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7일 화요일

성노동운동’과 성매매 합법화: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백기투항 (2)


성매매 산업이 지금처럼 엄청난 규모가 된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의 욕망의 긍정과 자본의 자기증식 욕구 때문인 것이 상당한 이유를 차지한다. 그러한 점에서 근대적 폭력은 현대사회의 성매매 문제의 본질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성매매는 근대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또한 근대 산업혁명 시기의 청교도주의가 보수적인 가족관을 강화시켜서 성매매에 대한 수요를 늘렸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돈 주고 섹스를 구매하는 손님들은 반드시 미혼이거나 파트너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파트너가 있음에도 파트너 몰래 성매매를 이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또한 솔로임에도 업소 한 번 가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자본주의 하에서의 상대적 빈곤의 문제가 성매매의 구조적 배경을 더 공고화하고 있는 면이 있기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여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마초적 사고가 성매매의 기본적인 구조적 배경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매매를 자유로운 거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아젠다가, 현실에서 다시금 남성 지배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자유주의가 말로는 보수적 사회규범에 반대하고, 여성해방을 옹호한다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오히려 낡은 성적 규범을 지탱해주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오늘 글에서는 주로 경제학적 관점을 이용하여 섹스와 성매매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섹스는 자유재인가, 경제재인가?

 그렇다면 성매매라는 것이 왜 일어나며, 그것에 내재된 원리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사실 성매매는 최초로 잉여생산물이 등장했던 시대부터 존재했던 아주 오래된 인류의 생활양태였다. 농업이 시작되기 이전의 섹스 행위야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 마주친 남녀가 즉흥적으로 벌이는 프리섹스의 형태였고 어떠한 댓가성도 없었다. 그저 서로 만족하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인류가 농업을 시작하고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정’의 개념이 생겨나고 농업 노동력으로서의 근력을 가진 남성이 우대받는 사회풍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섹스의 양태도 수렵 및 채집생활 시대와는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달라진 양태는 남성 우위의 구도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인류가 생식에 대한 남자의 역할을 깨닫게 된 데에 있었다.

 농업이 시작되기 전인 구석기 시대의 유물들을 보면,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와 자녀양육의 주체인 여성의 몸을 강조하는 것들이 많다. ‘밀렌도르프의 비너스’와 같이 풍만한 가슴과 아기를 품을 수 있는 넓은 배를 강조한 조각품들 말이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 이후로 점차 남성의 페니스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아진다. 남성은 여성과 같은 기나긴 임신, 출산, 모유수유의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한 번에 여러 명의 여성을 임신시킬 수 있으며, 자녀 양육에 구애받지 않고 경제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잉여생산물의 분배를 놓고 남성들 사이에 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했으며,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은 남성이 얼마나 많은 여성을 거느릴 수 있는가로 표출되곤 했다. 그러면서 나타나게 된 것이 가정에 편입되지 못해 남성의 부양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배제된 여성이었다. 당시에는 여성들이 할 만한 직업 활동이 많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여성들 중 대부분은 생계의 수단으로 성매매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성들은, 부인을 많이 거느렸건 아니건, 원하는 때에 약간의 돈을 주고 여성의 성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성매매를 위해 지불되는 돈의 액수는 한 여성을 부인으로 삼아 그녀를 평생 부양하는 것보다는 훨씬 적었다. 또한 어느 남성도 성판매여성이 출산하는 자녀의 양육을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좀 더 체계화된 국가와 고등 종교가 형성되는 시기 이후로는 결혼제도가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된다. 이때의 결혼제도는(지금까지도 그런 면이 상당하지만) 기본적으로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었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사회의 기초 단위를 형성하는 프로젝트였으며 후 세대를 재생산하기 위한 도구적 이성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어디 도구적 이성에 맞춰서만 살 수 있는가. 엄격한 사회적 금기와 일부다처제라는 제도적 퇴로를 통해 혼외정사를 엄격히 금지한 이슬람 사회를 제외하고, 고대와 중세의 동서양 사회에는 혼외정사가 만연했다. 실상 혼외정사야말로 결혼생활에서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었던 정서적 교감과 성적 쾌감을 충족시키는 도구였다. 물론 결혼 내에서의 부부간의 관계에 충실한 사람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기본적으로 결혼, 자유연애, 성매매라는 세 가지의 분절된 섹스 시장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만 결혼에서의 상품가치 교환은 섹스와 사랑 외에 노동력, 가문의 재산, 지위, 명예 등 다른 요소들까지 포함한다.

결혼과 성매매 시장에서 섹스는 경제재로 취급된다. 반면 미혼자의 연애나 혼외정사 등 자유연애에서 섹스는 자유재다. 그런데, 근현대 산업사회에 들어서 이 개념에 상당한 변화가 생긴다. 바로 ‘사랑으로 하는 결혼’의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자유재로서의 섹스를 결혼까지 연장시키려는 혁명적인 시도였다. 물론 이것이 순수한 의도로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다. ‘스위트 홈’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산업화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핵가족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사랑이라는 환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와는 별개로, ‘사랑으로 하는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는(비록 허구적 환상이라고 하더라도) 한편으로 가문이나 경제력 등의 조건을 배제하고 두 사람의 의지만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꿋꿋한 인간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21세기에 들어, 이 개념은 동성애자 커플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결혼시장에서도 전근대적인 형태의 결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의 결혼시장은 사랑으로만 결정되는 제1시장과 사랑 외적인 조건을 통해 결정되는 제2시장으로 나눠진다. 제1시장에서 섹스는 자유재, 제2시장에서는 경제재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페이스북 상에서 두 분의 논쟁이 있었다. 한명은 결혼을 성매매에 비유하며 결혼의 대다수는 제2시장에 불과하다고 했고, 다른 한명은 그래도 결혼에서 제1시장의 크기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런데, 논쟁 끝에 두 분은 일치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결혼의 제2시장적 성격을 폐지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현대사회에는 동거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그러나 나는 동거가 결혼식만 올리지 않을 뿐 결혼(제1시장적 결혼만을 의미)과 사실상 다를 바 없는 개념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프랑스나 스웨덴 등의 복지국가들은 ‘법적 동거’ 개념을 도입하여, 재산권 분할, 자녀 양육 책임, 복지 혜택에서 기혼자와 다름없는 제도적 보장을 하고 있는 데다, 결혼한 부부라고 해서 반드시 비제도적 영역(가사노동, 가문과의 관계)에서 불평등한 파트너십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동거에서도 애정과 섹스는 자유재다. 애정이 식으면 쿨하게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성매매 시장만큼은 끝까지 섹스가 경제재인 곳으로 남는다.

성해방에 대한 리버테리언적 전유

 68혁명은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 섹스에 대한 도덕적 금기를 허무는 데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이성애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줄어들기 시작한 계기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섹스를 철저히 자유재로 만드는 것이 진보의 방향인가, 아니면 사고 팔 수 있는 경제재로서의 성격을 계속 인정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68혁명은 성해방뿐만 아니라, 학벌주의 타파(프랑스 등 일부의 경우), 반전평화 의식의 고양 등 다양한 성과를 맺었지만,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68혁명의 주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68혁명을 통해 제기된 신좌파적 의제들을 어떻게 현실 속에 귀착시키느냐가 과제로 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확실히 단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침 1970년대 들어 케인지언 자본주의에 위기가 닥쳤다.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은 이것을 반격의 기회로 삼아 자유주의 정책을 실현하는 정권을 탄생시켰고, 곧 자유주의 원리는 사회 전반으로 확대, 내면화된다. 그리하여 여성운동과 LGBT운동, 반전평화운동, 환경운동의 상당부분이 자유주의에 포섭된다. 또한 이러한 성해방적 사회 분위기를 본 성매매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권리 주장을 시작한다. 그런데, 어떤 권리 주장이냐가 문제였다.

 성판매자와 성매매업주 모두, 사회로부터의 경멸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다. 성판매자는 특히나, 그 자신의 어려운 사회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매력만을 팔아 남성의 돈을 뜯어가는 요부로 낙인찍혀 왔다. 성판매자는 손님들의 폭력과 경찰로부터의 끊임없는 단속의 위협, 업주들의 착취라는 다층적인 폭력에 시달린다. 더군다나 성매매는 육체 노동인 동시에 감정 노동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지속적인 격렬한 섹스 때문에 발생하는 건강상의 문제와 성병의 위험이라는 신체적 위험뿐만 아니라, 언어 폭력 및 감정적 모멸감, 자존감의 저하 같은 정신적 위험도 가진다. 반면 성매매업주가 갖는 위험은 오직 불법의 결과로서 처벌을 받는 위험과 사회로부터의 경멸적 시선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경찰에게 뇌물을 주거나 폭력조직과의 연계로 위협하거나 정치적 로비를 벌여 모면할 방도가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성매매 자체를 반대하고 궁극적인 해체를 추구하는 길과 성매매의 현실을 인정하고 성판매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여 노동권을 쟁취, 처우를 개선하는 길이었다. 성판매자들의 입장은 통일되지 못하고 나뉘었다. 반면 업주들은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 이른바 ‘성노동운동’의 출발점이었다. 성노동운동은 업주들의 후원을 받으며 성매매를 양지로 나오게 하려는 캠페인을 벌인다.

 여기에 리버테리언의 논리들이 개입된다. 첫째는, 성매매는 개인의 영역이므로 국가나 도덕적 관습이 간섭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이 논리는 성매매 과정에서 일어나는 성판매자에 대한 폭력성을 인정하지 않는 논리다. 둘째는, 섹스도 경제활동의 대상으로 얼마든지 인정 못할 것 없다는 논리다. 이 논리는 성해방의 정신을 자기 입맛대로 비튼 경우다. 셋째는,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그동안 지하경제로 치부되었던 섹스 산업이 GDP에 반영되고 섹스 산업을 찾는 수요도 늘어나므로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게다가, 섹스 산업이 합법적인 산업으로 인정되면 정부의 입장에서는 성판매자의 소득세, 업주의 소득세와 법인세, 성매매 시의 부가가치세, 성매매 업장의 등록세와 재산세 등 새로운 세원이 발굴되므로 이익이 되기도 한다. 독일 등 일부 성매매를 합법화한 나라에서는 심지어 성매매에 일종의 특별소비세를 부과하기도 한다.

게다가, 성해방을 처음으로 맛본 일부 여성들과 동성애자들은 성해방을 자신들도 이성애 남성들과 똑같이 성매매 업소에 출입하며 이성애 남성과 동일하게 욕정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권리라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일종의 인정투쟁이었다. 이렇게 성매매업주의 이해, 일부 성판매자의 입장, 리버테리언 페미니즘의 부상이라는 요소가 맞아 떨어져 ‘성노동운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필자: Andrew Jinwoo Kim
https://www.facebook.com/notes/andrew-jinwoo-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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