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3일 화요일

무서운 '진보 대 보수 프레임'의 함정



요즘 '진보는 왜 망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강준만 교수가 들고 나온 "싸가지 없는 진보"론에 대해서 진중권, 이택광 교수가 각각 '메시지론', '일상의 정치론'을 들고 나와서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집권 이후 다양한 문제점들이 등장했는데도 왜 새누리당의 강세는 이어지는가? 에 대한 논의, 그리고 자아성찰 자체는 긍정적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주장들이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을 진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제가 볼 때는 모든 의견들이 아주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진보 대 보수"의 대결 구도 자체가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감히, '진보 그 단어 자체가 문제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 정치세력이 대결할 때 어떤 판에서 대결하는가? 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프레임"을 짜는 일은 나에게 유리하고 상대에게 불리한 쪽으로 대결 구도를 맞추는 것입니다. 대다수에게 비난받은 특정한 이미지를 상대방에 덧씌워서, 그 특정 이미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와서 선거에서 승리를 도모하는 방법입니다. 선거에서 사람들의 지지정당 선택은 다양한 기준에서 이루어지고 그것들 중 '최악'을 피하는 방식은 많은 부분에서 이루어지고 이 때 프레임짜기는 대단히 효과적입니다.

제일 유명한 것은 예전 냉전 시대의 매카시즘에서 유래한, "종북 프레임"일 것입니다. 한국은 여전히 분단국가이고 북한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사람이 많은 이상 이 종북 프레임은 유효합니다. 하지만 현재 야권에서 실질적으로 '종북'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행동을 하는 집단은 상당히 작습니다. 검찰에서 '종북'의 정의를 확장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종북을 실제로 적용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야권에서 주의해야 할 단어이긴 하지만, 종북 프레임은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 다음은 "친노 프레임"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 평가는 엇갈립니다. 다른 대한민국 역대 정부와 비교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생각할 때, 노무현 정부 집권 당시 노무현 정부 지지율은 상당히 낮았고, 그런 의미에서 대중들 중 노무현 정부에 상당히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동시에 현재 야권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연관이 깊은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친노 프레임은 그 효력이 상당합니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야권의 정치인들 상당수가 각자 행보를 다르게 가져가면서, 야권에 분파는 존재한다고 해도 과연 친노라고 불리는 분파가 있는가? 조차도 의문스럽습니다. 하지만 일부 극성 야권 지지자들이 선민의식, 진영논리, 분노조절실패에 물들어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그들 밖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이들이 '깨시민'으로 조롱당하는 등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샀습니다. 이들의 지지층이 노무현과 어느 정도 일치하고,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절에 인터넷의 정치적 파급효과가 강해졌기에, 이것이 기존 노무현 정부 반발층과 합세하여 상당한 파워를 발휘합니다. 야권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프레임 중 하나입니다.

"진보 프레임"을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입니까? 그럼 진보, 보수, 좌파, 우파의 의미를 당신은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진보와 좌파는 사회적 약자를 지지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사람들로 알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우파와 보수는 기득권층을 지지하는 악당들입니까? 혹시 새누리당이 보수를 자처한다는 이유로 보수 = 새누리당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보수성은 예전에 있던 것을 존중하면서 서서히 변화하자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기득권층이 현재 상태를 선호하기에 보수성에 가깝긴 하지만, 그저 현재 상태를 지지하는 것은 '수구'입니다. 반면 진보는 방향만 적절하다면 빠른 변화를 원합니다. 더 빠른 속도를 원한다면 부정적인 의미를 곁들여 '급진파'로 불립니다. 문제는 새누리당에 반감이 있더라도, 진보에서 주창하는 빠른 사회변화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 역시 많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지지를 잃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정책들을 실행하면서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꼈고, 노무현 정권이 '급진적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지만, 새누리당이 가진 여러 문제점은 보수라는 단어와 상관이 별로 없습니다.

좌파/우파는 더더욱 말이 안 됩니다. 민영화 정책은 우파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다른 정책인 외환시장과 물가에 대한 정부 통제 및 개입, 4대강을 비롯한 대규모 토목사업과 큰 정부 지향정책, 재벌 중심의 경제 체제, 권위주의, 공권력 강화와 언론통제 등은 우파와 상관이 없고, 통제 경제적 측면과 큰 정부는 오히려 좌파에 더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우파 안에서도 상당히 오른쪽인 신자유주의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새누리당은 상황에 따라서는 노인연금과 같은 좌파적인 복지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합니다. 절대로 새누리당은 우파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떨까요? 민주당계는 사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위치를 달리해 왔습니다. 그들 중 민주당이 집권했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의 정책적 움직임은 쉽게 좌파라고 보기 어렵고, 상당히 우파에 가까웠습니다. 지금 현재의 모습은 여러 인물들이 각각 위치를 폭넓게 하여 분포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안희정 등이 내는 목소리는 각기 상당히 다릅니다. 이들을 묶어서 진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새누리당보다 조금 더 왼쪽에 있을 뿐이죠.

한국에서 좌파/우파는 공산주의 북한과의 대립 과정에서, 좌파는 공산주의라는 딱지가 붙었고, 그게 그대로 내려와 북한과 친하면 좌파, 북한에 반대하면 우파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적대적인 새누리당이 우파와 보수의 이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실제 움직임은 서구에서 정립된 우파/보수 이미지와 많이 다르며, 서구 정치 구도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진보 프레임"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새누리당 대 새정치민주연합 (혹은 범 야권 전체)로 이루어지는 대한민국의 정치 구도를 진보와 보수의 대결, 혹은 좌파와 우파의 대결 구도로 인식하는 일입니다. 당신이 좌파를 선하고 우파를 악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기득권층을 비난할 때 새누리당이라는 단어 대신 보수 혹은 우파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이 프레임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쓰는 사람은 별 문제를 못 느끼지만, 이 프레임은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보수 및 중도층을 야권에서 밀어내면서 야권 결집을 어렵게 만듭니다.

위에 말한 것처럼 비록 한국의 야권 정치인들이 종북 성향이 없다고 해도, 한국에서 오랜 동안 좌파/진보 = 북한이었기 때문에, 진보 프레임은 간접적으로 종북 프레임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급진적 성향이 있었던 노무현 정권에 대해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 통합진보당 사태를 분명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진보라는 단어 그 자체에도 반감을 가집니다. (좌우 구분으로는 노무현 정권은 중도에 가깝지만 보수/진보 구분으로는, 적어도 사람들이 가진 이미지는, 진보 내지는 급진입니다.)

그 외에 보수라는 단어 자체에서 안정감을 갖고 진보라는 단어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40-50대의 보수성향은 단순히 부동산, 뉴타운과 관련된 새누리당의 장밋빛 공약과 중년층의 탐욕으로 인식해서는 안됩니다. 나이가 들고 가장이 되면, 더군다나 한국에서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복지 시스템이 약한 나라에서는, 정치적인 급격한 변화에 대해서 대단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뭔가 들어엎어야 할 것 같은 진보 쪽의 분위기에 불안감을 느끼기에, 새누리당이 싫어도 안정적인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보 프레임에 걸려 있는 워딩을 쓸 때마다, 새누리당이 아닌 보수와 우파를 비판할 때마다, 진보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야권에서 멀어져서 정치 무관심층 내지는 새누리당 지지로 이동합니다. 현재 정권에 대한 문제 의식의 출발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진보/보수의 선상에서 문제의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언급한 민주주의 후퇴 등등에 문제의식이 있다면, 지금 상황을 진보/보수의 구도로 보는 생각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강준만이 싸가지없음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던짐으로써 '친노 프레임'에 영향을 주는 일부 소수 극성 야권 지지자들에게 "당신들이 진짜 문제다!"라는 돌직구를 던졌다는 것에 저는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어떤 방식이 되었든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진중권은 이 문제에 대해 컨텐츠, 기획력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진중권도 싸가지를 갖춰야 할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치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컨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그냥 여당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여 논쟁 자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제가 이야기했던 비전 이야기와 같습니다. http://ppss.kr/archives/25451

문제의식의 토대를 전환하여 일상의 정치로 돌아가자는 이택광 교수의 이야기는 대립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문제의식의 토대를 전환하고자 하는데, 저는 이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의 제일 근원적인 출발은 진보 대 보수의 구도 자체를 벗어던지는 데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즉 진보의 방향성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며, 통합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바라보는 사람도, 또다른 '진보의 내분'으로 보여지지 않도록 자제한다면 상당히 발전적인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크게 나누어 "일부" 안철수 지지자와 "일부" 문재인 지지자의 상호 비아냥과 비난은 물론,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해 날선 반응을 보이는 행동이 "싸가지없음을 청산하자"는 기치 아래 자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삿대질하는 분위기를 가라앉힌 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발전적인 논의를 하고, 여기에 진보 대 보수의 구도를 넘어서 여권, 새누리당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폭넓게 종합한다면, 충분히 야권의 재집권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여권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분명히 충분히 많기 때문입니다. 야권이 지리멸렬해서 그것을 놓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마다 현 정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문제점의 출발은 권위주의와 공권력 신뢰 붕괴, 언론 통제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입니다. 다른 문제도 많겠지만, 우선 정치 혐오를 벗어나 모든 문제를 열린 위치에서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해결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를 갖추는 게 먼저 아닐까요? 그러한 절차가 갖춰진 다음 진보와 보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상호 비난을 중단하고, 진보 대 보수의 구도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글자 수 줄이기를 좋아합니다. 새정치연합에 대해서 새정연이라 부르느냐 새민련이라 부르느냐 말이 많아던 것처럼 말이죠. 그래도, 새누리당은 당명 내지는 기득권층으로 불려야지, 그들과 별 상관없는 보수, 우파로 부르는 것은 말 좀 편하게 하는 대가로 새누리당의 집권에 엄청난 도움으로 주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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