 통한다.

그 한 갑 한보루가 돈이고 식량이다, 보통 입초 장사꾼이 단속돼 걸리면 담배 한 갑을 주어야 되는데 그 값은 하루 종일 벌벌 떨며 버는 금액의 전부와도 같다. 뇌물 고이게 되는 날이면 노인의 하루 벌이는 공탕인 것이다.

노인에게 나올 돈이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 보안원은 담배 배낭을 나꿔채서 관리실로 들어갔다. 노인도 기를 쓰고 쫒아 들어갔다.

일단 관리실로 들어간 물건은 찾는다고 해도 절반도 못 찾는다는 사실은 장마당에서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저 보안원이 쥔 입초 한 배낭에 생명줄이 다 달려있으니 기를 쓰고 따라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김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린 보안원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일 뿐. 한쪽 배낭끈은 보안원이, 다른 한쪽은 어르신이 쥐고 몸싸움이 벌어진다. 밀고 당기고 강자와 약자간의 눈물나는 싸움….

“이놈의 영감태기. 공무 집행을 방해해, 한번 혼나봐라”

목덜미가 벌거우리하게 상기된 어린 보안원이 씨벌인다. 김 노인은 맥없이 배낭끈에 끌려가면서도, 어린 녀석한테 쌍욕을 먹으면서도 한마디 대꾸도 못한다.

그렇게 생명줄처럼 움켜쥐고 있던 배낭이 끝내 실랑이를 이기지 못하고 ‘쫘악’ 하는 소리와 함께 찢겨져 버렸다. 그 순간 배낭안의 담배가 순간에 눈 내리는 땅 위에 휙 뿌려졌다.

“어이구, 내 담배…”

김 노인은 흩어진 담배 위에 허둥지둥 자신의 몸을 덮었다. 구부정한 손으로 담배를 끌어 모으는데 갑자기 검은 구두발이 노인의 곁으로 다가 왔다.

뇌물도 못 받고, 담배도 뺏지 못한 보안원은 악에 차서, 분을 삭일 수 없었는지 담배를 두발로 마구 뭉개 버렸다. 김 노인이 꽁꽁 언 두 팔을 들어 보안원 다리를 끌어안아도 그 힘을 당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모습에 ‘저리 비켜’ 피줄이 튈 정도로 고아대는 보안원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혀를 찼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보안원의 발길에 채워 맥없이 눈 위에 주저앉았던 김 노인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야, 이 왜놈순사보다 더 한 놈아, 일제 때두 지금 같지는 않았어. 네 놈은 부모두 할애비두 없냐, 그걸 팔아서 먹구 사는 게 죄냐, 배급두 안주는데 이 늙은 게 굶어 죽을 순 없지 않느냐.”

“뭐라고, 이 영감태기가 당의 보안원을 일제 순사에 비해? 이런 반동 영감태기 봤나.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교화소에 갖다 놓으면 하루 이틀이면 너 같은 건 죽어. 이게 어디다 대고…”

김 노인의 기세에 잠시 밀려있던 보안원이 주변의 사람들을 의식했는지 침을 튀긴다. 여기서 밀리면 앞으로 장마당에서 자기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대들면 진짜로 교화소에 잡아갔지만, 요즘엔 하도 인민들의 분노가 커서 함부로 잡아가진 않는다.

대신 노인은 분노를 폭발한 대가로 내일부터 장마당에서 집중 요시찰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삶의 유일한 터전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하긴 유일한 본전인 담배를 다 잃었으니 내일 나오라고 해도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

김 노인이 다시 담배장사를 시작하기까지는 몇 달 남짓 걸렸다. 그럭저럭 담배장사를 오래 하다나니, 고정 거레하던 도매군의 물건을 외상으로 팔고, 그렇게 좋아하던 농태기양도 줄였다.

김 노인은 다시 장마당에 나갔다. 보안원에게 다시 짓밟혀도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안원이 단속해도 그저 묵묵히 항변도 안한다. 해봤댔자 맨발로 바위 차기니까, 소용없음을 이미 경험한 것이다.

지금 북한 어느 장마당에서나 김 노인 같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빼앗기지 않으려는 장사꾼들, 뺏어야 가족을 먹여 살 수 있는 보안원들…그들은 모두 배급이 없어진 북한 체제가 만들어낸 자화상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위가 심하다고 한다. 김 노인은 오늘도 장마당에서 떨면서 “이 담배 정말 맛있습니다. 한 봉투만 사세요”라며 꺼멓게 언 손을 내밀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한국에 온 뒤 굶어 돌아가시진 않았을까.

따뜻한 난방이 오는 방에 앉아 눈 내리는 밖을 내다보니 갑자기 김 노인이 생각난다…

0 개의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