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7일 화요일

지속가능한 발전'은 무엇이고 왜 등장하였으며 한계는 무엇인가?

1987년 부룬트란트위원회의 보고서인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에 제시되어 1992년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회의에서 금후의 인류 공통의 과제로 제시된 '지송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러한 성장과 보전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실마리가 된다.지속하능한 발전은 얼핏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지향하는 듯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성장을 하자는 것이므로 환경적인 파괴를 피하는 것은 곤란하다.브룬트브란트보고서는 경제성장과 산업주의가 세계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보면서 성장을 소생시키고 성장의 질을 변화시킬 것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인간에 의한 개발행위와 환경보전과의 양립가능성에 관한 것이다.그러나 환경과 양립하는 발전영역을 고찰하려는 시도는 문제의 본질이 양립하는 범위와 시간, 즉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는가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문제의 어려움은 어디까지가 지속가능한 발전의 범위이며 어디부터가 죽음에 이르는 개발병인가 하는 명확한 경계선을 긋기 어렵다고 하는 점에 있다.

따라서 과잉개발을 억제하는 경제활동 혹은 '규모의 경제'를 파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물적 한계를 정식화할 필요가 있다.그러나 지속가능성의 본질은 물적인 한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이러한 정식의 배후에 있는 근본적인 사회관계의 본질을 구명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바람직한 목표로서 '지속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그 개념에 대해 갖는 도덕적 확신 때문에 개발과 환경의 모순을 애매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그러나 엄격한 분석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확신만으로는 곤란하다.

부룬트란트보고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미래 세대가 그들의 욕구를 충족할 능력을 저해하는 일이 없이 현재 세대의 욕구를 충족하는 발전'으로 정의하고 있다.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정의라기보다는 하나의 선언에 불과하다.

첫째로, 충족되어야 할 욕구는 문저확, 정치적 맥락에 규정받는다.게다가 우리는 다음 세대가 추구하는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다.둘째는,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와 물질의 불가역적인 소비가 다음 세대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따라서 대기, 물, 토양 등의 변화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세대간 분배의 규칙과 환경비용을 구체화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그러나 그 어떤 것도 '저해하지 않는' 윤리적, 정치적 성질에 관해 설명해줄 수 없다.중요한 것은 기술적 조건이 아니라 '합리적인 균형의 추구'와 '정도'의 문제이다.셋째로, '발전'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많은 불일치를 보인다.과거에는 '사회적, 경제적 발전'이란 불평드으이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경제성장과 동의어로 사용되어 왓다.그런 의미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은 사회적 비용을 보상하기 위한 규제를 수반한 '지속적인 성장'을 말하는 것이 된다.이것은 부룬트란트위원회에서 채택한 '욕구의 충족'이 새로운 경제성장을 요구한다거나 질적으로 새로운 성장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상이한 견해들은 그 용어가 사용되는 문맥이나 일반적 관점의 차이에서 유래된다.일반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그러나 그것을 넘어 생존의 질을 위해 요구되는 것, 예컨대 안전, 자유, 교육, 고용, 여가 등의 사회문화적 욕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사회적, 문화적 변이가 있다.환겨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즉, 환경은 이용한느 사람들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게 된다.따라서 환경변화는 세계경제시스템의 확대나 축소와 불가분한 사회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이런 의미로 개도국의 환경위기는 경제적, 구조적 위기의 산물이다.

김창희 외 4인 공저, 현대사회와 환경(삼우사, 2001), 382~38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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