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일 화요일

정치의 소명

정치 역사를 읽다 보면 어떤 목적들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가 하나의 역사적 흐름에 따라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칼 맑스가 그러했고, 그 이전 헤겔과 계몽주의가 그러했다. 세계는 정신의 변증법적 발현(현상, events)이며, 현상은 따라서 기호일 뿐이었다. 사실 그 기호는 최초의 발화점에서 곧바로 뻗어나온 것이었다. 이런 설명이 파다하였다.

1980년대 공산권의 붕괴는 역사의 발전에 대한 믿음을 정면으로 배반했다. 놀랍게도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란 거대한 사기극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흐름'의 결과로 읽으려는 많은 사람들은 - 이러한 해석에 틀림없이 장점과 효용이 있지만 - 그러한 세계관으로 인해서 개인과 사회의 어떤 개별적인 목적 의식을 쉽게 잊어 버리고, 때로 폭력적일만큼 타인의 감정이나 움직임을 무시하려고 한다.

예컨대 운동권 인사들이 보수주의 진영에 대하여 무조건 영혼을 자본에 팔아 넘긴 자로 이해하려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그 누구도 완전한 이념의 결정체가 아니다.어떤 사람도 무슨 '현상'은 아닌 것이다. 세계는 혼잡스러운 각개인. 각개층(strata)의 지극히 혼란스러운 운동이다.

그 운동을 분석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업무이거니와, 그 업무는 결코 흐름을 단순화하는 작업이 아니다.오히려 복잡성을 염두에 두면서, 어디까지나 제한적 시각에서 통찰력을 제시하여 주는 것이다. 이해하기 위한 학문은 언제나 복잡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정면에서 복잡성을 대면하여, 그 일부를 간단히 이해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혼란'은 놀랍게도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다.그 방향성은 마치 강물을 바라볼 때 문득 깨닫게 되는 - 눈을 놀래키는 - '물길'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강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일찍이 지적한대로,그저 흐름이란 하나의 진리에 불과하다. 즉, "모든 것은 흐른다. 가만히 멈춰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명제인 것이다.
유구한 덧없음, 즉 시간의 흐름, 그리고 그에 따른 인간문명의 발전과 쇠락이란
그러한 경향성은 기실 혼돈에 대한 어떠한 설명은 아니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명제일 뿐이다.

'물길'이라 함은, 어떤 집단 의식의 발현 혹은 집단 대화의 소산을 지칭하려고 내가 쓰는 용어이다.강이 물길을 여는 것은, 강의 큰 흐름이 아니라. 수면 아래의 많은 운동이 만들어낸. 그러나 연속적인. 그러한 현상이다.'물길'은 주변과 구분되는 작은 흐름이고, 그러나 강의 흐름 속에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정치성이란, 어떤 개인이나 단체 나아가 사회의 지향성이란 이러한 작고 큰 집단의식의 발현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개인으로서 지도자, 그리고 사회 단체는, 방향을 뚜렷히 가지고 조직을 이끌어나간다.

예컨대 정당이 그러하고, 이해단체, 기업, 각종의 비영리 비정부기관 등이 그러하다. 모두들 어떠한 종류의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극악한 정당이라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의 흐름을 내세우려고 한다. 비록 그것이 '흐름'이 '물길'이 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그러한 '물길'을 무시하지 않길 바란다. 사람들이 물길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강의 도도한 흐름만을 강조해서, 언젠가 강이 바다로 흐른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헤겔주의자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다'가 이른바 '대양'이 무슨 진리의 모음은 아님을 기억하여야만 한다. 바다는 그저 문명의 마지막 도달이고, 그 정체는 쇠락이나 전락일지 모른다. 그것은 무슨 철학적-정치학적 논의의 대상은 아니고, 도리어 문학적-우의적인 논의의 대상이다. 마치 우리 현 사회마저도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가 함께 섞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정치의 소명이란, '물길'을 열려는 긴장감과 노력이다. 사람의 노력은 그 자체로 강을 되돌리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실제 정치란 현상으로 주어진 세계 속에서 어떻게든 독자적인 흐름을 되돌리려는 노력에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부정하여서는, 그러니까 예컨대 '주어진 전쟁' '주어진 비참' '주어진 혁명'이라는 주제에 매몰되어서는 결코, 인간에게 - 이웃에게 올바른 종류의 해답이나 기여를 하여 줄 수 없다고 본다. 주어진 것은 현상이므로, 정치의 소명은 현상을 극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Affectio's Logue
affectio.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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