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2일 월요일

나는 여러 명을 사랑합니다

디올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담론이 크게 존재하지 않는 폴리아모리에 대한 글은 오로지 저의 생각으로만 쓰였다는 것을 알립니다. 다른 폴리아모리스트들을 포함하지 않으며, 논리상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폴리아모리는 아직 저도 계속 생각해 나가고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연애 정상성: 나는 폴리아모리를 지향한다

"연애하자!"라고 말하는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나와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 것' '무슨 일이 있을 때 연락할 것', '갑자기 연락이 끊기지 말 것', 그리고 '나 이외에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지 말 것' 등 "연애하자!"라는 말로 이 수많은 약속을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사회가 연애에 정상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리아모리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연애 정상성 중 하나인 ‘1:1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랑 사귀고 있는 것은 아닌데 썸을 타는 사이에 데이팅 어플을 통해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그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싫지는 않다. 하지만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내가 썸을 타고 있을 때 이 사람들의 연락을 받아선 안 되는 것일까?’ 이런 압박을 느끼는 것은 썸을 타는 사람과는 연애를 바라보고 있고, 연애는 1:1로 해야 한다는 정상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친구는 “나는 한 사람만 사랑하지 않고, 누구랑 사귈 때 다른 사람이 좋아지기도 하는데, 이런 내가 너무 미워”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도 사랑하는 자신 때문에 자신을 혐오하는 것은 분명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애인에게 ‘다자연애’를 제안해보라고도 말하지만 “어떻게 그래? 미쳤어?”라고 말할 정도로 사회에서 다자간 사랑을 인정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연애는 ‘당연히’ 1:1로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아직도 누군가는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을 혐오하거나, 애인을 속이고 바람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은 항상 다방면으로 존재했다. 여기서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중요하다. 나에게 사랑이란 행복한 감정을 주는 존재에게 느끼는 두근거림이다. 이런 나의 사랑의 관점으로 보면 나는 '인간'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때로는 인간보다 비인간 생명체에게 더 큰 사랑을 느끼곤 한다. 한 나무를 사랑하기도, 집에 있는 바퀴벌레를 사랑하기도 한다. 이런 나의 사랑은 당연히 여러 존재에게 흐른다. 나무를 사랑하면서 바퀴벌레를 사랑한다. 인간을 사랑할 때도 같다. 저 남자를 사랑하면서 저 여자를 사랑한다. 이때 들려오는 말은 대부분 일관된다. "A를 사랑하고 있을 때 B도 사랑하게 되면, A에 대한 사랑이 줄어드는 것 아니야?" 아니다. 나무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해서 바퀴벌레에 대한 사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해서 그 여자에 대한 사랑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 이외에 다양한 존재를 사랑했기 때문인지, 사람을 순위적으로 사랑하거나 한 존재만 사랑하는 것으로 사고하는 건 나에게 있어서 매우 어색했다. 그래서 여러 과정을 거쳤고, 언어와 논리를 획득했으며 그것이 폴리아모리라는 것을 알았다.

질투 

처음 연애를 할 때 날 당황하게 한 것은, 질투를 사랑의 한 표현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애인은 질투가 없었던 나에게 계속 질투를 요구했다. “나 오늘 엄청 잘생긴 사람 봤어”라는 말을 할 때, 내가 질투하지 않은 건 애인을 서운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 대한 사랑이 없어지지 않을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있으므로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질투심’이 왜 생기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냥 나에게는 없던 감정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일은 나도 행복한 일이었다.

사랑은 순위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은 순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1위로 사랑하는 것과 2위로 사랑하는 것. 이런 식의 사고는 ‘감정을 논리로 풀어내고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오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어로 표현하고 논리로 만들어내기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나는 사랑이 시간과 공간 속에 유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을 상상할 때는, 내가 가운데 있고 그 공간에 거미줄처럼 사람들과의 관계가 존재하고 그 관계를 사랑이라고 판단해낸다. 거미줄 같은 사랑의 형태에서 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저 사람과도 저 나무와도 저 공간과도 사랑을 나누고 있을 뿐이다.


사랑을 정량화하는 사고 

‘비트윈’이라는 연애하는 사람 간에 사용하는 어플은 사랑을 수치화한다. 애인과 하루 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은 양, 전화한 양, 데이트한 양의 수치화. 나에게 있어서 사랑은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정량화할 수 있다는 전제 속에 어느새 감정도 정량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은 무게를 측정할 수 없다. “A가 좋아? B가 좋아?” 둘 다 좋다. 그리고 그 사랑은 A에게 더 많은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B에게 더 많은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랑은 그냥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며 다른 차원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뇌와 뉴런 프로세스로 받아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독점성의 선물 

친밀도라는 것이 한 사람에게만 흐르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부분을 애인이 모두 채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사이에 다름이 존재한다. 그 다름은 연애를 할 때 마찰을 불러오기도 한다. 카톡을 잘 안 하는 사람과 카톡을 계속하는 사람의 연애 관계가 생겨나고, 이런 다름 때문에 사이가 악화되는 케이스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폴리아모리 연애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수월했다.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카톡을 자주하며 사랑을 나누는 사람의 경우 다른 사람과 카톡을 하면 된다. 그리고 카톡을 잘 안 하는 애인과는 서로 사랑을 나누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면 그뿐이다. 다름이 존재하기 때문에 관계가 악화된 경험들을 볼 때 나는 폴리아모리가 비독점성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1:1 연애를 하는 폴리아모리스트 

폴리아모리(polyamory)는 다자연애라고 주로 번역되지만 정확한 뜻은, 다자간 "사랑"이다. 다자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그냥 다자를 사랑하는 것, 그게 폴리아모리라면 폴리아모리는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당연한 것이다. 나는 당연히 다자를 사랑한다. 논리적으로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존재하는 나의 일부분이다. 이런 생각에 근간을 두면, 결론적으로 다자연애로 합의 보지 않고, 1:1 연애로 합의를 보았다고 해도 폴리아모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자를 사랑하는 것을 인정하고, 질투심을 요구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1:1 연애를 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로맨틱하게). 폴리아모리스트는 1:1 연애의 정상성을 부순다. 그러므로 서로가 생각하는 연애에 대해서 합의를 본다. 그 안에는 1:1 연애를 할지 다자연애를 할지가 포함된다. 따라서 더욱 다양한 형태의 연애가 생겨날 수 있다.

폴리아모리. '바람 피우는 것 아니야?"라고 사회적 혐오 받기 일쑤지만, 우리는 합의를 보고 다자간의 사랑을 하는 것이다. 사랑은 한 명하고만 해야 한다는 정상성에 갇힌 언어를 다시 한번 고민해보고, 폴리아모리의 존재를 지우고 있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그냥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지 말기"일 뿐이다.

http://lgbtpride.tistory.com/1367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게이와 페미니즘 : 가깝고도 먼, 어쩌면 살얼음판 같은 관계에 대해서

많은 이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게이와 여성은 절대 동병상련의 관계만이 아니며, 어떤 면에선 서로에게 적대적인 감정까지 가지고 있다. 어떤 게이의 혀끝에선 천박한 여성혐오가 신랄하게 쏟아져 나오며, 특정 페미니즘은 게이를 ‘여성 혐오의 최종적 화신’으로 본다.

물론 저들이 주류는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들 얘기를 꺼낸 것은, 저들이 그저 un-pc한 존재로만 낙인찍혀 담론의 뚜껑자체가 닫힌 건 아닌지 좀 아쉬운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여성혐오적인 게이, 가장 게이혐오적인 페미니즘은 들여다 볼 가치도 없이 폐기 처분 해야 하는 걸까?    

1. 게이에게. 너는 ‘왜’ 여성혐오를 하니?

게이의 여성성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계속해서 갑론을박하던 주제였고, 나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여성 혐오인가?” “아닌가?” “그냥 맥락에 따라 다르다는 나이브한 결론을 내릴까?” 그러다 고민의 프레임 자체를 다시 짜는 게 더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들은 왜 ‘형’도 있는데 ‘오빠’를 쓰는가? 게이들은 왜 여성성을 ‘전유’하고, ‘여성적’이며, 여성적으로 ‘보이는’가?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강제된 이성애 사회에서 남성을 사랑하는 것은 여성이고, 여성이여야만 한다. 이성애는 성애의 재현 경제를 독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성애를 표현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 째, 이성애 재현 양식을 그대로 차용하거나 둘 째, 그것을 패러디 하거나 셋 째, 아예 새로운 재현 양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허나 마지막 방법은 대개 실패한다. 무엇을 새로 만들어내도 그것은  결국 이성애의 모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성애는 패권적인 재현이고, 다른 재현 양식을 죄다 잡아먹는다. 게이의 욕망은 설령 도주를 시도할지언정 이성애 재현의 자장 안에 포박 당하고 만다.

주지하다시피 불균등한 권력으로 점철된 이성애를 차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이는 여성 억압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주체가 (혼탁하긴 하지만) 나름의(?) 남성이란 께름칙한 상황에서, 이는 더더욱 위험한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

허나 나는 이 지점이 오히려 연대의 토대를 세울 수 있는 터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약간의 가지만 친다면 말이다.

게이의 여성혐오를 “게이‘도’ 남성이라서 어쩔 수 없이 여성혐오를 한다.”라고 분석하는 기존의 설명 방식은 게이의 여성혐오 원인을 남성이란 정체성 아래에 귀속시키며, 이는 게이에게 있는 남성적 요소를 처벌하고 절단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허나 이런 대응은 남성 간의 차이를 지우며, 남성의 여성 억압을 자연화할 우려가 있다.(남성은 ‘남성’이라서 여성을 억압한다?) 따라서 나는 게이는 왜 굳이 이성애를 경유하는지, 왜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지, 결정적으로 왜 그것이 여성혐오로 연결 되는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애 남성은 자기 안의 여성을 색출해내려 하지만 게이는 그렇지만은 않다. 여성이란 타자로 관통된 주체인 게이는, 타자의 목에 목줄을 차서 노예처럼 삼을 수도 있고, 정반대로 타자 속으로 허물어져가며 타자와 융합할 수도 있다. 이는 게이가 여성과 관계 맺고 있는 다층적인 양식 덕분이며, 이는 여-남 관계가 ‘억압’이라는 단일하고 절대적인 축으로만 이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 궁극적으로 이는 남성 간의 차이를 드러내며, 남성이 여성과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2. 페미니즘에게. 사랑을 믿다.

페미니즘은 성을 ‘권력’이란 렌즈로 보는 인식론이자 사랑(대개 이성애)을 정치화 하는데 천착하는 사상이다. 페미니즘은 사랑에 덕지덕지 붙은 환상을 뜯어내버리며 사랑이 얼마나 위선적인 권력 양식에 불과한지 성공적으로 폭로했다. 허나 가끔은 잔인하리만큼 사랑을 바싹 말려버리기도 했다.

앞서서 특정 페미니즘 진영은 게이를 여성 혐오의 화신으로 본다고 했다. 이들은 남성 동성애를 마침내 완벽히 봉합된, 남성 연대의 귀환으로 여긴다. (근대의) 남성 연대는 그 유대가 일정 수위를 넘으려고 할 때마다 자체적으로 제동이 걸리는 순환적 구조지만, 남성 동성애는 브레이크 없이 계속 가속만 하는 고착적 구조라는 것이다.

처음 저 주장을 접했을 때는 불쾌함과 반발만이 들었지만, 오히려 나는 이 지점에서 다시금 연대의 토대를 발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결국 페미니즘이 허물어내고 재구성 해내야 할 관계는 두 가지인데, 첫 째가 앞서 말한 여성과 남성의 관계(억압)며 둘째가 남성과 남성의 관계(권력)이다. 한데, 페미니즘이 다양한 남성 간의 관계를 전부 권력으로 환원하고 매몰한다면 자기 스스로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페미니즘이 에로스에 침투한 권력들을 제거 하려면, 그 무엇보다 권력이 아닌 것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페미니즘의 필터를 다층화해줄 것이다. 또한 그럴수록 게이들에게도 더 많은 고민이 요구된다.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지던 동성애를 다각도로 점검해봐야 하며, 욕망을 끊임없이 정치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 게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욕망을 정치화 하는 페미니즘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성소수자 운동은 때때로 긴장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하여튼 앞서 논의한 사안을 종합해보면, 게이의 남성 권력과 약자성은 동시에 불투명해진다. 따라서 남성(특권자)으로서 페미니즘을 옆에서 ‘조력’하거나, 소수자(약자)로서 페미니즘에 ‘참여’하는 기존의 이분법적 방식은 삐걱거리게 된다. 게이들은 본인의 위치를 다시금 곱씹어봐야 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고작 두 가지였던 연대의 양식이 다양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3. 나가며

이 글은 어찌 보면 물타기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겠다. 면죄부를 주고 도피처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겠다. 나의 방점은 절대로 그것이 아니다. 앞서서 말해왔듯이, 나의 의도는 첫 째로 연대의 지점을 여러 곳으로 확장하는 것이고 둘 째는 위계적인 기존의 연대 방식을 비틀어내는 것이다. 헤테로 여성과 게이 남성이 남성-여성, 이성애자-동성애자, 즉 가해자-피해자, 억압자-피억압자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거세된 남성-종속된 여성으로서 기존의 여-남 구도 바깥에서 만날 수도 있지 않냐고 제안하는 것이다. (헤테로 여성의 헤테로 권력은 결국 남성 권력으로부터 굴절돼 나온 것이며, 게이 남성의 남성 권력은 부분 거세되어있으므로) 단순히 연대의 양만 늘리는 것보다, 다양한 주체를 생산하고 개입케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종종 많은 연대들이 동일성(공통의 억압,성질,적 등등)이라는 단일한 기둥에 의존한다. 허나 이런 연대는 타자가 나와 다른 인간이었음이 밝혀지기만 하면, 삽시간에 무너지고 만다. 그 뿐 아니라, 타자는 이제 그 누구보다 제거해야할 가장 큰 숙적으로 변모한다.(메갈리아가 나름 동맹군이라 여기던 게이에게 가장 크게 분노했던 것처럼) 결국 나와 동일한 사람은 세상에 없고, 그렇다면 연대란 불가능한 것이 된다. 나는 연대의 의미가 다양하게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자는 연대의 토대를 갈등의 한 복판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왜냐하면 갈등의 지점이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깊게 연루된 장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갈등을 들출수록 내 안의 타자, 타자 안의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누군가 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면, 그것은 어쩌면 철을 담금질 하는 데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

http://lgbtpride.tistory.com/1395


2017년 6월 8일 목요일

대학 평가 세계 00위? 학생들은 불행하다

대학교 앞을 거닐다 보면 "OO대학교, 대학 평가 세계 △△위"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현수막들은 한국의 대학 교육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렇게 세계적으로 높은 순위를 가진 한국 대학들에 대해 정작 우리 학생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4년제 대학의 교수·학습 역량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전공 수업에 대한 만족도는 2011년 83%에서 2014년 64.3%로 4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 교양 수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기간 78.8%에서 54.5%까지 하락하여 절반가량의 대학생들이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등록금 비싼데, 교육 투자는 절반 

이처럼 대학 평가 순위와 실제 수요자인 학생들의 만족도 간에 괴리가 생긴다는 것은 대학이라는 하나의 교육제도가 수요자 중심이라기보다는 다른 측면들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크게 대학 내부적인 문제들과 정부와 사회라는 대학 외부의 문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대학의 재정 운용에 대한 불신이다. 우리 학생들이 감당해야 하는 등록금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투자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우리나라 대학의 78%는 사립대로서, 이들의 등록금은 8554달러에 이른다. 국공립대 역시 4773달러로 다른 나라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 금액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미국과 영국을 이어 3위이다. 국공립대 비중이 2%에 불과한 전문대학의 등록금까지 감안하면 순위가 더 높아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 <표1> 2012년 국공립대 및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단위 : 달러, 구매력지수 환산액. 출처 : Education at a glance 2015).


이처럼 학생들이 많은 등록금을 내고 있는데도, 교육에 투자되는 돈은 많지 않다. 사립대들이 5년간 건물을 새로 지을 때 들어간 비용들을 추계해보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산인 건축 적립금과 법인에서 들어오는 자산 전입금의 비중은 44.4%에 그쳤다. 즉, 나머지는 다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등록금으로 충당했다.

또한 우리 대학들은 교육보다 연구 실적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국립대의 경우 일 년에 쓰는 논문 편수에 따라 교수의 연봉이 산정된다. 뿐만 아니라 임용 및 승진도 연구실적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교수들이 학생들과의 학습보다 개인적인 연구에 급급하도록 만들었다. 대학 교육의 대부분이 토론식, 쌍방향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여전히 중등교육의 연속선상으로 불릴 만큼 일방향의 주입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러한 영향이 크다.

이처럼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등록금의 상당 부분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대학들의 토건 자산을 늘리는 데 투자되고, 연구 위주의 대학 운영 방식은 학생들의 대학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

대학에 성과 부풀리기 요구하는 정부  

대학의 이러한 운영 방식들은 정부 정책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1990년~2000년대 한국 고등교육 정책들의 목적은 대학들 간 경쟁체제의 확립이었다. 이를 위해 대학의 교육 및 연구 성과를 양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근거하여 공적 자원을 배분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대학 당국들이 '교육'의 관점이 아니라 성과를 양적으로 부풀리기 위한 '경영과 마케팅'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교육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경시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율화·특성화 정책들은 대학들의 경쟁을 가속화시켜 수익성 없는 학문이나 수량적으로 평가될 수 없는 대학의 고유한 가치들을 대학 밖으로 밀어냈다.

우리나라는 지출 구조상으로도 대학 교육의 상당 부분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다. <표2>를 보면 고등 교육에 대한 한국 정부 부담이 OECD 평균보다 작은 반면, 민간 부담은 거의 4배 정도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같이 재정적으로도 정부의 역할이 작은 상황에서 대학에 대한 자율화 및 특성화 정책은 대학들의 목소리만 더 키워왔다.



▲ <표2> 2012년 GDP 대비 교육비 비율(출처 : Education at a glance 2015).

이러한 상황에서 조·중·동 등 각종 언론에서 대학 평가 지표들을 개발하여 대학 서열화를 조장했다. 최근 6년간 전국 4년제 사립대학 홍보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213개 대학에서 언론 홍보를 위한 지출액은 1392억 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세계대학평가 기관의 수입 중 4분의 1은 한국 대학들이 충당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한 대학 간 경쟁이 치열하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적 문화도 한몫했다.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78%에 이르는 고학력 국가이다. 노동시장의 왜곡으로 인해 대학 졸업자와 고등학교 졸업자, 특히 명문대생과의 임금 차이가 커지면서 입시 경쟁이 과열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을 뽑는 위치에 있는 대학들이 갑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대학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인적 자원의 질을 형성하는 데 마지막 단계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중등 교육을 통해 생긴 경험들을 한층 더 심화된 지식으로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함께 공유하고 생산하게 된다. 세계은행에서도 대학 교육을 "국민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국가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고 강조하듯이 사회적 중요성이 크다. 이러한 역할이 있기에 대학 교육은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는 영역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사회로 진출하기 때문에 대학에서의 교육은 사회에서의 '생존'에 관한 교육(직업 교육)과 사회 구성원인 '인간'의 가치에 대한 교육(인문학이나 예술)이 조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재원과 정책의 영역에서 대학에 지나친 자율성을 부여한 결과 공공성이 매우 약하다. 이로 인해 돈이 되지 않는 후자의 교육은 경시되고 전자에만 집중되고 있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보다 공급자인 대학 위주로 성과에 급급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 키우는 교육 위해 대학 공공성 높여야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을 키우는 대학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대학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인 학생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싼 등록금에 허덕이며 교수가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지식에 우왕좌왕하는 수동적인 학생이 아니라, 교수와 다른 학우들과 함께 고민하며 지식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능동적인 학생이 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 진출했을 때 한층 더 발전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학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대학의 사회적 역할이 큰 만큼 정부는 공공 재원을 투자하여 대학들의 무분별한 경쟁을 막아야 한다. 지금처럼 재원 운용에 대학의 자율성이 큰 상황에서 반값 등록금과 같이 재원만 지원해주는 정책은 일정 부분 등록금 인상률은 통제할 수 있겠지만, 등록금 액수를 근본적으로 낮추기 어렵다. 재원의 운용이 전적으로 대학의 손에 맡겨져 있어 불투명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 재원을 투자하되, 대학들의 재정 운용 과정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학들 간의 불필요한 서열화 경쟁을 위한 홍보비, 건축비 등을 통제해서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들이 단기 성과 위주의 연구가 아니라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투자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심도 있는 고려가 필요하다. 대학 수가 포화 상태인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수년간 학생 수가 미달된 학교들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대학들이 취업률과 같은 양적지표에 의해 인문사회계열의 순수 학문 학과들을 통폐합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대학 교육에서 단지 취업을 위한 직업 교육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배우는 인문 철학 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단지 대학들이 양적 지표에만 급급해하지 않도록 정부가 완충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노동 시장에서 대학 졸업 여부에 따른 임금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들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야 과다한 입시 경쟁을 진정시키고 대학들 간의 서열화도 완화시킬 수 있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대학 진학률은 40% 정도로 우리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는 더 심화된 지식을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노동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면서 낭비되는 사회적 자원들이 많다. 따라서 대학 진학률을 낮추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이 노동시장과의 연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많은 대학들에서 경쟁력을 높인다는 미명하에 학과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상 취업률에 보탬이 안 되는 인문 사회계 위주의 통폐합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정책들로 몇 년 공부했던 학과가 없어지는 피해를 본다. 이 학생들의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단지 순위, 취업률 등 성과위주의 양적 지표에 급급해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의 사회 구성원을 양성한다는 관점으로 대학 교육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1939


2017년 6월 6일 화요일

'지·옥·고'를 아십니까? 반지하, 옥탑, 그리고


얼마 전 '청년들은 왜 예쁜 카페에 집착하게 되었나'라는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열악한 주거 상황을 개선할 여력이 안 되니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예쁜 카페를 이용하는 식으로 대리만족을 누린다는 것이다. 나날이 사상 최고를 갱신하고 있는 가파른 고용절벽과 이에 못지않게 높은 주거비 부담 속에서 돈 모아 집 사기를 포기한 청년들로서는 그나마 있는 돈으로 가성비를 높이려는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주거의 의미: 헌법적 기본권

주거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요소인 의․식․주의 한 부분으로 각종 자연재해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물리적 공간의 역할이 일차적인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육체적 안전을 바탕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나가게 되는 정서적 편안함과 안정감이다. 즉, 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지속하고 있는 바탕에는 개인의 신체적․정서적 안정을 만드는 ‘편안한 공간’ 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의 가장 기본적 권리를 천명한 세계인권선언과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에서도 ‘적절하고 안전한 주거’가 모든 사람이 보장받을 기본권이자 정부의 책임임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헌법 제35조에서 언급하고 있고, 2015년 「주거기본법」제정에 의해 주거권과 주거복지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정부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청년들의 열악한 주거 현실

그렇다면 유독 왜 청년들‘만’(중장년층도 일부는 그렇겠지만 상대적으로) 예쁜 카페에 집착하게 되었나? 뉴스를 보면 지금의 부동산 시장이 예전에 비해 위축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매매가격에 버금갈 만큼 높은 전셋값과 월세 부담은 청년들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의 상당수 역시 '예쁜(혹은 적절한) 집'을 갖기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주거권은 더욱더 위험하다. 이는 단지 청년 주거 문제가 높은 부동산 가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와 같이 부동산 시장과 노동 시장의 모든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청년들의 삶 자체를 갉아먹는 암적인 요소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높은 주거비용: 청년의 소득 빈곤

지난 국감에서 나온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청년들의 평균 보증금은 1395만 원으로, 다른 세대(2778만 원)보다 낮았지만 월세는 각각 47만 원, 46만 원으로 청년층이 더 높았다. 아직 모아둔 목돈이 없는 청년들로서는 월세가 높더라도 마련할 수 있는 보증금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하여 순수 월세로 환산 시 청년층의 월세 부담이 다른 세대에 비해 최고 2.7배나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을 보더라도 청년의 주거비 부담이 과도함을 알 수 있다.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이 30%를 넘어서는 경우를 보면, 청년 가구는 20.3%, 노인 가구는 11.2%, 아동 가구는 6.3%로 청년 가구가 월등히 높다.(이태진 등. '청년 빈곤 해소를 위한 맞춤형 주거지원 정책방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6.)

주거비 부담 자체가 청년에게 절대적으로 높기도 하지만 더욱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청년들에게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체감 정도로 보면 최대 청년 3명 중 1명이 실업 상태로 소득이 없다. 이는 통계로도 확연히 드러나는데 유일하게 청년 세대만 2015년 대비 2016년 소득이 줄어들었다. 반면 대학생 시절 연평균 737만 원에 이르는 높은 등록금과 취업준비 비용, 각종 생활비는 고스란히 청년들의 빚이다. 설상가상으로 매달 지출해야 하는 약 47만 원의 높은 월세는 청년들을 빈곤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주거의 질: 지옥고와 청년 난민, 조물주 위의 건물주

1) 주거 수준

'지옥고'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아울러 칭하는 말이다. 지옥고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햇빛이 들지 않고 곰팡이와 습기 등으로 인해 건강에 유해한 반지하방, 드라마 속에서나 낭만적이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 살기 힘든 옥탑방, 그리고 최저 주거기준(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주거생활 기준으로 최소 주거면적, 용도별 방의 개수, 전용부엌, 화장실의 설비기준, 안전성, 쾌적성 등을 고려한 주택의 구조, 성능 및 환경 기준)인 14제곱미터(4.23평)의 절반도 안 돼 서 있기조차 버거울 만큼 비좁은 고시원 등 도저히 적절한 주거 환경이라고 볼 수 없는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 가구에 사는 청년들이 전국적으로 23.6%, 심지어 서울에는 36.3%에 이른다. 전체 평균인 14.8%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특히 <표 1>에서 볼 수 있다시피 전체 평균은 줄어들고 있는 데 비해 청년층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표 1> 전국 가구와 서울 1인 청년 가구의 주거빈곤율 변화(1995 ~2010년)

                      ▲출처 : 최은영. '서울시 청년가구의 주거실태와 정책연구'. 민주정책연구원. 2014.

대학생의 경우에는 더 암울하다.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의 '대학생 원룸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거주 대학생의 68.7%가 고시원 또는 원룸에 살고 있고, 이 중 70.3%가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단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있을 뿐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2) 청년 난민

청년들은 '주거 난민' 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허술한 임대차 보호법은 임대인이 2년마다 임대차 계약을 거절할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2년마다 강제 이사를 가능케 만들었다.

게다가 청년들로서는 더 이상 보증금이나 월세 인상을 감당할 여유가 없어 조금이라도 더 싼 방을 찾느라 고시원 같은 임시 거주지를 전전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주 이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토연구원의 '2016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1인 가구 10명 중 8명이 최근 2년 이내에 집을 옮긴 경험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청년 1인 가구의 평균 거주 기간은 1.3년으로 중장년(4.7년), 노인(11.4년)에 비해 훨씬 짧다. 청년들에게 현 거주지는 길어봤자 고작 1년 머무는 임시 거처로 '내 집' 이라는 인식이 들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예쁜 인테리어는커녕 이사하기 편리하도록 최소한의 짐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3) 조물주 위의 건물주

2~3월 신학기가 시작되는 경우, 대학가에서는 건물주들의 횡포가 청년들을 울린다. 대학가마다 조성된 높은 월세로 인해 공급 과잉 상태가 되면서 집주인들이 계약 기간이 끝나도 다른 세입자가 구해지기 전까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주택 임대차 보호법이나 주거권과 관련된 내용을 잘 모르는 대학생, 사회 초년생의 상태를 악용하여 계약 전의 정보와 실제 환경이 다르거나 정당한 수리 요청을 거절하는 등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이 이런 피해를 입는다.

1) 공공임대주택의 사각지대

민간임대에 비해 낮은 주거비 부담으로 그나마 가성비가 높은 공공임대주택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적다. 대부분의 공공임대주택은 동일한 조건의 대상자가 있을 경우, 1)연장자 2)다자녀 3)해당지역 거주기간 4)부양자가 있을 경우에 더 많은 점수를 받기 때문에 청년 1인 가구는 혜택을 입지 못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행복주택 등 청년의 비중을 높인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되고 있으나 1인 가구가 많은 20대의 공공임대주택 입주 비율은 단지 3%에 불과하다. 30대의 경우 약 18%로 좀 더 높은데,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특별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1인 가구의 비중이 높아지는 사회적 추세를 고려하면 지금의 추이 속에서 청년 1인 가구에 주어지는 정책적 혜택은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2) 공공 기숙사의 부족과 민자 기숙사 활성화

기숙사비가 저렴하다는 것도 옛날의 이야기다. 많은 사립대학들이 민간자본을 끌어들인 민자 기숙사를 비싸게 운영하면서 연평균 기숙사비가 주변의 월세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데 이어 등록금 액수(연평균 737만 원)에 맞먹을 정도로 높아졌다. 연세대 SK 국제학사의 경우 1인실 기숙사비가 연간 786만 원(월 65만 원)에 달하고, 2인실도 연간 531만 원(월 44만3000 원)에 이른다.

주변의 월세 시세 평균(약 42만 원)에 비해 많게는 20만 원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지금 서울 시내에는 기숙사가 부족하여 대학생 10명 중 1명만 겨우 기숙사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높은 기숙사비로 인해 민자 기숙사에 들어가려는 지원자의 수가 모집정원에 미치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청년 주거권 보장 정책의 현황과 문제점

1)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의 LH대학생전세임대주택을 시작으로 2012년이 돼서야 비로소 청년 대상의 주거 정책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시되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청년전세임대주택으로 확대되었고, 행복주택과 사회주택 정책이 실시되었다. 행복주택은 대학생,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공공임대주택이며, 사회주택은 여러 명이 방을 함께 나누어 쓰는 주거의 형태이다. 전세임대주택은 LH가 입주자를 대신하여 전세 계약을 맺고, 이를 임대하는 방식으로서 보증금을 LH에서 지원해준다. 지역 차원에서도 따복하우스, 희망하우징 등의 이름으로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공임대주택이라고 부를 만큼 저렴한 주택인지는 의문이다. 주변 시세의 80% 수준에서 공급하고 있지만 보증금이 4000~6000만 원 정도로 형성되어 있다. 비정규직이 태반인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을 고려하면 사회초년생이 이 정도의 목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또한 행복주택의 경쟁률이 최대 '130 대 1'에 이르는 등 물량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계약 기간 역시 최장 10년까지 살 수 있으나 2년에 한 번씩 입주 자격에 해당하는지 심사를 받아야 한다. 대상이 되는 '청년'에 있어 대학생, 사회초년생, 청년 창업가, 예술인, 프리랜서, 신혼부부 등 조건이 까다롭게 설정되어 있어 애초의 자격 심사에서 배제되는 청년들도 상당하다. 게다가 전세임대주택의 경우, 입주자가 직접 해당 주택을 찾아다녀야 하는데, 절차적 까다로움으로 인해 집주인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다.

2) 대출 지원 정책

공급 측면에서 공공임대주택 제공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청년 주거권 보장 정책의 또 다른 축은 주택 구입 및 전·월세 자금에 대한 금융 지원이다. 신혼부부가 저렴한 이자율로 대출을 이용할 수 있는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 그리고 취업 준비생 및 사회 초년생 등으로 대상을 확대한 월세 대출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방 정부 차원에서도 임대 보증금 이자를 지원하는 등 대출 부담을 완화시키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미래에 갚을 여력이 있다면 현 시점에서 이자 지원을 통해 보증금 혹은 월세 대출을 받아 주거비를 마련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1,34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를 안고 있다. 게다가 청년들은 높은 실업률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인해 소득이 없거나 저임금의 덫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대출을 장려하는 정책이 과연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걱정스럽다.

청년 주거권 보장 정책: 당장 어디로 가야 하나?

사실 현재의 청년 주거 정책들이 이 같은 한계를 보이는 것은 우리 정부가 청년 주거 문제에 대해 단편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주거비 지불 능력이 없다고 하니 돈을 빌리라고 하고, 기존의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정책에 끼워 붙이려고 하니 물량이 너무 적은 것이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형성된 높은 매매 및 전·월세 가격을 모른 척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으로 해결하려 하다 보니 건설 기간과 입주 시점의 차이로 인해 지금 당장의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주거권 보장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할까?

청년들이 '적절하고 안전한 주거'를 보장받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시장에서 형성된 높은 전·월세 가격을 지금의 소득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형편없이 질 낮은 주거로 내몰리고 있다. 따라서 청년들의 주거권 보장 정책은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공급 측면에서 임대료가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의 수를 계속해서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은 5.5%로 OECD 평균(11.5%)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청년공공임대주택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운 점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재원인데, 문재인 후보가 공약한 국민연금의 사회적 투자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작정 새로 짓기보다는 지금 지방정부들이 실시하고 있는 다가구 임대매입주택 사업과 같이 기존의 상가·주택 건물을 매입하고 안전하게 개조하여 소규모로 공급하는 방식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소비 측면에서 민간시장의 과도한 전·월세 가격을 규제하기 위해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현행 부동산 시장의 높은 매매 및 전·월세 가격은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지난 40년간의 주거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결과다. 토건 사업에 골몰하던 70~80년대부터 부동산 시장 띄우기를 경기부양의 핵심 수단으로 사용해온 정책적 실패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해야 할 책임 역시 정부에게 있다. 전월세 상한제를 실시하여 거품이 끼어있는 부동산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과다하게 책정된 전월세 가격은 제어해야 한다. 이 같은 직접적 규제는 가계의 전월세 부담을 크게 덜어줄 것이다.

또한 지금 당장 소득이 없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등 청년들을 위한 주거수당이 도입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높은 전월세 가격하에서는 생애 첫 독립적 출발의 시기이기에 소득이 없거나 빚을 진 청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현금 지원이 한시적으로 필요하다. 실제 사회적 이행기에 있는 청년 시기의 특성을 고려해서 유럽의 복지국가들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35세 미만 청년 가구에 주택수당을 제공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가족수당과 독일의 임대료 보조 제도도 이와 유사하다.

셋째, 임차인 보호 측면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해야 한다. 이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있어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기한을 정하지 않은 임대차 계약이 원칙인 독일,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더라도 까다로운 조건에서만 임대인에게로 주택이 인도되는 영국 등 다수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임차인의 안정된 거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청년들에게도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주거권과 관련된 내용을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육해야 한다.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에 따르면 청년들이 세입자의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이유로 절반 이상이 '알지 못해서'라고 응답했다. 청년들이 대체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진학 등을 이유로 독립해서 한 명의 세입자가 된다.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적절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교과 과정에 주거권 관련 법률적 내용을 포함하는 게 옳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년 주거 문제는 단지 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소득 부족, 나아가 노동시장이나 교육과정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이는 주거 문제를 단순히 주거 정책으로만 한정 지어 보기보다는 노동정책, 소득보장정책, 교육정책 등과 함께 통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주거수당은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의 소득보장정책이 될 수 있고,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청년의 주거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안정적인 주거의 확보는 저출산을 완화할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청년 문제는 한 영역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기에 다차원적 관점에서 청년 문제를 논의하고 정책 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들과 당사자인 청년들이 함께 정책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적 이행기에 불안하게 서 있는 청년들에게는 안정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미래는 청년들만이 아니라 청년의 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청년의 후세대 등 모든 세대가 함께할 것이 분명한 우리 모두의 미래다. 따라서 청년들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우리의 함께 미래도 암울해지는 것이다. '예쁜'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 속에서 보다 발전적이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청년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56732

2017년 6월 4일 일요일

스웨덴 복지가 한국과 다른 이유

"스웨덴에서 다섯 명의 자녀를 둔 직장 여성은 매월 103만 원의 아동수당을 받고, 어린이집을 거의 무료로 이용하며, 7년 6개월간 월급의 80%를 받으면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박승희 외, <스웨덴 사회복지의 실제>, 양서원, 72쪽)

스웨덴복지의 현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의 경우는?

아동수당은 아예 없다. 2006년경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가 주도하여 노ㆍ사ㆍ정ㆍ시민사회가 모여 사회적 합의기구인 '저출산ㆍ고령사회연석회의'를 만들어 이 제도의 도입을 논의하였으나 예의 '재정 조달'의 어려움으로 실제적인 도입 결정을 끌어내는 데 실패한 쓰린 경험만을 갖고 있다.

육아휴직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스웨덴이 80%의 급여를 받으며 390일을 쓰고 나머지는 1일 정액으로 다시 90일을 사용하게 되어있는 데 비해, 우리는 육아휴직이 산전후 휴가를 포함하여 1년이다. 산전후 휴가 90일 동안은 월급을 받지만 나머지 기간은 50만원의 정액을 받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스웨덴의 휴가일수는 노동일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우리는 단순한 월력에 따른 것이어서 스웨덴의 실제 휴가일수는 더욱 길다.

따라서 위에서 본 것처럼 5명의 아이를 출산한 경우 물경 7년 6개월이나 휴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스웨덴은 배우자 중 한 사람(주로 남성)이 60일 이상을 반드시 사용하게 되어있다. 이른바 남성강제휴가사용제이다.

이뿐인가? 스웨덴에서는 아동이 12세가 되기까지는 60일간의 아동간병휴가를 받을 수 있다. 이때 월평균소득의 80%에 해당하는 급여가 지급된다. 대한민국?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스웨덴에서는, 이혼 시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한 부모는 이를 반드시 지급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월 17만원 정도의 양육비를 국가가 먼저 지급하고 추후에 징수한다. 한국? 최근에 양육비 지급을 합의하지 않으면 이혼을 허락지 않는 제도를 겨우 도입했을 뿐이다. 이혼을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문제로 보는 전환의 시발점에 서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국가의 재정적 역할은 없다.

또한, 스웨덴에 살고 있는 장애인과 노인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의 현실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43세의 다운증후군 장애인은 24시간 도우미의 보호를 받으며 그룹 홈에서 생활하고 주간보호소 등으로 출근하며, 월 122만 원의 수당을 받는다."(위의 같은 책, 94쪽)

"스웨덴의 거의 모든 노인은 무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매월 82만 원~926만 원상당의 복지급여를 받는다."(위의 같은 책 108페이지)

우리나라 장애인과 노인의 현실은 역시 비교도 되지 않는다. 장애인의 경우, '중증 빈곤 장애인' 49만 명에게 월 13만 원씩을 지급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바우처 제도를 통해 부분적으로 도우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장애인 연금이나 장애인 장기요양보험은 논의의 시작 단계이다.

우리나라에선 2007년부터 기초노령연금이 발동되어 현재 70%의 노인에게 최대 8만7천원에 해당하는 급여를 지급하지만, 그나마도 소득수준에 따라 6만, 4만, 2만 원 등 차등적으로 지불되고 있을 뿐이다. 장기요양보험은 노인 인구의 3.9%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2004년 실시된 노인실태조사에 의하면, 공적연금에 의해 안정적인 연금급여를 받는 노인들은 13.9%, 결국 노인가구 중 빈곤선 이하가 37.3%에 달한다. 이로써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노인들의 현 주소는 이른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선반 위에 놓인 무가지를 회수하기 위해 펴지지 않는 허리와 팔을 겨우 뻗고 있는 모습으로 함축된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차이는 결과 자체의 차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두 나라의 사회정치적 기반의 차이에 있다.

스웨덴의 사무직노조(TCO)는 스웨덴 모델에 대해 매우 확신에 찬 언급을 하고 있다. 즉, 스웨덴 모델은 결코 "무모한 모델은 아니"라는 것인데, 모든 정치 집단들이 동의하여 작동하고 있는 스웨덴 모델이란 네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첫째, 강력한 노조, 둘째, 유연한 노동법, 셋째, 노동시장과 가족에 대한 사전 예방적 정책, 그리고 넷째, '보편적인' 복지제도가 그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스웨덴은 높은 교육수준, 협력적 관계형성에 대한 사회적 수용, 높은 기술력, 평등한 기회, 투명성을 지닌 공공부문, 견고한 사회기반시설, '우수한' 복지제도, 상대적으로 적은 사회적 격차 등등이 확보되었고, 이것이 스웨덴의 힘으로 자랑되는 것이다.

한국에선 복지국가의 건설을 위한 기반이 아직 멀기만 하다. 노조의 존재는 성장저해 요인으로 치부되고 있고, 해고의 유연성은 있지만 고용의 유연성이나 실업에 대한 안전망은 부재하다. 보편적 복지제도 역시 복지병에 대한 유별난 우려와 성장제일주의의 그늘에 가려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선 복지국가의 추동세력이 명확치 않다는 것이 복지국가 미래에 있어 가장 우려스런 점이다. 노조도, 정치권도, 건전한 시민사회세력도 아직 복지국가 의제에 대해 그리 예민하지도, 높은 우선순위를 두지도 않은 채, 복지정치의 허약한 기반은 상당 정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식 권능형 복지국가(enabling welfare society)로 치달으며, 한국 복지제도의 골격을 민간 중심으로, 잔여주의적으로 더욱 공고히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지만, 이에 대한 강력한 견제 세력이나 대안제시 세력도 뚜렷하게 부상되어 있지 않다.

결국,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는 이러한 미진한 여건 속에서 어떻게 복지국가의 추동세력들을 규합하며, 국민의 의식 속에 복지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스웨덴 모델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위안할 수 있지만, 우리에겐 20세기와 21세기의 모순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서민의 삶이 붕괴되는 정도는 매우 심각하기에 마냥 시간을 방류시킬 수는 없다.

스웨덴 모델과 한국 모델의 차이는 결과에 있어서 보면 매우 크지만, 결국 좁혀보면, 복지국가 추동세력의 유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의 차이'를 보지 말고 '차이의 원인'을 보는 지혜가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한국형 복지국가 그 자체와 복지국가 정치세력을 포함한 모든 복지국가 추동세력에게 국민적 관심과 힘을 모아줄 때가 된 것이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96986


2017년 6월 2일 금요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성소수자 안전에 대해

협박범과 경찰의 2연타로 완성된 혐오범죄

곱게 접힌 편지지가 문틈에 끼워져 있던 것을 발견한 건, 오후 7시경. 퇴근 후 곧장 향한 집 현관문 앞에서, 연인의 깜짝 편지일 것이라는 생각에 설레는 기분으로 편지지를 펼쳤다. 하지만 나는 곧 충격과 공포로 손을 떨며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잠금 장치를 모두 걸고, 믿을 수 없어 다시 읽어내려간 편지는 러브레터가 아닌 협박 편지였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첫 번째 문장은, ‘벽 너머로 들리는 신음소리는 잘 듣고 있다’ 였다.

협박범은 자신이 옆집 남자이며, 나와 내 연인이 레즈비언인 것을 알고 있고, 밤마다 신음소리를 듣기 위해 벽에 귀를 대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와이프가 임신 중인데, 다음주에 친정집으로 몸조리를 위해 떠나니 다음주 주말 밤에 자신의 집으로 둘이 와달라는 것이 요구사항이었다.

당시 내 자취방은 양쪽에 집이 있었고 공교롭게도 양쪽 모두 부부가 살고 있었다. 협박범은 본인의 집이 몇 호인지 쓰지 않았다. 나는 편지지를 화장대 위에 올려두고 패닉에 빠졌다.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던 끝에 생각해 낸 것은 경찰이었다. 경찰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편지를 들고 인근 파출소로 향했다. 경찰에게 편지를 주고 이 협박범을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협박 편지를 읽은 경찰의 첫 질문은, “진짜 레즈비언이에요?”였다.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공포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경찰들은 편지를 돌려보곤 일단 돌아가라고 말했다. 집에서 기다리길 40여분, 곧 경찰이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나의 자취방을 훑어본 뒤, 둘 중 한 명이 편지를 들고 왼쪽 집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고, 그 집의 세입자 남성이 나오자 상황을 설명하고, 필체를 보겠다며 수첩을 요구하고, 수첩과 편지를 비교한 뒤, 필체가 다르다며 내게 다시 편지를 돌려줬다. 소요시간은 10분. 현관문이 열려있어 문틈으로 그 과정을 보고 있었는데, 현관 안쪽에 서있던 경찰이 질문을 했다. “진짜 레즈비언?” “옆집에서 알만큼 요란하게 해요?”

경찰의 2차 가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인기척이 없던 오른쪽 집에 사람이 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내가 다시 확인을 요청했을 때 찾아온 경찰은 처음에 온 두 명이 아니었다. 다른 두 명의 남자 경찰이 내 집을 찾아왔고 나를 구경하듯 훑어보고는 오른쪽 집에 같은 절차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 명의 경찰이 집 안에 서있었다. 당시엔 연인이 자취방에 도착해 있었는데, 굳이 목을 빼고 둘러보다 연인을 발견하곤 “그럼 저 사람도 레즈비언?” “저 사람이랑?” 따위의 질문을 던졌다. 연인까지 충격을 받을까봐 나는 황급히 경찰을 밖으로 내보냈고, 수사라고 부를 수도 없는 절차는 10분 안에 모두 끝났다. 당연히 성과는 없었다. 경찰은 집 앞 골목 순찰을 돌겠다는, 사건에 맞지 않는 처방을 내놓고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이사를 가기 전까지 매일 매일, 내가 사는 집 건물의 모든 공간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연인과 함께 있어도 안전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작정을 하고 나선 남성 한 명을 여성 두 명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추가 범행의 증거가 될까봐 이사 전까지 버리지 못한 협박 편지는 늘 내 서랍 한 구석에 자리하며 나와 같은 방을 썼다.

당연한 권리를 위해

가해자가 나를 레즈비언으로 확신하게 된 것은 나와 내 연인이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 들어가거나 나오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동네 어디에서든 내가 연인과 손을 잡고 걷는 것을 봤을 수 있다. 외부에서 손잡고 팔짱끼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 나이기 때문에 내 성적지향은 약간의 의심과 관심만 있다면 누구든지 알아챌 수 있는, 노출된 정보인 셈이다.

나의 정보를 획득한 남성 범죄자의 입장에서, 여성과 여성의 조합인 레즈비언 커플은 너무나 만만한 타겟이다. 가해자가 편지를 내 집 문 틈에 끼워 넣으면서 과연 이후의 내 반응에 대해 아주 약간이라도 걱정을 했을까? 여성 자체를 하등한 동물로 보는 남성 범죄자의 입장에서, 여성 중에서도 남성이라는 힘의 권력을 차용할 가능성이 없는 레즈비언은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앞선 사건은 ‘차별’을 동기로 하는 혐오범죄다. 나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내가 동성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해자에게 나는 그런 협박을 받아도 마땅한 대상이 됐다.

누군가 나를 지켜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해도 되는, 그로 인해서 도망치듯 이사를 가는 시간과 비용을 손해 봐도 되는, 피해를 입어도 어떤 형사적 처벌을 할 수 없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기만 해도 되는 존재. 그것이 나였고, 여전히 나다.

여성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서울시. 그 여성에 성소수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가.
여성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서울시. 그 여성에 성소수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경찰은, 성소수자를 보호해야 할 국민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피해자로서 신고를 넣었다면 마땅히 남성 개인으로서의 호기심이나 편견을 접어두고 경찰로서 나를 대했어야 하지만, 반대로 경찰의 의무를 접어두고 개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범죄의 이유를 나에게 전가하는 발언을 통해 2차 가해를 했다. 몇 년이 지난 오늘, 다시 사건이 일어난다고 해도 경찰의 2차 가해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내가 협박 범죄자와 경찰에게 받은 피해를 보상 받을 길은 없었다. 법적으로 성소수자 혐오범죄라는 개념과 그것을 처벌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되고 피해를 본 것을 형사처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끊임없이 거절당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 권익옹호를 위한 바탕이 돼야 이후로 조금씩이나마 국가와 법으로부터 보호 받을 마땅한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국민으로서 의무를 동일하게 짊어진다면, 국민으로서의 권리 또한 동일하게 보장돼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결정권에 의해 나는 내가 사랑할 사람, 결혼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행복추구권에 의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어떤 두려움도 없이 손을 잡을 수 있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든지 두 번째 편지가 문에 끼워질 수 있는 현실 앞에서는 나의 안전, 나아가 생명을 걸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선을 앞둔 요즘, 성소수자이기 이전에 국민인 나의 권리를 용감하거나 용감하려 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당사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볼 시기다.

2017년 5월 31일 수요일

“양극화와 편가르기 심각…한국 성취에 자신감 가져야”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대한민국. 지난 70년의 현대사에는 크고 작은 굴곡들도 많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제를 달성하고 세계경제순위 11위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성과는 누가 봐도 눈 부실만 하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다툼의 양상은 이러한 성과를 부정할 만큼의 심각한 수준으로 번지고 있다. 이념과 성별, 경제적 격차, 남북 간 대립 등이 용광로처럼 끓고 있는 현재의 한반도를 한 발 떨어져 본다면 좀 더 냉정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문학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는 재미교포 작가 존 차(한국명 차학성.71)를 만나 최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그는 196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교포 1세대로 영어로 쓴 소설 『안녕, 테레사』(문학세계사)가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것을 기념해 잠시 귀국했다. 지난 1982년 뉴욕에서 살해당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테레사 차(한국명 차학경)의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자전적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테레사 차가 바로 그의 여동생이다. 테레사 차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뒤를 이을 차세대 예술가로 주목받았지만 32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존 차는 동생의 죽음 이후 글을 쓰기 시작했고, 한국 소설을 영어로 번역해 문예진흥원 번역상과 펜문학 번역상을 받았다. 지난 30년 간 구상·집필에 매달려 이번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故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의 만남을 계기로 북한 인권과 통일을 위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만주 용정에서 태어나 서울과 부산에서 한국전쟁을 겪고 4.19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의 삶 자체가 한국의 현대사를 축약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해 설명하려면 역사를 먼저 이해시켜야만 했다면서 현대사를 대변하고 있는 인물들을 다룬 자서전을 쓰고 있다고 했다. 과거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로 탈바꿈한 우리의 역사를 젊은 세대들이 좀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만주에서 출생하셨다고요? 당시 배경을 설명해주신다면

나는 해방둥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석 달 뒤 만주 용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실 원산 사람이었는데 당시 지주였던 할아버지가 일본인들에게 재산도 뺏기고 핍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일본인들과 싸우다가 버틸 수 없어서 만주로 도망을 갔다. 어머니는 용정에서 태어나신 분이다. 두 분 다 만주에서 교사를 하셨다. 같은 학교에서 일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쫓아다녀서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캐나다 선교사들이 만들었던 제창병원에서 행정을 담당했다. 당시 용정은 도시가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도 학교들이 많았다. 만주에서도 이른바 교육도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유학을 많이 왔었다. 병원은 캐나다 선교사들이 했기 때문에 일본군도 들어올 수 없었다. 그래서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다. 당시는 배운 사람들은 다 독립운동 할 때였으니까 우리 외할아버지도 아마 관여하지 않았을까 싶다. 캐나다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할아버지에게 열쇠 뭉치를 줬는데 일본군들이 그걸뺐으려고 고문도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얘기니까 주로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으셨겠네요.

만주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는 어머니로부터 나중에 전해 들었다. 제창병원 원장은 김영 씨라고 의사 출신 독립운동가인 김필순 씨의 아들이었다. 김영 씨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가 거의 운영을 했다고 봐야한다. 당시 용정에는 윤동주 시인도 있었고, 국무총리를 지낸 정일권 씨도 살았다. 어머니 얘기로는 윤동주 시인이 세 집 건너에 살았다고 한다. 정일권 총리는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고 아침마다 신문 배달을 했다. 어머니의 오빠인 그러니까 외삼촌과 윤동주, 송명주 시인 셋이서 같이 술도 먹고 시도 쓰고 그랬다고 한다. 사랑방에서 담배를 피다가 할아버지한테 들켜서 야단을 맞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현대사 비극 속에 만주에서 서울로 목숨 건 남하 

해방이 된 후에는 어디로 가셨나요.

우리 식구들은 해방이 되고 6개월 뒤에 남하했다. 당시 만주 지역에 소련군이 들어왔는데 최초로 들어온 부대의 질이 굉장히 나빴다. 소련군 내에서도 제일 악질적이었다고 한다. 길거리를 떠돌던 부랑아들로 구성한 부대였기 때문에 군인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일본군을 친다고 내려왔는데 막상 약탈에 더 열을 올렸다. 뭐든지 보이는 것은 다 강탈했고, 여자들은 강간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우리 가족도 남하하게 됐다. 일본 때문에 만주까지 쫓겨났는데 이번에는 소련 때문에 만주에서도 쫓겨난 셈이다.

두만강을 넘어 회령에서 기차를 타고 원산까지 왔다. 원산에서 다시 기차를 타기는 했지만 3.8선이 있기 때문에 기차로 넘지는 못했다. 결국 밤중에 한탄강을 몰래 건너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소련이 지키고 있어서 월남자들을 총으로 쐈다. 어머니 얘기로는 한탄강을 건너다가 내가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사람들이 애기를 물에 빠트리라고 얘기했다. 그것 때문에 물에 빠져 죽는 애들도 많았다. 어머니가 안 된다며 사람들하고 싸우는데 마침 내가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그렇게 강을 건너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서 처음 간 곳이 파고다 공원이다. 공원에 앉아서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나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당시 피난민들의 삶은 다들 어렵지 않았습니까. 

다행히 서울에 이모가 살고 있었다. 경복고등학교 교사셨는데 어떻게 하다 이모를 만나게 돼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살게 됐다. 부모님은 만주에서도 교사를 했으니까 교사 자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그러다 6.25가 발발했다. 우리는 그때도 미처 도망을 못 갔다. 사람들은 다 떠나고 그 기숙사에 남아있는 가족은 우리뿐이었다. 인민군들이 북한 출신을 찾을 때여서 아버지는 도망을 다니셨다. 그때 인민군들이 길거리의 어린 아이들한테 노래를 알려줬는데 나도 덩달아 배웠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배워 집에서 부르니 어머니가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더라. 그리고 1.4후퇴 때 서울역에서 기차로 부산을 가는데 사나흘 정도 걸렸다. 지금은 두 시간 반이면 가는 거리지만 그때는 가다 서다 했다. 피난 생활을 생각하면  참 어려웠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피난민 새끼라고 해서 구박도 많이 많았다. 그때 방 한 칸에 두 식구가 살았는데 방 중간에 담이라고 이불을 걸어놓고 저쪽에 한 식구 이쪽에 우리 식구가 잠을 잤다. 그렇게 좁은 방에서 동생 학경이가 태어났다. 다음에는 송도로 이사를 가서 초가집을 하나 얻고 살았는데 거기는 정말 좋았다. 폭탄소리도 안 들리고 밤마다 별이 총총했다.

미국으로 가시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가족들이 같이 떠나셨나요.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다시 왔고 아버지는 남대문 시장에서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미국에 간 건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인데 정확히는 쫓겨난 것이다. 4.19 당시 내가 무슨 끼가 있어서인지 중학생 친구들하고 같이 세종로를 돌아다니면서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쫓아다녔다. 당시 3.15 부정선거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는데 우리 같은 애들이 제일 많이 흥분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 그러다가는 길에서 총을 맞던지 어떻게 될 것 같다며 친척 할머니가 있는 하와이로 가라고 했다. 사실 가기 싫었지만 아버지가 가라니 할 수 없이 갔다.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위스콘신 주에 있는 마켓대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졸업 이후에는 석유개발 하는 회사에서 선박 제작 관련 일을 하게 됐고, 결혼 이후에 샌프란시스코와 오렌지카운티에 살았다.

재미교포 1세대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 하와이에 간 것이 다행이었다. 거기는 인종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별로 없다. 우리 때는 원주민도 있었고 백인도 있었고, 아시아 인종도 많았다. 젊은이들끼리는 싸우기도 했지만 인종 때문이 아니라 그냥 치기어린 싸움이었다. 그런데 미국 본토로 가니까는 다르더라. 하와이에서는 따로 백인이라고 할 게 없었는데 미국 본토에 가니 다 백인이어서 그게 좀 이상했다. 또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달랐다. 우리를 낮춰보고 그런 일이 꽤 많았다. 나는 저 놈들이 틀렸다 정도만 생각했지 서글프고 그런 것은 없었다. 제일 화가 났을 때는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누가 버스에서 ‘야, 이 잽(Jap)’ 하고 날보고 소리를 지를 때였다. 당시 미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을 재패니즈(Japanese)라고 안 부르고 비하하는 표현으로 잽(Jap)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동양인이라고 하면 주로 일본인을 생각하니까. 길을 가다가도 저편에 동양인이 보이면 그렇게 반가웠다. 쫓아가서 한국 사람이라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할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동포사회가 많이 커졌다. 보기 귀찮을 정도로(웃음). 그러나 당시는 미국도 베트남 전쟁과 연관해서 반전운동, 히피운동 등 시대가 혼잡스러웠다.

동생 죽음 계기로 작가로 진로 바꿔… 한국 알리기 위한 문학 활동 

동생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작가로써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는데요.

오빠라서 그런 게 아니고 동생은 천재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실제 당시에는 걔가 뭘 하는지 잘 몰랐다. 나도 학교를 다녔고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70년대에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개념 예술이라는 게 탄생하는데 학경이가 초창기 거기 들어가서 활동했더라. 죽은 다음에 보니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다. 한인계로는 처음으로 버클리 대학에서 주는 상도 받고, 전공도 4개나 할 정도로 공부를 지독하게 했다. 연락을 할 때마다 ‘아직도 학교에 가니’라고 말할 정도였다. 버클리 대학에 작품을 기증해서 가끔 쇼도 열린다. 한국에서도 2003년 회고전이 열렸다. 사고 당시에는 충격이 꽤 컸는데 당시 학경이의 자료를 보면서 나도 과거의 꿈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다보니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학경이의 자료를 보면서 이렇게 사는 게 다는 아니구나 싶어졌다. 당시 일도 재미가 없어지고 내가 뭘 해야 할까 싶었는데 이제는 그쪽으로 가야겠구나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에 주로 한국의 문학이나 문화를 알리는 데 활동을 집중해 오고 계시는데요.

번역을 시작하게 된 건 어머니 때문이다. 한번은 어머니가 신문에서 문예진흥원에서 하는 번역 공모전 소식을 보시고 나에게도 해보라고 권하셨다.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했지만 자꾸 해보라고 권해서 그럼 어머니가 스토리를 골라보시라고 했다. 그래서 골라주신 게 주요섭 작가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였다. 작품을 번역해서 제출하고 난 후에는 잊고 있었다. 어느 날은 뒷마당에서 풀을 깎고 있는데 어머니가 종이를 흔들고 뛰어오시며 내가 상을 탔다고 전해줬다. 당시 상금이 150만 원인데 계산해 보니 왔다 갔다 비행기 표 사고 나면 남는 것도 없을 것 같아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으려 했다. 시상식도 아버지가 원해서 참여하게 됐는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강당도 꽉 차고 규모도 큰 행사였다. 그때부터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같다.

미국에서는 현재 한국책이 거의 안 보인다. 서점에 가도 코리안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었다. 한국 문학이라는 것이 재미도 있지만 한국어 자체에는 굉장히 시적이고 정서적으로 풍부한 면이 있다. 번역을 하면 자세히 분석을 해야 하니까 그러면서도 배우는 것이 많았다.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니 어릴 때와는 또 다른 점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미국에서 너 어디서 왔니 물으면 코리아가 어디인지부터 설명해야 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에 대해 전혀 몰랐다. 한국에 대해 설명을 하다 보니 그게 동기가 된 것도 같다. 사람들이 너무 모르니 알려야겠다. 그래야 나도 좀 편해지겠다 싶었다.

아는 친구 중 한 명이 한국의 옛날 건축 방법을 수업 자료로 쓰고 싶다고 자료를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본 일이 있다. 그래서 구할 수 있다고 답하고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는데 우선 영어로 된 것이 없더라. 워싱턴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연락해서 자료를 받긴 했는데 오자투성이고 형편없었다. 이래 가지고는 뭘 하겠나 싶었다. 진짜 제대로 된 번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물론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그래도 지금은 한국이라고 하면 삼성 휴대폰, 현대 자동차, 케이팝 이런 것들을 알아준다. 그러나 한국의 얼, 정신 같은 것이 제대로 알려지지는 못했다. 그런 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소수이기도 하고 학계의 연구물에 불과하다. 한국을 설명하다 보면 한국의 역사 자체를 이해시켜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노
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번역뿐 아니라 전기도 여러 편 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도산 안창호의 따님인 안수산 여사의 전기도 쓰셨다고요.

안수산 여사의 전기를 쓰게 된 것도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섭 선생님의 소설을 번역해서 상을 탄 게 LA에도 보도됐었다. 하루는 집에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아 보니 주요섭 선생님의 아내 분이었다. 고맙다고 하면서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김자혜 여사라는 분인데 마침 LA에 사셨다. 김자혜 여자는 한국 최초의 여성기자로 동아일보에서 근무했다. 인력거를 타고 취재한 이야기하며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 땄을 때 옆에서 일장기 지우는 작업을 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인연으로 그 분하고 가까워졌다. 그 분이 3.2여성동지회 고문이셨는데 마침 동지회 회장이 안수산 여사셨다. 김자혜 선생님이 안수산 여사에 대한 팸플릿을 내려고 하는데 써줄 수 있냐고 해서 감히 거절은 못하고 승낙을 했다. 그 기회를 통해 안 여사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 분량이 길어져 결국은 책으로까지 나오게 됐다. 안 여사는 인품이 명랑하고 아무것도 감추는 것이 없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많이 배우게 됐다. 안창호 선생도 정직을 강조하셨는데 가족에게도 실천을 시킨 것이었다. 그 분이 지난해 2월 24일 만 100세 나이로 타계하셨는데 그 전날까지도 청소년 모임에서 스피치를 했다고 한다. 그 분 전기를 통해서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 시대, 더불어 2차 대전까지 설명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을 읽은 외국인들도 당시 코리아가 이랬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안 여사가 소개해준 게 백영중 회장이다. 14살 때 평양에서 혼자 도망 나와 남한에 와서 전쟁 치르고 고생하다 미국에 와서 억만장자가 된 분이다. 이 사람의 스토리를 쓰면 6.25전쟁을 포함해 한국 현대사를 담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이 분은 평양을 떠날 때 일주일 뒤에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가족들도 다 두고 왔다. 결국 지금까지 소원이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다 1995년 미국 정부에서 경제원조단을 만들어 평양에 갈 건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백 회장님에게 했다. 그러자 그 분이 어머니를 만나게 해 주면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평양에 가서 마지막 만찬 때까지도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때 어떤 사람이 쪽지를 전해줬는데 이번에는 어머니와 상봉이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다음날 공항에 가려고 숙소 앞에 서 있는데 호텔 앞으로 벤츠 한 대가 섰다. 한 청년이 내리더니 자기 멱살을 잡고 벤츠로 끌고  가길래 나는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청년이 바깥에는 보는 눈이 있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서 어머니에 대한 해결책이 있으니 들어보라며 진정을 시켰다고 한다. 이후에 공항 VIP실에서 기다리는데 그때 황장엽 선생이 방 안으로 들어와 다음에 오면 어머니를 꼭 찾아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북한, 핵문제로만 인식…주민들 삶 이해시키고파 

황장엽 전 비서와의 인연이 이미 여기서부터 시작됐군요.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은 이때부터 생기셨나요.

우리 가족사와도 연관된 부분이 있다. 윤동주 시인과 어울려 놀던 외삼촌이 우리와 함께 남으로 오지 못 하고 만주에 있다 두만강을 넘어 무산으로 갔다. 그때 외할머니가 병에 걸려서 함께 남하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오빠를 계속 보고 싶어 했다. 미국에서는 마만 먹으면 북한과 컨택(연락)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 여러 번 외삼촌을 찾자고 얘기했는데 미국에 친척이 있다고 하면 오빠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돌아가실 때까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니까 자라면서 늘 북한을 의식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또한 책을 쓰면서 한국 역사 얘기를 하려면 북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다 싶었다. 백 회장을 통해서 황 선생님 얘기를 듣고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황 선생은 1997년 망명을 했었고 백 회장하고도 상봉했었다. 그러던 차에 2003년 쯤 비서 역할을 했던 손광주(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씨와 함께 해서 황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솔직히 황 선생님을 만나고 충격을 받았다. (북한에서 300만 명이 아사했다는 얘기를 듣고)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을까 싶었던 거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황 선생도 처음에는 자기도 못 믿었다고 얘기하더라. 그래도 한반도 얘기를 쓰려면 그 분의 스토리를 쓰는 게 좋겠다 싶어서 손광주 씨와 만나 그때부터 책을 쓰게 됐다. 황 선생님은 볼 때마다 나에게 미국에서 뭘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이미 백 회장하고도 북한민주화운동을 같이 하자고 뜻을 모았었다. 결과적으로 제대로 되지는 않아서 나도 참 안타까웠다. 어쨌건 황 선생님을 만나면서 북한인권과 탈북자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본격적으로 생겼던 것 같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이해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사실 북한 사람이나 남한 사람이나 같은 사람 아닌가. 우리가 이렇게 갈라져 있지만 정치적 문제이지 사람하고는 상관없다. 결국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데 6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머리 좋다고 하는데 이 문제만큼은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함경도 지역 사람들은 옛날부터 잘 못 먹었다. 일제 강점기 전부터 감자만 먹고 살았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굶고 있다. 그 사람들이 진짜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미국 사람들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를 않는다.

미국에서도 한창 대북지원을 할 때 교회를 통해 봉사를 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쌀 창고에는 쌀이 쌓여 있는데 아랫부분은 썩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한에는 절대 쌀을 주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 나도 그때는 그 말을 이해 못했다. 알고 보니 정권에서 식량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황 선생이 그런 말을 했다. 김정일은 100만 명이 죽어도 끄떡 안 할 거라고. 우리 친척도 굶어 죽었을지 모른다. 사람을 그렇게 취급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인들이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여론조사가 있었는데 ‘북한 사람들은 크레이지(crazy)하다’는 답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 사람들도 사람이다. 그 사람들도 딴 사람들하고 다를 게 없다’고 얘기한다. ‘다만 그들은 지도자를 잘못 만난 것이다. 지도자가 미친 거지 그 사람들이 미친 것은 아니다’고 얘기하지만 그게 잘 안 통한다. 현재 미국에서 물망초 재단을 통해 탈북자 학생들을 초청해서 진행하는 언어 연수 프로젝트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여기 사람들에게 탈북자 학생들을 자꾸 소개해 주고 이해시키고 싶다. 어쨌건 미국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핵이다. 김정은이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하니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94년 당시 영변을 폭격했어야 했는데 아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대화가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꽤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내걸고 있는데 요즘은 좀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북 제재 내용들을 보면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는 더 속지 않겠다는 그런 생각인 것 같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최근 한국 사회의 모습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외부에서 볼 때는 미국도 같기는 하지만 양극화가 문제인 것 같다. 미국도 양극화가 굉장히 심각하긴 하지만 오래된 문제이기도 하고 중산층이 워낙 두터우니까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양극화의 형태가 중산층이 자꾸 줄어드는 모습으로 가는 것 같다는 우려가 든다. 그리고 학자들이나 교수들이 편 가르기를 먼저 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나를 처음 보는 한국 사람들이 ‘이 사람이 이쪽일까 저쪽일까’ 계산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지 이 당, 저 당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하면 이상해 보이는 것 같더라.

미국에서도 귀향 군인들, 나이 든 사람들은 여기의 아스팔트 우파처럼 적극적으로 나선다. 반대로 젊은 세대는 아무것도 모른다. 결국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한국이라고 하면 삼성, 현대차, 케이팝 문화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옛날에는 낙후했던 국가가 이제는 이런 강국이 됐으니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는 한국 사회가 안보문제에 너무 안이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이 평화를 위협하고 도발을 할 때는 뭉쳐서 대응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다.

또한 요즘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의 불만과 분노가 크다.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살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본다. 음악도 유행에 따라 인기를 끌  듯이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통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자신들의 살 길이 통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통일을 자신들의 패러다임으로 정해서 앞장서서 개척해야 한다. 과거 4.19혁명이나 5.18민주화운동도 다 젊은 세대가 앞장 서지 않았나. 요즘 젊은이들이 일자리 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건 안타깝지만, 불평과 불만에 너무 익숙한 것 같다. 자기의 살 길은 자기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통일 문제에 있어 중국이나 미국을 설득하는 데도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떳떳하게 설명도 하고 설득도 해야 한다. 이런 열정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게 잘 안 보인다. 그것도 역시 우리 세대의 잘못이면 잘못이겠지만 말이다.

http://www.sdjs.co.kr/read.php?quarterId=SD201603&num=915

2017년 5월 29일 월요일

“韓 전술핵 재배치땐 對北억지력 커져 … 北과 비핵화 협상도 가능”

大選서 쟁점 떠올랐던 전술핵

북한 핵위협 고조로 지난 5·9 대선에서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문제가 쟁점 중 하나로 떠올랐다. 보수진영의 홍준표 자유한국당·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북핵 위기에 맞서 전술핵 재배치를 찬성하자, 선거에서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진보진영 후보들은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지난 3월 중순 ‘전술핵 재배치 서둘러야 하는 까닭’이라는 제목의 글로 주목을 받았다. 최 부원장은 10일 인터뷰에서도 “전술핵 재배치는 가능하다”며 “미국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술핵 재배치를 찬성하는 이유에 대해서 “전술핵이 재배치되면 북한에 대한 억지력이 커진다”면서 “핵무기는 군사 작전적 효용보다 심리적 효용이 크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핵 군축 협상을 하자고 하는데, 만약 미국이 한반도에 핵을 가지고 있으면 북한이 비핵화하는 조건으로 우리 쪽에 있는 핵을 빼는 협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내에서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009년 당시 최고위원으로서 “미국 인사들도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는 미국 측 기류를 소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촉발됐다. 정 전 대표는 지난 2011년엔 대정부 질문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거론했다.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거스르는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공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이 핵개발을 지속할 경우 미군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에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56.8%였고 반대는 33.1%였다. 전술핵 재배치가 공개적으로 거론된 지 6년 만에 국민 여론은 찬성 쪽으로 기울어졌다.

최 부원장은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에 따른 우리의 부담에 대해서 “물론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가 있다”며 “핵무기 저장시설이 있어야 되고 관리하기 위한 체제도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운반 체계도 있어야 되고 주한미군 군사력 구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최 부원장은 “비용에 대해서는 향후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부담을 요구하거나 우리가 같이 부담하는 형태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수용 여부와 관련해 “진보 정부는 비핵화를 주장하지만 북한 핵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며 “북한의 핵 능력만 더욱 고도화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연구기관에 따르면 북한이 오는 2020년대까지 보유한 핵무기 숫자를 최소 20기에서 최대 100기로 관측됐다. 최 부원장은 “현재 미군 내부에서도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상당히 지지하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며 “전술핵 재배치는 북핵 문제 해결에 빨리 나서라고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2017년 5월 27일 토요일

성소수자 부모모임과 함께한 나의 커밍아웃

방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커밍아웃 과정이나 당시 상황을 얘기하는 글들은 많은데, 그 이후를 다룬 글이 많이 없다며 웹진팀에서 내게 이 글을 요청했다. 아마 커밍아웃이 잘 받아들여진 가정 안에서는 더 이상 퀴어임이 특별한 일로 다뤄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커밍아웃을 준비하는 많은 퀴어들이 커밍아웃 이후의 가족관계 변화를 궁금해한다. 짧은 부모모임 활동을 하며 지켜본 가족들을 바탕으로 말해보자면 커밍아웃 이전과 이후의 가족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커밍아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서로 싸우거나 거칠어질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원래의 가족관계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원래 부모와의 상호존중이 잘 이루어지는 관계였다면 커밍아웃을 할 때에도 대개 극단까지 치닫는 경우가 적고, 부모가 본인의 위계를 지나치게 내세우거나 기존에도 가족이 서로 싸우는 관계였다면 커밍아웃 시에도 그러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렇기에 부모가 아직까지도 자녀를 소유물처럼 다루려 한다면, 우선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인식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반항하고 싸워서 자녀가 가족 내에서 적절한 주체성을 찾는 것도 커밍아웃을 준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커밍아웃 그 이후

나 또한 커밍아웃 이후에 가족관계에 있어 극적인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커밍아웃 이전에도 부모님은 나와 깊은 대화를 자주 하셨고, 언제나 나를 믿고 따라주셨으며, 그것은 이후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것이라면 부모님이 가끔 성소수자 인권시위에 나가고 성소수자 부모모임 운영위원 활동을 한다는 것 정도이다.

커밍아웃 전이든 후든 부모님과는 언제나 똑같이 사이가 좋지만, 클로짓(closet)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오픈리 게이(openly gay)인 지금 부모님은 나에게 정말로 큰 힘이다. 내가 성소수자 가시화를 위해 주변에 여건이 된다면 내 정체성에 대해 커밍아웃 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한 뒤로 부모님은 주변인들에게 커밍아웃도 서슴치 않으신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심상정 의원이 많이 득표해야 한다며 모든 외가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커밍아웃을 하셨다. 그 중에는 보수 기독교인인 이모도 있었다. 이모는 그 자리에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커밍아웃 이후 며칠 뒤 엄마에게 문자로 '나도 너무 놀랐다'며 '예준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찾았다는 '나는 더 이상 동성애자가 아닙니다.'는 혐오세력의 동영상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것에 답한 엄마의 반응은 이랬다.

"이미 본 영상이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왜곡된 동영상들이 많으니까 잘 찾아봐야 해! 나도 처음엔 언니처럼 부정하는 단계가 있었어, 이해해. 나중에 얼굴보고 깊게 얘기 해줄게.^^"

엄마가 저렇게 밝고 단단하게, 오히려 전복적으로 조언까지 하자 이모는 그러냐며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못했다.

나는 새삼 엄마가 그 정도로 단단해진 것에 놀랐다. 이제 나보다도 더욱 단단해진 것 같았다. 엄마는 항상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나의 당당함 덕분이라고 한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당당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만들어주게 된 것이다.

만약에 커밍아웃이 실패했다면

아직도 편지를 던지고 집에서 나와 친구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혼자 했던 상상들이 또렷하다. 부모님의 폭언이나 폭력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속으로 막 화를 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성소수자가 아니었다면 평생 없었을 이런 일로 왜 이렇게 스트레스 받고 고민해야 하는지, 그 처지의 내 자신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커밍아웃이 실패했다면 아마 예정대로 군대에 입대했을 것이다. 전역하고 나서는 고등학교 내내 배웠던 기술로 재취직해서 나름의 독립된 삶을 꾸려갔을 것이다. 가끔씩 '언젠가는 부모님이 본인의 잘못을 깨우치겠지.' 하는 생각을 했겠지만.

성소수자 부모모임

하지만 그랬더라도 나는 분명히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했을 것이다. 커밍아웃을 준비할 때부터 활동가 부모님들이, 딱히 무언가를 챙겨주지 않더라도 그곳에 계시다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커밍아웃이 실패했더라도 그곳에서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부모모임이 가지는 힘은 그러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모임에 새로이 오는 부모님들에게는 몇 가지의 패턴이 있다. 그 중 부모모임에 와서 가장 많이 우는 부모님들은 커밍아웃 이후 자녀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저질렀던 부모님들이다. 본인들이 자녀에게 저지른 행동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것이다.

엄마는 나의 커밍아웃 직후 미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도 나름의 침착함을 유지하며 '아니 그렇다고 이게 죽을 이유는 아니잖아' 라고 말했다. 그렇다. 자녀가 성소수자인 것은 상식적으로 어떻게 봐도 죽을 일이 아니다.

많은 부모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자녀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심지어 어떤 탈동성애 목사의 어머니처럼 그것을 이유로 자살하는 비극이 생기는 것은 차마 두고 보기 힘든 일이다. 나는 그 부모님들도 '디나이얼(denial), 클로짓(closet) 부모님'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진실된 세상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걸 받아들이면 분명 불행해질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쉽게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이때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당사자들 뿐만 아닌 디나이얼, 클로짓 부모들에게도 '밖으로 나와 자녀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성소수자 부모로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어요,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그들을 감싸 안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친구들 중에 부모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 부모모임의 활동이 더 확대되어 이러한 벽장 속 부모들도 우리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감사하며 이 글을 맺는다.
http://lgbtpride.tistory.com/1430

2017년 5월 25일 목요일

실사구시 대외정책을 기대하며

새정부 北위협 대응책… 
국제공조 강화가 필수 韓美간 윈윈 찾고 對中관계 개선 모색… 
日과 안보협력 위해선 정파-이념 넘어서야

새 정부가 어려운 대외환경과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 같아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날로 심각해지는 북한의 위협,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미국, 고압적인 중국,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딴지 거는 러시아, 각종 분쟁과 분열의 분위기가 확산되는 국제정세 아래에서 한국은 어디에 위치해야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가 심각한 고민거리로 다가오고 있다.

새 정부가 최우선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는 북한 위협이다. 이에 대응하여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북한 문제에 관한 국제 공조가 우선적으로 고려•강화되어야 한다. 현재 미국은 북한을 최대의 안보위협으로 간주하고 ‘최대 수준의 압박과 관여’라는 정책으로 북한을 대하고 있고, 중국 역시 일정 부분 동조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한국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과 선택지가 주요 관련국들과 외부요인에 의해 설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감상적 주도권을 확보하고, 독립적인 움직임을 추구할 경우 자율성은 더욱 축소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국제공조를 강화할수록 자율성과 주도권이 확보될 수 있다. 김대중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은 ‘페리 프로세스’로 나타난 한미일 공조가 기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미국과 대북정책 협의를 긴밀히 하여 어떠한 압박을 어느 수준까지 취할 것인지, 어떠한 조건과 상황하에서 대화에 임할 것인지, 대화와 비핵화는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등에 관한 협의와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한미동맹 조정과 발전에 관한 문제들을 협의하고 해결하는 것이 두 번째 중요한 과제다.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에 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동맹 관리와 운영 문제에 관한 한국과 미국 간 이견과 마찰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국방비 증액,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와 새로운 한미 간 지휘체계, 지역안보 문제에 대한 한국의 참여와 기여 등의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도 강력히 거론될 것이다. 새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미국과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지를 고민하고 결정하여 서로가 ‘윈윈’하는 거래를 만드는 작업을 하루빨리 추진해야 한다.

한중 관계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 하는 것도 문제인데, 이것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사드 배치를 계기로 밀월로 보이던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으나,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중국은 한국에 ‘러브콜’을 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와 북한의 위협으로 인해 사드 배치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이 보여준 민낯은 우리의 대중정책이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였다. 새 정부는 성급히 관계 복원을 추구하기보다는 중국의 부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면밀히 짚어보고 우리에게 유리하고 바람직한 구도가 무엇인지를 설정한 이후에 점진적이고 차분하게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해야 한다.

또한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 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찾아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위안부 문제와 안보협력을 연계할 것인지 아니면 분리할 것인지, 안보협력을 한다면 어느 수준과 영역까지 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와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분리 추구해야 한다. 위안부 합의 이행 문제는 지속적으로 협의하되 이를 전제로 안보협력을 논의하는 것에는 득보다 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과의 안보협력을 항상 원하고 적극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베 신조의 일본은 제 갈 길을 가려고 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일본과의 안보협력은 어디로 튈지 모를 일본을 잡아놓는 방안으로도 고려되어야 한다.

어려운 대외환경과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이 출범하는 정부가 정파적 이익이나 이념적 성향을 넘어선 실사구시적 대외정책을 추구하기 바란다.

2017년 5월 23일 화요일

다양성이 만들어낸 창조성과 경쟁력의 흔적들

유대인 품은 빈, 유럽의 문화수도로 
접점에서 나오고 연결로 완성되는 창조성

김용준 생활경제부 차장

서울대, 광운대, 한양대, 경북대.

작년 9월 말 기준 삼성전자 등기이사(사내) 4명의 출신 학교다. 모두 다르다. 임원 1029명도 분류해봤다. 이들의 출신 학교는 국내외 100곳이 넘는다. 처음 들어본 국내 대학도 꽤 된다. 삼성전자의 실력 중심 문화는 결과적 다양성으로 이어졌다. 이건희 회장이 주장한 ‘3불연’ 원칙의 결과다. 학연 혈연 지연을 용납하지 않는 것. 삼성 조직문화가 획일적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거친 환경에서도 다양성은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다양성과 경쟁력(창조성)의 관계를 증언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미국은 자체로 다양성의 보고다. 레바논,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와 그 자식들은 애플 테슬라 구글을 창업했다. 그리고 세계 시장의 지배자가 됐다.

오래전으로 가보자.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은 유럽의 문화 수도가 됐다. 15세기 피렌체와 비슷했다. 모더니즘은 이곳에서 태어났다.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 등이 빈의 공기를 함께 마셨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화려한 시대의 상징이다.

프랑스 파리를 유럽 문화의 변방으로 밀어낸 빈의 힘은 ‘공존’에서 왔다. 19세기 오스트리아는 유대인 차별을 없앴다.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갖고 있는 유럽의 인재들이 빈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들은 골방에 처박혀 있지 않았다. 살롱으로 모여들었다. 서로를 배웠다. 노벨상 수상자 에릭 캔델은 클림트가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를 이런 문화의 상징이라고 평가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 그리고 정자와 난자의 이미지는 의학, 정신분석학,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라는 얘기다. 클림트에 의해 융합이 일어난 셈이다. 다양성이 뒤얽혀 창조성을 낳았다.

17세기 네덜란드도 그랬다. 화가 얀 베르메이르의 ‘델프트의 풍경’이라는 그림. 그림에는 기독교와 가톨릭교회가 나란히 등장한다. 공존과 다양성의 시대였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다양성과 공존의 힘은 자연에서도 나타난다. 한 연구자들이 실험을 했다. 두 개의 닭장을 만들었다. 하나에는 알 잘 낳는 닭만 골라 넣었다. 다른 하나에는 잘 낳는 놈, 못 낳는 놈, 적당히 낳는 놈을 고루 넣었다. 우수한 닭 중 일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생산성은 떨어졌다. 치열한 경쟁심리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해석했다. 골고루 섞인 닭장 안은 평화로웠다.

이렇듯 다양성은 창의성과 경쟁력이 시작되는 샘과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변화는 빠르고, 전략은 미로가 됐다. 장기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 가지 전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생각이 만나는 ‘창의적 접점과 연결’을 찾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은 아닐까.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41925961

2017년 5월 21일 일요일

한국인의 미ㆍ중 인식 - “중국이 미래 경제 이끌고, 정치도 미국과 접전”

한국인 제2의 양극체제 실감
현재는 정치ㆍ경제 모두 美
미래에는 경제 中, 정치 美中 접전

여론계량분석센터 강충구 연구원

한국인은 동북아 내 미ㆍ중간 패권경쟁의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미국이 앞서고 있지만, 중국이 따라잡을 것으로 봤다. 동북아 맹주를 자처하며 팽창하는 중국과 ‘아시아 회귀’로 이를 봉쇄하려는 미국 사이 패권 다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1월 10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극적으로 타결된 뒤 역내 미ㆍ중간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처럼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은 한국인의 미ㆍ중 인식을 조사했다.

한국인은 향후 경제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고, 정치에서는 미ㆍ중간 패권 다툼이 가열될 것으로 봤다. 현재로서는 정치ㆍ경제 모두에서 미국을 패권국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향후 전망에서는 정치ㆍ경제 부문별로 예측이 엇갈렸다. 중국이 성장을 지속하고 있어 향후 경제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예견하는 응답이 과반(67%)을 넘었다. 정치 부문 전망은 미국이 앞으로도 맹주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으나(45%), 중국의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보는 비율(39%)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인, 아직은 미국을 패권국으로 인식
한국인은 중국의 영향력 확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의 패권국으론 미국을 꼽았다. 냉전이후 슈퍼파워를 유지해온 미국을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본 것이다. 미국의 패권은 경제(65%)보다 정치(82%)부문에서 뚜렷했다.

이와 달리, 중국을 패권국으로 본 한국인은 경제 25%, 정치 5%에 불과했다. 중국이 고성장으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지만, 정치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특히, 정치에서 한국인의 5%만 중국을 패권국으로 인정한 점은 중국으로선 실망스러운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이후 양국 정상이 다섯 차례나 만나 협력관계 강화에 신경을 썼는데도 결과가 그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한국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정치력에 대한 한국인의 평가는 냉정했다.



향후, 중국의 부상을 전망
그러나 미ㆍ중(G2)에 대한 한국인의 미래 전망은 현재와는 크게 다르다. 중국이 앞으로도 경제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22%)에 비해 중국(67%)이 경제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경제에서 중국의 굴기를 피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중국이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또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으로 경제력 확장에 주력하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운 것과도 연관된다.

정치에서 미ㆍ중 경쟁구도에 대한 예측은 더욱 극적이다. 한국인은 ‘현재는’ 중국의 정치력이 미국에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했지만, 미래에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미국에 근접할 것으로 봤다. 정치에서 미국, 중국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본 한국인은 각각 45%, 39%였다. 현재 시점의 평가가 미국 82%, 중국 5%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은 경제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정치에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미ㆍ중간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 질 것으로 봤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정치력 확장 기대감 높여
한국인은 향후 중국의 경제성장이 정치력 확장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봤다. 그동안 기록적인 경제성장이 중국 사회에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왔다면, 미래에는 미국과의 패권경쟁을 심화시킬 것으로 본 것이다. 정치ㆍ경제적 영향력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미ㆍ중을 패권국으로 선택한 응답자(801명)만 분석했다. 그 결과, 향후 중국을 경제 패권국으로 본 한국인은 59%가 중국이 정치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미국이 미래에도 가장 큰 경제력을 행사할 것으로 본 한국인은 11%만 중국이 정치에서 맹주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ㆍ중(G2)의 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한국인의 전망이 정치부문 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미중관계, 경쟁으로 보는 한국인 증가
한국인은 미중관계를 경쟁으로 정의해 왔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미중공조로 양국 관계를 협력으로 보는 한국인이 40%까지 증가했으나, 이를 제외하면 미중관계는 경쟁으로 인식되어 왔다. 최근 동북아 내 미ㆍ중간 갈등이 잦아지면서 양국 관계를 경쟁으로 보는 시각은 더욱 강해졌다.

앞서 중국의 팽창으로 미ㆍ중 대결이 본격화될 것으로 본 한국인의 우려가 미중관계 인식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특히, 올해 11월에는 미중관계를 경쟁으로 보는 한국인이 7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대로 협력관계로 본 비율은 18%로 가장 낮았다. 그만큼 한국인은 동북아 내 미ㆍ중 대결로 고조된 긴장감을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다.


2017년 5월 19일 금요일

한국인의 이민자 인식

선생님께서는 다음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외국인 이민자들이 범죄율을 높인다”
  • “외국인 이민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화를 통해 더 좋은 한국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 “외국인 이민자들은 일반적으로 한국 경제에 도움을 준다”
  • “외국인 이민자들이 한국인의 직업을 빼앗아간다”
  • “한국 정부는 이민자들을 돕는데 너무 많은 돈을 쓴다”
  • “한국 정부는 불법 이민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좀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근 외국인의 유입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수용성은 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인의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인식은 각 부문별로 다소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약하면 사회적으로는 유보적, 경제적으로는 긍정적, 정부의 이민자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먼저 사회문화 부문에서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은 긍정, 부정이 섞여 있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외국인 범죄가 보도되면서 외국인 이민자가 범죄율을 높인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과반(53.0%)을 넘었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35.2%였고, 모름/무응답은 11.8%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외국인 이민자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화를 통해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의견은 53.2%로 다수였다. 외국인 이민자가 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한국인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었다.

경제 부문의 경우, 한국인은 외국인 이민자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63.2%의 한국인은 외국인 이민자가 한국 경제에 도움을 준다고 답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은 비율은 24.8%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모름/무응답은 12.0%였다. 또 외국인 이민자가 한국인의 직업을 빼앗아 간다는 주장에는 66.0%가 동의하지 않았고, 이에 동의한 비율은 26.5%였다. 한국인과 외국인 이민자가 주로 종사하는 노동시장이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 이민자를 경제적 위협으로 보는 비율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정부의 이민자 정책에 대해 물었다. 최근 다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정부의 이민자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정책에 대한 평가는 곱지 않았다. 정부가 이민자를 돕는데 너무 많은 돈을 쓴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 비율이 44.5%였으나, 37.5%의 한국인은 여전히 이 주장에 동의했다. 정부의 이민자 정책이 본격화 되지 않았음에도, 한국인 사이에 ‘자국민 역차별’ 의식이 존재했다. 이는 정부의 현행 다문화 정책이 온정적, 시혜적 복지서비스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불법 이민을 방지하기 위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비율은 67.7%로 다수를 차지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외국인 이민자의 강력범죄가 불법 이민자 차단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http://www.asaninst.org/contents/%ED%95%9C%EA%B5%AD%EC%9D%B8%EC%9D%98-%EC%9D%B4%EB%AF%BC%EC%9E%90-%EC%9D%B8%EC%8B%9D/

2017년 5월 17일 수요일

참여정부의 한 과오 - 배승일씨 훈장 박탈 사건

 올해도 5월 18일이 돌아왔습니다. 한국사에 비극은 참 많았지만, 5.18은 그 중에서도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비극이었습니다.

 5.18은 불법반역행위로 권력을 점유한 군벌에 의한,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 폭동/학살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이 사건은 지역감정을 자극해, 일종의 약화판 홀로코스트를 유도한 면이 있었습니다. 딱히 민주화 운동이랄 것도 없이 광주 시민들은 생존과 존엄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고, 역사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부당한 권력의 폭력 앞에 자연인이 존엄을 위해 무장하고 맞서 싸우는 건 천부적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다만 향후 이 역사적 비극을 정리하겠다고 나선 참여정부가 어처구니없는 과오를 저지른 게 있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라 한번쯤 언급해보려 합니다.

 배승일씨는 1980년 당시 광주의 한 탄약창고에서 육군전투병과교육사령부 군무원으로 복무 중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폭발물 처리를 맡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5월 24일, 전남도청은 시민군이 점령 중이었지만 곧 계엄군의 탈환작전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군은 도청 지하에 엄청난 양의 폭약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배승일씨에게 제거해주길 부탁합니다. 그에 배승일씨는 목숨을 걸고 2000여개의 다이너마이트와 450여발의 수류탄 뇌관을 제거합니다. 만약 이것이 교전 중 터졌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요. 배승일씨는 이 공적을 인정받아 그해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습니다.

 그런데 2006년, 노무현 정부는 5.18 진압작전 참가자의 서훈을 취소하면서, 배승일씨의 훈장도 함께 박탈해버립니다. 어처구니없는 처사였지요. 당연히 배승일씨는 그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배승일씨는 당시로부터 약 10년 전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언어/시각에 장애가 있는 상황이었고 생계도 수월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렇다 해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온갖 5.18 단체를 찾아다니고, 정부에 소송까지 불사하여 결국 2007년에 명예를 되찾습니다.

 참여정부는 일을 엉터리로 해서 광주사태의 영웅 중 한 명에게 부당한 피해를 끼쳤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 차원의 사과와 보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참여정부는 공권력 행사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에 합당한 보상과 사과를 했던 정부는 아니었습니다.

 그에 본 블로그에서라도 배승일씨의 업적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기념합니다. 그의 활약으로, 어쩌면 발생할 수도 있었던 끔찍한 참사가 예방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폭발물을 제거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국가는 그에게 감사는커녕 훈장을 빼앗아갔었지만, 명예는 회복되었습니다.


출처: http://oceanrose.tistory.com/550

2017년 5월 15일 월요일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요? - 젠더의 다양성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하리수 씨의 TV 광고 출연이 계기였다. 그와 더불어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이 다방면에서 전개되고, 여러 당사자들이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법적 성별 정정에 관한 전향적 판결 등이 이루어지면서 트랜스젠더는 TV 속의 낯설고 신기한 존재를 넘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조금씩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성별 이분법에 따른 고정관념과 이로 인한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해들, 그리고 엄격한 성별 정정 요건, 의료보장의 부재와 같은 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온전한 성별 정체성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떤 오해와 차별을 받고 있는지 알아보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와 오해

현재의 신분 체계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출생 시 남성/여성 어느 하나의 성별로 지정되어 출생 신고가 이루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성별 번호가 포함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출생 시 지정된 자신의 성별에 큰 불편이나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중에는 지정 성별에 따른 외모, 옷차림, 성역할, 신체 등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나아가 지정 성별과는 반대의 성별 또는 남/여가 아닌 독자적인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트랜스젠더는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용어이다.

트랜스젠더가 구체적으로 사용되는 맥락은 한국과 외국에서 조금 차이가 난다. 처음으로 트랜스젠더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미국1)을 비롯한 서구에서 트랜스젠더는 '성별 표현, 성별 역할, 성별 정체성 등이 사회가 요구하는 성별 규범에 맞지 않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Transgender Umbrella)로 사용된다.2) 이에 비해 현재 한국의 커뮤니티, 성소수자 운동 등에서 사용하는 트랜스젠더는 정체성으로서의 면을 보다 강조하여 '출생 시 지정받은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사람'3)을 가리키며 간성(Intersex), 크로스드레서(Cross dresser) 등과 구분되는 범주로서 이야기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좁게는 FTM/MTF를, 넓게는 FTM/MTF/젠더퀴어를 포함하는 범주로 이해할 수 있다.

FTM/MTF와 같은 말들은 성별 정체성이 남성/여성인지에 따라서 트랜스젠더를 구분하는 용어이다. FTM은 Female to Male의 약자로 출생 시에 여성으로 지정되었으나 자신을 남성으로 인식하는 사람을 말하며, 반대로 MTF는 Male to Female의 약자로 출생 시 남성으로 지정되었으나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는 사람을 말한다. 동일한 의미로 FTM/MTF라는 말 대신 트랜스 남성(Transman)/트랜스 여성(Transwoman)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4) 한편 젠더퀴어(Genderqueer)는 중성, 양성, 무성 등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현재의 한국 커뮤니티 등에서는 맥락에 따라 젠더퀴어를 트랜스젠더에 포함시키거나 트랜스젠더와 교집합을 이루는 독자적인 범주로 사용하고 있다.5)

한편 현재 트랜스젠더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트랜스젠더는 모두 수술을 통해서 자신의 몸을 바꾸었거나 바꾸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6) 그리고 이러한 오해로 인하여 트랜스젠더가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생식기 관련 수술을 받을 것이 요구된다.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여성의 경우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트랜스젠더인 척하는 것이라 의심받거나 병역 이행을 요구받는 일도 있다.7) 그러나 남성이라고 해서,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외모, 성격, 신체 조건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른 성별 표현이나 성별 역할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8) 트랜스젠더 중에는 수술 등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전환한 사람도 있고, 수술이 아닌 호르몬 등 몇 가지 의료적 조치만을 받은 사람도 있으며, 별도의 의료적 조치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외모와 성격 역시 여성/남성스러운 사람부터 중성적인 사람, 특정한 성별 특징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수술 여부나 현재의 외모, 신체 조건 등을 기준으로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는 어떻게 다른가?

오랫동안 동성애자, 여장남성, 남장여성, 트랜스젠더는 구분 없이 하나의 범주로 여겨져 왔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트랜스젠더라는 독자적인 범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9)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이전까지도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를 뚜렷하게 구분하여 명명하지 않았다.10) 따라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를 혼동하여, 남성 동성애자들은 모두 화장을 하고 여성스런 행동을 한다 생각하거나 트랜스젠더가 성별을 바꾸려는 것은 동성애로 인한 것이라는 오해를 하곤 한다.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의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 성적 지향은 '어떠한 성별을 가진 사람에게 성적, 감정적으로 끌리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이고, 성별 정체성은 '자신을 어떠한 성별로 인식하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11) 따라서 지정 성별과 다른 성별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성적 지향을 갖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트랜스젠더라 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신과 같은 성별에 대한 성적 지향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의 외모, 성격 등과는 무관하게 동성애자라 할 수 있다.12)

한편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교차할 수 있다. 가령 트랜스 여성이라 해서 반드시 남성을 좋아하는 이성애자라고 할 수는 없으며, 같은 여성을 좋아하는 동성애자거나 양성애자, 무성애자 등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성소수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서 트랜스젠더 응답자 233명 중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응답한 사람은 48.4퍼센트에 불과하여, 트랜스젠더 내에도 다양한 성적 지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13)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다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된 동성애와 달리 아직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신과 진단은 남아 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최초의 의학적 정의는 1980년 <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DSM-III)에서 성전환증(Transsexualism)과 아동의 성 주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가 등재된 것을 기초로 하며, 이후 1993년 편람 4판(DSM-IV)에서는 성 주체성 장애로 이름이 통합되었다.14) 그리고 현재 < 세계보건기구(WHO) >의 국제 질병 분류 10판(ICD-10)15)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한국 표준 질병·사인 분류16) 역시 성전환증과 성 주체성 장애라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신과 진단 항목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트랜스젠더가 호르몬 치료나 외과 수술 등의 의료적 조치를 받거나 법적 성별 정정 혹은 병역 면제에 필요한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17) 정신과 진단서를 제출할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신과 진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치료받아야 하는 정신과 질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성 주체성 장애 진단을 받은 경우 권고되는 의료적 조치가 일반적인 정신질환처럼 약물이나 상담에 의한 증상 완화가 아니라 호르몬, 수술 등 성별 이행(transition) 관련 의료적 조치라는 점에서도18) 성 주체성 장애를 다른 정신질환과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한편으로 성 주체성 장애라는 진단명이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 자체를 병리화하고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또 다른 낙인을 씌운다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19) 이에 <미국정신의학회>는 2013년 편람 5판(DSM-V)에서 진단명을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으로 바꾸면서,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 자체는 정신질환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이들이 느끼는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스트레스에 대한 진단과 지원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20) <세계보건기구> 역시 이에 맞추어 2018년 개정될 질병 분류 11판(ICD-11)에서는 성 주체성 장애를 성별 불일치(Gender Incongruence)로 변경하고 정신 및 행동 장애가 아닌 성 건강의 범주에 위치시킬 예정이다.21)

따라서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질환이 아니다. 오히려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의료적 지원은 성별 위화감의 정도와 주변 환경 등에 따라 본인이 원하는 호르몬 요법, 수술 등 의료적 조치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것임에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진의 이해 부족과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로 이러한 의료 접근권이 사실상 전혀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22)

한편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염두에 두어 두어야 할 것은 정신과 진단에 의해서 트랜스젠더인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의사가 가진 지식과 상담 능력으로부터 일정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탐색하는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아야 한다.23)

트랜스젠더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

트랜스젠더 인구는 얼마나 될까? 국가 수준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수치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외국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추정을 해 볼 수 있다. 의학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인용되어 온 연구는 1993년 네덜란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에 따르면 트랜스 여성은 인구 11,900명 중 1명, 트랜스 남성은 30,400명 중 1명인 것으로 추정된다.24) 그러나 이 연구는 병원에서 성전환증 진단을 받아 호르몬 요법이나 외과 수술을 받은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실제 인구수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 힘들다. 앞서 보았듯 모든 트랜스젠더가 동일한 정도의 의료적 조치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병원을 찾지 않는 트랜스젠더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의 연구 결과는 위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트랜스젠더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가령 2011년 미국의 연구는 매사추세츠 주와 캘리포니아 주에서의 조사를 바탕으로 미국 내 트랜스젠더의 비율을 0.3퍼센트로 추정하였고,25) 2009년 영국의 연구는 15세 이상의 트랜스젠더 비율을 0.6퍼센트로 추정하였다.26) 한국 인구를 5,000만이라 하고 이들 비율을 적용할 경우, 국내에 약 15만 명 전후의 트랜스젠더들이 존재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상당히 적지 않은 수의 트랜스젠더들이 한국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제로 자신의 주변에서 트랜스젠더를 접해 본 사람들은 극히 드물고, 미디어에서도 연예인이나 유흥업 종사자로서의 트랜스젠더 이미지만을 주로 다루고 있다. 물론 노동시장에서의 차별과 경제적, 문화적 여건 등으로 특히 트랜스 여성들이 연예 산업이나 유흥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양한 직업군, 다양한 생활 영역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존재하고 있다.27) 인간의 성별이 태어나면서부터 신체적 특징에 따라 정해진다는 믿음, 성별이 남/여 두 가지만 존재한다는 믿음, 성별 이분법에 기초한 이러한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별을 가진 개인들이 그 자체로서 존중받을 때, 우리 사회에서 보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1) Devor, H. (2002). Who are ''we''? Where sexual orientation meets gender identity. Journal of Gay & Lesbian Psychotherapy, 6(2), 8.
2) Th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APA). Answers to Your Questions about Transgender people, Gender Identity, and Gender Expression. updated in 2014; 운조 (2005). 트랜스젠더. 여/성이론, (12), 298.
3)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기획단 (2006).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10-11; 한영희 (2007). 젠더사회에서의 트랜스젠더 읽기. 문화/과학, 49, 92
4) APA, 앞의 글.
5) 그 외 트랜스젠더 관련 용어들에 대해서는 나영정 외 (2013). 트랜스로드맵 = Trans-roadmap: 트랜스젠더 정보ㆍ인권 가이드북; 퀴어이론문화연구모임 WIG (2008).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 참조.
6) Spade, D. (2008). Documenting Gender. Hastings Law Journal, 59, 756
7) 김종오·신관우 (2014). 성전환증의 규범적 판단 - 병역법을 중심으로. 한국범죄심리연구, 10(3), 49-72.
8) 세계트랜스젠더보건의료전문가협회(WPATH) (2011). 트랜스섹슈얼·트랜스젠더·성별비순응자를 위한 건강관리실무표준 제7판, 5.
9) Drescher, J. (2010). Queer Diagnoses: Parallels and Contrasts in the History of Homosexuality, Gender Variance, and 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Archives of Sexual Behavior, 39, 436
10) 루인 (2012). 캠프 트랜스: 이태원 지역 트랜스젠더의 역사 추적하기, 1960∼1989. 문화연구, 1(1), 261.
11) APA, Definition of Terms: Sex, Gender, Gender Identity, Sexual Orientation. updated in 2011.
12) 다만 이러한 설명은 동성애자는 오직 성적지향, 트랜스젠더는 오직 성별정체성의 문제를 겪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보다 자세한 논의는 루인(2006). 젠더를 둘러싼 경합들 Gender Dysphoria: 트랜스/젠더 정치학을 모색하며. 여/성이론, 15, 289-304; 김준우 (2008).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통해 본 젠더 정체성 형성 과정,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참조.
13)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2014),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보고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99.
14) 이호림 외 (2015).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접근성에 대한 시론, 보건사회연구, 35(4), 64-94.
15) WHO(2016). 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 10th Revision, 5th edition.
16) 제7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통계청 고시 제2015-309호, 2015.9.24., 일부개정)
17) 징병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국방부령 제757호, 2012.2.8., 일부개정) [별표2] 질병·심신장애의 정도 및 평가기준 102. 인격장애 및 행태장애(습관 및 충동장애·성주체성장애·성적선호장애 등)
18) WPATH, 앞의 글.
19) Winters, K. (2005). Gender dissonance: Diagnostic reform of gender identity disorder for adults. Journal of Psychology & Human Sexuality, 17(3/4), 71--89.
20) APA (2013). Gender Dysphoria Fact Sheet. DSM-V.
21) Roberts, R. et al. (2015). Report of ICD-11 Revision Review ; WHO (2015). ICD-11 Update.
22) 이호림 외, 앞의 글; 이혜민·박주영·김승섭 (2014).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보건과 사회과학, 36, 43-76.
23) The Yogyakarta Principles(2007). Principle 3 ; Parliamentary Assembly of The Council of Europe (2015), Discrimination against transgender people in Europe, Resolution 2048, para 6
24) Bakker, A. et al. (1993). The prevalence of transsexualism in the Netherlands. Acta Psychiatrica Scandinavica, 237-238.
25) Gates, G. J. (2011). How many people are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Retrieved from https://escholarship.org/uc/item/09h684x2.
26) Reed, B. et al. (2009). Gender Variance in the UK: prevalence, incidence, growth and geographic distribution. Gender Identity Research and Education Society, Retrieved from http://www.gires.org.uk/assets/Medpro-Assets/GenderVarianceUK-report.pdf.
27)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앞의 글, 100; 장서연 외(2014),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 158-159.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lgbtstudies-kr/story_b_10231488.html