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8일 토요일

신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의 차이

신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이 현실에서는 둘다 좌파와 간섭주의자들에 대한 반대 입장에 서있으며, 정책적으로도 유사한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둘을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결코 신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은 근본적인 제1원리부터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가장 중요한 정책적 입장에 있어서도 서로 대립한다. 오히려 이 둘은 반좌파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유사점을 찾아볼 수 없는 상극에 위치해있다.

1. 신자유주의의 입장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경제학 이론이다. 즉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도구인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분명히 자유를 최고의 규범적 가치로 평가하고 이를 지지하지만, 그 이유는 순전히 개인적 노력과 경쟁이 가장 뛰어난 사회적·개인적 이익을 가져 온다는 신념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이 유익하게 작동할 수 없는 경우 경제행위를 관리하는 다른 수단(예컨대 정부)들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다른 주류경제학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공리주의적 신조에 기반하고 있는 이론이다. 고로 자유를 선험적 가치로 인정하지 않으며, 정부개입·중앙은행·단일통화제도·사회복지와 같이 진정한 시장근본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반시장적 제도를 위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시장근본주의라고 평가하는 것은 아주 큰 오류이다.

 신자유주의자인 하이에크는 시장경제와 정부의 개입적 역할에 대해 『The Road to Serfdom』 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사회를 조직적으로 구성하는 원칙으로서 경쟁의 효과적인 이용은 여러 유형의 경제활동에 대한 강제적인 개입을 배제하지만, 때때로 경쟁의 작동을 상당히 도와주는 다른 유형의 개입을 인정하며, 심지어 특정 유형의 정부 기능이 불가피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째서 강제력이 사용되어서는 안되는, 소극적인 요건(경제활동에 대한 정부개입의 한계)이 특별히 강조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바람직한 이유가 있다. 먼저 시장의 참여자들이 거래대상을 찾을 수 있는 가격에 구입과 매매를 하고, 아무나 사거나 팔 수 있는 재화를 생산하고 판매하고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모든 이가 똑같은 조건으로 다른 산업에 진입할 수 있고, 법률은 개인이나 기업이 그러한 신규진입을 공개적이거나 암묵적인 압력을 통해 제한하려는 시도(신규기업에 대한 진입장벽)를 허용해서는 안된다. 특정 소비재를 대상으로 한 가격이나 수량 통제에 대한 시도(카르텔 및 정부의 가격통제)는 어떠한 것이든 경쟁으로부터 개인의 노력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메커니즘을 박탈한다. 그 이유는 가격 변화가 상황의 모든 변화를 반영하길 멈추면서, 더이상 개인의 행동에 대해 신뢰할 만한 이정표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화폐, 시장들, 정보전달경로처럼 특정 제도의 적절한 구성 --일부는 민간기업이 충분히 제공하기가 절대 불가능하다--....

...경쟁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드는 것과, 경쟁이 효과적이지 않을 때 그걸 대신하는 것과, 아담 스미스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사회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유익을 가져다 주나, 그러한 이익이 어떤 개인이나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드는 비용을 갚기 힘든 특성을 가지는" 서비스(불운의 희생자들에 대한 생활보조 및 사회전반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시설 및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러한 업무들은 광범위하고 의문의 여지가 없는 정부활동의 영역을 제공한다. 어떠한 체제에서든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주장을 합리적으로 변호할 수 없다. 효과적인 경쟁 시스템은 여느 체제와 마찬가지로 현명하게 설계되고 지속적으로 조절되는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 심지어 경쟁이 작동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조건인 무지의 부정 갈취를 포함해 사기와 속임수의 방지조차 입법 활동의 중요한 --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 대상을 제공한다... 

2. 자유지상주의의 입장

자유지상주의는 신자유주의와는 다르게 고전적 자유주의의 철학적 입장을 계승하고 있는 철학체계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가치중립적인 분석이나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제학적 입장"에만" 의거하여 자유를 지지하는 것을 극히 부정적으로 본다. 자유지상주의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분석은 자유를 옹호하는데 필요한 근거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자유가 가지고 있는 선험적인 윤리적 가치를 증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가치 판단에 있어서 윤리적 당의성의 중요함을 무시하고 단순히 경제학에만 근거하여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반자유적인 공리주의적 입장에 불과하다.

즉 자유지상주의에 있어서 과학적 객관성따위는 중요한게 아니며, 오히려 원론적 측면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배척되어야 한다. 선술했다시피 윤리적 당의성을 무시하는 과학적 객관성은 어떻게 접근하든 결국 공리주의적 입장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유지상주의(혹은 자유지선주의·자유의지주의, libertarianism)는 그 명칭에서부터 유추해볼 수 있듯이, 자유가 특정한 목적(예컨대 효율성이라던가)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의 일부가 아니라, 그 자체가 선험적으로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간의 본성으로서 윤리적 지향점이라는 자연법적 신념에 기초한다. 비록 자유지상주의자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신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공리주의적 신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는 자유지상주의 철학체계 자체가 제대로 정립된지가 아직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랜드·노직·로스바드에 의해 자유지상주의 철학체계가 정립되기 이전에 살았다. 따라서 자유지상주의자들중 공리주의자들이 많았다고 한들, 원론적으로 따지고 보면 자유지상주의에 있어서 효율성은 그것이 자유지상주의를 현실에 실현하는데 있어서 도구가 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목적따위는 결코 아니다. 물론 자유를 최선의 가치로 삼는 자유지상주의 신조에 대한 의문점을 가질수는 있으며, 이러한 의문은 토론의 대상이 될만한 정당한 것이다. 다만 이 글의 목적은 단순하게 자유지상주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의 차이를 기술하는데 있으므로, 자유지상주의 신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따라서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은 자유지상주의 철학을 현실에 실현하기 위한 사회과학적 도구에 불과하다. 즉 자유지상주의적 가치와 시장경제가 인류문명과 함께 발전해왔으며, 반자유지상주의적 제도는 단지 이를 저해하는 비윤리적이고 쓸모없는 것에 불과했으며, 자유지상주의는 결코 비현실적인 가상의 이론이 아니라 인류의 궁극적 지향점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이렇게 보듯이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은 효율성을 최고로 중시하는 일반적인 주류경제학 이론과는 입장이 크게 다르다. 이런 이유에서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은 진정한 시장근본주의이다.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이 왜 시장경제를 지지하느냐에 대해 따져보자면, 그 이유는 결코 신자유주의 처럼 시장경제가 효율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자유지상주의 경제학또한 시장경제가 효율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은 시장경제가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하며, 개인의 자유가 가장 극대화될 수 있는 체제라는 점에서 지지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전형적인 자유지상주의적 입장은 아인 랜드가 잘 보여주고 있다.

아인 랜드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자들은 대부분 '공공의 이익'을 가져온다는 면에서 이를 옹호하였지만, 윤리적인 면에서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 자본주의의 진정한 근간이 된다는 점은 간과해왔다(따라서 급기야 칸트 이후 개인의 자유란 필요악인 것처럼 취급되었다고 랜드는 주장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본주의는 원래 무도덕성과 탐욕이라는 사악함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러한 것들을 고상한 사회사업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미덕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가 의거하고 있는 개인주의적인 요소는 최소화시키면서 오히려 그 사회적인 결과만을 강조하는 꼴이라는 것이 랜드의 생각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본주의가 그 사회적인 효과로 인해 도덕적 우선권을 갖는 것으로 그릇되게 홍보하는 반면, 자본주의가 지닌 고유의 미덕, 즉 개인주의라는 면에 대해서는 무시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적 신조에 의거해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달리 아인 랜드는 자본주의란 재산권을 포함한 모든 개인권을 인정하는 데 의거하고 있는 제도라고 정의한다. 이는 자본주의에 따른 결과('공공의 이익')와는 관계없이, 자본주의가 과연 어떤 기본적인 것에 의거하고 있는가를 얘기하려 한 것이다. 개인주의 및 개인의 독립과 불가분 연결되어 있으므로, 자본주의는 결코 그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는다. 

 자유를 선험적인 윤리적 가치로 인정한다면, 정의란 인간을 도덕적으로 평가하고 각 개인이 받아 마땅한 것을 그들 각자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자본주의하에서 비로소 이러한 정의가 가능하며, 자유로운 개인은 그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기 때문에,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는 '공공의 이익'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 결과일 뿐 원인은 아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결과일 뿐 자본주의를 평가하는 최우위의 요소는 아닌 것이다. 물론 다른 모든 사회제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도 경쟁이라는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의 경쟁은 개인의 자유라는 단 하나의 공통된 근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따라서 그녀에 따르면 '자유방임(laissez faire) 자본주의'라는 말은 의미의 중복이다. 자본주의 자체가 곧 자유방임이기 때문이다. 

 아인 랜드와 마찬가지로 시장경제를 선험적 가치로서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로 정의한 머리 로스바드는 『For A New  Liberty : the Libertarian Menifesto』 에서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왜 자본주의를 지지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나타나며, 그로부터 노동의 전문화 및 분업체제가 뒤따른다.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이제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생산적 형태의 경제체제를 이룸으로써 인류 문명을 이끈 산업화와 현대 경제로의 발전을 기여하였다. 이러한 행운의 발전은 자유시장의 공리주의적 결과에 기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지지하는 '주요' 이유는 그 시장경제체제가 이룩한 결과 때문이 아니다. 그 주요 이유는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도덕적이며 자연권에 기초한 사유재산 보호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설령 애덤 스미스의 순수 자유체제System of Natural Liberty 보다 더 생산적인 경제체제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만약 독재적이고 조직적인 권리침해가 심각한 사회체제라면,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도덕적인 이유로 그 자유체제를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많은 분야에서 공리주의와 도덕성, 자연권 사상과 전체적인 번영은 서로 공존할 수 있다.

3. 결론
이렇게 볼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제학적 입장에서 출발했는지, 선험적 가치를 중시하는 윤리학적 입장에서 출발했는지에 있어서 분명하게 구분되므로 명백히 다르다. 로스바드가 말했듯 만약 사회주의가 자유방임적 시장경제보다 우월한 효율성을 가져온다고 증명될 경우, 효율성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경제를 포기하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것이다. 하지만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자유의 선험적 가치를 근거로 내세우며 여전히 비효율적이라고 증명된 시장경제를 지지할 것이며, 시장경제를 발전시킬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즉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은 일반적인 주류 경제학의 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며,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았을때 신자유주의나 케인스주의와 같은 일반적인 경제학 이론은 근본적으로는 모두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제도적으로도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을 인정한다. 즉 중앙은행이나 화폐, 소수자를 위한 선별적 복지 같은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방임또한 이러한 국가의 제도하에서의 경쟁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그 예외적인 경우마저 대부분 현실의 시장이 현실의 정부보다 더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정부의 경제개입은 분명한 절대악이므로 "완전한" 시장근본주의가 설사 비효율적일지라도 윤리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에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경제에 있어서 완전한 무정부를 주장하는 것이 자유지상주의의 입장이다.

고로 흔히 자유방임경제를 비판하는데 쓰이는 주요 사례, 예컨대 20세기 초반의 대공황이라던가 지난 2008년의 모기지 사태 따위는 그것이 설령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점은 될 수 있을지언정, 자유지상주의와는 완전히 무관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아예 자유지상주의 경제체제는 여태껏 실현된적이 단 한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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