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3일 화요일

우리나라 맥주의 역사 (1) 한국 맥주의 시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우리나라 맥주는 무엇입니까? ‘All malt beer, 깊은 맛의 클라이맥스’맥스? ‘풍부함의 깊이가 다른’ OB골든라거? ‘내 삶의 짜릿한 순간’카스후레쉬?

음식을 먹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 맛있네, 이건 어디에서 나오는 것으로 만들었지?’

‘이건 어떻게 하면 이런 맛이 날까?’

이러한 생각이 맥주에서도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맥주는 어디서 만들었지? 뭐로 만들었을까? 그러한 고민으로 시작되어 저는 맥주 애호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호기심에 맥주를 찾아 사방팔방을 헤매던 중 유명한 일본의 아사히 맥주나 체코의 필스너우르켈, 미국의 버드와이저, 덴마크의 칼스버그 모두 긴 역사를 자랑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이 맥주들을 보니 그럼 과연 우리나라의 맥주의 역사는 어떠한가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기획하게 된 것이 우리나라 맥주의 역사 입니다. 이를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알아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한국에서 맥주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OB, 하이트진로가 오랫동안 맥주 시장을 장악해왔는데, 이 두 회사가 지금까지 이어온 그 역사를 짚어보려 합니다. 두 번째 1세대 마이크로 브루어리의 태동과 쇠퇴. 2002년 주세법 시행령이 개정된 이후 150여개 업체까지 늘어났었지만, 2013년에는 35개 업체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흥망성쇠를 다루어 볼 것입니다. 세 번째, 크래프트 비어 시대의 시작. 2012년부터 조그마한 움직임을 보이던 이 크래프트 맥주가 2013년에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고, 주세법 개정과 함께 그 성장세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해지는 요즘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1) 한국 맥주의 시작

우리나라에 맥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76년 구한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여 외세에 개항을 하게 되는데, 그 후 서울과 개항지에 일본인들이 거주 및 왕래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삿포르, 에비스, 기린 등 일본 맥주들이 한반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맥주는 물 건너 오는 아주 귀한 술이어서 극소수 부유층-특권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1910년에 일본 맥주 회사들이 서울에 출장소를 내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맥주 한 병 값이 4~5일치 식비에 해당하고 하니 요즘으로 하면 9~10만원 정도일까요? 어마어마한 가격이죠?

1933년 최초로 한반도에 2개의 맥주회사가 들어서게 됩니다. 일본이 군수품으로 맥주를 생산하기 위해서 8월 아사히와삿포르 맥주회사의 전신인 대일본맥주회사가 영등포에 조선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같은 해 12월 기린맥주회사가 영등포에 소화기린맥주를 세우면서 국내에서 맥주생산이 시작되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맥주 양조 공정이 기계화되지 않아서 사람이 효모를 양동이에 담아 지게로 발효통까지 나르고, 맥아즙에 효모가 담긴 양동이를 들이 붓는 형식이었습니다. 이 당시에도 맥주 3상자반이 쌀 1석(144kg)와 맞먹어서 명동이나 무교동 등지의 번화가에서만 소량으로 유통되었다고 합니다.

광복을 맞이하면서 일본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되었고, 두 회사 모두 미군정에 의해 관리되었습니다. 1948년 소화기린 맥주는 동양맥주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합니다. 그러다 1950년 6월 25일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동양맥주는 건물의 40%, 설비 50%가 잿더미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다 1951년 두 맥주 회사 모두 민영화 되게 됩니다.


[조선맥주주식회사 전경]

조선맥주는 동양맥주라는 경쟁자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위세를 떨칩니다. 1962년 국내 최초로 맥주 국외 수출을 시작하였고, 국제 대회에서 상을 받는 등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와 함께 우수한 품질의 맥주를 생산하였습니다.






[크라운맥주 수상동영상]

동양맥주 또한 1963년 맥주 국외 수출을 하게 되지만, 제품의 품질에만 시선을 제한하지 않고 마케팅이라는 측면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TV의 보급과 함께 광고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절, 동양맥주는 ‘OB’의 브랜드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합니다. 맥주 하면 OB라는 인식을 광고를 통해서 알리고, 술집에서 맥주를 주주문할 때 맥주 대신 ‘OB’주세요 라고 주문하는 프로모션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동양맥주는 시장 1위를 탈환하고 그 독점적 지위를 30여년간 유지하게 됩니다. 두 회사가 과점시장을 형성하면서 시장점유율은 동양맥주가 70%, 조선맥주가 30% 정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는 동양맥주가 OB라는 강력한 브랜드와 유통망을 장악하면서 독점논란을 해소하고 조선맥주에 일정 부분을 제공해주어 다른 기업이 시장을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만큼 그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1990년에는 시장점유율이 8:2 정도로 벌어졌습니다.




[OB맥주 광고]

이때 이 구도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 사건이 두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1991년 낙동강 페놀사건과 1993년 진로쿠어스의 맥주 시장 진출입니다. 두 번의 두산 전자 페놀 유출 사고는 사회 안팎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그 파장은 두산 제품 불매운동, OB맥주 불매운동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조선맥주에서 내놓은 것이 “지하 150m 천연암반수”라는 홍보문구를 앞세운 하이트입니다. 이 깨끗하고 청정한 물로 만든 것과 비열처리를 강조한 하이트가 각종 매체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결국 1996년 맥주시장 1위를 탈환하게 됩니다.


[김진명 작가 리즈시절]

1993년 진로가 미국 쿠어스사와 합작하여 진로쿠어스를 설립, 비열처리 맥주 ‘카스(Cass)’를 출시합니다.  ‘젊음’과 ‘톡 쏘는 맛’을 강조하며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나선 것입니다. 기존 소주시장 1위인 진로가 그 유통망을 이용하여 맥주 시장에 뛰어드니, 조선과 동양 모두 위협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동양맥주는 사명을 OB맥주로 변경하고, ‘넥스’, ‘OB 아이스’, ‘OB 라거’등으로 제품군을 다양화하지만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 다시 ‘OB라거’를메인으로 내세워 박중훈을 기용한 광고를 통해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섭니다. 그러나 하이트도 파란색으로 변하는 온도계 마크와 같은 아이디어와 “맑고 깨끗한”이미지를 이용하여 기존의 자리를 방어하게됩니다.


[랄라라 최초버전..이 아닌 그 다음 광고]

이때 예상하지 못했던 외환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모그룹의 자금난과 함께 그동안 쌓아왔던 부채를 감당할 수 없게되자 OB맥주가 1998년 9월 두산그룹과 벨기에 인터브루사의 공동투자 합작회사로 변하게 되고, 1999년 12월 진로쿠어스를 OB맥주가 인수하게 되면서 짧았던 3개 회사 체제 시절이 끝나고 다시 2개 회사 과점 체제로 돌아가게 됩니다.

2000년대 이후는 하이트와 OB가 2006년 6 : 4 정도까지 시장 점유율이 벌어졌다가 지난 2011년을 기점으로 업치락뒤치락 하고 있습니다. OB에서는 카스의 지속적인 성장세에 ‘OB 골든라거”를 출시한 것이 15년만에 1위를 탈환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이트에서는 2006년 맥스, 2010년 드라이 피니시 d를 출시하여, 카스와 OB골든라거를 견제하며 시장 1위를 가져오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덧. 하이트와 OB 그 대형 맥주회사와 일맥상통하는 제 3의 회사. 롯데 맥주가 2014년에 출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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