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2일 월요일

위기의 탈북 청소년이 세상과 맞선 2가지 정공법




경북기능경기대회 금형부문 금메달 수상자 오경일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수는 2만 5천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초중고 청소년들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이 확립되는 때임을 감안한다면, 이 시기 탈북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의 문제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호에서 만난 오경일 학생이 보여준 도전과 응전의 기록은 ‘정답지’는 아닐지라도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국기능경기대회 준비로 더위 잊어
취재진이 구미시를 찾은 날은 경북 지역이 기상 관측 이래 최고 낮기온을 연일 갈아치우며 기록적인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8월 중순이었다.
경북서북부하나센터 직원들과 함께 취재진을 반겨준 오경일 학생. 자그마한 키에 수줍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그는 얼핏 내성적일 것 같은 인상이다.
하지만 성급한 판단은 금물. 수줍은 자기 소개 이후, 고심 끝에 선택한 자신의 진로와 의지를 피력할 때는 소신에 가득찬 어른스러운 모습이었고, 학우들과 쌓아가는 우정과 학교생활을 이야기할 때는 여느 또래에서 볼 수 있는 재기발랄함도 엿볼 수 있었다.
현재 ○○공업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그의 이름 석자 앞에는 최근 새로운 수식어가 생겼다. 경북기능경기대회 금형부문 금메달 수상자라는 타이틀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4월 개최된이 대회는 해마다 열리는 전국기능경기대회의 지역 예선전 성격을 띠는 대회로, 올해에는 총 44개 부문에 6백여 명이 참가했다. 오경일 학생 은 이 대회 금형 부문에 3명의 같은 학교 학생들과 나란히 참가,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공고가 대회 종합우승까지 차지함으로써 기쁨은 배가 되었고, 그의 수상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회 첫 도전에 금메달을, 그것도 탈북학생으로서의 수상은 물론 참가 이력조차 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고교 입학 전까지, 더 정확하게는 남한에 오기 전까지 ‘금형’이란 단어조차 들어본 적 없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2011년 1학년에 편입한 후에 당시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기능반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금형을 지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금형설계부터 배웠는데 다른 애들은 도면해석이어렵다고 하는데, 저는 도면만 봐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해 적성에도 적합한 분야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북한과는 달리, 여러가지 기회가 주어지는 이곳의 교육환경이 제 적성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1마이크로미터(0.001mm)의 오차와 씨름해야 할 만큼 정밀하고 섬세한 작업을 요하는 금형의 특성은 꼼꼼하고 차분한 그의 성격과도 찰떡궁합이었다.
지역대회 수상자에게 부여되는 메달과 상금, 그리고 ‘금형 기능사’라는 국가 기술자격증도 감사했지만, 자신감은 물론 도전할 수 있는 다음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 이번 대회가 그에게 남겨준 더욱 값진 선물이다.
경북지역 대표로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그의 일상은 대회가 시작되는 9월 말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름방학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 기숙사와 컴퓨터 및 각종 기계들이 즐비한 실습실을 오가며 실습에 또 실습.
늦은 밤에도 불이 켜져 있기 일쑤인 실습실에서 그를 포함해 전국대회를 준비하는 학우들이 내뿜는 열정은 한여름 밤의 열기와도 맞먹을 기세란다.
“전국대회 목표요? 그야 당연히 금메달이죠. 하하. 사실 지역대회 출전 전에는 두렵기도 했었는 데, 막상 실전을 경험해보니 별로 떨리지도 않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전국대회에서 결과가 좋으면 국제대회에도 나갈 수 있거든요. 제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 보고 싶어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있기에 조급하지는 않다.
그를 맨처음 기능반으로 이끌었던 ○○공업고등학교 이○○ 지도교사를 비롯해, 끝없이 반복되는 실습으로 행여 지칠라치면 운동장을 함께 구르고 달리며 서로를 북돋워주는 ‘친구’가 된기능반 학생들, 그리고 늘 동생처럼 아끼며 사회생활에 유익한 조언을 들려주는 하나센터 식구들까지. 그에겐 평생의 인연이자 감사한 이들이다.
‘기술’에서 길을 찾다
오경일 학생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지난 2010년이다. 9년 전 탈북하여 이미 국내에 정착한 어머니가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열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행방도 모른 채 생이별을 해야 했던 그는 5년이 지난 뒤에야 한국땅에서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자 상봉의 기쁨도 잠시, 그 역시 처음 몇 개월간은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며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처음부터 순탄할 리가 없었다.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이곳 학생들과의 학업 차이.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환경 속에서 자란 그들과는 이미 출발선부터가 달랐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정공법은 두 가지. “우선 편입할 때부터 탈북학생이라는 신분을 공개했습니다. 처음엔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나를 숨기면 거짓말할 것들이 자꾸 생길테고, 그러다보면 친구들과 섞이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 다음은 ‘기술’을 선택한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공부는 따라잡을 수가 없더라구요. 하지만 자기만의 고유 영역과 실력만 있다면, 나이나 출신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인정받고 살 수 있잖아요. 굳이 공부가 아니어도 좋고, 기술이 아닐 수도 있어요.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부딪치면서, 자신의 장점을 키울 수 있는 분야를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금메달 수상 후 지역 방송국의 취재 요청도 정중히 거절했던 그가 이번 인터뷰에 응했던 것은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탈북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다.
올해 초 같은 학교 1학년에 입학했던 한 탈북 학생이 결국 자퇴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다는 오경일 학생. 그러고 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목에 걸린 메달보다, 주변의 시선과 학력 차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학교와 사회의 한 일원으로 ‘바로 서기’한 점일 것이다.
유쾌한 인터뷰가 끝나고 이어진 사진촬영, ‘초짜 기능인’의 손을 클로즈업했다. 예상과는 달리 투박하지만 정갈한 손이다. 바짝 자른 손톱은 작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란다.
손바닥에는 기계를 오래 만져서 생겼음직한 굳은살이 군데군데 박혀 있다. 마치 기능인의 훈장처럼 보이는 그의 굳은살이, 이 스무 살 청년이 앞으로도 쉼없이 써 내려갈 도전의 기록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봐도 좋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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