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5일 금요일

제국의 몰락, 오대의 폭풍 (13) 고변과 황소의 죽음


 광릉으로의 출진은 양행밀에게 있어서 기회라고 할만 했다. 여주의 모든 병력을 거느린 그는 화자 자사 손단에게 병력까지 빌려 수천의 군대를 이끌고 천장까지 진군했다. 천잔이라고 한다면, 과거 고변의 실책으로 황소가 포위망을 돌파하여 낙양으로 진군하게 했던 바로 그 지역이다.

 이때 광릉에서 필사탁 등에게 쫒겨난 도사 여용지는 남은 무리들을 이끌고 회구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 지역에는 필사탁의 무리인 정한장이 남겨놓은 군사가, 정한장의 부인에 지휘아래 버티고 있었던 참이었다. 여용지는 회구를 끊임없이 공격했지만 결국 함락에 실패했고, 마침 양행밀이 군단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자 이것을 기회라고 여겼는지 양행밀에게 항복했다. 양행밀은 이 사악한 사이비 도사에 대해 나름의 생각이 있었지만, 일단 급한것은 광릉성에 진입하는 일이었으므로 한동안 여용지에게 손을 대진 않았다.

 멀리서 달려오는 양행밀의 군단과는 달리, 광릉성을 장악하고 고변을 억류한 필사탁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필사탁을 도와준 장신검은 정변에 협력한 대가로 일단의 재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필사탁이 재물을 바로 주지 않고 시간을 끌자, 격분한 장신검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양행밀에게 귀부해 버리고 만다. 여기에 더해 근처의 몇몇 군사 세력들도 양행밀에게 붙게 되면서 당초 수천이었던 양행밀의 군사는 1만 7천명이 넘는 상당한 세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필사탁을 도와주는 세력이라고 한다면, 광릉성 함락 과정에서 힘을 보태준 선주 절도사 진언 정도가 있었다. 그러나 진언도 아무런 뜻 없이 필사탁을 도와준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광릉성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성을 닫고 실질적인 통제력을 행사하며 양행밀로부터 성을 수성할 뜻을 보였다. 이때의 상황을 보자면, 필사탁은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 확인 할 수 없지만 사실상 진언의 객장이나 다름 없는 신세가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어찌되었건, 그 진언은 필사탁에게 명령하여 병사 8천을 이끌고 성을 나가 양행밀과 교전하도록 했다. 그러나 양행밀도 여간내기가 아니였기에 필사탁은 대패했고, 그가 이끌고 갔던 병력도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참담한 결과에 직면하고 만다. 이렇게 되자 광릉성은 곧바로 포위되어 외부와 연락이 끊어졌고, 땔나무 조차 할 수 없어 성 내는 빠른 속도로 피폐해져갔다. 식량 사정이 절망적으로 변하자 결국 병사들은 사람을 잡아 먹으며 버티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민 하던 진언은 이판사판 한번 승부에 명운을 걸어보기로 결정했다. 그는 필사탁과 정한장을 시켜 병력 1만 2천여명을 모두 내보내게 하여, 성 밖에 진을 치고 버티게 했다.

 1만 군대의 천막은 몇 리에 걸쳐 이어진 모습은 상당한 기세라 할만 했다. 그러나 양행밀은 되려 적군을 눈 앞에 두고 천막 안에서 편안하게 누워 여유를 부리는 배짱을 보였다.


 "도적 무리가 가까이 오거든, 그때 나에게 알려라!"


 물론 양행밀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몸은 누워서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어도, 귀는 크게 열어놓고 수하들의 의견을 경청했던 것이다. 아장이었던 이종례는 일단 수비에 전념하자는 의견을 내었다.

 "아군이 적어 적을 상대하기에 어려우니, 마땅히 성벽을 단단히 해서 수비에 전념하고, 천천히 군대를 회군시킵시다."

 그러나 이 제안은 또다른 장수 이도의 격렬한 반대에 부딫혔다.


 "우리는 옳은 것을 따라 반역자들을 토벌하려고 하는데, 어찌 많고 적은 것을 논하는 것이오? 대군이 이곳에 이르렀는데 떠나려 한다면 장차 어느 곳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오! 나 이도가 바라건대, 거느리고 있는 부대를 이끌고 선봉에 서서 적을 공격하겠으니, 약속하건대 공을 위하여 반드시 저들을 깨트리겠습니다."

 수하들의 의견을 모두 들은 양행밀은 그 중 어느곳도 바로 따르지 않았다. 대신 영채의 한 곳에 비단, 금, 쌀 등 온갖 보물과 재화를 모아놓고 이 귀중품들을 부대 내의 약졸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는 이상한 배치를 하기 시작한다. 배치를 끝낸 이후, 양행밀은 직접 1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1만이 넘는 적을 향해 진격하여 한참동안 전투를 치루었다.


 그러나 양측의 전력이 10배가 넘는데 제대로 상대가 될리 만무했다. 한참 싸운 양행밀은 곧 도저히 못 당하겠다는 등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를 따라 적군이 추격해 왔는데, 양행밀을 쫒던 부대는 재화가 모인 영채, 또 그 영채의 수비가 대단히 허약한 것을 보자 참지 못하고 영채에 진입하여 보물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때, 양행밀이 미리 숨겨두었던 정예병들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등장한 군단은 혼란에 빠진 적군을 무자비하게 참살했고, 이에 적들은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그 시체가 10여리에 가득하였으며, 지휘관인 필사탁과 정한장은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돌아가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진언은 그 이후로 감히 광릉성 밖으로는 군사를 내보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딱하게 된 것은 고변이다. 감금 상태였던 고변은 진언이 공급해주는 양식을 받아먹는 처지였는데, 전황이 시시각각 약화되면서 공급되는 음식과 생활품의 양도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직 고변 주변에는 그를 따르는 가족이나 측근들이 꽤 있었지만,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허리에 차던 가죽 허리띠를 삶아먹거나 서로를 잡아먹는 참혹한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필사탁 등이 자주 패하자 진언은 고변이 성 밖의 양행밀과 내통하여 이쪽의 정보를 알려주고 있는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가지 하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요망한 비구니 한 사람은 진언의 귀에 이러한 소리를 떠들어 대었다.


 "하늘의 28수 중 양주 쪽에서는 큰 재난이 있을 것인즉, 반드시 한 사람의 위대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기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진언은 그 위대한 사람을 '고변' 으로 해석하고, 고변을 죽여야 자신의 처지가 나아지리라는 전혀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진언이 보낸 군사들로 인하여 대군웅이었던 고변은 참살되었고, 그의 아들, 동생, 생질들은 아이, 어른 구별 할 것 없이 모두 살해되어 한 구덩이에 묻히는 처참한 꼴이 되었다. 성 밖에 있던 양행밀은 이 소식을 듣자 재빨리 흰색 소복을 입고 하늘을 향해 사흘 동안 통곡하는 퍼포먼스를 취했다.

 이러한 포위는 무려 반년간이어나 이어졌다. 그 사이 광릉은 완전히 지옥도가 되어, 쌀 1두 값은 50민이나 되었고 풀뿌리나 나무열매마저 모두 없어졌으며, 사람들은 진흙으로 떡을 만들어 먹었지만 그나마도 먹지 못해 죽은 사람이 절반을 넘을 지경이었다. 병졸들은 사람을 노략질해서 그나마 있는 음식들을 모두 빼앗았고, 마음대로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채찍질하는 것이 마치 양이나 돼지를 잡아 죽이는 듯 했다. 그들을 이끌던 진언이나 필사탁 마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병사들의 행패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마땅히 이들을 통제할 방법 조차 없었다.

 기실 그 두명은 날이면 날마다 서로 만나 어찌해야 할지 고민만 하며 한숨을 내쉬던 처지였다. 다만, 포위가 너무 오래되다보니 포위를 유지하던 양행밀 역시 적잖은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이리하여 양행밀도 돌아갈 것을 생각하던 중, 양행밀 휘하에서 조용히 있던 여용지가 선수를 쳤다.

 887년 10월 29일, 그 날은 바람과 비가 끊임없이 내리던 날이었다. 이 혼란한 틈을 타 여용지는 휘하의 부장을 시켜 300명의 군사가 몰래 광릉성의 서쪽 해자로 가도록 했고, 성을 지키던 사람들이 교대하는 틈을 타 침투하게 하여 결국 성문의 빗장을 여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반년을 기다렸던 양행밀의 1만 5천 군사들은 성 내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 시점에 이르러 진언과 필사탁은 요망한 비구니 한 사람의 말에 의지하고 있었던 처지였다. 이 두명이 비구니에게 이제 어찌해야 하느냐고 묻자, 비구니는 현명한 대답을 내놓았다.

 "달아나는 것이 최고의 계책입니다!"

 결국 그들은 저항을 포기하고 성 밖으로 달아났다. 광릉에 입성한 양행밀은 고변과 그의 가족들의 장례를 치루어주고, 너무나 굶어 사람 꼴이라고 조차 할 수 없게 된 광릉성의 주민들을 구휼하였다. 양행밀은 스스로 회남 유후를 참칭했다. 이제 양행밀에게 남은 문제는 가지치기 였는데, 자신에게 항복한 장신검이 배신할까 염려한 양행밀은 장신검과 그의 병사 700명을 모두 죽이는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고변의 장례를 치루면서도 몇몇 고씨의 장수들도 학살하는등 난세의 교활한 군웅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때, 고변을 타락시켜 패망하게 했던 여용지는 양행밀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행밀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여용지를 한번 꾸짖은 양행밀은 곧바로 형틀에 매달고 이 사악한 도사를 고문하여 죄르 실토하게 했으며, 고변을 암살하려 했었다는 것을 그 입에서 털어놓게 한 다음 허리를 잘라 죽여버렸다. 그러자 여용지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그 시체로 달려와 살을 도려내어 죽였으며, 여용지의 가족과 무리들도 모두 학살되었다.

 또한 여용지와 더불어 해악을 끼친 도사 장수일도 양행밀을 미혹시키려고 선단을 제조하려 한다는 둥 하면서 군부에 발을 넣으려고 하자, 양행밀은 화를 내며 이들을 죽였다. 도망간 필사탁과 진언은 손유(孫儒)에게 죽임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되어 고변의 몰락과 양행밀의 부상은 대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무렵에는 어느정도 입지를 갖춘 주전충은 양행밀의 이러한 세력 확대를 보고 내심 그를 치려 할 생각도 있었으나, 지금의 형세로는 결판이 쉽게 나지 않겠다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는 오히려 양행밀을 조정에 회남 유후로 추천해주었다.


 




 대세력 고변이 완벽할 정도로 처절하게 몰락하는 동안, 한때 60만의 병력으로 대당제국의 수도 장안을 함락한 황소 역시 비참한 몰락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극용 등에게 수차례 패배한 황소는 이제 조정에 항복한 과거의 최측근 상양에게 쫒기며 도망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도주 중에 무리들도 모조리 흩어지게 되자, 황소의 생질이었던 임언(林言)은 황소와 그의 처자의 죽여 머리를 베어버렸다. 중국 전역을 뒤흔들었던 인물이 이토록 비참하게 참살된 것이다. 임언은 이 수급을 가지고 감화절도사 시부(時溥)에게 투항하려 했으나, 도중에 사타의 박야군(博野軍)을 만나 죽임을 당하고 수급 역시 빼앗기고 만다.


 황소의 패망을 확인한 절도사 시부는 그 수급과 남은 황소의 첩들을 찾아 황제인 희종에게 바쳤다. 비록 황소의 첩들이었다고 하지만, 사실 이 여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장안에서 높은 벼슬을 하던 집안의 자녀들이었으며 한명 한명이 고관대작의 집에서 아가씨 취급을 받던 소녀들이었다. 이들을 처벌하게 되자 황제인 희종은 직접 자리에 나서 그녀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모두가 공훈을 세워 높은 벼슬을 했던 집안의 자녀이고,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도적을 좆았는가?"


 그러자 끌려온 희첩들 중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있었던 여자가 대답했다.


 " 미친 도적이 흉악하게 역적질을 하는데, 국가는 백만이나 되는 무리를 가지고도 종묘를 지키지 못하고 파, 촉으로 도주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도적을 막을 수 없었던 일을 한 여자에게 책임을 지우려 하시는데, 공경과 장수들은 어느 곳에다 두셨습니까?"


 대답할 말이 없어진 희종은 이 여자들을 모두 저자에서 육시(戮屍) 하여 죽이라 명령했다. 귀하게 살던 소녀들은 모두 저잣거리로 끌려와 찢겨져 죽을 운명이 되었는데, 이들을 동정한 사람은 앞다투어 그들에게 술을 건네 주었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여자들은 모두 슬프고 두렵고 억울해서 정신을 잃도록 취하였지만, 희종에게 일갈을 했던 한명의 여성만은 홀로 술을 마시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으며, 형장에 이르렀어도 정신과 모습이 경건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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