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7일 토요일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Nicomachean Ethics(기원전 4세기)



니코마코스 윤리학 
Nicomachean Ethics(기원전 4세기)

행복은 우리가 자신을 위해 이성적으로 결정한 목표를 오랜 기간에 걸쳐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행복은 쾌락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에 따르는 부산물이다.

행복을 얻는 법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출발점은 행복이다. 그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선善에 이르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성적인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는 흔히 ‘행복’으로 번역하지만, ‘잘 사는 것’, ‘성공’, ‘번영’으로 볼 수도 있다.

이성적인 존재답게 우리의 최대 행복은 이성을 통해 도달한 선택에서 얻어진다. 우리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신에게 최선인 목표를 이루어내고, 그 과정에서 행복은 저절로 따라온다. 오직 쾌락으로 점철된 삶은 평생에 걸쳐 목표를 추구하는 이성적이고 목적적인 행위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오히려 행복을 저해한다. 우리에게 (덧없지 않은) 참된 기쁨을 주는 길은 도덕적인 길이다. 예로, 즐겁게 읽히는 가벼운 연애소설이나 범죄소설은 톨스토이Tolstoy를 읽을 때처럼 커다란 의미와 만족을 주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로지 만족하는 삶을 추구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래서야 ‘방목하는 가축’보다 나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삶’을 원한다면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고 기술을 연마하여 행동과 미덕을 겸비해야 한다. 진정한 행복은 오랜 세월에 걸쳐 자기 자신과 목적에 힘을 쏟은 후에야 얻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한 마리의 제비가 날아온다고 봄이 오는 것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여름이 되는 것도 아니듯이, 인간이 축복받고 행복해지는 것도 하루나 짧은 시일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간 그 자체가 우리 자신과 세상의 본성을 드러내는 ‘발견의 좋은 조력자’라고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도 훌륭하고 완전한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우정은 이성과 생각을 나누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건설적인 행동을 통해 친구들이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고,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이성적인 자질 또한 확대되어 자연스레 행복해진다. 이 원리는 우리가 사는 공동체나 도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공동체나 도시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리의 이성적 능력이 강화되어 행복도 늘어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부도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은 아니라도) 중요한 원천으로 본다. 공부가 우리에게 이성적 본성을 충분히 표출할 기회를 준다는 이유에서이다. 철학적·과학적 진실을 이해하고 기존 지식에 통합시키다 보면 우리는 점점 인간 본질의 정점에 다가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희망적인 결론은 행복이 운명이나 신에 의해 미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우정·공부 등을 통해 도덕적인 삶을의식적으로 표방함으로써 습관적으로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집을 지어봐야 건축가가 되고 악기를 연주해봐야 악기 연주자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행위를 해야만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행위를 해야만 절제 있는 사람이 되며, 용감한 행동을 해야만 용감한 사람이 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습관을 통해 성공한 인간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을 판단할 때는 그의 흥망성쇠가 아니라 그가 꾸준히 계발하고 드러내온 덕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성공의 잣대이다.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은 한결같이 덕성을 길러가며, 변덕스러운 운명에도 일체 동요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것이 바로 이런 안정감, 고결함, 대범함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에 따르는 행동이 행복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출처]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Nicomachean Ethics(기원전 4세기)|작성자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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