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2일 월요일

결핵환자, 사고 사망자 속출…북한 굴지의 무산광산의 실상


2000년 이후부터 10년간 무산광산 중국과 거래하며 자체운영




 무산광산은 특급기업소로 무산광산 안에 5개의 1급 기업소를 갖고 있다. 노천분광산(露天分鑛山), 운광여단, 공무분공장, 박토꼼빼아(컨베이어), 차(車)분공장이 있고, 이외 각각의 일급 기업소들에 직속단위 직장들이 또 있다. 무산광산 총 인원은 2만여 명 정도며, 지휘기관으로는 당위원회와 행정부서, 생산부서가 있다. 무산광산 내 생산직이 아닌 유급일군과 행정직은 전체 근로자의 약 10% 정도인 2,000여명 정도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까지 무산광산의 생산은 정상적이었다. 국가에서 계획이 내려오고 설비자재나 원료, 부속품도 제대로 공급이 되었다. 그런데 1996년부터 점차 국가 공급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2000년에 들어서는 자재, 원료, 설비 등 그 어느 것도 보장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무산광산 근로자가 2만4천명이었고, 중앙에서 내려온 지시는 ‘공장들 자체로 자급자족하라’는 지시였다.

 그때부터 무산광산은 김책제철소에 공급하던 정광(금속 광석에서 불순물을 제거하여 품위를 높인 것)을 가지고 중국과 무역을 시작했다. 그렇게 2000년부터 2010년 까지 10년을 무산광산은 국가의 지원 없이 자립적으로 운영했다.

 원래 무산광산에서 생산된 정광은 정광 수송관을 통해 김책제철소로 보내진다. 하지만 2000년부터 무산광산 자체적으로 중국과 무역을 시작하면서 광산 생산량의 80%는 중국으로 보내고 김책제철소에는 10% 정도만 보내게 되었다. 이따금 쿠바나 싱가포르 등에서 북한에 강재(鋼材)를 요구하면 그 때 마다 원하는 톤 수 만큼 정광을 김책제철소에 보내주곤 했다.

 무산광산과 무역하는 중국 대방(상대방 무역업자)은 2~3개 정도였는데, 그중 가장 크게 거래했던 대방이 조장수란 사람이다. 물론 무산광산에도 무역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는데 ‘5과’라고 불렀다. 이 부서는 중국 사람과 계약을 체결해 수출하는 일을 한다. 후에 ‘무역과’도 생겼는데 중국으로부터 설비를 사들이는 일을 담당했다. 그러나 규모는 작은 편이었고 대체로 조장수와 하는 사업이 가장 컸다.

 운송에 있어선 무산광산에 운송 차량이 부족했기에 중국차량으로 정광을 운반했다. 중국에서 들여온 40톤 적재 차량이 무산광산에서 정광을 실어 삼장세관이란 곳에 하역하면 중국 측에서 톤수를 확인하고 인수했다. 그러면 그 빈차를 다시 무산광산으로 가지고 와서 정광을 실어다 주는 식이었다.

 2000년에 무산광산 한 달 생산 계획이 정광(불순물을 제거하여 품위가 높아진 광석)으로 48만 톤이었다. 무산광산은 하루24시간을 3교대로 생산을 하는데 정상적이라면 1교대에 광석으로 1만5천 톤을 생산할 수가 있다.

 생산한 정광은 중국측에서 인수했고, 대신 광산은 필요한 자재, 연료(디젤유, 휘발유), 식량 등을 받았다. 생산 설비도 중국측에 필요한 목록을 작성해주면 사다 주었다. 이런 식으로 광산이 운영되었고 노동자들의 배급과 생활도 유지 되었다.

 이처럼 무산광산이 자립적으로 운영된 10여년은 배급도 잘 나왔고 생활수준도 괜찮았다. 식량은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하루 배급 정량 700g씩(아이들은 300g) 가족 몫까지 모두 배급되었다. 배급은 양정소를 통하지 않고 ‘무산광산연합기업소 후방부 식량과’라는 새로운 부서를 만들어 ‘광산식량공급소’에서 배급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변화가 생겼는데 내각에서 무산광산이 국가계획에 따라 수입, 수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그전까지 무산광산에서 직접 중국과 거래했는데 이제는 국가계획에 따라서 하라는 것이었다.

2010년 이후 무산광산 국가계획에 따라 운영하며 생산량 감소

 2010년 이후 국가계획에 따라 운영함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2000년도 한달 정광 생산량이 48만 톤이던 것이 현재는 20~30만 톤 정도로 감소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문제로는 전기공급, 설비·자재, 그리고 식량 문제가 있다.

 먼저 전기 공급 문제를 살펴보자. 무산광산과 김책제철소가 함께 전기를 사용하면 항상 전기기가 부족하다. 필요한 전기량을 받는다 해도 어떤 때는 전압이 떨어져 기계들이 멈춰서고 오작동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광산에서 전기를 사용하면 김책제철소의 용광로나 설비 가동을 멈추고 무산광산에서만 전기를 사용하는 식으로 해왔다.

 하지만 전기 문제는 무산광산과 김책제철소의 합의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무산광산에 전기를 공급하는 청진화력발전소에 ‘이번 달 무산광산 전기 공급량이 얼마다’라는 지침이 떨어져도 석탄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발전소가 돌아가지 못한다. 또한 석탄공급소나 청진화력발전소 근로자들이 일을 하려면 식량공급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무산광산이 자체적으로 운영될 때는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사들여온 식량을 여러 협력업체에 나눠주어 광산에 필요한 전기를 사용해왔지만 국가 계획에 따라 광산을 운영하면서 그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론 광산이 돌아가면 주변의 가구나 지방 산업들에는 모두 전기 공급을 끊는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전력 감독이 나와 적발시에는 법적 문제로 다룬다. 따라서 북한의 지방 산업은 전기를 공급받지 못해 완전히 폐업상태다.

 무산광산도 중국과 자체적으로 무역할 때는 관산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있었기에 그것으로 전기를 받아 사용했지만 2010년부터 국가 계획에 따라 광산을 운영하자 전기는 고사하고 무산광산 노동자들의 배급도 끊겨버렸다.

 다음으로 설비·자재문제를 살펴보자. 중국에서 설비가 들어오지 못하고 나라에서는 설비를 제대로 공급해주지 않기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연유(디젤유)가 공급되지 못하면 광석을 운반하는 대형차들 움직이지 못한다. 그뿐인가. 디젤유가 없으면 기업소가 완전히 서버린다.

 과거엔 중국 측에서 정광을 사가고 디젤유나 자재를 사다주었지만 2010년부터 그것이 완전히 끊겼다. 현재 무산광산 연료공급과장은 청진항에 나가 살다시피 한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원유 실은 배가 언제 들어올지 몰라서다. 디젤유 뿐 아니라 다른 설비도 나라에서 제대로 공급해주지 못하고 있다.

 용접봉도 없어서 철판 용접봉을 자체로 만들어 사용할 지경이다. 무산광산이 중국과 직접 거래할 때는 용접봉을 중국에서 사들여왔지만, 지금을 그것이 불가능하다. 기계 1대를 수리할 때 사용되는 용접봉의 수는 70~80개 정도인데 용접봉이 부족하니 설비를 고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식량문제를 살펴보자. 무산광산의 정광 생산량은 식량배급에 좌우된다. 왜냐하면 식량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출근율부터가 떨어진다. 노동자들은 그저 먹을 것만이라도 주면 열심히 일 하겠는데 그것마저 안 되니 출근을 못하는 것이다.

 또한 대형차나 마광기는 운전공 한 사람이 다루는데 이 사람들이 결근하면 기계는 멈출 수밖에 없다. 이러면 결과적으로 생산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보안서나 당위원회에 문제가 제기어 정작 잡으러 가면 배가고파 일 할 수 없다는데 어쩔 수 없다. 그러면 기능공들에게 배급이 좀 지급되는 식인데 그것도 들쑥날쑥 하니 생산량도 올라갔다 떨어졌다 한다.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조차도 배급이 없었다. 굶주린 사람들이 김정일 추모행사에 참가할리 없으니 당에서 내려온 지시가 ‘무조건 보장하라’였다. 이에 무산광산은 밀가루로 보름치를 배급 받았고 이에 비해 다른 지방 산업공장이나 소기업소는 3일분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을 주고 김정일 추모행사에 나오게 한 것이다.

 이처럼 무산광산이 국가계획에 따라 운영되면서 정광 생산량도 일정치 않고, 과거에는 한 달 생산량이 정광으로 48만~50만 톤까지도 나왔지만 내가 나오기 전 2012년 11월 정광 생산량이 17만 톤밖에 안 된다.

 그리고 2010년 무산광산이 국가계획에 따라 운영되면서 대대적 검열이 있었고 지배인과 책임비서가 좌천되었다. 중국과의 무역을 하다보니까 지배인, 책임비서가 뒷돈을 챙기게 되었고 이것이 검열에 걸린 것이다. 무산광산 책임비서는 박토컨베이어공장 초급당비서로 좌천되었고, 지배인은 김책 쌍용광산으로 혁명화를 갔다. 이외 당위원회 조직비서도 해임되어 무산군 인민위원회 도시경영부로 가는 등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었다.

2010년 이후 연료, 자재부족으로 무산광산 주요설비 사용 못해

 무산광산은 2010년 이후 연료, 자재부족으로 무산광산의 주요설비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무산광산이 자체운영 될 때는 정광을 중국에 팔고 중국으로부터 연료나 자재를 사왔지만 2010년 이후 국가계획에 따라 무산광산을 운영하면서 모든 자재나 연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각각의 경우를 살펴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먼저 선광장을 살펴보면 주요 설비로는 마광기, 파쇄기, 조쇄기가 있다. 첫 공정은 조쇄직장에서부터 시작되며 조쇄란 원광을 일차적으로 파쇄하는 것을 말한다. 조쇄직장에 가면 쇠사슬을 걸어놓고 내려오는 원광을 부숴 중쇄직장으로 보낸다. 그것을 1선광장, 2선광장으로 나누어주면 마광기를 돌려 습식(선광)을 한다. 용액을 이용해 하는 것을 습식, 용액 밖에서 마른상태로 하는 것(자석을 이용)을 건식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정광을 잡아낸 것은 따로 보내고 돌을 부순 물은 미광물로 내보낸다.

 파쇄기의 경우 2000년 이전에는 스웨덴산을 사용했는데 현재는 대부분 중국제를 사용한다. 마광기는 일제강점기에 사용하던 것을 2000년 까지 사용했다.

 무산광산에는 마광기가 총 15대 있으며 2선광장을 핵심으로 생산되며 마광기는 1선광장에 1대, 2선광장에 3~4대가 돌아간다. 하루에 마광기 5대가 돌면 가장 많이 돌아가는 것으로 15대가 다 돌아간 적은 없다. 마광기 모두 작동시키려면 전기가 많이 필요하지만 공급되는 것이 없어 교대로 돌려가며 정비하는 식이다.

 두 번째로 광석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25톤짜리 ‘꼬마즈’(스웨덴산, 20대 보유)를 사용했다. 그 이후 북한 대안중기계에서 생산한 25톤짜리 ‘승리산’차를 가져다 사용했다. 꼬마즈와 승리산을 비교하면 적재량, 속도, 고장률, 연료소비량에서 ‘꼬마즈’의 성능이 훨씬 높았다.

 2010년에는 러이아산 40톤짜리 ‘코쿰스’(현재 40대 보유)를 들여왔으며 현재 광산에서 중국산 대형차는 운영하지 않는다. 중국산 차의 성능이 훨씬 떨어지고 고압타이어도 아니기 때문이다.

 노천분광산 위에는 운광운송여단이 있는데, 1운광대부터 7운광대까지 배치되어있다. 각 운광대 마다 ‘코쿰스’ 10여대와 ‘승리산’ 10여대씩 있었다. 운광대 모두 합하면 200대 정도였다. 그러나 그중 생산에 참여하는 차는 10대 정도밖에 안 된다. 적어도 100대가 광구마다 다니면서 운반해야 하지만 기름이 없어 거의 정차해 있고 실제 동원되는 차는 한개 운광여단에서 1~2대 뿐이다.

 2011년에는 광물운송차 40~50대가 생산에 참여했기에 어느 정도 생산량이 나왔다. 하지만 국가에서 노동자들의 배급이나 생활비도 주지 않으면서 생산물을 모두 회수해가니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운전수들이 기름을 팔아먹는 일이다.

 운광여단 대형차 운전수들이 하루에 기름 200~220kg를 받는데 그중에 80kg만 사용하고 120kg은 팔아먹는다. 하지만 운전수 단독으로 기름을 빼돌릴 수는 없고, 어느 차가 몇 번 오고가는지 체크하는 신호수와 트럭에 광석을 담아주는 굴착기 운전수, 광물을 운반하는 트럭운전수 이렇게 세 사람이 한 교대에로 짜고 기름을 팔아먹는다.

 기름을 1kg에 2,000원씩만 계산해도 100kg이면 24만원을 벌 수 있다. 하지만 한 차에서 계속 빼낼 수는 없고 기름 받는 수량에 따라 적절히 조절하면서 빼돌려야 한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면서 보위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검열을 단단히 했지만 기름을 빼돌리는 일이 비일비재 일어난다.

 세 번째로 광산의 중요 설비로는 회착기와 착정기가 있다. 회착기나 착정기나 같은 일을 하는데 방식이 조금 다르다. 착정기는 망치로 구멍을 뚫는 것이고 회착기는 돌려서 파는 것이다. 회착기는 스웨덴산으로 80년대 설비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고 착정기는 소련산이다. 북한산은 오히려 생산에 지장만 준다. 전기만 많이 잡아먹고 쉽게 고장이 나며 수입산을 사용할 때와 비교하면 생산량이 크게 차이가 난다.

 1·2·3·4광구가 있는데 각 광구마다 회착기 40대씩 있다. 하지만 모두 돌아가는 것은 아니며 전기나 기름이 부족해 모두 돌릴 수도 없다. 대체로 하루에 한 개 교대가 5~6m정도의 구멍 12~14개를 뚫으라는 지시가 내려오지만 계획대로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40개가 모두 사용 가능하지만 그 중에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것은 절반이고 나머지는 정비해서 사용하는 식이다.

 네 번째로 광산은 기본적으로 벨트컨베이어로 움직이는데 국산은 전혀 없고 컨베이어 롤이나 베어링 등 모두 중국에서 수입해 사용한다. 우리가 생산하려해도 강판이 없기에 만들 수 없다. 그런데 2010년 이후 무산광산이 국가 계획에 따라 운영되면서 국가에서 자재를 공급해주지 않아 문제가 심각해졌다.

 넓이 120cm, 길이 40m 컨베이어를 구간마다 연결해서 사용하는데 1개 컨베이어가 3분만 멈춰도 광석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된다. 박토꼼빼아 직장에서는 못 쓰는 박토를 버리는데 컨베이어가 지하 갱도부터 시작해서 바깥으로까지 연결되어 나온다. 한번 설치하면 3달 정도 사용할 수 있고 중국에서 수입해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공정이 완전히 멈출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전기수리직장은 80여명이 근무하며 자체적으로 전동기를 수리하는 일을 담당한다. 광산 전동기는 큰 것은 400~500kw짜리를 사용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사용하던 것이거나 스웨덴 산이다. 전동기를 수리 할 때 회선자 같은 것은 기중기로 들어 뽑아내고 안에서 전선을 바꾸는 등 수리 할 때마다 대전투가 벌어진다. 그런데 이런 설비들은 중국에서 들여오지 않으면 수리조차 할 수가 없다.

 변전소에 있는 변압기도 1선광에 있는 것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사용해온 것이고 2선광은 스웨덴산이다. 변압기 교체나 전기공사는 월마다 주기적으로 한다. 광산에 들어오는 전기의 전압이 낮을 때도 많다. 충분한 전압이 들어오지 않으면 설비 고장이나 사고가 날 수 있기에 설비를 멈출 때가 많다. 또한 겨울에는 동파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변전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생활은 그래도 괜찮다. 전기를 끌어다 쓰기 위해 바치는 뇌물이 많기 때문이다. 개인집에서도 뇌물을 밭치고 전기를 끌어다 쓰는 일이 많다. 하지만 220볼트 전압은 보통은 100볼트 이하로 떨어져 니크롬선만 벌겋게 보일 때가 많고 제일 높을 땐 180볼트까지 올라간다.

 무산광산은 3년 전까지만 해도 1년에 1~2번 정도 영국이나 스웨덴 동남아 국가들에서 합영사업을하자며 방문하기도 했다. 그들은 광산을 보고 설비가 낡았으니까 설비투자를 모두 책임지는 대신 조건을 걸었다. 조건은 대체로 이렇다.

 노동자들을 없애라. 왜냐면 설비를 바꾸면 그만한 노동자들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기계 한 대에 수 십 명이 달라붙어 일하고 있는 것을 현대식 설비로 바꾸면 한 사람만 지키고 있어도 되기 때문이다. 책임비서나 지배인에게 들은 바로는 외국기업에서 2만 명 노동자들 중 1만 명을 줄이라고 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당위원회나 노동행정 등 필요 없는 부서를 줄이라. 그쪽 입장에서 보면 광산에 경찰이 왜 필요한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들까지 먹여 살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어느 조직이든 당적 지도가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광산 덩어리만 놓고 보면 맘에 들지만 이런 저런 조건이 맞지 않다보니까 실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무산광산 주변 정광 사고파는 외화벌이사업소와 사람들로 넘쳐

 대략 무산시의 거주인구를 20만 명 정도로 보는데 무산광산 근로자와 그 가족 수는 14만 명 정도다. 그런데 14만 명 중 약 20%정도는 개별적으로 정광을 통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부터 국가계획에 따라 광산이 운영되면서 무산광산에서 제일 월급을 많이 받는 곳이 운광여단인데 7,000~8,000원을 받았다. 월급은 국가에서 규정으로 정해 놓은 것이지만 계획이 제대로 완수되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지 2012년에도 국가에서는 배급도 제대로 주지 못했다. 한 달에 보름치씩 주었으니 1년에 6개월 치만 준 셈이다. 지금은 국가 계획대로 생산이 안 될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여러 가지로 노동자들 월급에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다.

 술 한 병에 305원, 생활비를 타면 술 한 병 사먹기 조차 어려우니 개인 부업이나 심지어 도둑질을 하기도 하다. 생활이 이렇다보니 모두 정광이 어디에 있다고 하면 닥치는 대로 모아 집안 창고에 보관했다가 무역하는 회사에 판다.

 무산광산 주변에 약 20여개의 무역회사(외화벌이)가 있는데 호위사령부, 총참모부, 보위부 산하로 여러 개의 회사들이 들어와 있다. 이 회사들엔 설비가 없기에 광석을 선광하지 못하고, 무산광산의 선광장에서 버려져 내려오는 물에 미광물들이 깔려있는 것을 굴착기로 퍼서 선광해 파는 식이다. 선광기는 중국에서 사들여 온 것을 사용하고 전기는 광산에 뇌물을 바쳐서 해결한다.

 이뿐이 아니다. 회령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중국 쪽 두만강에 개인이 설비를 사들여 돌리는 곳도 많다. 두만강으로 정광물이 많이 흘러내려오니까 그러는 것인데 200m 마다 하나씩 정광채취시설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무산광산 노동자나 가정주부들이 정광을 훔쳐다 창고에 쌓아놓으면 무역회사에서 와서 보고는 품질에 따라 거래한다. 품질이 낮을 때는 톤당 북한돈 2만원, 높을 때는 4만원을 쳐준다. 꽤 많은 사람들이 거래를 하고 있다. 정광의 품질은 고품일 경우 60%까지 나오고 저품일 경우 40%까지 나온다. 40%대의 것은 수출을 해도 돈이 별반 되지 않는다.

 무역회사는 개인들에게서 정광을 매수해 중국에 되파는 형식인데 중국쪽 삼장세관부터 시작해서 칠성세관까지 내려오다 보면 정광을 쌓아놓고 운반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해 얼마나 많은 정광이 중국으로 수출되는지는 모르지만 하루 대략 40톤 적재차량 20~30대가 두 번씩 오간다. 그러면 한 차당 하루에 80톤을 실어 나른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하루에 1600~2400톤 정도 중국으로 나간다. 하지만 어떤 때는 물량이 딸려 한 동안 내보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다 또 정광이 모이면 중국 쪽에 연락해 파는 형식이다.

 또한 정광을 실은 차들을 위한 도로가 따로 있다. 많은 차량이 오고가다 보면 포장도로가 견디지 못하고 파손되는 일이 자주 있어 도로중대라는 것을 따로 만들어 항상 정광 실은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관리하는 형식이다. 정광을 팔아야 어떻게든 먹고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산 사람들은 중국에 광석 파는 것을 보며 ‘망했다’, ‘거덜난다’고들 말한다. 왜냐하면 광석을 팔기 보다는 철을 생산해 비싸게 팔아야 나라도 부유해지고 산업도 돌아가는데 원석을 고스란히 가져다 바치니 망할 수밖에 없다고들 말한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하니 너도나도 어쩔 수 없이 정광을 무역회사나 중국에 팔수밖에 없다.

 정광을 파는 것 외에도 여러 부업을 하는데 어차피 출근해봤자 기운도 없고 피곤하니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병원에 가 진단서를 떼고 집에서 농사를 짓거나 개인 장사를 한다. 하지만 결근하고 개인부업을 하다 보안서에 걸리면 단련대로 보내는데, 무산연합기업소 보안서 인원은 40명쯤 되고 무산군 보안서에는 100명이 넘는다. 무산광산에는 구류장이 없어 걸리면 무산군 구류장으로 보내는데 평균 200명이 넘게 잡혀있다. 즉 다시 말하면 구류장에 사람이 넘친다는 이야기다.

무산광산 노동자들의 안전 방치한 결과 결핵환자와 사고사망자 속출

 현재 무산광산 근로자들은 보호장비 없이 근무한다. 그래도 1989년까지는 무산광산 근로자들에 마스크도 주고 보호장비도 주었다. 보호장비는 특히나 습식직장, 패석직장, 중쇄직장, 1선광직장에는 지급 되어야 한다.

이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결핵환자들이 많이 발생하는데, 주로 돌을 깨고 부수고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돌가루가 폐 깊숙이 들어가 악화되는 결핵환자들이 많다. 때문에 보호장비는 꼭 필요하다. 또한 영양제도 보장되어야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보니 결핵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연합기업소 내 결핵병동에는 60여명의 결핵 환자가 있는데 한 달에 2~3명, 많게는 5명이 죽어나간다.

 물론 중국과 직접 거래했던 2000년~2009년에도 보호장비 지원은 없었다. 밥 먹이는 것이 급하니 광산 자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간혹 중국에서 노동안전모를 주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보호장비라고 지급되는 것이 로동보호장갑이라고 벙어리 장갑으로 된 것을 주는데 이것도 가정에서 ‘83제품’으로 만든 것이다.

무산광산에서는 종종 큰 사고가 일어나는데 2000년에는 화약 공장이 폭발했다. 무산광산에서 쓰는 화약은 흥남에서 ‘질안’이라는 것을 들여와 연합기업소 내 위치한 323공장에서 화약으로 만든다. 이 화학공장이 2000년에 폭파한 것이다. 질안은 농산물 비료로도 사용한다. 노동자들이 훔쳐다 1kg당 200~300원정도로 농사꾼들에게 판다.

 2000년과 2003년에도 큰 사고가 일어났는데, 광산 꼭대기에 이르려면 인차(광차)를 타고 30분을 가야한다. 10리가 넘는 거린데 버스보다 조금 작은 차 2~3개를 와이어로 연결해서 올라간다. 그런데 그것이 끊어져 두 번이나 사고가 난 것이다. 한번은 110명의 광산 근로자들이 탄 상태에서 사고가 나 모두 죽었다.

 한 번은 4광구 인차가 사고 났을 때 나도 죽을 뻔 했다. 우리 선전대가 그 인차를 타고 내려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당비서가 수고했다며 술 한 잔 하고 가라기에 그 인차를 안탔다. 그런데 그 차에 탔던 근로자 모두가 사고로 죽은 것이다. 내려가면서 사고현장을 볼 수 있었는데 사방천지가 피바다였다.

일본 포르노 300달러, 한국 포르노는 20달러.

 현재 북한주민들의 민심도 많이 달라졌다. 북한주민들도 이제는 한국에 대해 웬만큼 알고 있다. 한국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CDR과 라디오 방송이다. 나또한 북한에 있을 때 호기심에 몇 번 남조선 라디오를 들었다. 현재 무산시내 가정집들은 거의 대부분 DVD로 몰래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니 무산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보위부 사람들도 볼 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다 있다.

 일상적인 드라마나 영화뿐 아니라 포르노 비디오도 많이 유통되는데, 평양에서는 일본 포르노물은 200~300달러, 미국 것은 100달러 정도 한다. 한국 포르노는 북한 돈으로 2만원이다. 한국 포르노가 제일 재미없다고들 말할 정도다. 포르노물을 보다가 잡혀 교화소에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한국이나 외부 영상물들을 보면서 사람들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는 진심으로 슬퍼했지만 김정일이 죽었을 때는 술도 마시고 할 것 못할 것 다했다. 만약 김일성이 죽었을 때 술 마시고 놀았다면 공공의 적이 되었겠지만 김정일이 죽었을 때는 사람들이 슬퍼하는 척만 하고 놀 것 다 놀았다.

 김정은에 대해서도 그냥 애송이라고 생각한다. 장성택이 다 조종하는 것이라며 하룻강아지가 올라섰다고 말하는 분위기다. 예전에는 그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요새는 누구나 하는 분위기다.

 북한주민들이 처음 김정은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2011년 6월~8월 사이에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를 높이 받들어 모시자’라는 당적 지시가 내려졌을 때였다. 그 즈음에 ‘발걸음’이란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김정은의 위대성 교양학습에서는 김정은이 머리가 총명하고 김일성 수령님을 옮겨 닮은 사람이라고 선전했다. 그때는 김정은의 사진도 없을 때여서 그저 말로만 하는 식이었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달려졌다. 한국에 대해 좋게 생각하며 ‘빨리 통일이 되어 잘살았으면’하고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라 장마당에 나가보면 여자들은 남조선 표준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또한 과거에는 장마당에서 한국 중고 옷을 팔 때 상표를 모두 뜯어내고 팔았는데 지금은 상표를 안 뜯고 판매한다.

 북한의 변화는 이뿐만 아니라 점쟁이도 많아졌다. 이제는 공공연하게 사주팔자를 봐주고 나라정세에 대해 예언하는 사람도 있다. 즉 내년에는 잘 먹고 잘산다던가 못산다고 예언하는데 잘산다고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살인사건도 종종 일어나는데 대체로 여자가 남편을 죽이는 일이 많다. 이 모든 것이 다 생활고 때문인데, 2011년 무산군 주초에서(광산 종업원들이 하는 살림주택) 한 여성이 남편이 죽고 난 후 좋아하는 남자와 같이 살다가 살해당한 일이 있었다.

동거남이 여자를 죽여서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그 남자가 보안서에 잡혀 조사받으며 왜 여자를 죽였냐고 묻자 “너희도 10일을 굶어봐라”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살인사건에 경우 극형으로 처하는데 그래도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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