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1일 일요일

제국의 몰락, 오대의 폭풍 (14) 늑대 이극용, 장안으로 진격하다

당나라를 뒤흔든 황소의 난은 그야말로 스무스하다고 밖에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느 순간에서 이미 끝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혼란은 종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더 심해지고만 있었다.


 이 시점에서 정국의 혼란 상은 요약하여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꼬여 있었다. 이를 몇 가지의 케이스로 나누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① 군벌 세력 간의 다툼. 곧 이극용와 주전충의 대립이나, 양행밀과 필사탁의 대립 등이 이에 해당한다.
② 조정 신하와 군벌 간의 다툼
③ 환관 무리와 조정 신하의 다툼
④ 진종권의 도적 무리에 난립



 당나라 최후반기와 오대 십국 시대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이러한 요소가 모두 복잡하게 꼬여있다. 이들 중에서 가장 단순한 세력은 진종권의 세력이다. 진종권은 장안에서 물러난 황소가 각지를 휩쓸고 최후의 발악을 할때 그에게 항복했던 인물로, 황소가 몰락한 이 시점에서도 여타 세력을 거느리며 각지의 절도사들과 전투를 거듭, 온갖 잔악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 악귀같은 이 세력은 제대로 된 군량조차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그저 사람 시체가 있으면 바로 소금이 있는 수레에 넣어 절여 먹으며 이동하는 것이다. 이 진종권의 세력은 나중에 이르면 아예 제위를 참칭하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치적 요소를 고려할 필요 없는, 일종의 메뚜기 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비록 그 세력이 만만치 않고 여기저기를 휩쓸고는 있으나, 언젠가는 사라질 세력에 불과한 것이다.


 황소 패망 후 주전충은 한동한 이 진종권 세력과의 전투에 여념이 없었다. 주전충은 진종권을 무찌르기도 하고 되려 패배하기도 했는데, 어느 시점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되어 천형절도사 주선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주선은 자신의 사촌동생 주근을 보내 주전충을 도와주었는데, 주전충은 이를 고맙게 여겨 주선과 의형제를 맺었다.


 주전충이 진종권과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동안, 이극용은 진양으로 돌아가 태세를 정비하고 있었다. 주전충에게 큰 곤욕을 당한 적이 있었던 이극용으로서는 주전충에게 본때를 보여주는것이 가장 큰 과제였기에 진양에 머물며 주전충 토벌을 조정에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은 조정이 지극히 공정하니 마땅히 조명을 기다리며 분노한 군대를 어루만지고 억눌러 중지시켜서 돌아왔습니다. 빌건대, 사자를 파견하여 조사하여 책임을 물어 주멸하여 토벌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그러나 토벌군을 요청한 이극용의 의도와는 달리, 조정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너무나 많은 대사건을 겪었던 조정으로서는 '현상 유지' 만이 가장 시급했으므로 또다른 혼란을 초래할 주전충 토벌군의 조직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극용은 포기하지 않고 무려 여덞 번이나 표문을 올려 주전충 토벌을 요청했다.


 "주전충은 공로를 세운 사람을 질투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시기하며 음험하고 교활하여 화를 입힐 도적이니, 다른 날에는 반드시 나라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오직 빌건대, 조서를 내려서 그의 관작을 삭제하시면 신이 스스로 본도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겠습니다."


 이에 황제 희종은 환관 양복공을 보내 좋게 이극용을 타이르려 했다.


 "나는 깊이 경의 억울함을 알고 있으나, 지금은 일이 많소."


 이극용은 조정의 이런 반응에 크게 실망했고, 대단히 불쾌해 했다. 이 시점에 이르러 조정은 이미 번진의 통제력을 모두 상실하여 최소한의 중재도 불가능해졌던 것이다. 바로 이때부터 각지에서는 모두가 힘만을 추구하며 격돌을 벌이기 시작했다.






 제국의 전역에서 군웅들이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정의 실력자는 다름 아닌 환관 전령자(田令孜) 였다.


 당나라 말기의 환관이란 그 사악함이 절정에 다다른 존재들로, 그들의 음침한 손은 조정 구석 구석 어디에나 다다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전령자는 이러한 수많은 무리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여러 환관들 중에서도 특별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은, 황소의 난 당시 희종의 몽진을 주도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특수한 권력을 손아귀에 넣은 전령자는, 이후 군사적인 힘에도 매달리게 되었다.


 환관은 권력의 기생충이다. 그들은 권력에 빌붙어 자신들의 배를 채우지만, 권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 점에서 그들은 실질적인 군사 세력이 있는 지방 절도사들에게 밀리는 면이 있으며, 특히나 군사적인 힘이 중요한 국가 교체기에서는 더욱 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지는 약점들이 있었다. 전령자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군사력을 가진 세력과의 연결을 꿰했는데, 그런 전령자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신남서도유후 녹안홍이었다. 다만, 전령자가 주의 깊게 살피는 대상은 녹안홍 그 자체는 아니었다. 녹안홍이 거느리고 있던 세력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녹안홍의 부하 중에는 왕건・한건・장조・진휘・이사태 등이 있었는데, 평소에 시기심이 많았던 녹안홍은 이들을 경계하고 있었던 참이다. 특히 왕건과 한건은 서로 사이가 친밀했는데 녹안홍이 자신들을 경계하면서도 겉으로는 잘 대하는 듯 하자, 오히려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녹안홍이 달콤한 소리로 우리를 후대한다고 말하지만, 기실 우리를 의심하는 것이니 곧 화가 닥칠 것이오."


 조심스레 이 상황을 지켜보던 전령자는 이들을 유혹해서 자신을 따르게 하고, 역으로 녹안홍을 쫒아버리게 했다. 이렇게 되어 일종의 군사 세력을 얻은 녹안홍은 왕건 등의 주요 인물등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아 군사 세력을 만들고, 이러한 부대를 수가오도(隨駕五都)라고 불렀다.


 수가오도를 손에 넣은 전령자는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이 무렵에 되자 황제인 희종마저 전령자에게 통제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기에, 희종은 남 몰래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전령자에게도 걱정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병사들의 급료 문제였다. 이 무렵 각개약진을 거듭하고 있었던 절도사들은 저마다 조정과의 연계 자체를 끊어버리고 지방에서 조정으로 물건을 보내지 않았으며, 당나라 조정이 세수를 거둘 수 있는 지역은 극히 한정적이 되었기에 조정에 있는 병사들의 급료를 지급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사졸들은 불만에 가득차 있었다. 역사적으로 급료 문제 때문에 불만이 가득한 병사들의 반란 사태는 꽤 빈번한 일이었기에, 전령자 역시 이를 어떻게 해결 해야 할지 크게 고민해야만 했다.


 그런 전령자의 눈에 보인것은 다름 아닌 염전이었다. 안읍과 해현, 두 연못에서 나는 소금은 일찍이 국가에서 관리를 두어 전매제를 실시함으로써 재정에 보탬이 되도록 했던 소금들이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 이르러 이곳의 염전은 황소 토벌에 공을 세운 하중 절도사 왕중영의 통제 아래 있었다. 왕중영은 해마다 소금 3천 수레를 조정에 바치고 있었다.


 그러나 한푼이 더 아쉬운 전령자는 급하게 왕중영의 염전을 모두 조정의 염철사에 귀속시켜버렸다. 이권을 빼앗긴 왕중영은 격분하여 장문의 항의문을 조정에 보냈는데, 양측의 분위기가 애매해지자 전령자는 수차례 하중에 사람을 보내 왕중영의 동태를 살피게 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전령자의 양아들인 전광우도 있었다. 왕중영은 전광우를 아주 후하게 대접했지만, 전광우가 몹시 거만하여 하중의 병사들은 전광우의 여러 만행에 이를 갈게 되었다.


 결국 참다 못한 왕중영은 전광우를 잡아 그의 무례함을 나무랐는데, 같이 있던 감군이 간신히 설득하여 전광우는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온 전광우가 양아버지 전령자에게 이 소식을 전한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되자 전령자는 왕중영의 치소를 아예 다른 곳으로 옮기는 지시를 내리게 된다.


 왕중영은 나름대로 장안 수복에 공을 세운 인물이었지만, 이렇게 전령자의 배척을 계속 받게 되자 새로 명을 받은 임지로 부임하지 않고 조정에 사람을 보내 전령자의 죄상을 고발하는데 여념이 없게 되었다. 이에 전령자는 전령자대로 빈녕절도사 주매, 봉상절도사 이창부와 관계를 맺고 이에 대항했다. 왕중영 혼자서 이러한 연대를 꺠부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므로 왕중영 역시 자신의 편을 구해야 했는데,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저 사타의 이극용이었다.







 왕중영이 이극용에게 손을 내민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기실 주매와 이창부는 주전충과 연대가 있는 세력들이었으므로, 왕중영의 입장에서 보자면 주전충과 원수가 되었다고 알려진 이극용에게 손을 잡자고 권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극용은 조정의 주전충 토벌에 전혀 협조하지 않은 일로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기에 기꺼이 왕중영과 협력하게 되었다.


 다만 양측의 손을 잡자는 것에는 동의 했으나,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이느냐는 의견이 갈렸다. 이극용은 당연히 원수인 주전충을 먼저 쓸어버리자고 주장했다.


 "내가 먼저 주전충을 멸망시키기를 공이 기다리면, 돌아가서 저 쥐새끼들을 가을의 낙엽처럼 쓸어버릴 것이오."


 그러나 왕중영은 난색을 표했다.


 "공이 주전충을 멸하고 돌아올 때를 기다린다면 나는 이미 저들의 포로가 되어 있을 것이오. 먼저 저 악한들을 제거하는 것이 좋고, 이후 물러나서 주전충을 잡는다면 일이 쉬울 것이외다."


 이에 이극용은 조정의 일에 우선 집중하기로 하고, 일단은 사람을 보내 주매와 이창부를 탄핵하였다. 자신은 군사 15만을 모았으며, 기필고 저 간적들을 토벌할 것이니 조정에서는 저들을 죽여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군대를 돌려 주전충을 토벌하러 이동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비록 표문의 어투 자체는 공손한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조정을 협박하는 표문이었다. 이에 희종은 사자를 끝도 없이 파견하여 이극용을 달래려 하였다.


 그런데 이 무렵, 이극용으로부터 '제거해야 할 대상' 으로 지목을 받은 주매는 이왕 이렇게 된것, 조정이 적극적으로 이극용 토벌에 나서기를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극용의 악명을 더 늘려놓을 필요가 있었는데, 주매는 수도의 곳곳에서 불을 지르거나 경비원을 찔러 죽이는 등의 테러 행동을 자행하고는, 사실 이는 모두 이극용이 한 짓이라는 소문을 흘렸다. 이에 장안에서는 불온한 늑대무리들에 대한 무려움과 온갖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전령자는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주매와 이창부, 신책군, 그 외 기타 여러 군대를 모두 합쳐 도합 15만이라는 대단한 숫자의 군대를 조직하여 우선 왕중영 토벌에 나서게 했다. 이 15만의 군사들 중에 실제로 전투에 나선 병사들이 어느 정도 숫자일지는 알 수 없으나, 여하간 대단한 숫자임은 분명하기에 왕중영은 수비군을 조직하는 동시에 곧바로 이극용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왕중영은 주매 등과 대치하며 한달 가량을 버텼다. 그 이후 군대를 조직한 이극용이 전쟁터에 나타났고, 이극용의 사타 군단은 괴물같은 힘으로 단번에 전황을 뒤집어 주매와 이창부를 대패시켰고 이후 기세를 타고 진격하여 수도 장안을 압박했다. 전령자는 황제 희종을 데리고 또다시 서진을 거듭했으며, 과거 장안을 점거한 황소를 쫓아내는데 일등공신이었던 이극용은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승리자로서 장안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미 파괴의 상흔이 가득한 장안은 이 과정에서 또다시 넝마가 되었다.


 장안 함락이라는 일대 사건을 저지른 이극용은 장안에 오래 머물지 않고, 다만 전령자의 주살을 요청하며 곧 자신의 본거지인 태원으로 군대를 이동시켰다. 이때 전령자는 황제인 희종을 한중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희종이 말을 잘 듣지 않자, 그를 납치하여 보계로 끌고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천하에서 전령자의 평판은 좋지 못했는데, 이 사건 이후로 전령자의 평판은 가히 최악이 되었다. 자신들과 손을 잡고 있던 전령자가 이토록 악명을 떨치는데다, 이극용의 무서움을 똑똑히 꺠달은 주매와 이창부는 이극용의 적대하는것을 멈추고, 대신 오히려 군대를 이끌고 천자를 습격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명목상의 적은 당나라 황제가 아니라 그의 옆에 있는 전령자였지만, 이 과정에서 황제인 희종도 크나큰 수난을 당해야 했다.


 보계에 머물던 희종은 군대의 전투 소리가 행궁에까지 들려오자 또다시 전령자에게 끌려 보계를 떠나게 되었다. 이때 보계의 거리는 몰려드는 적군과 적을 막기 위해 나서는 군인, 도망치는 백성들과 이 혼란 와중에 한 몫을 잡으려는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차 황제의 수레마저 앞을 나설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때 왕건은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간신히 길을 뚫고 나갈 수 있었고, 천자의 행렬은 보계시 서남쪽의 산을 지나게 되었다.


 산으로 들어갔을 때 마저도 적군의 추격은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산에 있는 잔도가 적의 불길을 받고 무너지기도 했으며, 황제는 밤 중에 판자 아래에서 임시로 만든 잠자리에서 누워, 자신의 옆에 있는 왕건의 다리를 베고 간신히 잠을 청할 정도였다. 추격군은 여러 곳의 험한 곳을 목책으로 끊어버렸기에 황제 일행은 좁고 험한 산골짜기를, 그것도 군대의 추격을 받으면서 간신히 이동해야만 했다.


 이러한 행렬 중에 황실의 일원이었던 사양왕 이온은 미처 황제를 따라잡지 못했고, 주매에게 붙잡혀 봉상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그런데 양왕을 손에 넣은 주매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기왕 전령자를 추격해서 잡지 못했으니, 차라리 아예 새로 황제를 새우자는 것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어 아직 당나라 황제가 살아있는데, 또다른 당나라 이씨가 황제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제국이 붕괴되어 가면서 황제의 권위도 땅바닥에 떨어져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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