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6일 목요일

세월호 사태에 대한 단상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쓰는 게 얼마만일까. 나의 정치적/사회적 견해를 밝히는 '이러한' 글을 쓴 게 언제적이냐 스스로 자문해본다면, 몇 달은 되었다라는 답변 외엔 정확한 시간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그저 두려웠나보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남이 평가하는 것이 감히 두려웠나보다. 겉으로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척 하면서도 나는 결국 그 시선이, 그 잣대가 두려웠나보다. 그리고 마지막 글을 썼던 때로부터 제법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타자를 치고 있다. 무슨 생각이 들었나 모르겠다.

그저 1년 전, 이 비슷한 시점에서 썼던 글이 눈에 어른거려서, 그 글을 쓰던 나와 지금의 나가 너무도 달라져서, 그 괴리감에 못 참고 결국 타자를 치는 것일지 모른다. 두서 없는,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금기처럼 되어 있는 장문의 글이지만 부디 이 글이나마 나의 비겁함을 고백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그리고 부활절인 오늘, 차가운 바닷속의 그네들이 부활할 수 있기를.

어릴 적에 목욕탕에 가면 바가지 하나를 띄우고 배를 만들어서 놀곤 했다. 그때의 경험이 있어서 그럴까, 지금도 배를 타면 괜시리 기분이 들뜨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애들은 배멀미니, 피곤하니 하면서 배의 한 켠에 누워 편하게 쉬고 있을 때 나 혼자 배의 선수로 달려나가 바닷바람을 쐬곤 했다. 그 기분은 쉽게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상쾌했다 ㅡ 믿기 힘들 정도로.

작년 어느 배에 탔던 수십 수백의 고등학생도 그런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개중에는 배멀미를 한다고 선실에 있었을 것이고, 몇 명은 복도에서 장난을 치며 뛰어다녔을 것이며, 그러다가 선생님에게 잡혀서 꾸중을 듣고 있었을련지 모른다. 그 중 한 명은 나처럼 이상한 취향이 있어서 배의 선수로 달려나가 바닷바람을 쐬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 그랬겠지.

그리고 그 중엔 오랜만에 동창들과 만나 기분 좋은 환갑에 다다른 할아버지들도, 가족 여행을 온 꼬마 아가씨와 그 아가씨를 보살피는 자상한 오빠도 있었을 것이다. 결혼을 약속한 연인도 그 안에 있었다. 배에서 우연히 만나 백년동안 해로하자고 약속한 두 사람은 열심히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겠지. 그 세상 어느 사회에 흔히 있을 것 같은 이들은 모두 모여 배에 있었을 것이다. 운명처럼, 인연이 되어 그렇게 그 배에 올라탔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배가 기운다. 그것이 조금씩 기울건 갑작스레 기울건 여하튼 기울었을테다. 안에 있던 이들은 조금씩은 놀라고 당황한다. 그때 방송이 들려온다. 웅성거리는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저 그들의 귀에 들리는 마지막 말은 "가만히 있어주십시오"라는 말.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모두들 조금씩은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안도감도 느꼈을 것이다. 책임자가 하는 말이니 신뢰를 가지고 믿었을 것이다. 당장 나라도 그럴테니까.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아직도 바닷속엔 아버지와 아들이, 어느 집의 어머니였을 아주머니가, 평소 장난도 치고 부모 말을 그렇게 안 들으면서도 눈에 넣어도 안 아팠을 고등학생들이, 그리고 자기 학생들이 걱정이 되서 그러는지 선생님들이 아직도 바닷속에서 가만히 계신다. 이제는 가만히 있지 말고 나오라고 하는데도 그러신다. 이제는 그만 나오실 때도 되었는데(..)

배에 탔던 승객들이 하나둘씩 가만히 있지 않고 나오는 동안 아홉 분의 승객들은은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나오지 않는 사이 정작 다른 이들이 거리로 '가만히 있지 않고' 걸어 나왔다. 배와는 달리 강압적인 '가만히 있으라'는 윽박지름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은 나와서 투쟁하고, 분노하고, 울고, 한 종교의 교종(敎宗)과 자신들의 감정을 공감하며 꿋꿋히 버텼다. 공감하는 이들은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그래, 그렇게 1년이 되었다.

그 1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많은 일이 일어났어야 하는데 그저 일어날 뻔 했고, 많은 일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그 1년 동안 버틴 이들과, 1년 동안 꺾으려 한 이들과, 1년 동안 거룩히 기도한 이들과, 1년 동안 비겁하게 화면 뒤에서 조롱한 이들을 모두 기록하며 역사는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그 역사의 끝이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해피엔딩이기만을 많은 이들은 바랄 뿐이다. 이미 엔딩 자체가 사라진, '4월 16일 이후로 시간이 멈춰버린' 분들도 계시지만(..)

여동생이 하나 있다. 올해로 고3이다. 진도를 지나던 어느 배에 탔던 학생들과 동갑내기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던 여동생이었다. 그러나 1년 사이에 이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나한테 컴퓨터 쓰게 비키라고 퉁퉁대고 자기가 사온 과자를 내가 몰래 먹었다고 성질을 부려도 고맙다. 그냥 왠지 고맙다. 적어도 내 가정에 새드엔딩은 없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결국 나도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이라는 것을. 결국 나의 것이, 내가 누리는 것이 잃지만 않으면 나도 별 문제의식없는 소시민인가보다.

그날 이후로 시간이 멈춘 이들이 있는데 일부러 그들의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아했다. 더 이상의 슬픈 소식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내 가족이 안전하면 되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지내왔다. 그래서 지금 이토록 나 스스로 미안함과, 씁쓸함과, 왠지 모를 우울함과,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신물이 올라오는 1년 전의 자료들을 다시금 찬찬히 읽으며 처참한 자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일련지 모른다.

1년전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의 나와 1년전의 나는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일까.
1년 전의 나는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아버지가 되겠노라며, 나중에 내 자식이 역사책을 가져와서는 "아빤 이 때 뭐했어?"라고 물을 때 아무 대답없는 아버지가 되지 않겠노라며 거리로 나갔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후배들의 글이 하나둘씩 올라오면서, 그리고 혹시 누가 날 지목하진 않을까 두려움에 젖은 채로 애써 피했다. 그리고 결국 이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도 나는 이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엔 쓰고야 만다. 당당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치졸한 인간인지, 얼마나 비겁한 인간인지, 얼마나 겁이 많은 인간인지 증명하기 위해 쓰고 만다. 그네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아이들을 마저 구하겠다며 들어간 선생님과, 큰아이 등록금 이야기를 하곤 배에 남아 있던 승무원과, 그 외에 수많은 영웅들을 떠올리며 미안함에 부끄러움에 그리고 그들의 조그마하지만 세상을 깨우친 행동들에 전율하며 결국 글을 쓰고 만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다. 불과 1년전의 일조차도 잊어버리려 한 사람이다. 그리고 아마 내년이 되면, 내후년이 되면, 5년 후가 되면, 10년 후가 되면 이 일을 거의 잊어버릴 지도 모를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장문의 글을 ㅡ 1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고민하고 숙의하며 쓴 까닭은 이런 비겁한 나조차도 어느 배에 탔던 그네들에게 슬픔을 표할 수 있지 않을까란 오만한 생각과 이 비열하고 오만한 내가 보다 나아지기 위해서 앞으로 걸어나가기 위해서 이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미치도록 잊고 싶다. 잊지 않겠습니다란 말을 들을 때마다 반대급부로 그 일이 떠올라 가슴이 도려내는 것 같기에 잊고 싶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면 입을 다물라고 외치고 싶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사람은, 행복한 기억은 얼마 안 가 아른거릴 정도로 쉽게 흐려버리며 창피한 기억과 슬픈 기억은 잊고 싶을 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올리는 종족이다. 나 역시 사람이기에 결국 이 사건을 기억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일을, 이 감정을, 이 자괴감을, 이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내 주변의 것을, 내 주변의 이들을 사랑하고 이 일을 잊지 않으며 최대한 이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세상이 조금은 밝아지도록 돕는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를 반복한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역사는 조금씩 진보한다. 앞으로 나아간다.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에, 그리고 단순히 기억하는 것을 넘어 행동하는 이들이 있기에. 작년과 다른 겁이 많아진 나는 이제 행동하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이제느 조금의 희망을 갖고 일어나보련다. 이런 엉덩이 무거운 나조차도 일어선다면 바닷속의 아홉 분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무시하고 다시금 나오시지 않을까, 란 망상에 젖으면서.

필자: 강경록(https://www.facebook.com/kang.kyoungrock?fref=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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