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1일 토요일

‘성노동운동’과 성매매 합법화: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백기투항 (3) - 위안부 문제를 덧붙여


성매매와 일본군위안부: ‘자발적’으로 몸을 팔았다?

성매매를 논할 때 ‘자발적’, ‘비자발적’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성매매를 구분하려는 이들이 있다. 난 이러한 구분 자체를 이해 못 하겠다. 형식상 납치 등을 통해 강제로 끌려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업장에 찾아가 취직한 것이라 해도, 실질적으로는 폭력에 굴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군위안부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납치나 강제연행 등을 통해 끌려온 위안부는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조선인 알선책을 거치는 등의 ‘비강제적’ 방식을 통해 위안부가 되었다.

그런데 또 이걸 갖고 “위안부는 강제가 아니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구조적 강제’라는 개념을 무시한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위안부를 현재 일본으로 ‘원정 성매매’하러 나가는 한국여성들에 빗대 “초대 원정녀”라고 비하한 일베충새끼들이 대표적이다.

실상 위안부의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은, 오늘날의 성매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사창가에서 일반적으로 있을 법한 모든 일들이 위안부의 현장에서도 그대로 있었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물론 위안부의 ‘고객’들이 군인들이었고 현장은 전투가 치러지는 전선 가까이에 있었으며,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중간에 떠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특수성은 좀 추가되겠지만 말이다. 때때로 사창가의 성매매여성과 손님으로 찾아온 남성이 눈 맞아 같이 도망치는 경우도 있고, 상당히 관대한 대우를 받는 성매매여성도 있을 수 있다. 위안부도 마찬가지다. 위안부를 찾은 일본군인들이라 해서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했던 것은 아니었다. 위안부들이 실제로 받는 처우는 case by case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했다. 위안부를 찾고도 섹스를 하지 않고 같이 술 마시며 대화나 하다 돌아가거나, 나름대로 위안부를 아껴주려고 했던 군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랬다고 해서 위안부가 실질적으로 ‘노예와도 같았던 처지’라는 것이 부정되는가? 아니지 않은가. 성매매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성매매를 하나의 합법적인 업종으로 인정하는 대신 성판매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다는 생각 자체는 그렇게 악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성판매자의 노동조건이 나아진다고 해서 성판매자가 노예라는 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물론 여기서 노예라는 말은 비유적 의미지 엄밀한 사회과학적 의미는 아니다. 사회과학적으로만 본다면 이들도 ‘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데, 실상 한국사회의 많은 일반 노동자들도 ‘노예처럼’ 산다고 흔히들 말하지 않는가.) 성매매를 없앨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성매매를 부당한 것이라 생각하고 투쟁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성매매를 내가 폭력이라 정의하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차원에서다. 첫 번째 폭력은 자본주의 하에서 다른 일반적인 노동들에도 똑같이 가해지는 착취로서의 폭력이다. 두 번째 폭력은 성판매자가 손님에게 육체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을 함께 제공해야 하는 ‘섹스 서비스’로서의 특수한 폭력이다. 손님이 성판매자에게 돈을 얼마를 지불했던 간에, 성판매자는 손님에게 철저히 대상화되며 자신의 인격과 존엄이 훼손되는 것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참아내야 한다.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 조국 교수의 논문 "성매매에 대한 시각과 법적 대책" 중 <급진적 여성주의-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성매매>에서

 급진적 여성주의는 성매매란 강간, 가정폭력, 포르노그래피 등과 같이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자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파악한다. 이들은 남녀사이의 성적 불평등에 따라 남성의 성적지배와 여성의 성적 복종이 제도화되는데, 성매매는 강간과 마찬가지로 남성지배와 여성의 대상화(objectification)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캐롤 페이트먼의 말을 빌자면, “남성이 성매매 계약을 체결할 때 그는 …주어진 기간 동안 한 여성에 대한 성적 사용을 구매하는 것이다.” 성구매 남성이 사는 것은 단지 고립된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여성 그 자체, 여성의 (성적) 자아이기에, 성매매는 “성노예제”이며, “성교를 통하여 자아를 파괴하고 여성을 비인간화시키는 성적 착취”인 것이다.

 그리고 급진적 여성주의는 성매매를 남성지배가 관철되는 “본질적으로 비대칭적”인 제도로 파악하기에, 성매매에서의 ‘선택’이나 ‘동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입장은 성매매에 대한 자유주의적 견해는 성의 상품화를 정상적인 것으로 보고, 남성이 여성의 성을 자신에게 속한 것으로 보고 돈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보는 관념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캐써린 맼키넌은 여성의 성이 남성의 시각에서 정의된다면 여성의 경우 자신의 성과 자아를 보지(保持)할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형태의 성매매는 강요된 것이며 그 자체로 정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캐슬린 배리의 말을 빌자면, “인간이 육체로 환원되고, 동의가 있건 없건 타인에 대한 성적 서비스로 대상화될 때, 인간에 대한 침해는 이미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급진적 여성주의는 성매매를 ‘노동’으로 보는 이론에 대하여 이는 성매매는 불가피하므로 이를 “정상화”(normalize)해야 한다는 사고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기에 반대한다.

 이 입장을 취하는 단체로는 1985년 조직된 WHISPER(Women Hurt in the Systems of Prostitution Engaged in Revolt)가 있다. WHISPER는 성매매는 강제-공포, 폭력, 인종주의, 빈곤-의 연속체 위에 구축된 남성 지배 체제하에서 강요되는 성적 학대에 기초하고 있으며, 성매매는 여성에게만 차별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착취와 폭력의 체계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남성이 돈을 지불하였다는 점은 성매매의 본질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이들은 성매매의 진정한 해악은 남성이 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무조건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이용하도록 허용하는 데 있다고 본다.

 성매매는 혼인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신체에 대한 소유와 무제한적 성적 접근 위에 입각해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성매매를 “여성의 신체에 대한 소유와 무제한적 성적 접근”으로서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성적 대상화의 대상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이라도 가능할 수 있다. 돈 많은 ‘사모님’들이나 프로페셔널 여성들, 그리고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종종 ‘호빠’라고 불리는 남성 성판매자를 찾아가 기분을 푼다. 남성 및 여성 동성애자를 위한 성매매도 엄연히 존재한다. 꼭 이성애 남성이 여성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도 폭력성은 성립된다.

 그런데 ‘성노동운동’ 진영의 구성원들은 성매매가 폭력이라는 것을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으며, 심지어 성매매 자체에 반대하는 운동을 ‘일부 여성 우월주의자들의 협잡’쯤으로 왜곡하려고까지 한다. 그럼 이쯤 해서 실제 성판매 경험이 있는 현장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출처: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6308)

심통 (성매매 업소에서 15년간 일한 30대 후반 여성): “성매매 업소에 왜 들어갔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마치 비난하는 의도를 가지고 물어보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쁠 때가 많아요. 그 사람들이 원하는 답은 ‘본인이 원해서’라는 거겠죠.

사람들은 성매매가 사회적 문제이고, 성 산업이 확산되는 데에는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걸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 개인적인 문제라고, 너의 문제라고 책임을 돌리고 싶어하죠. ‘왜 성매매를 하게 됐어?’ 라고 물으면, 구조적인 문제는 사라지고 오로지 개인의 불행만을 보게 되죠.”

엠케이 (8년동안 성매매를 경험한 30대 초반 여성): “그런 질문에 대해 대답할 때, 변명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죠. 성매매를 하고 싶어서 했든, 돈을 벌기 위해서 했든, 어쨌든 하게 되었잖아요. 성매매 자체가 문제일 수 있는 건데, 내가 원해서 선택했다고 말하고 나면, 마치 성매매의 문제는 없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지음 (4년간 업소생활을 한 30대 초반 여성): “난 업소에 처음 들어갈 때 고민하지 않았어요. 고민을 한다는 건, 여러 가지 기회 중에서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거죠. 내 상황에서는 그런 고민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냥 결심하는 거죠. 15살에 집에서 가출하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업주한테 헌팅 당했거든요. 내가 가출한 걸 알고 있는 업주가 ‘우리 가게에서 일하자’ 했죠. 돈도 없고 배도 고파서 들어가게 된 거예요.

처음 시작할 땐 돈도, 성매매도 몰랐어요. 그냥 갈 수 있는 곳이 거기밖에 없어서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들어가고 난 후로는…. 업소를 옮기면서 선불금이 생기고, 빚이 자꾸 늘고 이러니까 나도 ‘돈’만 보게 되는 거죠. 그 상황을 만든 것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나는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하는 거였고, 사회적으로는 ‘돈’이 오갔기 때문에 성매매를 한 것에 대한 비난과 책임은 나에게 있는 거였죠.”

엠케이: “나도 지음처럼 성매매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거나 업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몰랐어요. 몇 시간 남자들과 같이 놀아주면 돈을 번다는 것만 알았죠. 성매매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업소에 가는 것밖에 없었어요.

또 하나의 기사(기사링크)다.
이 기사에 나오는 성판매 여성의 말 중 이 말이 가장 절절하게 들린다: “성매매라는 현장은요. 이미 내가 성폭행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성매매와 성폭력의 애매한 경계

지음: “성매매는 반복되는 성폭행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성매매 현장에 있을 때는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못하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불특정 다수한테 당하는 폭력적인 일인데 거기에 돈이 거래됐다는 점 때문에 성매매라고 하면서 분리하는 거죠. 집결지에 있으면 모르는 사람이 나를 찍어서 들어가고, 돈 때문에 여자는 좋은 척해주고 맞춰주어야 하죠. 모르는 사람에게 길가다가 잡혀가느냐, 유리방 안에 있다 찍혀서 잡혀가느냐, 돈을 받았냐 안 받았냐 차이가 있는 거죠.”

마루: “사람들은 성매매를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안에 있는 여성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당연히 받아들이고 해줘야 하는 거죠, 돈이라는 걸 받았으니까.”

지음: “성매매 업소에선 일상이 그렇게 반복되니까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거죠. 성폭행이 일어난 경우에는 내가 5명에게 줄줄이 당하는 상황이 끔찍한 건데, 성매매에서는 내가 선택해서 있는 게 되니까, ‘그렇게 해도 되는 여자’가 되기 때문에, 연속해서 몇 명하고 하게 되던 구매자들도 아무런 죄책감 같은 게 없죠.”

바다: “성폭행을 당하게 되면 사람들이 ‘네가 행실이 그랬잖아, 네 옷차림이 성폭행을 유발하게 했잖아’ 이러면서 비난을 하는데, 성매매라는 현장은요. 이미 내가 성폭행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성매매는 ‘내가 어떤 사람을 돈을 주고 사겠다’라는 게 암묵적인 예고가 되는 폭력인 거죠.”

엠케이: “남자들 입장에서는 여자가 조금이라도 반항을 하느냐, 반항하지 않고 호응해 주는 거냐의 차이인 거죠.”

바다: “성매매할 때 그 순간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 내 나름대로 정신적인 합리화를 한단 말이죠.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 눈에 보이는 건 ‘돈’을 위해서든, 섹스가 좋아서 하든, ‘네가 즐기는 거다’ 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과 성매매는 다른 거라고 생각하고요.
다방이나 주점에서 일할 때 2차나 성매매를 거부했다가 성폭행을 당해도, 그걸 성폭행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요. 티켓 나갔다가 성폭행 당해서 신고했는데, 경찰이 손님이 티켓비를 주었으니까 성폭행이 아니라고 했던 적도 있어요. 그건 성매매라는 거죠. 내가 그런 업소에 있었으니까 이미 ‘성매매’를 인정한 거고, 거기에 ‘돈’을 받았으니까 폭행이 아닌 ‘거래’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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