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4일 목요일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에서


사람은 자기 생존/보호 본능 때문에라도 모험보다는 안전을 택하는 일이 많다. 종교나 교회의 선택에서도, 좀 더 크고 안정된 곳을 선택하는 경향이 우세할 것이다. 이 때문인지 종교 현황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크기로 따지자면, 대익대 소익소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치 지향이니 그 대세를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대형 할인 매장을 두고 좀 더 비싼 동네 구멍가게를 이용하라는 말도 서민들에겐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선택 속에서 정작 작은 이들은 그 작은 것마저도 잃는다.

큰 종교 단체, 큰 교회를 선택하는 것의 속내는 다양하다. 그 다양한 이유를 후려쳐서 그 교회의 구성원들을 싸잡아 비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러나 대형화를 통한 종교의 권력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분들에게는 좀 더 구체적인 선택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비판은 그에 따른 행동의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떤 비판적인 이들은 주류의 대형 교회, 혹은 단체의 조건을 활용하여 전략적인 변화를 모색한다고 하며, 그 안에 남아 있기를 원한다. 그럴 수 있겠다. 그 수고를 응원한다. 다만, 이런 의구심도 가능하다. 그 편만한 대형 교회의 논리와 신학, 행태 안에서 실제로 비판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내 주위의 많은 경험을 듣건대, 거의 불가능했다. 대체로, 지배하는 힘은 그 작은 목소리를 자기 내부 다양성의 표지라는 식으로 역이용한다. 그 작은 목소리 자체는 점차 힘을 잃거나, 그 교회에 남아 있는 유일한 비판의 목소리라 자위하면서 자기변명을 삼기도 한다. 너무 단순화해서 부정적으로 그렸을 수도 있다.

대형 교회 혹은 규모 있는 교회를 선택하는 이유는 아주 많다. 부정적인 것 말고, 긍정적인 여러 사례를 들 수도 있다. 좋은 의미에서 ‘몰아주기를 통한 효율성’이 그 밑을 흐르는 경우가 많다. 큰 교회의 자원에는 고급 인력의 네트워크, 그리고 모아진 힘으로 선한 일을 할 실제 능력이 있다. 그 선한 행동을 헐뜯지 않는다. 다만, 내 편견은 그것들마저 큰 교회의 지배 논리에 종속되어 이용되는 되는데 머문다.

좀 더 비판적인 이들은 이런 교회를 떠난다. 아니, 교회에 진저리를 친지라 교회를 멀리한다. 마음에 종교의 가치를 품고 그리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믿되 교회는 안 다니겠다고 결심하기도 한다. 매우 어려운 결단이다. 이들의 판단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내 아쉬움은 이것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잃은 종교나 교회는 그 지배적인 논리와 행태를 더욱 강고히 한다. 쓴소리가 빠져나가니 자신의 지배적인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극우 대형 교회들이 신자를 늘리게 된 것은 이런 비판의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제거된 일과 무관하지 않다. 그 와중에 정말 믿고 싶은 예수와 복음마저도 그 대형 교회에 의해 조각되어 유포된다.

그렇다면, 어찌하란 말인가? 그 교회에 남아 있어야 하나? 아니면 떠나야 하나? 이 고민 속에서 소수자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잣대로 삼을 이유를 찾는다. 어떤 종교 혹은 교회라도 소수자에 대한 관심과 지향이 주된 곳이라면, 남아 있어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깨끗하게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소수자인 작은 교회에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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