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누구에게나 나만의 '바둑'이 있다

누구에게나 나만의 바둑이 있다." 얼마전 드라마 '미생'에 나왔던 명대사이다. 학력 위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대기업 무역회사에 입사한 검정고시 고졸 출신 신입내기 장그래의 인생관이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일요일 오후, 우연히 발견한 책의 제목은 '빵굽는 CEO', 빵으로 유명한 김영모사장의 라이프 스토리다. 책 표지에 '빵으로 타워팰리스를 정복한 최고의 빵 명장'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문구가 눈에 띄었지만, 사실 타워팰리스는 대한민국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해 부를 이룬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의 대명사가 아닌가? 명품만을 고집하고, 최고의 품질만을 추구하는 자부심이 가득한 그곳에서 선택을 받은 제빵점이니, 나름대로 사장의 철학이 담겨있거니 생각했다.

책 초반에 어렸을때의 기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제빵업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김영모 명장의 라이프 스토리도 매우 감명 깊었지만, 필자의 마음을 끌었던 부분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이 만든 빵 하나하나에 열정과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해 굽는 그만의 장인 정신이었다.

작고하신 법정스님도 본인의 저서 '일기일회'에서 "행복해지려면 매일매일 늘 깨어있을 것"을 주문하셨다. 또한 "사람은 저마다 우주의 선물이고, 자기만의 선물이다. 어떤 처지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못나고 불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만이 지닌 특성이 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우주의 선물이며, 또 그 사람만이 지닐수 있는 보물이다. 그 특성과 보물을 마음껏 발휘해서 이웃과 나누어 가질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자기만의 달란트가 있고 이를 잘 활용할 것을 설파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읽어보면 대체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첫째, 성실하다는 것이다. 김영모 제빵점은 새벽 4시에 일과가 시작된다. 이는 김사장이 부지런한 이유도 있지만, 제대로된 빵을 구워서 9시 가게문을 오픈하기 까지 고객앞에 내놓을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은 빵을 마치 공장에서 찍어대듯이 대부분 속성으로 발효시켜 시장에 내놓는다. 그러나 김사장은 천연발효법을 통해 빵을 숙성시키기에 그만큼 새벽일찍 빵을 만들어서 발효시켜야 9시 이전 고객들에게 간신히 좋은 빵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더빨리 더많은 돈을 벌기 위해 '빨리빨리' 스피드와 명품에 길들여져있는 우리 사회에서 사실 개인제과점에서 쉽게 돈을 벌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더 느리게 한쿰한쿰 빵 빚어내기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김사장은 "흔히 사람들은 밀가루제품인 빵이 몸에 안좋다고 생각하는데 제대로 발효시켜 만든 빵은 몸에 이롭다"고 말한다. 즉 제대로 시간을 들여 발효시켜 만든 빵은 사람 몸에 좋다는 것이다. 대량생산체제와 속성에 물들여 있는 우리 사회에서 어찌보면 김영모 제과점처럼 '기본에 충실하라' 는 가장 중요한 대의명제를 실천하는 곳은 드물다.


둘째, 남과의 신뢰관계에 철저하다. 본문중 김사장은 크리스마스 대목인 성탄절 전일 직원들이 2000개나 되는 대량의 케이크를 지하창고에 보관한 사실을 목도한다. 케이크는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를 쉽게 흡수하기에 김사장은 와이프를 비롯한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0개 전부를 쓰레기통에 폐기할 것을 지시한다. 그리고 제빵점 전 직원들은 밤을 새워 새로이 케이크를 만들어 이튿날 고객들에게 내놓는다. 단 한개의 빵이라도 이상한 냄새를 맡은 고객들은 다시는 김영모제과점을 찾지 않는다는 생각, 김영모라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하는 빵가게이기에 단 한개의 빵이라도 설렁설렁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득 정주영 현대회장의 스토리가 떠올랐다. 정회장은 현대건설 초창기인 1954년 정부로부터 고령교 사업을 발주받아 2년동안 공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수주한 공사는 쉽지않은 대공사였으며, 홍수와 물가급등, 노동자 파업등으로 대위기에 봉착한다. 갖은 고생끝에 2년후 간신히 공사를 완료했지만, 적자만 6,500만환에 달하는 등 현대건설은 최대 위기에 직면한다. 이때 정회장은 말그대로 친인척과 가산 등 갖은 빚을 끌어와 공사를 완료한다. 이로인해 현대건설은 20년이상 이 빚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회장은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인간은 한번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장이다."라는 철칙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3년후인 1957년 정부는 한강인도교 공사를 현대건설에 주었다. 현대건설의 성공스토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업을 하면서 본인이 비록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결코 신용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갑부 가문 '로스차일드'의 창업스토리와도 맥을 같이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태인 빈민가(게토) 출신인 로스차일드가 유럽 최대의 부호가 된 그 배경에는 목숨을 걸고 지킨 고객에 대한 신뢰에 있었다. 당시 유럽의 골동품과 주화수집으로 돈을 번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빌헬름공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었고 결국 재산관리인 역할까지 한다. 이때 유럽을 휩쓴 나폴레옹군이 프랑크푸르트로 진격하자, 빌헬름공은 유태인인 로스차일드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맡기고 피신한다. 로스차일드는 빌헬름공의 황금 등 모든 보물들을 자신의 지하창고에 묻었고, 대신 자신의 전재산은 눈에 띄는 장소에 둔다. 이윽고 나폴레옹군은 로스차일드의 집에 쳐들어와 모든 재산을 압수하고 로스차일드를 고문했지만, 그는 끝끝내 빌헬름공의 재산 소재지를 밝히지 않는다. 몇년후 나폴레옹군이 철수한후 로스차일드는 빌헬름공의 보물들을 활용해 사업을 했고 이자를 더한 금액을 돌아온 빌헬름공에게 돌려준다. 이에 감격한 빌헬름공은 로스차일드에게 20년동안 자신의 재산을 관리케하고 이자는 단 2%만 받기로 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을 해준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남의 재산을 지켜준 로스차일드에게 감격한 것이다.

요즘같이 건설 불경기 시절에는 자신의 재산과 신용을 걸고 올인하려는 사업가보다는 '돈을 먹고 튀어라'형의 먹튀들이 판을 치고 있지만, 결국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셋째, 위기의 순간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위기를 자기자신의 발전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김영모 사장은 어릴때 계모로부터의 박해, 작은 아버지부터의 구타, 결핵으로부터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르는 등 숱하게 인생의 위기를 겪었다. 제빵기술을 제대로 배워서 써먹으려는 찰나에 입영통지서가 나와 군에 입대하였으나, 다헤져 굴러다니는 책 한권을 읽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얻은 중요한 깨달음을 세마디로 정리했다.

"첫째,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라. 둘째, 최악의 경우를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셋째, 최악의 경우를 개선하라. "
젊은 시절 처음 P제과점에 출근한 김영모에게 맡겨진 일은 설거지와 반죽하는 말단업무 뿐이었다. 새벽 4시부터 밤 9~10시까지 앉을 틈도 없이 일하고 모두들 퇴근한 후에도 밤12시까지 반죽을 치는게 일과였다. 그러면서도 새벽 2~3시까지 홀로남아 버터크림으로 케이크 장미꽃 짜는 연습을 했다. 잠을 1~2시간 자는 등 초인적인 힘으로 버텨낸 것이다. 이윽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그해에 만들 케이크 물량은 2,000개. 직원들이 훈련이 안되어 있으면 장미꽃 장식은 통상 공장장 혼자 해내야하는 몫이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아침 젊은 김영모와 부공장장이 공장장앞에 불려가 장미꽃 짜는 시범을 보였다. 공장장까지 포함 세명이 장미꽃 짜는 시범을 보였고 공장장은 직원들에게 누가 짠 것인지 구별하게 했다. 직원들은 부공장장의 것은 바로 구분을 해도 김사장것과 공장장것은 구별하지 못했다. 결국 최말단직원이었던 김영모는 이날 공장장과 케이크 장미꽃 장식을 함께 했고 이윽고 부공장장은 다른 제과점으로 이직했다. 얼마후 김영모는 취업한지 불과 9개월만에 말단직원에서 부공장장으로 승진한다. 이후 간혹 공장장이 결근하더라도 김영모는 똑같은 장식을 만들어 심지어 사장이 공장장의 결근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넷째, 그의 빵에는 장인정신이 살아 있다.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빵, 창고에 보관해둔 빵은 몇 천개라도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그의 성격을 아는 와이프의 충고로 김영모 사장은 손님들이 먹어도 모자람이 없지만 자신에게는 불량(?)한 빵들을 요양원, 고아원 등에 기증한다고 한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부분보다 보여지지않는 부분까지 충실한 빵 하나, 이것이 그를 지탱하게 한 원동력이다.

일본 교토에 가면 100년 이상된 가게가 숫하다. 교토에서는 최소 삼대가 교토에 거주해야 교토사람으로 인정하며, 백년은 기본이고 1,000년된 과자점, 식당도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전쟁으로 폐허된 국토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김영모 사장과 같은 1대 명장들이 나오고있다. 일본처럼 우리도 1,000년의 가업을 이어받는 상인들, 제대로된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상인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유소년시절 부모의 이혼과 떠돌이 생활 등 최악의 환경속에서도 인생의 'Loser'가 되지않고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킨 사람, 남들이 보면 하찮게 여길지도 모를 제빵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빵 하나하나에도 최선을 다하는 김영모 사장의 열정. 이것이 그를 성공시키고 삶의 전체를 지탱하게한 원동력이리라.

일찌기 법정스님은  '일기일회'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의 큰 생명에서 나온 존재들이며, 남이란 타인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이다.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사람을 위한 삶이야 말로 진정한 깨달음이고 진리의 세계이다."라고 설파하며, 오는 이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 것을 주문하셨다. 김영모 사장의 '빵'처럼 현대인들에게 각자의 달란트 각자의 빵이 있다. 오늘 만드는 빵하나, 지금 이순간 쓰는 글 하나하나, 지금 하고 있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고 말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출처: http://jubys.egloos.com/5502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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