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7일 일요일

국가론의 관점에서 본 대한민국 건국의 특징과 의의 (2) 대한민국의 특징


국가론의 관점에서 본 대한민국의 특징
국가는 ‘사랑’과 같이 느끼기는 쉽지만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매우 어려운 개념이다. 근 대국가를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버의 정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적 절하다고 생각된다.

베버는 국가가 추구하는 목적이 아니라 국가에 고유한 수단, 즉 물리적 폭력 행사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를 정의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일정 영토 내부에 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 행사의 독점을 실효적으로 요구하는 인간공동체”로 정의된다

그의 개념적 정의는 물리력 행사를 통해 통치를 담당하는 국가기구와 통치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이념적 명분이 국가의 중요한 측면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근대국가가 일정한 영토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수 국가의 존재와 주권의 상호인정 을 통해 국제정치체제가 형성되어 국가의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비록 베버의 정의가 근대국가 형성 이후 결과론적 분석이라는 한계점을 안고 있 3 지만 근대국가로서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단초를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국가에 대한 관념은 특정 사회가 겪은 역사적 경험에 따라서 커다란 차이가 난다. 한국 과 같이 일제 식민지 강압통치를 겪고 건국 이후에도 오랜 권위주의적 정치 질서를 경험한 사회에서는 국가를 지배기구의 관점에서 인식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우리 민족이 근대국 가를 본격적으로 체험하기 시작한 것은 억압적 일본 식민지 국가를 통해서였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가진 일제 식민지 국가는 해방 후 한국 국가 형성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국가에 대한 관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건국 이후 전쟁 과 권위주의적 지배질서의 경험으로 인하여 지배기구로서의 국가 관념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근대국가를 지배기구라는 제도적 측면에 국한해서 이해할 경우 그 특징이 제대로 포 착될 수 없다.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의 결사체로서 근대국가는 어떠한 이론적 근거 하에서 그 정당성을 획득하는지 국제정치적 연관성은 어떤 것인지를 지배기구적 측면과 동시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베버가 말하는 ‘물리적 폭력’은 언어의 폭력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경찰과 군대 등을 통해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실질적 공권력을 의미한다.

조직폭력배들도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정당성이 결여된 불법적인 것이다. 나아가 중세 시대 때 흔히 볼 수 있었던 개인들 사이의 결투는 근대국가에서는 불법화되고 있다. 서구의 근대국가 형성은 중앙집권적 권력이 압도적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하여 사적 폭력을 제압해 나가는 기나긴 과정이었다. 한국의 경우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남한에 진주한 미국이 대한민국의 건국 때까지 치안과 안보를 대신 담당해 주었다. 건국 이후 미처 충분한 경찰력과 군사력을 갖추 지 못한 상태에서 여순반란 사건 등이 발생함으로써 신생 한국은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했 다.

미국은 이런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예정보다 6개월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미군 철수 이후 북한의 전면적 남침으로 인하여 신생 한국은 건국 이후 최대의 국 가 존망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건국 초기의 한국이 국내적 안정과 대 외적 안보를 확보하는 데 얼마나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보여준다. 이런 불안정한 상 황은 분단과 전쟁으로 인하여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지만 북한 지역까지 는 실효적 지배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은 대한민국을 유일 합법 정부로 인정한 1948년 12월 12일 유엔총회 결의안 제195호에서도 그 한계점이 분명하게 인정되고 있다.

유엔은 1948년 5월 10일 선거에 의한 대한민국의 건국을 인정하면서도 유엔한국임시위원 단의 감시 하에 선거가 실시된 남한 지역에서 한국을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 다. 우리의 영토 주장과 실효적 지배의 지역적 범위에 괴리감이 생김으로써 대한민국은 통 일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1991년 한국과 함께 북한이 주권국가들이 회원국 으로 있는 유엔의 회원국이 됨으로써 한국 헌법의 영토 조항과 배치되는 상황이 국제법적으 로 발생했다. 그렇지만 동독과 서독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독일은 통일 이전에 모두 유엔 회원국으로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두개의 주권국가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 실이 통일의 장애요인이 되지는 못했다.

북한이 시도한 것처럼 이 문제를 전쟁을 통해서 풀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평화적 방법을 통해 통일을 이룩함으로써 한국은 근대국가로서 영토적 완결성을 갖추어야 할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이러한 영토적 통일의 미완성에도 불구하고 건국과 함께 입헌체제의 구축을 통해서 주권 재민의 원칙 하에서 통치의 대내적 정당성이 확보되었다. 베버가 지적하는 것처럼 이런 정 4 당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공권력은 조폭의 폭력과 다를 바 없다.

근대국가의 건설 과정은 전국민적 차원에서 권위의 행사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국민 형성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국민형성을 뒷받침하는 이념이 민족주의(nationalism)이다.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 사회에서 대외적 저항의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nationalism을 ‘민족주의’로 번역하고 그 이념을 바탕으로 한 국가를 ‘근대민족국가’라고 흔히 부른다. 그렇지만 프랑스대혁명에서 보는 것처럼 원래 민족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국민 형성을 실현하기 위한 대 내적 정치명분으로 발전된 개념이었다.

 Nation 혹은 nationalism은 그 대 내적 측면에 초점을 맞출 경우 ‘국민’ 혹은 ‘국민주의’로 이해하고 근대국가를 ‘근대국민국 가’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근대국가 형성과 발전의 이념적 명분으로서 등장한 민족주의는 원래부 터 대내적 측면과 대외적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의 경우 근대국가의 이념적 근거가 되는 민족주의를 논함에 있어서 대외적 저항의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집단적 자유가 개인적 자유보다 우선시되고 심지어 이 양자를 마치 상호배타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국가를 잃 어버린 식민지적 상황 하에서 독립을 위해 민족과 집단을 먼저 내세우는 사고는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D'Entr`eves 1967, 179). 그러나 원래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등장한 민족주 의는 개인적 자유와 평등 사상과 상호친화적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입장에 설 때 민족은 근대국가의 인적 구성요소로서 국민으로 전환될 수 있고, 이들에 대해 정당한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이르기까지 ‘백성’과 ‘신민’으로서 통치 의 객체로만 존재하고 있던 우리 ‘민족’이 정치적 권리와 의무를 가진 ‘국민’으로 전환되었 음을 의미한다.

근대국가 하에서 주권재민 원리의 주체가 되는 ‘국민’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사회성에 기초한 자연발생적 인간 집단 혹은 언어, 인종, 역사를 공유하는 문화적 민족 개념과는 다르다. 역사적으로 어떤 민족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저절 로 민족주의 관념이 생겨나고 국민이 형성되어 근대국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한말 이후 근대국가 형성에 실패한 우리의 역사는 이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경우 근대국가적 의미에서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3․1운동을 기점으로 보아야 할 것 이다. 그 이전의 ‘민족적 저항’과 달리 3․1운동은 그야말로 ‘민족주의적 저항’이었다는 점은 그 이후 등장한 일련의 임시정부들이 주권재민의 원리를 제창하고 있다 는 사실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이념적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건국과 함께 주권재민의 원리를 구현한 제헌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혁명의 경우 이미 국가라는 외벽이 존재한 상태에서 민족주의 이념을 통하여 신분 제를 철폐하고 국민 형성을 통해서 자유와 평등을 구현한 정치체제를 만들어 나갔다. 이와 달리 한국은 국가의 외벽을 세우는 건국 작업과 동시병행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정착시켜나가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군정 당국은 해방 직후 남한은 일제 지배 이전의 왕조국가가 부활되지도 않았고 새로운 근대국가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 주권이 일시 정지된 과도기적 상황에 있다고 보았다.

미국은 임시정부를 인 정하지 않았고 미군정이 임시적으로 주권적 기관임을 자임했다. 미군정은 남한 내 일본인의 재산을 접수하여 미래의 한국 정부를 대신하여 관리하는 국제법상 전례가 없는 역할을 떠맡 았다. 사실 미국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유럽의 경우에 있어서도 자국 국민의 자유로운 선거 를 통해 인정받지 않는 한 어떤 망명정부를 승인하지 않았다. 한국의 5 자유민주주의체제 도입 과정에 미군정이 끼친 영향력은 부정할 없다. 그러나 그것을 미국에 의한 일방적 강제 주입 과정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이승만을 비롯한 건국의 주역 들은 독립운동 당시부터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새로운 국가이념으로 굳게 믿고 있었 다. 이 점은 3․1운동 이후 필라델피아 ‘한인총대표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에서 분명하게 드러 나고 있다. 건국과 자유민주주의 이념 채택 과정은 미국과 한국 지도 자 사이에 체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 이다. \

필자: 김영호(성신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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