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8일 수요일

김정은의 개혁개방 과연 성공할 것인가?


김정은이 개혁개방에 대한 요구와 의지가 있다는 것은 거의 분명한 것 같다(이렇게 판단하는 이유와 근거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후술). 문제는 어느 정도의 속도와 폭으로 하느냐다. 그리고 김정은은 김정일보다는 김일성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젊고 개혁적이며 개방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장성택 처형과정을 대내외적으로 공개한다든지, 리설주를 등장시키고 대동한다든지,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등의 모습에서 김정일과는 완전히 다른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개혁개방을 추구할 수 없으며 개혁개방을 추진하면 어느 정도 진척이 되다가 필연적으로 붕괴될 것이란 도그마에 빠지면 생동하는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의 등장 이후 최근의 상황을 보면 김정은 정권이 개혁개방을 추진 중에 있으며, 예상보다 과감하고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는 징후가 여럿 포착되고 있다. 그래서 현시점에서 김정은 정권은 과연 개혁개방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보다는 과연 어느 정도의 속도와 폭으로 추진할 것인가? 그리고 연착륙에 성공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해야한다고 본다.
2014년 9월 현재 북한은 상당하고 빠른 변화과정에 있고 의미심장한 변화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정권의 개혁개방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북한의 199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현실을 개괄적으로 정리한다면 4단계로 정리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

1단계(1991~1999년) : 비상사태 직면과 위기돌파
1989~1991년에 걸쳐 사회주의권의 붕괴, 특히 루마니아 차우세스쿠의 처형은 김부자와 북한 지도층에 엄청난 정신적 충격과 위기감을 줬다. 여기에 ‘한-러 수교’와 ‘한-중 수교’ 그리고 제1차 북한 핵 위기로 철저한 고립을 겪고 전쟁위기감마저 높아진 상태에 처했다. 제네바 협정을 통해 전쟁위기에서 벗어났지만 1994년 김일성의 급사와 뒤이어 찾아온 1995~97년의 아사사태는 체제위기감을 한껏 증폭시켰다. 이런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김정일은 소위 ‘선군정치’라는 계엄통치와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벼랑 끝 전술’을 통한 위기돌파를 시도했고 체제와 정권유지에 성공했다.

2단계(2000 ~2005년): 비상사태 극복과 개혁개방의 시도
1990년대 후반 들어 북-중 관계개선을 바탕으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체제안정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은 김정일은 2002~2005년 부분적으로 개혁개방을 시도한다.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이하7.1조치)’와 같은 해 9월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 10월 경제고찰단의 한국 방문, 금강산 관광특구지정, 그리고 11월에 개성을 경제특구로 지정하는 등의 개혁과 개방조치가 바로 그것들이다.

3단계(2006~2010) : 개혁개방의 후퇴
시장의 확산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김정일은 2006~2010년 체제단속으로 회귀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2006년과 2009년 핵실험과 시장(市場)에 대한 단속 그리고 2009년 화폐개혁의 단행이 그것이다.

4단계(2011~2014년 현재): 김정은의 등장과 갈지자 행보 그리고 개혁개방에 재시동
2011~2014년은 김정일의 급사와 김정은의 등장 그리고 갈지자행보로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한편으론 2012년 6·28방침을 기점으로 여러 가지 개혁개방 조치들을 잇따라 내놓으며 개혁개방에 재시동을 걸고 있다. 최근 북한은 식량사정이 확연이 좋아졌으며, 쌀값과 환율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북한의 경제사정과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으며 적잖은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이제 북한 김정은 정권의 개혁개방 정책과 조치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2012년 6.28방침과 2014년 5.30조치
북한은 2012년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 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 (일명 6·28방침)’를 발표했다. 일부 공장과 기업소 및 협동농장을 대상으로 ‘경영권을 현장에 부여’한다는 것이 핵심인 정책이며 시범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는 2002년 7·1조치의 김정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시장화가 많이 진척된 현실을 받아들여 체제내화하고자 시도했던 것이 7·1조치였는데, 이것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자 유야무야시켰던 것이다. 그것을 김정은의 2012년 4월 공식집권 이후에 다시 핵심내용을 부활시킬 뿐 아니라 더욱 확대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6·28방침은 2년 동안 시범적으로 운영하던 것을 2015년 5월부터 전 공장과 기업소와 협동농장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것이다. 「세계일보」가 2014년 6월 28일자로 보도했던 내용인데, 9월 23일자로 다시 확인보도를 하고 있다. 북한이 모든 기관과 기업소, 상점 등에 자율적 경영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새로운 경제개혁 조치(5·30담화)를 전국적으로 시행 중인 사실이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를 통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는「세계일보」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5·30담화를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며 “그간 일부 기업소나 공장에서 시험적으로 시행하던 것을 공식적으로 모든 기업소와 공장 등에 적용하기로 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진 교수는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는 “(북한)변화의 원동력은 바로 내적 잠재력을 불러일으킨 조처에 있었다”며 ’5·30조처’로 불리는 새로운 조처로 북한 전역 모든 공장과 기업, 회사, 상점 등에 자율경영권을 부여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생산권, 분배권에 이어 무역권까지 원래 국가 몫이던 권력이 하방돼 공장, 기업의 독자적인 자주경영권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며 “어찌 보면 가장 획기적인 조처”라고 평가했다.

그는 “농촌은 경영단위가 계속 축소되고 생산물에 대한 자율처분권이 확대됐다”면서 “19개로 확대된 개발구 역시 개발구법에 따라 경제무역관리 측면에서 많은 권력이 이양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현대경제연구원은 2014년 9월 25일 ‘북한 농업개혁이 북한 GDP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북한의 농업개혁 조치는 중국이 1978년에 도입한 개혁과 유사하다며 농업개혁을 통한 1차 산업 부문의 부가가치 증가만으로도 GDP를 7%이상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농업개혁의 핵심내용은 가족 1명당 땅 1,000평을 지급하고 소득은 국가 40%, 개인60%로 나누는 방식이라고 한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북한의 실질 GDP 성장률이 2013년 1.1%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농업 개혁을 통해 성장률을 매우 높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는 셈이다. 북한의 성장률은 2006년과 2007년 각각 -1.0%, -1.2%였다가 2008년 3.1%로 반전했다. 2009년과 2010년 다시 -0.9%, -0.5%로 나빠졌고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0.8%, 1.3%로 회복했었다.

연구원은 북한의 2000~2013년 부문별 평균 GDP 비중은 1차 산업 57.5%, 서비스업 30.7%, 건설업 8.2%, 전기·가스·수도업 3.6%로 이번 농업개혁에 의한 1차 산업 부가가치 생산 증가율이 중국처럼 최대 13% 높아지면 타 부문으로의 파급 효과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GDP가 약 7.5%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고 추정했다. 이 경우 북한의 GDP는 개혁 후 9년 차인 2023년에 2013년 GDP(약 30조원)의 두 배인 63조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5·30담화에 대해 아직 한국 통일부는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는 입장이며, 북한 당국도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아니기에 추가로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만약 5·30담화가 사실이라면 파격적인 조치이며 의미심장한 개혁조치이자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단계에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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