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4일 목요일

동성애자 아들이 고백하던 날

식탁에서였다. 큰 걱정 없이 자랐고 자랑스러워했던 아들이 조심스레 엄마한테 말할 것이 있다고 했다. 순간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무엇인가 나에게 힘들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무슨 이야기인지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아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바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주었다."네가 어려서부터 다른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개구장이 같지 않고, 마음이 착하고 여렸고 또 친하게 놀았던 아이들 중에 여자 아이들이 많았던 환경 때문이라 위안도 해 본 적이 있었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혹시 염색체가 XXY일까 궁금했었다"고 말했다. 아들은 바로 생물학적으로 그것은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 차분한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엄마의 모습에 엄마의 반응을 많이 걱정했던 마음을 내려놓았던 아들의 모습을 지금도 생각하면 안쓰럽다.

그 다음에 나는 내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나는 물컵이 넘어져 바닥에 흘러져 버린 물처럼 하나님께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사랑하는 아들의 엄마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처음으로 권해 주는 책을 읽었다. ‘동성애’라는 단어조차 멀리하던 나였기에 알고 싶었고 필요성을 느꼈다. 책 내용 중에 한 청년 게이의 자살은 나에게 지금도 잊히지 않는 충격을 주었다. 그리스도인인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아들이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없는 괴로움에 자살한 것이다. 나는 그런 엄마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결심과 함께 내가 알고 믿었던 하나님께 더 의지하며 지혜와 은혜를 구했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이제 내가 세상에서 갇혀 있는 느낌으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TV를 통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에 대한 방송을 보고 있었다. 동기간과 함께 있었는데, 차마 내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가슴 아프게 보고 있었다. 그후 몇 달이 지나, 그 동기간에게 동성애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이야기를 나눈 후에 조심스레 당신이 사랑하는 조카가 동성애자라고 말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가까운 가족들이 알게 되었고 조부모님은 모르시는 것이 좋다는 내용을 책에서 읽었기에 지금도 모르신다. 그 후 나와 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말을 하게 되었고 때로는 아픔을 나누고 때로는 위로도 받고 때로는 용기도 얻는다.

아들의 커밍아웃 이후의 나의 삶은 지금도 변화되고 있다. 아들이 "나의 성 정체성 때문에 힘들었고 힘들고 힘든 미래를 생각하면, 나 아닌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한다."고 말했을 때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지금까지 아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그 믿음으로 아들을 응원하고 믿으며 기도드린다. 자기의 일만이 아니라 폭 넓게 소수자 인권운동을 생각하며 다양한 경험과 독서탐구를 통해 열심히 살고 있는 아들과 많은 대화들 나누면서 나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동안 나의 신앙관이나 인생관을 가지고서 아들이 하는 일에 마음을 같이 하며 많은 위로를 받기도 한다.

어느 날, 아들의 입장이 되어 마음이 몹시 괴로울 때 성 정체성이 아닌 다른 신체장애를 생각해 보았다. "장애는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편할 뿐이다"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아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때마다 그들 역시 생각하지 못했던, 그리고 알지 못했던 사실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내가 겪고 알고 있는 것을 나누면서 아들을 통하여 나만이 아니고 우리만이 아닌 저들과 함께 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 같아 행복했다.

신문에 아들이 하고 있는 일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내용을 자세히 읽고 함께하고 싶어 아들에게 말을 꺼내며 대화를 한다. 나는 오늘도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나의 삶과 나의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믿기에, 아들의 삶과 더불어 어느 누구의 삶도 선한 길로 인도해 가심을 믿고 나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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